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살다 보니..

아이루다 2015. 6. 11. 07:10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식당을 운영하는 개인 사업자로,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식당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매출이 계속해서 줄어들어서 꽤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사회 전반적으로 경기가 좋지 않은 현상이 그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다.
 
그런 그에게 가장 큰 문제는 당연히 부족한 돈이었다. 처음 가게를 냈을 때만 해도 꽤나 장사가 잘 되었기에, 아이들은 고액의 과외를 받을 수 있었고, 아내 역시도 매일 백화점을 갈 정도로 부유한 삶을 즐겼었다. 그리고 가족 전체가 매년 한 두 차례 해외여행도 다녀왔었다.
 
그런데 이제는 고액의 과외는 고사하고, 일반 학원을 보내는 것도 버거웠으며, 아내는 백화점에 가지 못한 지가 몇 달이 지난 듯 했다. 그리고 당연히 해외여행은 꿈도 꾸지 못하는 처지로 바뀐 것이다. 매출이 반 토막뿐만 아니라 거의 삼분의 일 수준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요즘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과거에 잘 살던 시절에 누렸던 것들을 원하고, 아내는 아내대로 아이들 교육 문제나 혹은 자신의 행복을 즐기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매일 불만을 늘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부부싸움은 늘고 아이들은 삐딱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던 중 최근에 기적과 같은 일이 생겼다. 가게에서 그리 멀리 않는 곳에 대형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손님이 부쩍 늘어난 것이다. 그래서 처음 같지는 않지만, 이젠 제법 먹고 살만한 상황이 되었다. 그러자 그의 가정은 이내 평화를 되찾았다. 그리고 이 남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살다 보니, 돈이 최고다"
 
또 다른 남자가 한 명 있었다. 그는 위의 남자와는 달리 돈은 충분했다. 하지만 그가 그런 돈을 벌기 위해서 일년 365일 중 명절만 빼고 일을 했다. 그리고 매일 새벽부터 밤까지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사실상 그는 가족과 같이 보내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아이들은 이제 제법 커서 대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는 몇 년 전부터 가족과 함께 있을 때 이상한 느낌을 받곤 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을 제외한 아내와 아들과 딸이 주고 받는 대화에 자신이 전혀 끼어들 수 있는 여지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는 요즘의 그 느낌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질감이었던 것이다.
 
그는 마치 그의 가정에서 다른 세상에 속한 존재 같았다. 그가 살고 있는 아파트와 그 집을 채우고 있는 모든 가구 그리고 가족이 입고 먹는 그 모든 것이 자신이 번 돈으로부터 만들어 진 것인데, 정작 그는 그 집에서 외톨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물론 그래서 그는 노력을 했다. 일을 줄이고 아이들과 대화를 하려고 해보고, 아내와 외출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금새 스마트 폰을 바라보든지 아니면 자기 방으로 들어가버렸고, 아내는 그와의 외출을 그리 선호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다녀 올 데가 있으면 혼자 다녀오라고 했다. 자기 귀찮게 하지 말고 말이다.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뭐가 허무함을 느꼈다. 그러자 그는 요즘 유행한다는 밴드에 가입해서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임에 참석하면서부터 점차 활력을 되찾았다. 그는 적어도 돈은 많았기 때문에 동창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그래서 그는 그런 친구들과의 만남이 행복했다. 그러자 그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살다 보니, 가족도 필요 없고 친구가 최고다"
 
세 번째 남자가 있었다. 그는 돈도 잘 벌었고 아내와도 사이가 좋았다. 하지만 그가 가진 문제는, 어려서부터 응석받이로 키운 아이들 두 명이었다. 둘 모두 30살이 훌쩍 넘었는데도 변변한 직장도 잡지 못하고 아직까지도 매달 자신에게 용돈을 달라고 징징대곤 했다.
 
그나마 자신은 그 모습이 화가 나서 매몰차게 돌아서긴 하는데, 아내의 마음은 그렇지 않는 모양이다. 아마도 그가 모르게 아이들에게 돈을 주는 모양인데, 그는 알아도 모른 척 하기로 했다. 사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들 부부가 죽으면 결국 그들에게 갈 재산이 아니던가?
 
