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포장지 삶

아이루다 2015. 7. 4. 07:37

 
포장지는 어떤 물건을 싸는, 보통은 예쁜 무늬를 가진 종이를 말한다. 하지만 요즘은 단지 종이만이 아니다. 꽤나 다양한 재질의 포장지가 생산되고 있으며, 각자마다 고유의 특징이 있다. 그리고 포장지는 주로 다른 사람들과 주고 받는 선물을 포장하는 용도로 자주 이용이 된다.
 
사실 같은 선물이라도 포장지의 품질에 따라 받을 때 기분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선물을 할 때는, 가능하다면 포장을 해서 주는 편이다. 단순하게 비교해서 예쁜 상자 안에 놓인 채 예쁜 포장지로 마감된 선물과 신문지로 대충 싸서 주는 것은 느낌이 많이 다를 수 밖에 없다.
 
심지어 어떤 경우엔 선물을 너무 대충 싸서 주는 경우, 선물을 받고도 기분이 좋긴 커녕 반대로 기분이 상할 때까지도 있다. 쉽게 표시가 날만큼 너무 허름한 포장은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선물을 주는 이가 자신을 무시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예쁜 포장은 선물을 받는 사람의 기분을 좀 더 좋게 해준다. 그리고 주는 사람은 그런 받는 사람의 기분을 상상하면서 가능하면 좀 더 예쁜 포장지를 고르려고 한다.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감정 반응이다. 하지만 포장지의 역할은 여기에서 머물지 않는다. 이것은 좀 더 적극적으로 변한다.

이제 좀 더 적극적으로 변한 포장지는, 이제 선물 자체보다 더욱 더 가치를 지니는 경우가 생긴다. 실제로 고급스럽고 화려한 포장은 제품의 가격 자체를 바꾼다. 그리고 그것의 가치를 바꾼다. 그래서 선물로 주고 받는 용도로 사용되는 제품들의 포장은 매년 한없이 고급스러워지고 있다. 내용물은 동일하지만, 포장 기술만큼은 계속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포장지는 크게 두 가지 용도로 나눠진다. 즉, 하나는 상대의 기분을 좀 더 좋게 하기 위해서 좋은 포장지를 쓰는 소극적인 용도이고, 다른 하나는 제품의 가격을 좀 더 받기 위해서 고급 포장지를 쓰는 적극적인 용도이다.
 
포장이 과하게 되었다고 해도, 사실 그 대상이 단순한 제품이라면, 그냥 넘어갈 수 있다. 물론 그 내용물에 비해서 포장이 매우 과한 요즘의 상술은 문제가 될 소지가 충분하겠지만, 아무튼 그건 단지 물질적 손해 정도로 끝난다.
 
문제는 우리 인간들 역시도 모두 이미 오랜 시간을 통해 포장을 해 왔으며,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포장까지도 많이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인간이 자신의 삶에 대한 포장을 하는 목적 역시도 제품에 대한 포장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삶이 다른 이들의 눈에 조금이라도 더 나아 보이길 바라기 때문에 자신을 포장한다.
 
문제는 제품의 포장은 제품의 가치를 높여주고 그래서 실제적인 이득을 얻을 수 있게 해주는 반면, 삶의 포장은 다른 이들의 눈에 삶을 좀 더 잘 살고 있다는 인식은 심어줄 수는 있지만, 우리는 무생물이 아닌, 생각이란 것을 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이다. 그래서 결국 다른 사람에게 보여진 포장된 삶과 실제의 자신의 삶의 괴리가 발생해서, 우리들 자신의 삶에 대한 정체성에 대해 혼란이 올 수 있다.
 
이것은 말이 혼란이지, 사실상 우리가 그토록 피하고 싶어하는 불행함의 씨앗이 되고 만다.


원래 우리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잘난 존재 이길 바란다. 이 심리는 너무도 기본적인 것이라서, 그 누구 하나도 이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 잘나고 싶어하는 것은 남들 앞에서 대놓고 장기 자랑을 하거나, 어려운 문제를 풀면서 똑똑한 머리를 자랑하거나, 축구에서 상대를 연달아 재끼면서 뛰어난 운동 능력을 자랑하는 것처럼 명백하게 드러난 것들 뿐만이 아니다.


그것은 학자가 순수한 의도로 연구를 하는 것이나, 예술가가 때묻지 않는 열정을 발휘하는 것이나, 어린 아이가 어른들 앞에서 춤과 노래를 부르며 재롱을 떠는 것에서도 모두 동일하게 잘난 존재이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심리로 인해 나타난다.

 
우리가 왜 잘나고 싶어하는지에 대한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잘날수록 생존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들 자신을 행복하게 해준다. 이것은 아주 단순하고 본질적인 해석이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자신이 왜 잘나고 싶어하는지에 대해서 생각보다 잘 모른다.


