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기득권 확대

아이루다 2015. 6. 27. 09:46

 
'어떤 이가 정당한 절차를 밟아 이미 획득한 권리'
 
이 표현은 기득권이란 뜻에 대한 대략적으로 설명한 사전적 해석이다. 그래서 당연히 정확한 설명은 아니다. 특히나 요즘에 우리 사회에서 사용되고 있는 기득권은 이 원래 뜻으로부터 많이 달라졌다.
 
요즘은 기득권은 기본적으로 그리 정당한 권리라고 인식되지 않는다. 특히 이 말이 세력이란 단어와 합쳐져서 '기득권 세력' 이 되는 경우엔, 보통 철밥통이나 이미 유리한 고지에 위치한 채, 그 유리함을 불법적으로 이용해 자신의 권리를 지키려는 존재들을 칭하는 말로 쓰이곤 한다. 물론 이것은 사람마다 해석이 다를 수 있다.
 
그래서 요즘은 기득권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은 보통 욕을 먹는다. 그리고 당연하게 기득권이란 말 자체가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기득권은 단순히 이렇게만 볼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기득권의 범위보다 훨씬 더 많은 부분에서 기득권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해서 그럴 수 있는 이유 자체가 바로 실제적으로 어떤 기득권의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그 기득권을 누린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한다는 점 또한 고려해야 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기득권자들은 자신이 누리는 권리를 매우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보통의 의미에서 기득권은 크게는 대한민국의 상위 층에 있는 사람들을 칭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작게 보면, 이미 터를 잡고 있는 장사꾼들의 집단적 행동 역시도 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이렇게 명백한 것들만 기득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것에 대해 생각해 보기 위해서, 남녀 성별에 숨겨진 기득권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도록 하자. 사실 성별에 따른 기득권은 남자와 여자 모두가 종류만 다를 뿐, 각자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보통 평생을 남자로 산다. 여자 역시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자신이 타고난 성별이 어떤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지 거의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된다. 특히나 여자보다는 남자들이 더 둔감하다. 왜냐하면 상대적으로 남자들은 여자들에 비해서 좀 더 많은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에 따른 의무도 많지만 말이다.
 
아마도 어떤 남자들은 도대체 조선시대도 아닌데 남자가 여자에 비해서 어떤 기득권을 가지고 있냐고 따질 수 있다. 사실 이런 반론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하지만 그 남자들의 따짐은 자신이 남자로써 무엇을 누리고 있는지에 대해서 거의 생각을 안 해봤기 때문에 흔히 일어나는 착각이다.
 
남자가 여자에 비해서 누리는 가장 큰 기득권은 바로 밤길을 그리 무섭지 않게 다닐 수 있는 능력이다. 아마도 남자들 중 많은 사람이 그것이 무슨 기득권이냐고 비웃을지 모르지만, 사실 이것 하나만 해도 삶을 사는 방식 자체가 차이가 나게 된다.
 
여자의 경우, 늦은 밤길을 걷는 것이나, 인적이 뜸한 산길을 걷는 것은 결코 쉽지 않는 일이다. 이것은 아무리 안전한 사회라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 왜냐하면 언제나 주먹은 가깝고 법은 멀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령 주먹의 피해를 입은 후, 법의 힘으로 처벌을 했다고 해서 주먹으로 입은 상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여자가 가진 성폭력에 대한 두려움은 남자들은 상상하기도 힘들다. 물론 남자들 역시도 성폭력을 당할 수는 있다. 하지만 여자의 경우에 성폭력은 단지 그 폭력 자체로만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여자는 남자와 다르게 임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이 순간 남자들이 갑자기 모두 여자로 변했다고 했을 때, 남자들이 가장 크게 느낄 차이는 단지 가슴이 나오고 성기의 모양이 달라지는 차이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폭력에 무기력해진 자신의 모습일 것이다.
 
우리는 오랜 시간 치안이 안정화 된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육체적 능력에 따른 차이를 별로 크게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지만,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차이는 바로 육체적 능력 차이, 즉 얼마나 폭력을 잘 쓸 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그래서 남자에 비해 몸이 작고 힘이 약한 여자들은 남자에 비해서 본능적으로 더 큰 두려움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러니 남자들이 일순간 여자로 변하게 되면 가장 크게 와 닫는 부분이 바로 힘의 차이가 될 것이고, 그 차이만큼 두려움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요즘 가끔 TV 같은데 나와서 오지에 혼자 사는 사람들 이야기에 대한 프로그램을 다시 되짚어 생각해보면, 그 출연자들 중에 여자는 거의 없었다는 점을 기억해 낼 수 있다. 그것은 여자의 성향이 남자와 달라 그럴 수 있다고도 할 수 있지만, 여자들 중에서 설령 그렇게 산속에서 홀로 살고 싶다고 해도, 실제로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남자와는 본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두려움을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반대로 여자의 경우를 보자. 여자들이 남자들에 비해서 가진 기득권은 바로 책임감 회피이다. 사실 이 역시도 아주 큰 차이를 나타내지만, 여자들 본인은 그 차이에 대해서 잘 인식하지 못한다. 그리고 원래 그것이 자신들의 권리나 특징으로 인식한다.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과거로부터 전 세계적으로 남자들은 여자들에 비해서 경제적 역할에 대한 책임을 져왔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어떤 한 가정의 경제 상황이 어려울 경우, 보통 남자들은 여자에 비해서 훨씬 더 크게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물론 일하는 여자들도 많다. 하지만 남자에 비해서는 조금 더 선택적이다.
 