하지만 그런 아이들을 보는 그의 심사는 그리 편하지는 않았다. 특히 자식 농사 잘 지은 친구 녀석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일류 대학에 떡 하니 합격하고, 대기업에 들어가서 부모 해외여행도 보내주는 친구 녀석들의 효자 자식들을 보고 있으면 속에서 열불이 나서 요즘은 친구들도 잘 만나지 않고 살고 있었다.
 
그나마 그를 행복하게 해주는 이는 오직 자신의 아내 한 명뿐이었다. 요리도 잘하고 살림도 깔끔히 잘하는 그의 아내는 그에게도 참 잘했다. 그리고 이렇게 오래 살다 보니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살다 보니, 자식 새끼도 다 필요 없다. 마누라가 최고다"
 

 
우리는 살아가다 가끔 이런 이야기를 듣곤 한다. 젊은 시절에 그냥 호기로 내뱉는 말이 아닌, 삶을 어느 정도 산 중년의 시기를 보내는 사람들이 깊은 한숨을 쉬면서 말하는 '살다 보니..' 로 시작되는 말들이다.
 
사실 이런 말들을 들을 때는 그 말이 지닌 무게로 인해서 딱히 그것에 대해 반박하지는 않는다. 설령 그것이 자신의 가치관과는 다른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 모두 각자가 무게를 느끼는 대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것은 바로 그 사람들이 말하는 살다 보니 뭐가 최고다 라고 했을 때, 그 최고가 되는 대상, 즉 앞의 이야기를 되 집어 보면, 돈과 친구, 마누라를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느냐 여부를 따지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좀 걱정일 수 있고, 어떤 안도감일 수 있다.
 
만약 상대가 돈이 최고다 라고 했을 때, 충분히 만족할만한 돈이 있으면 안도감을 느끼고, 반대로 그렇지 못하면 불안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친구가 최고라고 말할 때 그럴만한 친구가 있으면 안도감을 느끼고, 반대로 그렇지 못하면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지에 대한 불안감이 생긴다. 마누라 이야기를 할 땐 자신도 그런 마누라가 있으면 안도감을 느끼고, 반대로 사별을 했거나 관계가 좋지 않거나 아예 결혼을 하지 않는 처지라면 불안감을 느낄 것이다.
 
그래서 이런 것들이 자꾸 중첩되면, 자신도 모르게 삶에서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리스트가 만들어 지게 된다. 그리고 그것들이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 그것들이 된다. 그것들은 돈, 친구, 가족, 건강 등이다.
 
그렇다면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뭐가 최고인지에 대한 판단은 과연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꼬리를 문다. 왜냐하면 동일한 상황에서도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돈이 부족해서 어려움을 겪은 또 다른 식당 주인은, 설령 상황은 어쩔 수 없지만 가족이 똘똘 뭉쳐서 서로가 부족함을 메워주기도 한다, 아이들은 힘들게 일하는 아빠의 등을 두드려주며 힘내라고 하고, 아내는 아내대로 최대한 알뜰하게 살려고 애쓰고, 살림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지만 가게에 나와서 일손을 돕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때도 가게 주인은 살아보니 돈이 최고다 라는 말을 할까? 아닐 것이다. 그는 아마도 그런 말을 해야 했다면, 살아보니 가족이 최고다 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런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행복하기 때문이다. 행복한 사람은 후회나 회한을 말하지 않는다.
 
사실 살아보니 라고 시작하는 말은 모두 이렇게 후회스러움을 담고 있다. 말 그대로 회한인 것이다. 그것은 바로 젊은 시절에 그것이 그리 중요한지 모르고 살았는데, 더 살아보니 그것이 소중하더라는 뜻이다. 즉, 자신은 지금 자신이 느끼는 소중한 가치를 젊은 시절엔 무시하고 살았다는 얘기도 된다.
 
그리고 더해서 어떤 것들은 사실 그것이 제대로 된 대안도 아니다. 즉, 자신이 원한 가치를 얻지 못하기에 억지로 만들게 된 가치들도 있다. 앞의 예에서는 친구에 대한 가치가 그런 예가 될 수 있다. 사실 친구의 가치, 거기에 더해서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의 가치는 사실 그가 믿고 싶어하는 만큼 가치를 가질 수 없다. 그 친구들 대부분은 사실 그의 돈이 좋아서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런 말들이 나오게 된 배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자신도 모르게 그런 사람들의 삶을 통해서 자신이 현재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불안함을 느낄 수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말했듯, 같은 상황이라도 해도 사람마다 살아온 삶에 따라서 전혀 다른 결과가 만들어 질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삶의 다양성이다.
 
