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머릿말

아이루다 2015. 5. 27. 06:32

 

인간이라면, 살아가면서 자신의 인생, 즉 삶에 대한 고민을 한두 번쯤은 하게 됩니다. 그것은 초등학교시절, 짝꿍에게 좋아한다고 생애 최초의 고백을 한 후 채였을 때였을지 모릅니다. 혹은 친했던 친구들과 떨어져, 혼자만 집에서 너무 먼 중학교를 가야 하게 되었을 때였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들어가고 싶었던 대학교에 진학을 못했거나, 대학교 졸업 후 취직을 하지 못해서 전전긍긍했을 때이기도 합니다. 또한 남들은 다 하는 결혼도 못하고, 보장되지 않은 노후가 갑자기 떠오를 때 그럴 수 있습니다. 혹은 갑자기 큰 병에 걸리거나, 큰 돈을 사기 당해서 감당하기 힘든 좌절에 빠졌을 때 그렇습니다.

 

사실 이런 커다란 일들 말고도 우리는 아주 작은 일들에서도 고민을 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처음으로 노래방에 가서 음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나,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공놀이를 하다가 자신이 그리 운동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때도 진지하게 고민을 하게 됩니다. 말주변이 없거나, 그림을 그리는 재능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도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심지어 바꾸기 힘든, 노력자체도 거의 불가능한, 타고난 신체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단순히 외모나 키부터 시작해서, 자신의 손가락이 다른 이들에 비해서 뭉뚝하다는 생각이 들 때나, 하체가 상체에 비해서 짧다는 생각이 들 때도 그렇습니다. 몸에서 나는 체취가 심하거나, 이가 삐뚤게 난 경우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럴 땐 할 수 있는 한, 교정을 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갖지 못하거나 자신이 잘하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게 될 때, 그것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좌절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늘 한가지 생각이 납니다. 그것은 바로 그 고민을 해결하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못하는 것들은 특별한 노력이 없는 한, 계속 잘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떤 소수의 사람들은 그것을 대단한 노력으로 극복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말 그대로 소수의 운 좋은 이들에 불과합니다. 음치는 계속 음치이고, 운동을 못하는 사람은 계속 못합니다. 공부나 외모 등, 우리가 단점을 인식할 수 있는 대부분의 것들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방법 중 우리가 가장 흔히 사용하는 것은 바로, 자신이 잘하는 것을 찾아내어서 못하는 것을 상쇄시키는 방법입니다.

 

이것을 자신의 장점을 보고, 단점을 잊고 사는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방법은 삶을 위한 꽤나 현명한 대처방안으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기도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방법이 모든 이들에게 유효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좀 더 현실적으로 말하면, 아주 소수에게만 유효합니다.

 

왜냐하면 잘하는 것으로 못하는 것을 극복해내려면, 그 잘하는 것이 아주 특별히 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적당히 잘해서는, 못하는 것에 대한 미련을 떨치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실 잘하는 것에 비해서 못하는 것이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가지만 잘해서 그 모든 못하는 것을 떨쳐버리려면, 그 한가지가 탁월하게 잘해야 합니다. 대충 잘해서는 잘 해결이 안됩니다. 돈이 많다면 아주 많거나, 머리가 좋다면 천재 수준으로 똑똑하거나, 예술적으로 뛰어나다면 다른 예술가에 비해 탁월한 영감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결국 그래서 우리는 장점을 이용해 단점을 극복하는 좋은 해결책을 적용했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못하는 것에 대한 열등감은 마음 속 깊이 숨겨지고, 조금 잘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많은 포장을 해서 거품 낀 우월감을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런 상태를 마치 해결이 된 듯 착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상쇄되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는 이제는 열등감과 우월감 이 둘 모두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맙니다. 그리고 이 둘 모두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살아가는 동안 내내 우월감을 느껴질 때는 한껏 목에 힘이 들어가서 행복해하다가, 열등감이 느껴지면 초라해지고 우울해 합니다. 열등감이 없어지지 않는 한, 우월감 역시 없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열등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우월감을 필사적으로 지킵니다.

 

하지만 우월감은 잠재적 폭탄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해결책이 가진 가장 좋지 않은 경우가 바로 우월감을 느낄 수 있었던 능력에 대해 좀 더 뛰어난 존재를 만나게 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우월감을 지탱해주던 거품이 요란하게 터집니다. 그리고 그만큼이나 강하게 열등감으로 변합니다. 우리는 이때 감당하기 힘든 화가 나며, 또한 열등감으로 인해 깊은 좌절을 경험합니다.

 

남들보다 조금 나은 외모를 통해 가진 우월감은, 자신보다 아름다운 존재를 만나는 순간 나락으로 추락합니다. 원래 처음부터 우월감이 없었다면 그냥 넘어갔을 것이, 폭탄이 되어 돌아옵니다. 조금 나은 머리에 대한 우월감도 마찬가지 입니다. 사실 모든 종류의 우월감은 모두 언제든 열등감의 폭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경험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되면, 이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두 번째 방법을 시도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갖지 못한 능력과 가치를 부정하고 자신이 가진 것들을 치장하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는 이미 그것을 위한 수 많은 합리적이고 그럴듯한 논리들이 충분히 만들어져 있습니다.

 

돈이 없는 사람은 돈이 인생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수 많은 근거가 있습니다. 돈은 많지만 그리 행복하지 않는 사람은 돈이 없으면 아예 행복 자체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례가 너무도 많습니다. 친구가 없는 사람은 인생은 어차피 혼자 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친구가 많은 사람은 인간관계야 말로 모든 것 중에서 최고라고 합니다.

