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상담 - 4

아이루다 2015. 5. 14. 06:33

 

상담자 : , 이제부터 방금 질문하신 단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죠.

 

여자 : .

 

상담자 : 사실, 이 질문은 제가 다른 분들과 상담을 할 때도 꽤나 자주 질문을 받는 주제입니다. 우리는 보통 자신에 대한 연속성에 대해서 거의 의심 없이 살아왔기 때문에,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이 다른 존재일 수 있다는 가정을 받아들이기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여자 : , 사실 저도 그래요. 아니 좀 더 자세하게 말하면, 설령 말씀하신 단절이란 개념을 제대로 이해한다고 해도 그것을 온전히 마음 속으로 받아들이기는 무척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상담자 : , 당연히 그렇겠죠. 저 역시 소정씨랑 같은 입장입니다. 저 역시 단지 알고만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먹고 살아야 하니, 상담을 하면서 제가 아는 이야기를 해주고 있을 뿐이에요. 사실, 상담자가 자신이 이룬 것만을 이야기 해야 한다면, 이 세상의 상담자들 대부분은 밥을 굶어야 할 것입니다.

 

여자 : 후후.. , 그렇겠죠.

 

상담자 : 처음 웃으시네요웃는 모습이 훨씬 보기 좋습니다. 아무튼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 보죠. 일단 다시 단절에 대해 서로 같은 의미로 이해를 했는지 확인해 보기 위해서, 저에게 단절에 대해 소정씨가 이해한 것을 한 번 설명해줘 보세요.

 

여자 : ? .. .. 그런데 제가 설명하면 좀 버벅일 듯 한데..

 

상담자 : 어차피 그것이 직업도 아닌 분이잖아요. 그러니 편하게 하세요. 그것까지 잘하면, 전업하셔도 되는데요 뭘.

 

여자 : , 그럼 해볼게요. 일단 제가 이해한 단절은, 우선 이것은 오직 생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느꼈어요. 그러니까, 단절이라고 아무리 믿어도, 그것은 실제적인 단절이 아닌, 머리 속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점이죠.

 

상담자 : , 계속 하세요.

 

여자 : 그리고 음.. 어떤 면에서는 참 쉬운 자기 합리화 같아요. 과거에 좋지 않은 기억과 현실의 자신을 단절시키는 것은 그래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데, 과거의 저지른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분리시키는 것은, 사실 자기 양심을 속이는 짓이잖아요.

 

상담자 : 그것도 그렇죠.

 

여자 : 아무튼 그래서 단절에 대한 부분은 솔직히 복잡하고 미묘해요. 맞는 말 같기도 한데, 결국 또 말장난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그리고 이미 말씀 드렸듯이, 제가 하고 싶다고 해서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요.

 

상담자 : 사실, 그것이 제일 문제이긴 해요. 일단 대충 이해하신 것은 제가 설명한 것과 크게 다를 것은 없네요. 그럼 제가 또 다른 조금 황당한 질문을 던져 볼게요.

 

여자 : .

 

상담자 : 행복은 선한 것일까요? 악한 것일까요?

 

여자 : 행복은 당연히 선한 것이 아닌가요?

 

상담자 : 그럼 사자가 사슴을 잡아서 먹어서 배가 불러 행복해졌다면, 그것은 선한 행동인가요? 악한 행동일까요?

 

여자 : ...

 

상담자 : 그것은 사실 쉽게 답하긴 어렵죠. 그런데 인간 역시도 마찬가지에요. 사기꾼이 어떤 사람을 속여서 돈을 뜯어 냈을 때, 사실 사기꾼은 행복해져요. 비록 그것이 범죄이지만, 행복한 것만은 사실이죠. 그리고 당연히 돈을 사기 당한 사람은 불행해졌어요.

 

여자 : , 당연하겠지요.

 

상담자 : 결국 행복은 선한 것도 아니고, 악한 것도 아니라고 해야 맞아요. 행복에는 선과 악이 없어요. 행복은 그냥 행복함일 뿐이죠. 그런데도 우리는 끝없이 자신의 행복에 대한 판단을 하려고 해요. 그것이 과연 어떤 것인지를 판단하고, 결정해요. 사실, 우리가 행복에 대한 선악을 판단하는 이유는, 자신이 가진 양심을 만족시키려는 의도에요. 양심이 불편해지면, 행복이 줄어드니까요.

 

여자 : ..

 

상담자 : 여기에서 또 하나 추가 질문이 나갑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선과 악은 과연 얼마나 절대적인 것일까요?

 

여자 : .. 무슨 뜻인지 잘 이해하기가 힘든 질문인데요.

 

상담자 : 좀 어려운 질문이긴 하죠. 일단 이렇게 이해해봐요. 우리는 보통 선과 악을 어렵게 나누지는 않아요. 영화에서 보면, 주인공은 선하고 악당은 악해요. 사실 모든 종류의 소설 속 이야기들이 다 그래요. 우리는 선과 악을 제법 쉽게 나누고는, 그런 작품들을 접할 때 마다 선한 쪽이라고 믿는 한쪽을 일방적으로 응원하죠.