그래서 돈이 없어도 행복한 가족이 있고, 돈이 많아도 행복하지 못한 가정이 있다. 친구나 가족 모두가 마찬가지다. 심지어 거의 절대적으로 좋아야 하는 건강함도 마찬가지다. 치매에 걸렸지만 너무도 건강해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노인의 모습을 바라보는 자식들의 입장은 사실 그 건강함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것이다.
 
그렇지만 불안함에 좀 더 민감한 우리들은 지속적으로 다른 이들이 말하는 살아보니 씨리즈에 현혹되어서 지속적으로 그들이 말하는 최고의 가치에 매몰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결혼을 하지 못하고 혼자 사는 사람은 결혼하고 가족이 최고다 라고 말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불안함을 느끼고, 딱히 벌어 놓은 돈이 없는 사람은 미래를 걱정해서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고민한다고 해결될 문제라면, 이미 해결되었을 것이다.
 
사실 이런 것들은 너무도 혼재되고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딱 하나의 정답을 내긴 거의 힘들다. 단지 결론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삶을 어느 정도 산 후에 '살다 보니..' 라는 말을 했다는 의미는 결국 자신이 살아온 삶을 후회한다는 뜻이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린 모두 나이를 어느 정도 먹고 난 후, '살다 보니..' 라는 말을 하지 않도록 살아야 한다. 그 말은 자신의 불행한 삶을 스스로 증명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얻게 되는 많은 가치 기준점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들 중 하나라도 허투루 넘기면 안 된다.
 
우리는 건강, 돈, 가족, 친구, 취미 등등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들 중 단 하나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순간,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나락으로 빠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경계하지 않고 다른 이들의 '살다 보니..' 에 대한 결론을 듣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불안함을 느낄 수 있기에, 그들이 말하는 가치에 매몰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원래 후회라는 감정이 불안함과 두려움을 근간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삶을 어느 정도 살아 온 사람들의 깊은 한숨과 함께 나온 말들은 그 무게로 인해서 듣는 사람들에게 깊게 침투되기가 쉽다.
 
그래서 우리는 불안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들이 말한, 그 최고의 것을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지 여부와 또한 자신은 그것을 그리 중요한 가치라고 인정하지는 않지만, 그러다가 자신도 어느 날 그들처럼 그 가치들을 챙기지 못한 것을 후회하게 되지 않을까를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원래 우리들은 문제가 생겼을 때, 두 가지 태도를 보인다. 그것은 해결하거나 외면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후자를 선호한다. 즉, 외면하는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그런데 만약 어떤 일을 계기로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어떤 태도를 보일까?
 
당연하게도 외면하려고 애쓰게 된다. 돈이 충분하지 않다면 돈의 가치를 외면하고, 친구가 없다면 친구의 가치를 외면하고, 가족이 없다면 가족의 가치를 외면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냥 평생 동안 그 가치를 무시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그러다가 누군가 깊은 한숨과 함께 내뱉은 말을 들으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느낌을 받는다. 왜냐하면 그 사람 역시도 우리들처럼 그렇게 무시하면서 살아 온 사람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가치들에 대해서 무시하지도 매몰되지도 않아야 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해결을 하려고 해야 한다.
 
동굴 밖에 늑대들이 몰려 오면 굴 안으로 피할 것만이 아니라, 불을 피워서 그들을 쫓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다음 행동을 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굴 안에 자고 있을 때는 불안함과 두려움을 잠시 잊을지는 모르지만, 사실 그것은 죽는 순간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오랜 불안함과 두려움에 갇힌 사람의 삶은 결코 행복할 수도 없고, 오래 살기도 힘들다.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자신이 갖지 못한 가치들에 대한 인정이다. 그리고 없다면 만들려고 노력하든지, 도저히 어쩔 수 없다면 마음 속에서 지워야 한다. 즉, 내려놓거나 포기해야 한다. 물론 내려놓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결국 포기해야 할 것이다.
 
나이 먹고 '살다 보니..' 라는 소리를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지 않다면, 그렇게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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