 

술을 잘 먹는 사람은 술을 먹지 못하면 인생이 참 맛을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술을 먹지 못하는 사람은 술 때문에 건강이 나빠지고, 다른 많은 좋은 것들을 경험할 기회를 날려버린다고 혀를 찹니다. 성공한 사람은 사람은 성공을 해봐야 한다고 하고,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사람이 성공만하고 행복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냐고 말합니다.

 

결혼을 하지 못한 사람은 결혼은 무덤이라고 말하고, 결혼한 사람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것만이 최고의 가치라고 말합니다. 결혼 후에 아이를 낳은 사람은 아이야 말로 인생의 최고의 의미이며, 아이가 없는 사람들은 모두 독거노인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은 아이를 낳아서 해외여행도 못하고, 평생 아이 뒤치다꺼리나 하는 삶을 애처롭게 바라봅니다.

 

하지만 이런 수많은 근거 있어 보이는 주장들은 각자에게만 옳을 뿐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옳다고 느끼는 것을 강하게 주장하면 할수록 더욱 더 강한 반발만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가끔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돈이 많아도, 돈이 적어도, 친구가 많아도, 친구가 적어도, 결혼을 해도, 결혼을 하지 않아도, 아이를 낳아도, 아이를 낳지 않아도 이상하게 외롭고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안될 것 같은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우리는 아주 조금 사소한 것에서부터 어긋난 느낌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책을 찾아보고, 다른 이들에게 고민을 털어 놓기도 합니다. 하지만 거기엔 이미 알고 있었던 그럴듯한 설명만이 가득합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런 의문은 그리 오래가지 않습니다. 맛난 것을 먹으면, 멋진 여행을 떠나면, 재미난 영화를 보면, 행복한 데이트를 하고 온 날이면 이런 것쯤은 쉽게 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행동들이 더욱 중요해집니다.

 

그리고 그렇게 삶은 흘러갑니다.

 

그런데 정말로 왜 그럴까요? 우리는 왜 자신의 삶에 온전히 만족하질 못할까요? 우리는 왜 좀 더 예쁜 얼굴, 좀 더 큰 키, 좀 더 좋은 머리, 좀 더 나은 노래 실력, 좀 더 많은 돈, 좀 더 많은 친구들, 기타 갖지 못한 수 많은 능력들에 대해서 평생 아쉬워하게 될까요? 그리고 그것이 지나쳐서 좀 더 뛰어난 다른 이들이 가진 것과 능력을 부러워하다 못해 질투하기까지 할까요?

 

사실 이 답은 아주 쉽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고민하고 그 답을 제대로 알기 힘들었던 이 문제의 답은 이미 나와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는 원래 그렇게 때문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원래 잘나고 싶어합니다. 우리들의 머리 속을 지배하는 단 하나의 마법의 단어는 바로, 잘난 존재가 되어 다른 이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 하나입니다. 우리는 평생 동안 이 잘남을 인정 받을 땐 행복을, 부정당할 땐 불행함을 느끼면서 살아갑니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우리가 매일 느끼는 대부분의 감정이 바로 이것으로부터 출발하고 있음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설령 빈말이라도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반대로 전혀 근거도 없는 오해를 받아 비난을 받게 되면 기분이 상합니다. 이런 것들은 진실하냐 여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냥 자신이 좀 잘났다 싶으면 기분이 좋을 뿐입니다.

 

우리는 또한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리고 가지려고 하는 것들을 갖기 위해서 사는 것을 인생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원한다고 해서 늘 가질 수 없다는 점입니다. 또한 우리가 가져야 한다고 믿는 것들은 사실상 아무런 근거가 없습니다.

 

우리는 친구가 가지고 있으면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직장 동료가 가지고 있으면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옆집 사람이 누리고 있으면 누려야 합니다. 우리는 친척이 형제 자매가 누리고 있는 것도 누려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아는 사람들이 가진 것과 누린 것은 가지고 누려야 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믿고, 그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이 부분까지는, 우리가 원래 그렇다고 하면서 인정해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본격적으로 이런 갖지 못한 것에 대해서 화를 내기 시작할 때 생겨납니다. 우리는 당연히 가져야 할 것들이기에 갖지 못한 것은 잘못된 상황으로 인식합니다.

 

그러자 우리는 갖지 못한 것으로 인해 상처를 받습니다. 그리고 이미 가진 이들을 부러워하고 질투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갖지 못하게 된 상황에 대해 화가 납니다. 이런 이유로 서로가 주고 받는 말에는 가시가 돋쳐있습니다. 하지만 남에게 준 상처는 언제나 자신에게 돌아오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상처 주면서, 결국 모두가 불행해지고 맙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아주 중요한 한가지 사실을 까먹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가지려 했고 가졌던 그 많은 것들이 왜 가지고 싶어했었는지 에 대한 것입니다.

 

이 이유는 원래 단순합니다. 사실 우리는 한결같이 행복하기 위해서 그것들을 원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결국 불행해지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어디에서부터 과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왜 잘나고 싶어하는지, 왜 그것들을 가지려고 하는지 그 이유는 정확히 모릅니다. 그냥 원래부터 잘나고 싶어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좀 더 이것에 대해서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다양한 생각들을 통해서 그 이유를 찾아볼 생각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답을 알아낼 수는 없습니다. 단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많은 것들을 조금 다른 시각으로 봄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는 있을지 모릅니다.

 

이 블로그는 그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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