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명왕성 상념

아이루다 2015. 7. 8. 06:27

 
9년 전쯤 미국 나사에서 발사한 무인 우주선, 뉴호라이즌 호가 태양계 행성 중 가장 외곽에 존재하고 있는 명왕성에 거의 1만 km 이내로 접근을 한다고 한다.
 
물론 현재 천문학계에서 공식적으로 명왕성은 행성이 아니다. 그리고 명왕성이 행성이 아니게 된 것에는 꽤나 재미 있는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원래 명왕성은 20세기 초반, 미국의 한 천문학자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리고 그 후로 오랫동안 행성의 지위를 유지해 왔는데, 아마도 '수금지화목토천해명' 이란, 암기를 위한 행성 이름 첫머리 글자를 연결한 주문과도 같은 문구를 기억하는 분들도 꽤나 될 것이다.
 
하지만 명왕성은 그 후로도 계속된 제 10번째 행성 찾기의 결과 인해서 행성의 지위에서 물러나야 했다. 그것은 바로 명왕성과 비슷한 크기의 새로운 행성이 발견되었는데, 이 둘 모두 크기가 너무 작았고, 더해서 이런 크기의 행성이 매우 많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천문학계에서는 행성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해진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게 되면, 새로운 행성이 대거 추가되어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그래서 결국 많은 논란 끝에 명왕성은 행성의 지위에서 내려와 현재는 왜소 행성으로 분류되고 말았다.
 
현재 뉴호라이즌 호의 위치는 지구와 50억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빛의 속도로 통신을 하고 있지만, 그 거리로 인해서 메시지를 한 번 주고 받는데 9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편도 4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셈이다.
 
그리고 이것이 이제 겨우 태양계 외곽의 시작점이다. 아마도 뉴호라이즌 호는 명왕성 탐사 및 기타 태양계 외곽 탐사 임무를 마치고 보이저 호처럼 무한의 우주로 나가게 될지도 모른다. 아무튼 과학계로써는 많은 흥미를 가지고 계속 관찰하게 될 것이다.
 
우리 태양계가 속한 은하는, 지름만 10만 광년에 해당된다. 사실 상상도 할 수 없는 크기이다. 빛의 속도로 10만년을 달려야 가로지를 수 있는 거리라는 것은, 10만년이란 시간도, 10만광년이란 거리도 모두 상상이 되질 않는다. 더해서 가까운 은하로 알려진 안드로메다까지는 200만 광년이 떨어져 있다.
 
그리고 웬만큼 우리가 찍을 수 있는 은하는 보통 몇 천만 광년이 떨어져 있으며, 전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사실 우주가 시작된 이래로 아예 그 빛이 아직 도착도 못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니, 이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삶과 역사는 참으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지게 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우리 인간을 티끌과도 같은 존재라고 여기기도 한다. 사실 이 말은 틀린 것은 아니다. 우리 인간은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천체인 달만 가도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아니, 비행기만 타고 올라가도 인간은 보이지 않고, 인간이 만든 구조물과 불빛만이 보일 뿐이다.
 
이렇듯 작고 존재감 없는 인간이지만, 우리는 이 땅에서 제법 한자리를 차지 하고 살아간다. 거기에서 땅에 줄을 긋고 내 땅과 네 땅을 나누고, 서로 싸우고, 사랑하고, 위하고, 배신하고, 돕고, 빼앗고, 죽이고, 살리면서 살아가고 있다.
 
우주적 시점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이지만, 각 당사자들은 이 우주보다도 더욱 더 중요한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가끔 생각하면, 이것이 참 하찮게 느껴질 수 있는 것도 사실이고,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는 그 모든 것들이 티끌과 같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가끔 무기력함과 무의미함에 휩싸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는 당장 아침에 버스에 타서 자리를 잡을 수 있는지, 지각을 하지 않고 직장의 출입문을 넘을 수 있는지, 업무상 실수를 한 것이 밝혀지지 않을 지, 점심을 무엇을 먹을지를 고민하면서 살아간다. 이때 200만 광년이 떨어진 안드로메다 은하의 존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것은 일종의 괴리감이기도 하다. 우리의 지식은 상상도 못할 우주의 시간과 거리를 알고 있지만, 우리의 삶은 그것에 비하면 존재감이 아예 없는 시간과 거리 속에서 그 우주만큼 크기의 감정을 느낀다. 그리고 생각하다 보면 헛웃음이 나기도 한다. 도대체 이 티끌 같은 존재들은 무엇을 위해서 오늘 하루를 그렇게 치열하게 서로를 짓밟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에 대한 회의감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놓치는 것이 하나가 있다.
 