 

여자 : , 그렇죠.

 

상담자 : 그런데 선과 악을 그렇게 쉽게 나눌 수 있는 것일까요? 아까 예를 들었던 사슴을 잡은 사자는 과연 선한 일을 한 것일까요? 악한 일을 한 것일까요?

 

여자 : 그것은 사자 입장에서는 선한 일이고, 사슴 입장에서는 악한 일이 아닐까요?

 

상담자 : 정확히 맞아요. 인간도 마찬가지에요. 누군가 누구의 돈을 훔쳤다면, 그 행위는 도둑의 집안을 위해서는 선한 행위가 되고, 도둑맞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악한 행위가 되요. 그래서 선과 악은 절대적으로 나눌 수가 없어요. 그냥 각 이해 당사자간의 입장에 따라 다르게 판단되는 것이죠.

 

여자 : ..

 

상담자 : 행복엔 선과 악이 없고, 설령 양심의 가책에서 벗어나고자 행복에 선과 악의 개념을 도입하더라도, 사실 그 선과 악 자체가 상대적일 뿐이란 말이 가진 의미가 무엇일까요?

 

여자 : 이해하기가 어렵네요.

 

상담자 : , 어려울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단순한 결론이 나요. 우리는 선과 악을 따질 필요도, 그래서 그것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판단을 할 필요도 없어요. 냉정하게 말하면, 인간이 행복하게 살려고 하는 것은, 단지 행복을 원하는 것뿐이에요. 만약 그것이 다른 이에게 피해를 입혔다면, 법적인 책임을 질 필요는 있죠. 하지만 그 기준이 되는 도덕조차도 사실은 허상입니다. 도덕은 자연의 법칙이 아니에요. 우리 인간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만든 커다란 규칙이죠.

 

여자 : 뭔가 얘기가 복잡해지네요.

 

상담자 : , 얘기가 좀 샜네요. 아무튼 지금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에요. 사실 누가 자신이 불행해지는 선택을 하겠어요. 누구나 자신이 행복해지는 선택을 하는 것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공통된 행동 양식입니다. 그리고 이런 행복해지기 위한 행동을 선과 악의 개념과 옳고 그름의 개념으로 바라보는 것은 우리의 착각이에요. 자신이 당한 일을 불합리하거나 비도덕적인 일이라고 여기거나, 자신이 한 일을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느끼는 것 자체가 말이죠.

 

여자 : ..

 

상담자 : 그렇다면, 아주 단순하게 바라보도록 하죠.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면, 그 과거가 자신이 당한 일이든, 자신이 한 일이든 간에 상관없이, 행복하기 위해서 그냥 삭제해버리는 것이 왜 문제가 될까요? 사실 아직 그런 기계가 나오지 않아서 그렇지, 미래엔 우리의 기억을 개별적으로 삭제하거나 조작할 수 있는 장치가 나올지도 모르죠.

 

여자 : ..

 

상담자 : 물론 지금 저의 말을 착각해서, 자신이 저지른 범죄 사실을 머리 속에서 지우고 행복하게 살라는 뜻은 아니에요. 다른 이들에게 해를 끼쳤으면, 그것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죠하지만 사실 범죄 사실이 다른 이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고 해서 양심이 가책은 쉽게 지울 수는 없죠. 그런데 우리의 양심은 생각보다 다른 면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는 자신의 양심을 도덕적인 역할로 믿지만, 사실 양심은 두려움에 관련된 역할을 해요. 우리가 죄를 저지르고 불안한 이유는, 도덕적인 입장이 아닙니다. 그것이 걸릴까 봐 두려운 것이죠. 정확히 말해서 양심은 우리가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망치는 것을 방지해주는 일종의 안정장치라고 봐야 해요.

 

여자 : .. 좀 이해는 잘 안 가지만, 좀 더 생각해볼게요.

 

상담자 : , 제가 너무 어려운 얘기만 자꾸 꺼내네요. 아무튼 제가 말하는 것을 잘못 이해하면, 마치 무법적인 인간으로 살아도 된다는 식으로 들릴 수 있지만, 저는 사회의 유지를 위해 법적인 처벌에 대해서는 온전히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단지 개인적인 영역에서 행복이라는 관점만 보면, 조금 다른 것이 보인다는 뜻이에요.

 

여자 : 행복 그 자체만 봐야 하니까요?

 

상담자 : , 정확히 그래요. 그래서 과거의 그것이 자시의 잘못도 아니고, 바꿀 수도 없다면, 우리는 왜 과거를 계속 유지하려고 하죠? 단지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임을 증명 받고 싶어서? 아니면 과거의 추억이 현재에도 가끔 기억나게 하고 싶어서 그런 것일까요?

 

여자 : 그것도 있겠지요. 저 역시 집이 망하기 전 기억은 온전히 남아 있으니까요.

