인간과철학

가치 대안

아이루다 2015. 6. 26. 08:29


원래 그러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우리 인간의 지능은 필요 이상으로 너무나 많이 똑똑해져 버렸다. 물론 우리는 현재 지능이 주는 장점을 아주 크게 누리고는 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보면 불필요할 만큼 높은 지능은 우리들 자신에게 금기된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왜, 무엇을 위해서 존재해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이런 질문을 존재론적 질문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는지, 결국 이것을 생각하는 것을 하나의 학문으로 발전시켰고, 그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까지 나오게 되었다. 우리는 그 학문을 철학이라고 부르고, 사람을 철학자라고 부른다.
 
하지만 우리가 스스로에게 왜, 무엇을 위해서 존재해야 하는지를 묻는 순간, 우리는 끝없는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어갈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아무리 많은 생각을 한다고 해도, 그 답은 결코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슬프지만 인정해야 하는 사실이다. 그나마 우리의 존재 목적은 그냥 자신의 몸을 이룬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넘기는 역할이다. 그런데 과연 누가 이 답에 만족하면서, 자신이 유전자의 영생을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그런데다가 유전자 조차도 왜 계속 다음 세대로 넘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갖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우린 결국 금기된 질문을 던진 후, 답을 내지 못하면서 스스로 자기 모순에 빠져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한번 머리 속에 맴돌기 시작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하는 욕구를 잊고 살 수는 없다. 이것은 한번 시작되면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마냥 무기력하게 당할 수만은 없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존재의 이유를 만들 수 있다. 비록 그것이 절대적 가치를 지닌 것이 아니라고 해도 스스로 확신만 가질 수 있다면, 어느 정도까지는 근사치에 가까운 답을 낼 수 있다. 그리고 그 정도의 답만 찾아도 평생 사는 동안 큰 고민 없이 살아갈 수 있다.
 
그렇지만 이 대상은 매우 한정되어 있다. 하지만 낙담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한정적인 대상이긴 하지만, 누구나 그것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상 이것은 우리의 존재 이유에 대한 대안이 된다. 그럼 어떤 것들이 있을까?
 
가장 첫 번째의 답은 바로, 사랑이다. 이 사랑은 소중한 사람의 의미를 가지며, 살아가면서 자신의 목숨보다도 더 소중히 여길 수 있는 사람과 만날 수 있다면 답을 찾은 셈이 된다.
 
이것의 답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가 가능하다. 하나는 바로 배우자, 즉 자신과 가족을 이뤄서 평생을 함께 살아간 사람을 얻는 것이다. 하지만 이 관계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보통 남녀간의 사랑은 대부분 유효기간이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남녀간의 사랑을 경험하긴 하지만, 결국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그 사람을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길 마음이 남아 있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아무리 서로 사랑해서 결혼한 부부라고 해도,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면 마치 관성처럼 살아가는 경우가 많으며, 혹은 단지 경제적인 이유와 편리함의 이유로 그 관계가 유지되는 경우도 많다. 즉, 동반자가 아닌 동거인이 되는 것이다.
 
두 번째 분류는 부부 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된다. 사실 그리고 이것은 가장 범용적인 해결책이다. 많은 부부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감정적 변화를 겪으면서 원래 가졌던 감정이 뒤틀리고 관계가 소원해지는 경험을 하는 반면, 부모가 느끼는 아이에 대한 사랑은 거의 평생 동안 큰 변화가 없이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이 두 관계의 차이는, 부부의 경운 성인과 성인이 만난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주고 받는 계산적 관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고, 부모와 아이의 경우엔 사실상 일방적인 희생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즉,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는 부모의 단 방향 사랑이 유지 됨으로써 인간으로써는 가장 이타적인 사랑을 하는 셈이 된다. 그래서 또한 그 관계가 그렇게 오랫동안 특별한 변화 없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세 번째 분류는 별로 없긴 하지만, 지인과의 관계가 된다. 그것은 지음이란 고사를 통해서 간접 경험을 해볼 수 있는데, 거문고를 타는 백아라는 인물과, 그 음을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던 종자기의 관계에서 느낄 수 있다. 즉, 꼭 부부나 부모 자식 간의 관계가 아닐지라도, 자신을 완전히 이해해주고 마음까지 통할 수 있는 존재와의 만날 기회가 있다면, 충분히 그 관계를 대신할 수 있다.
 
그럼 이제 두 번째 답을 찾아보자. 사실 두 번째 답은 분명히 존재하긴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것을 경험 할 기회는 거의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첫 번째 답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
 
이 두 번째 답은, 어떤 보편적 가치 대상을 찾는 일이다. 그리고 그 가치는 적어도 그 자신만큼은 확신이 있어야 하고, 다른 이들의 지지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
 
즉, 자신이 평생에 걸쳐 추구하는 어떤 일이 매우 가치 있으며, 인류나 혹은 좀 더 크게 보면 지구 그 자체를 위해서 의미 있다고 믿을 경우, 그것은 왜 사는지를 묻는 질문에 대한 정답은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대안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예전에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다. 그렇게 평생에 걸쳐 제작된 지도는 누가 그것을 알아주냐를 따질 것을 떠나서 자신이 평생에 걸쳐 추구하는 업으로써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이것은 충분히 삶의 목적이 될 만 하다.
 
사실 이런 종류의 것들은 꽤나 있긴 하다. 하지만 보통은 매우 난이도가 높고 강한 인내력과 추진력이 있어야 가능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일반 사람들은 대부분 이것을 통해 삶의 답을 낼 수는 없다.
 
북극이나 남극점에 도착하는 일, 심해에 들어가는 일, 가장 높은 산에 오르는 일, 세계 일주를 하거나 기타 여러 가지 불가능에  가까운 대상에 도전을 하는 일, 평생 동안 어떤 주제를 연구하는 일 등이 모두 그것의 예이다.
 