우리는 단지 뭔가 남들에게 잘남을 인정받은 기분이 들면 그냥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에 잘나고 싶어한다. 반대로 뭔가 실수를 해서 자신의 못난 모습을 다른 이들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그것을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둔 채 기분이 나쁜 것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우리의 삶의 대부분은 잘나기 위한 노력으로 채워진다. 하지만 이런 욕구는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잘난 사람이 하나라도 있으면, 그 나머지는 모두 잘나지 못한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즉, 잘나기 위한 조건은 잘나지 못하기 위한 조건에 비해서 훨씬 까다롭다.
 
100명의 학생들 중에서 2등은 1등이 있는 한, 잘나긴 했지만, 스스로는 만족을 못하는 잘남이 되고 만다. 물론 100명 중 2등은 객관적으로 꽤나 잘난 존재이지만, 사람마다 다르게 반응한다. 그리고 10등이나 20등은 이제 애매하다. 사실 분포된 비율로 보면, 충분히 잘난 것일 수 있지만, 그들 중 누가 자신을 잘난 존재로 인식할 수 있을까 싶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나고 싶어도 잘나지 못한다. 이것은 모든 개인에게 큰 상처를 입히게 된다. 잘나고 싶은 욕구는 똑같은데, 어떤 노력을 해도 잘나기가 힘드니, 아주 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것이다.
 
다행이 이런 과정은 오랜 시간 동안 진행되기 때문에, 우리는 포기나 좌절의 과정을 통해 이것으로부터 오는 고통을 분산시킬 수 있다. 하지만 평생에 걸쳐 잘나고 싶다는 욕구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이 사라지는 순간은,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뿐이다. 혹은 이미 충분히 잘나서 더 이상 잘날 필요가 없어진 사람들의 경우에나 가능하다.
 
그래서 결국 잘나지 못한 사람들은 어떤 유혹을 느낀다. 그것은 바로 실제로 잘나지는 못했지만, 다른 이들에게 잘나게 보이고는 싶다는 욕구이다. 그리고 이때 가장 효율적인 것이 바로 삶을 포장하는 기술이다.
 
사실 고급스러운 포장지는 내용물 자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만큼 확실한 효과를 보여준다. 그래서 벽돌을 싼 포장지나 그만큼의 돈다발을 싼 포장지는 언뜻 보기엔 사실상 같아 보인다. 우리는 그것을 들고 자세히 바라보거나 혹은 포장지를 뜯어본 후에야 그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이런 포장지의 특징은 포장된 우리의 삶과도 온전히 동일하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 인간의 삶을 포장할 수 있는 포장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우리는 제품의 외관을 완전히 가릴 수 있는 포장지는 없다. 대신 우리는 좀 더 간접적인 방법을 이용해야 한다.
 
예전부터 전통적으로 사용된 흔한 포장 도구는 바로 옷이었다. 그리고 집과 같은 거대한 구조물도 그런 역할을 했다. 그래서 나라를 세운 이들은 커다란 궁궐과 복잡한 구조의 복장을 제작해서 입곤 했다.
 
그리고 주로 여자들은 외모를 가꾸기 위해서 화장 기술을 발전시켰다. 그리고 향수나 기타 여러 가지 형태로 자신의 본질을 최대한 숨기는 역할을 해주는 것들을 이용했다. 몸매 보정기, 신발, 머리, 지적 대화를 위한 교양 수업 등등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했다. 사실 이런 것들은 모두 과거 귀족이라고 불리던 사람들이 매일 최선을 다해서 하던 일이었다.
 
그리고 현대에 들어와 기술 문명이 발전한 후, 새로운 도구들이 생겨났다. 물론 요즘도 전통적으로 패션, 헤어, 집, 차, 각종 액세서리, 화장 등등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것은 동일하다. 여기에 더해서 성형이라는 좀 더 명확한 도구가 생겼고,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는 바로 사진이란 도구가 생겼다.
 
사실 사진 이외의 모든 도구는 현실적으로 존재해야 하기 때문에, 설령 그것이 개인의 포장 기술이라고 해도 그럴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할 수 있다. 즉, 좋은 옷을 입든, 좋은 집에 살든 그것이 좀 무리더라도 유지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사는 것이다. 하지만 사진은 다르다.
 
사진은 현실을 찍은 결과물이지만, 순간을 찍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크다. 즉, 우리는 어디에서나 자신의 집이 아닌 곳에서 사진을 찍고, 자신의 차가 아닌 차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자신의 얼굴에 평소엔 전혀 불가능한 수준의 화장을 하고는 가장 예쁘게 나오는 자세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더해서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그 사진을 다양한 소프트웨어 도구를 이용해서 고칠 수도 있다. 즉, 우리는 현실을 찍었지만, 사실은 현실이 아닌 결과물을 다른 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 적극적인 의미의 포장 기술로 분류될 수 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자연스러운 아이의 사진을 찍는다고 하지만, 사실 수 십장의 사진을 찍은 후, 한 장의 가장 잘나온 사진만을 다른 이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사실, 과거에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필름 값이 있었기 때문에 좋은 포장지를 쓰려면 돈이 들 듯, 포장을 하는 것 자체도 비용이 발생했었다. 사실 차, 집, 화장, 액세서리 모두 돈이 들기 때문에 포장 기술의 한계가 생겨나는데, 요즘 다들 이용하는 디지털 사진기는 비용 자체가 거의 들지 않는다.
 