사실 남자들은 어려서부터 사회 속에서 보이지 않게 지속적으로 책임에 대한 교육을 받는다. 그래서 자신의 가정을 지키는 것이나 부모님을 부양하는 것까지를 일차적으로 책임진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아닌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보편적인 성향으로만 말하고 있다.
 
그래서 남자들의 머리엔 늘 책임을 진다는 생각이 지배적으로 담겨 있다. 그래서 만약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남자들은 그것을 해결할 생각만 가득하다. 이 점이 여자와 남자의 아주 큰 차이를 만들어 내곤 한다.
 
쉽게 말하면, 어떤 곤란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여자들은 울면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반면, 남자들은 울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자신도 모르게 알고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 아이의 모습을 보면, 이것은 다르게 나타난다. 어릴 때 아이들은 남자나 여자 상관없이 곤란한 상황에 놓이면 울음을 터트리면서 부모의 품으로 간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성장함에 따라 점차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여성을 책임감 없고 감정적인 존재라고 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이것은 바로 커오면서 자신도 모르게 부모로부터, 친구로부터, 사회로부터 교육을 받은 결과로 인해서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나타나게 됨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려서 어떤 이유로 한 집안의 가장이 된 여자의 경우엔, 보통 여자들과 다르게 훨씬 책임감 있게 행동을 하는 경우도 많다. 보통 그런 여자들을 장녀나 맏며느리 감 등으로 표현하는데, 이 경우가 바로 여자가 남자만큼의 책임감을 감당해야 할 경우에 나타나는 유형이 된다.
 
남자에게는 밤길을 걸을 수 있는 자유, 여자에게는 책임감으로부터 조금 벗어날 수 있는 자유, 이 두 차이가 지금 현재 서로 언어가 다르다고 하는 남녀의 특징을 만드는데 크게 일조를 하고 있다. 그래서 남녀는 절대로 같아질 수가 없는 셈이다.
 
이것 말고도 우리가 잘 느끼지 못하는 기득권은 너무도 많다.
 
사실 부자 부모 밑에서 태어난 것도 기득권이다. 머리가 똑똑하게 태어나건, 예술적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거나, 운동 능력이 남다르게 태어난 것도 기득권이 될 수 있다. 이것을 심하게 확대하면, 모든 자녀들은 부모라는 존재로 인해서 근본적인 기득권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다.
 
의사가 된 사람은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가 아플 때,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좋은 의료 시설을 이용할 수 있게 해줄 수 있다. 법률을 전공한 사람은 법적인 문제에 닥친 주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 사실 모든 직업은 그것이 설령 아주 조그만 이득이라고 해도 주변에 줄 수 있는 것이다.
 
이것 역시도 모두 기득권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들은 또한 개인의 당연한 권리이거나 혹은 어느 정도 선에서 충분히 인정해 줄만한 사정일 수 있다. 이것은 그것 자체의 특징이 아닌, 그 권리들을 다루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뿐이다.
 
설령 큰 권리도 아닌, 식당에서 일하는 분이 자신의 지인들이 식당을 방문했을 때, 그들에게만 집중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자체도 일종의 기득권으로 분류 가능한 행위가 된다. 즉, 그것이 가진 의미의 경중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가진 권리를 어떤 식으로 인식하고 삶 속에서 발현하는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는 뜻이다.
 
아주 단순히 표현해서 모든 권리는 그것을 감사하게 여김으로써 기득권이 되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이 부자 부모를 만나든,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거둬 높은 자리에 올라서든, 돈을 많이 벌어서 큰 기업의 사장이 되든 그것은 상관없다.
 
단지 그런 자리에 올라섰을 때, 자신이 가진 크고 다양한 권리들을 자신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가 아닌, 그것을 누릴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고 살면, 그것은 기득권이 되질 않는다.
 
하지만 어떤 남자가 밤길을 걱정 없이 다닐 수 있는 것을 감사할 것이며, 어떤 여자가 자신이 좀 더 책임감 있게 사는 것을 감사할 것인가?
 
또한 어떤 남자가 여자들은 밤길을 마음 편히 다닐 수 없어서 그렇게 소심하게 살 수 밖에 없으며, 어떤 여자가 남자들은 어려서부터 주입된 책임감 의식으로 인해서 그렇게 뻔히 손해 보는 행동을 하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작으면 작을수록, 또한 커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서로 끝없이 상대가 기득권이란 것을 인식하지 못하면서 그것을 누리는 모습에 비난을 하면서도, 자신이 그렇게 사는 것은 거의 인식하지 못한 채 산다. 그러니 당연히 자신이 비난하는 그 대상들도 그들이 잘못된 기득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그렇게 하지 못한다.
 
우리는 모두 자기의 입장으로만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어떤 정도까지 객관적으로 되지 않는 한, 우리는 각자가 가진 기득권은 당연하게 여기고, 상대가 가진 기득권을 비난함으로써, 영원히 끝나지 않는 갈등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요즘 사회를 바라보면, 노년층과 청년층의 갈등, 남자와 여자의 갈등 등이 좀 더 심하게 나타나는 현상이 좀 더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것들이 바로 각자가 가진 권리에 대한 무의식과, 상대가 가진 권리에 대한 비판으로 인해 나타나는 가장 흔한 현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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