세 번째 답은 그것이 보편적으로 가치 있는 일은 아닐지라도, 그 자신만을 위해서 만큼은 충분히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찾는 것이다.
 
이것은 힘들게 남극점에 가거나 에베레스트 산에 오르는 일이 아니어도 된다. 그냥 건강하게 살기, 자전거 타기, 사진 찍기, 그림 그리기, 음악 연주, 축구, 낚시, 독서와 같이 다양한 형태의, 소위 말해서 취미라고 불리는 영역에서 나타날 수 있다. 물론 직업 그 자체로 삼는 이들도 있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자신이 그것에 대한 가치를 느끼고 정말로 그것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삶의 모든 계획을 짤 수 있는 수준이 된다면, 충분히 대안이 될 수 있다.
 
문제는 대부분은 그것을 즐기긴 하지만, 그것을 최우선 순위에 두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결국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기를 때, 어떨 수 없이 그 우선 순위를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못하면 보통은 가정이 파탄이 나게 된다.
 
물론 좋은 경우라면, 배우자를 자신과 비슷한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을 얻는 것이 될 것이다. 그래서 만약 여행을 좋아한다면, 둘은 평생을 여행을 가기 위해서 모든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잘만 맞으면 최고의 커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성향은 시간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젊어서는 여행을 좋아하던 사람이 나이를 먹고는 요리를 좋아하게 변할 수 있다. 그런데 처음엔 같았던 배우자는 그 변화에 맞추지 못해서 결국 큰 갈등이 생길 수 있다.
 
특히 이런 경험은 보통 아이를 낳으면서 시작된다. 왜냐하면 보통 여자들은 아이를 낳기 전과 낳은 후가 너무도 많이 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자들은 결국엔 여자의 변화에 맞추든지 아니면 말 그대로 밖으로 빙빙 도는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이 답은 두 번째에 비해서는 보통 사람들이 찾기 쉬운 답이 된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답은 바로 종교가 된다. 그리고 종교는 다른 답과는 그 근본이 다르다. 왜냐하면 종교는 왜 사는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에 대한 완벽한 답을 주기 때문이다.
 
아마도 지구 상에는 수천, 수만 종류의 종교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각 종교는 어떤 식으로든 존재론적 질문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다. 많은 사람이 믿는 기독교와 천주교에서는 신의 존재를 믿고, 그 신이 우리 인간을 만든 것이란 해답을 주고 있다. 불교는 이 해답과는 다르지만, 아무튼 깨달음이란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우리들의 존재 이유라고 말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무슨 종교 전문가가 아니라서 모르겠지만, 종교라고 구분하기도 애매한 우리나라 단군 신화조차도 우리가 어떻게 이 땅에 살게 되었는지에 대한 답을 주고 있다. 왜 곰이 사람이 되길 바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종교는 그 교리를 제대로 믿기만 하면, 최고의 해답이 된다. 문제는 그 믿음을 갖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이다. 또한 가장 큰 문제는, 그 종교들이 말하는 교리가 정말로 진리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완전한 착각이 될 수 있다는 위험요소가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지금 말하고 싶은 것은, 진실이나 진리가 아닌, 가치 대한에 대한 이야기임으로 이 부분은 그냥 간과하고 넘어가도 큰 문제가 없다. 단지 어떤 종교에 대한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적어도 이성적으로 이해가 되는 것이 좀 더 도움이 될 수 있을 텐데, 그렇지 못할 경우에 믿음을 갖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 우리는 존재의 이유를 찾기 위해서 종교를 만들어 냈을 가능성도 있다. 물론 무엇이 진실이든 사실 별 상관은 없다.
 
지금까지 말한 총 네 개의 답 중, 그 가치에 대한 신뢰의 순위를 매긴다면, 아마도 종교, 보편적 가치 대상, 사랑, 개인적 가치 대상 순으로 낮아질 것이다.
 
그리고 난이도로 따지면, 사랑, 종교, 개인적 가치 대상, 보편적 가치 대상 순으로 어려워질 것이다. 사실 원래는 종교의 난이도가 매우 높아야 하지만, 우리 인간은 생각보다 매우 불합리한 부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낮이도가 낮아진다. 즉, 우리 인간은 스스로 내린 정의보다 훨씬 비 이성적이고, 무 비판적인 면이 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우리 인간은 매우 감정적인 존재란 뜻이다. 그래서 종교는 그것에 대한 신뢰를 갖고 유지하기가 그다지 어렵지도 않다. 어떤 경우엔, 그냥 어린 시절부터 우연이 갖게 된 것을 평생 변함없이 지나고 살기도 한다.

 

아무튼 전체적으로 보면, 종교와 사랑이 가장 보편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타고난 성격으로 인해 종교를 쉽게 믿지 못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찾을 수 없는 사람이라면, 뭔가 다른 대책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그것들의 유일한 대안인, 보편적 가치와 개인적 가치를 찾는 일은 매우 어렵다는 점이 문제이다. 

 

특히나 보편적 가치는 대상을 찾긴 쉬우나, 그것을 추구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고, 개인적 가치는 대상을 찾기도 쉽고 추구하는 과정도 그다지 어렵지 않지만, 그만큼의 신뢰를 갖기까지는 무척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 문제이다. 즉, 보통 사람의 경우, 등산을 하고 그것을 가치를 제대로 갖기 위해서는 적어도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오랜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자신만의 길을 찾지 못한 사람이라면 가장 현실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을 찾고, 아이를 낳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특히나 남녀간이나 친구와의 사랑보다, 아이를 낳는 것이 가장 확실하고 안정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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