그리고 이렇게 포장 된 사진이 그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는 기술도 생겨났다. 즉, 요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고 있는 SNS가 그 기술들의 결과이다.
 
어떤 식으로든 포장 된 사진들은 이제 인터넷 망으로 연결된 각종 SNS를 통해 서로에게 아주 빠르게 전달이 된다. 거의 실시간에 가깝다.
 
예전엔 좋은 집을 사면, 집들이라는 명목으로 사람들을 초대해서 같이 음식을 먹으면서 은연 중에 자랑을 했다. 이것은 모일 시간도 들고 사람들이 모이면 음식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돈도 들었다. 사실 대부분의 자기 자랑은 돈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우리가 흔히 한 턱 내야 한다는 것들이 대부분 그런 것이다. 자랑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라는 뜻이다.
 
하지만 SNS로 공유되는 사진들은 포장과 자랑이라는 아주 확실한 목표를 달성하면서도 돈이 들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그런 자랑에 대해서 잘 받아들여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상대가 자랑을 들어줄 땐,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젠 명목상으로 대꾸를 한다. 하지만 이 역시도 과거와 다르게 어딘가를 힘들게 이동해서 할 필요가 없다. 단지 컴퓨터, 아니 요즘은 손안에 들어온 스마프 폰을 이용해서 몇 글자 타이핑을 하는 것으로 해결이 된다. 그리고 이렇게 간편해진 자랑과 그것을 들어주고 반응하는 방식은 이제 마치 서로에게 약간의 의무감처럼 변해가고 있다.
 
즉, 서로가 서로의 자랑을 무시하면서 반응하는 것이다. 그러면 서로 편하고 자랑이라는 원래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에 만족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삶에 대한 이런 식의 포장은 이미 말했듯 사진 속 세상과 현실 속 세상의 괴리감을 만들 수 밖에 없다. 이것은 누구나 그럴 수 밖에 없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이 괴리감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관리를 한다. 즉, 포장을 하더라도 어느 정도껏 만 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매우 강력하게 추구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꽤나 많다.
 
왜냐하면 그것이 어렵지 않고 돈도 들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온라인에서 떠돌아 다니는 사진 속에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이 모든 것은 현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요즘 사람들에게 가장 관심을 많이 받는 키워드 바로 스마트 폰, 사진, SNS 이다.
 
이것만 봐도 우리가 얼마나 자신을 포장해서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는 것에 목말라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물론 어떤 이들은 자신은 있는 그대로를 찍어서 공유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그 자신이 어떻게 사는지, 또 무엇을 하고 사는지 알려주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 말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자. 누가 과연 그것을 궁금해 할 것인지 말이다. 그래서 그런 사진을 올리지 않는 친구에게 전화해서 왜 요즘 사는 모습을 찍어서 올리지 않는지 궁금해 하고 있는지 말이다.
 
사실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 거의 관심이 없다.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 관심을 가질 때는 오직 자신의 잘남을 자랑할 때, 그것을 들어주는 경우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단체 사진을 찍은 사진을 바라볼 때, 오직 자신의 얼굴이 제대로 잘 나왔는지 여부만 확인한다.
 
그리고 이 현상은 다른 이들에게도 똑같이 적용이 된다. 그것은 바로, 다른 이들 역시도 우리들 자신에게 거의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들 역시도 모두 그들 자신만 관심 있을 뿐이다.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이유는, 바로 그 관심이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런 것일 뿐인데도, 그것을 마치 자신이 상대에게 정말로 관심이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누구나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이들에게 관심이 있을 뿐인 것이다. 물론 짝사랑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들 인간 관계의 대부분은 사실 그것뿐이다. 실제로 짝사랑 조차도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의 감정일 뿐이다.
 
아마도 미래로 갈수록 삶을 포장하는 기술은 점점 더 발전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 적은 비용과 덜 수고스러운 방법으로 확실하게 자신을 더 포장하고 꾸밀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럴수록 현실의 자신과 다른 이들에게 꾸며서 보여진 자신의 차이로 인한 괴리감이 발생할 것이다.
 
사실 포장된 삶은 결코 자신의 위한 삶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돈의 한계가 있을 때, 포장지에 돈을 과도하게 쓰면, 결국 내용물은 부실하게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같은 원리로 자신을 포장하는데 과도한 시간과 비용을 쓰면, 자신의 진짜 가치를 올리는데 있어서는 따로 낼 시간과 쓸 수 있는 돈이 부족하게 된다. 그래서 아무리 포장이 멋지게 되어도, 현실의 자신은 전혀 바뀌는 것이 없다.
 
그리고 포장지 속에 쌓은 자신의 삶과 현실의 자신의 삶과의 괴리감은 삶의 전체적인 영역에서 자신에게 불행함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처음부터 왜 자랑을 하고 싶어했는지에 대한 이유조차도 잊어먹고 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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