 

상담자 : 그럼 그 기억은 남겨요. 그리고 그 후 기억하고 자신을 분리시켜요. 현재는 그냥 현재의 행복으로 봐요. 중요한 것은 현재의 행복이니까, 현재의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것들만 바라봐요. 사실 그것만 바라보는 것도 어려워요.

 

여자 : ..

 

상담자 : 자신이 저지른 잘못조차도 행복하기 위해서는 지울 수 있습니다. 하물며 자신이 당한 일을 지우는 것은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죠. 예를 들어서, 누군가 사랑했던 남자가 배신해서, 너무 미워서 평생 절대 안 보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 사람만 생각하면 기분이 나빠져요. 그런데 어차피 평생 안 봐요. 그러면 뭐 하러 미워해요. 좋아하는 것이나 미워하는 것이나 모두 그 사람에게 종속되는 감정입니다. 이것을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무관심이에요. 그 사람이 무엇을 하든, 누구를 만나 어떤 삶을 살든, 그냥 무관심해져야 비로소 벗어난 것이죠.

 

여자 : ,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상담자 : 그런데 이 남자에 대한 애증은 온전히 자신의 마음 속에만 있어요. 그리고 자신을 괴롭혀요. , 자신을 불행하게 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 남자는 이미 그 여자를 잊고 새로운 여자를 만나서 결혼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상처를 준 사람은 잘 사는데, 상처받은 사람만 힘들어 해요. 뭔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 안 들어요?

 

여자 : 그렇긴 한데, 어쩔 수 없잖아요.

 

상담자 : 아니죠. 어쩔 수 없는 것은 아니에요. 그것은 배신 당한 사람이 과거를 놓지 않고 붙잡고 있어서 그래요. 그것은 배신한 상대의 잘못이 아니에요. 배신한 상대는 배신까지만 잘못한 것이죠.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법적으로 처벌할 수도 없어요. 그냥 우리는 스스로 감당해야 해요. , 이미 말했듯, 복수를 하고 싶다면 해요. 하지만 그렇게까지는 못할 것이라면, 그냥 지워요. 왜 미련을 두고 스스로를 불행하게 해요.

 

여자 : 쉽지 않은 일 같은데요.

 

상담자 : 쉽지 않죠. 당연히. 하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모든 문제는, 단 하나도 외부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자신의 마음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해요. 배신을 당한 상처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자신의 마음 속에만 있어요. 그런데 우린 행복하고 싶어해요. 그럼 상처를 치유해요 하죠. 그런데 누가 치료할 수 있어요? 자기 자신밖에 없어요. 그러니 스스로 지워요. 잊고 다른 삶을 살아야죠.

 

여자 : ..

 

상담자 : 아마도 제가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는 이해하셨을 겁니다. 사실 단절은 어려울 것 같으면서도 쉬워요.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늘 최선을 다해요. 그래서 단절을 하지 못하는 것도 그것이 행복하니까 하고 있는 것일 수 있어요. 과거에 잘 살던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행복해서, 배신한 남자와의 추억을 떠올리면서 행복할 수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죠.

 

여자 : 그럴 수도 있겠네요.

 

상담자 : 그럼 선택을 해요. 그 행복과 현재의 행복 중 어떤 것을 원해요? 과거를 지우고 현재의 행복에 집중하든지, 아니면 과거를 남기로 현재의 어려움을 지속하든지 그것은 오직 소정씨 본인이 감당할 몫입니다.

 

여자 : ..

 

상담자 : 오늘은 제가 말이 좀 횡설수설 많이 했네요. 그래도 전체적인 맥락에서 이해는 하셨을 것이라고 믿어요. 단절은 쉽지는 않지만, 단절은 쉬울 수도 있어요. 사실 그냥 어떻게 생각하면, 지나간 과거는 사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단지 현재를 좀 더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과거를 붙잡고 있을 뿐이에요. 그런데 그것이 현재의 자신을 괴롭힌다면, 그냥 버리면 되죠.

 

여자 : , 쉽지는 않지만, 대충 무슨 말씀 하시는지 대략 이해는 했습니다.

 

상담자 : , 다행이네요. 그럼 오늘은 대충 여기까지 해서 마무리 할게요.

 

여자 : , 감사합니다. 그런데 뭔가 좀 정리하고 싶어서 왔는데, 머리 속이 더 많이 혼란스러워졌어요.

 

상담자 : 그래도 그 시간들이 지나고 나면, 뭔가 명확하게 보이는 것들이 생길 거에요. 그것을 따라 가요. 우리는 비록 미래를 볼 수도, 알 수도 없지만, 현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행복을 향해 가세요. 그것이 사는 것이잖아요.

 

여자 : .. 말씀 감사합니다. 그럼 오늘은 이만 가볼게요.

 

상담자 : 조심해서 가세요. 그리고 혹시 다음에 볼 때는, 이런 어둑한 사무실 말고, 어디 밝은 곳에서 보도록 합시다.

 

여자 : .. 그럼 안녕히 계세요.

 

상담자 : 잘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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