물론 인간이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은 진실이다. 우리는 겨우 100년을 살 수 있을 뿐이고, 평생을 이동해야 겨우 수십만km 정도나 이동 가능하다. 이것은 가까운 행성인 금성이나 화성에도 미치지 못하고, 겨우 달에나 갈 수 있는 거리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주적 시점에서 인간의 무의미함을 느끼는 사람의 시야엔 그 자신은 빠져 있기 때문이다. 즉, 누군가 그런 말을 할 때는 다른 사람의 삶만 보인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제 삼자의 눈으로 볼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제외한 나머지의 사람들의 삶만 본다.
 
그래서 결국 우리가 거대한 우주를 통해서 느껴지는 광활함으로 인해 우리 인간의 삶 자체에 대한 무의미함을 느꼈다면, 그것은 바로 그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에 대한 생각이란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니 자신을 기준으로 자신은 제외한 채, 오늘 하루를 살아가기 위해서 다둥바둥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 치면, 도대체 무엇이 그리 중요하기에 서로 싸우고, 배신하고, 죽이고 있는지가 이해가 되질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 자신이 그런 행동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서 잠시 빠져 나왔을 때 느끼는 감정일 뿐이다. 그래서 그 자신도 금새 그 아둥바둥한 현실에 들어가게 되면, 금새 거대한 우주는 까먹게 된다.

 

이것을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떤 부자가 가졌다는 수십 조의 돈과 자신의 통장에 있는 백 만원의 돈을 비교하면 된다. 비록 백 만원은 수십 조의 돈에 비해서 비교도 안될 작은 돈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의 재산이 수십 조원이란 것을 아는 순간 통장 속 백 만원이 갑자기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광활한 우주를 바라보면서 우리 인간의 덧없음을 말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이미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다. 이 우주가 넓은 것과, 이 지구에서 매일 경쟁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은 사실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럼에도 계속 우리의 무의미함을 주장하는 것은, 마치 내일도 밥을 먹을 것이니 오늘을 굶겠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물론 내일은 밥을 먹을 것이 분명하다. 잠도 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늘 밥을 먹지 않고 잠을 자지 않으면 우린 그냥 죽는다.
 
오늘 밥을 먹고 잠을 자야, 내일이 올 수 있는 것이다. 이 우주의 광활함도 마찬가지다. 내가 있어야 우주가 있는 것이다. 우주가 아무리 거대해도 내가 없으면, 우주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우리의 필연성이나 가치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들 개개인은 분명하게 그 필연성과 가치성을 느낀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우리가 누구나 가지고 있을 자기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 자아 혹은 에고라고 불리는 자의식이 가지고 있는 커다란 착각일 뿐이다.
 
절대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우리 인간 개개인이 우주에 비해서 티끌보다 존재감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 하나하나가 무의미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오늘도 살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먹어야 하고, 일을 해야 하며, 잠을 자야 한다. 이것은 결코 의미 있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개인적인 의미는 있다.
 
이것은 우리들 개개인만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들 모두가 그렇다. 인류 역사 자체가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문명을 이룬지 겨우 만 년 정도 되었을 뿐이다. 우주의 역사인, 137억년의 시간에 비해서 인류의 만년이란 시간은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그리고 더해서 우리는 겨우 이제 태양계 안을 탐사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방문한 천체는 달 하나 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 동안 위대한 문명을 만들었고, 정신적 한계를 벗어난 높은 성취를 이룬 성인들도 나타났었다. 또한 각종 우주를 이해할 수 있는 물리학 이론을 정립했으며, 오늘도 매일매일 미래를 위해 한걸음씩 나가가고 있는 중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인류가 해낸 일들이 가치 있어지거나 갑자기 유의미해질 수는 없다. 그냥 이것은 내일을 살기 위해서 오늘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뿐이다. 내일이 있다는 이유로 인해서 오늘이 갑자기 의미 있어 질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우주의 광대한 시간과 공간은 우리들 인간을 겸허하게 만들 수는 있다. 또한 그것은 중요한 삶의 태도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주를 바라보면서 우리들의 삶 하나하나를 왜 사는지 비웃을 필요는 없다. 그렇게 따지면, 지구 생태계에 살아가고 있는 모든 생명체가 동일한 질문을 받게 될 것이다.
 
또한 이 우주 역시도 아무리 크고 오랜 역사를 가졌다고 해도, 우리와 다를 바가 없다. 그것은 좀 더 크고 좀 더 오래되었을 뿐이다.
 
그러니 한껏 무게를 잡고 거대한 우주의 크기에 압도되어서 자신을 제외한 다른 존재들의 무의미성을 말하는 행동은 그만 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럴 시간이 있다면, 내일을 위해서 오늘 하루를 좀 더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무리 우주가 거대해도,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도중에  배탈이 나서 금새라도 터질듯한 배변의 고통을 느낀 상태로, 이제 휴계소가 2km 남아서 그나마 희망을 가졌는데, 갑자기 차가 막히는 순간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술을 끊기 힘든 이유  (0) 2015.08.07
내가 나인 이유  (0) 2015.07.14
포장지 삶  (0) 2015.07.04
기득권 확대  (0) 2015.06.27
인간 불일치  (0) 2015.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