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행복 경쟁

아이루다 2015. 5. 13. 14:19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한국 영화가 한 편 있다. 그것은 봉준호 감독이 만든 '살인의 추억' 이란 작품이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나온, '밥은 먹고 다니냐' 라는 대사를 하던 송강호가 떠오를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조금 다르다. 나는 영화 중반부쯤 나온, 숲 속에서 자위행위를 하려다 걸린 변태를 잡는 장면이 기억난다. 그때 같은 형사로 나온 김상경과 송강호는 수사 방식의 차이로 인해서 서로 앙숙 관계였는데, 엄청난 추격 끝에 범인이 숨었을 만한 장소에 도착한다.
 
그리고 거기에 있던 사람들 틈에 숨은 변태를 찾는 과정에서 송강호는 숲 속에서 이미 목격한, 빨간 레이스가 달린 속옷을 입은 남자를 발견하고는, 천천히 다가가 주변 인물들의 얼굴을 하나씩 살핀다. 송강호는 범인 앞에 서자, 마치 얼굴을 보고 범인인지 알았다는 표정으로 그를 체포하라고 명령한다. 그리고 바지를 벗기자, 여자 팬티가 보이면서 찾던 사람임이 밝혀진다.
 
김상경은 그 장면을 보고 깜짝 놀라 송강호를 바라보고, 송강호는 물을 마시면서 놀란 김상경의 얼굴을 지긋이 내려다 본다. 그리고 아무 대사를 하지는 않았지만, 완벽히 표정으로 말한다.
 
'봤냐? 내가 이런 사람이야' 라고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에서 송강호의 그 표정 연기가 정말로 와 닿았다. 물론 영화 전체적으로 그의 연기는 무척 좋았는데, 이 장면에서는 특히 더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어떤 면에서 생각하면, 그때 송강호의 표정은 아마도 우리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자주 해 왔던 표정이 아닌가 싶다. 단지 성인이 된 우리는, 그런 표정을 눈으로는 보이지 않게 마음 속으로 짓고 만다. 왜냐하면 그런 마음이 들더라도 그것을 외부로 표현하게 되면, 잘난 척 한다고 해서 괜한 적을 만들거나 재수 없는 사람이 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것은 따로 교육 받아서 알게 된 것이 아니다. 그냥 살다 보니, 다양한 인간관계에 대한 경험을 통해 얻은 생활의 지혜이다. 그리고 이때 느끼는 감정을 '자부심' 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사실 영화 속에서 송강호의 자부심은 상대를 속인 것이긴 하다. 그는 평소에 얼굴만 봐도 범인인지 알 수 있다는 경험론을 주장했던 형사로써, 그것을 반대하고 자료를 기반으로 한 수사만이 제대로 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서울에서 온 김상경과 자주 충돌을 해왔었다.
 
그런데 우연히 그 장면에서 범인의 바지위로 살짝 튀어나온 빨간 레이스를 보게 된 후, 마치 얼굴을 보고 범인인줄 알았다는 식으로 연기를 하면서, 김상경을 놀라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그 장면은 자신의 주장을 증명 받고 싶은 송강호의 일종의 찌질한 자부심이었다.
 
영화 속 송강호씨의 모습뿐만 아니라, 우리는 누구나 자부심을 느끼면 행복해진다. 자부심은 스스로 자신을 좀 더 나은 존재로써 느끼는 마음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데,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서 자신에 대한 평가가 높아지는 것을 느낄 때, 자부심을 느낀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경우에 자부심을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살면서 다른 이들의 자부심의 순간을 아주 자주 목격한다. 사실 그것을 자부심을 느껴야 할지조차 애매한 상황에서조차 그렇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술을 잘 마시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운동을 잘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영화에 대한 지식으로 인해 자부심을 느낀다. 사실 우리는 도대체 자신이 잘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지 않는 것을 찾기가 힘들 정도이다.
 
우리는 가위바위보를 잘할 때도, 병을 병따개 없이 딸 때도, 처음 가는 길에서 헤매지 않을 때도, 뜨거운 음식을 빨리 먹을 때도, 컴퓨터를 잘 다룰 때도, 이가 튼튼해서 썩은 이가 없을 때도, 감기에 잘 걸리지 않아도, 병원에 자주 들락거려서 내부에 익숙할 때도, 심지어는 감방에 많이 가봐서 거기에 익숙할 때도 느낀다.
 
이렇게나 다양한 자부심이 존재하는데, 사실 자부심은 어떻게 발생했든지 간에 결국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것이니 넘어갈 수 있다. 문제는 이후로 일어난다. 우리는 자부심을 느낄 때 행복하기 때문에, 자신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상황에 놓이길 바란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부심을 느끼는 대상이 다르기 때문에, 그 상황은 모두 다르다.
 
이것이 혼자 있을 때는 상관이 없다. 그런데 혼자서는 자부심을 느낄 필요도 없다. 그래서 여럿이 있을 때, 사람들은 서로 자신이 자부심을 잘 느낄 수 있는 상황을 만들고자 노력한다.
 
술을 많이 마실 수 있는 주량 자부심이 있는 사람은 술을 먹으로 가길 바란다. 축구를 잘하는 자부심을 가진 사람은 다른 스포츠보다 축구를 하러 가길 바란다. 말을 재미있게 잘하는 사람은 육체적인 활동을 하는 모임보다는 모여서 담소를 나누는 모임을 선호하다. 누구도 자신이 문외한이 곳에 가길 바라지는 않는다. 그런 곳에 가면 우리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어색해진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하게 된다. 혼자 있을 때는 상관이 없는데, 모임이 이루어지면, 서로가 자신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것을 하려고 한다. 물론 우리는 그것을 자신이 행복한 것을 하려고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자신이 잘하는 것을 함으로써 자부심을 느끼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밥을 먹거나 하는 등의 행위는 그런 일이 별로 없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해야 할 상황이 올 때는 달라진다. 그리고 그나마 여기까지도 이해해줄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상대적 자부심을 느끼기 위해서 그것을 잘하지 못하는 다른 이들에게 그것을 하라고 강요할 때 일어난다. 가장 쉬운 예가 술자리에서 술을 먹이는 행위이다. 술을 각자 주량이 다르고, 어떤 사람들은 아예 술을 먹지 못하는데, 술 자부심이 많은 이들은 그들에게 술을 강제로 먹이면서, 당황하는 모습을 즐긴다.
 
사실 그들만이 아니다. 우리는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못하는 사람에게 자꾸 노래 하길 강요하거나, 잘 놀지 못하는 사람에게 어울려서 놀길 바라는 등의 행동을 하곤 한다. 누구나 잘하는 것이 있고, 선호하는 것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였다는 이유로 전체가 선호하는 것을 강요한다.
 
그리고 이것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행복함에 대한 경쟁이다.
 
사실 이 자부심의 경쟁은 행복 경쟁의 한 단면일 뿐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 자부심 경쟁 말고도 수 많은 행복 경쟁을 한다. 그리고 우리가 행복 경쟁을 하는 이유는 단 하나뿐이다. 자신이 행복하다고 믿는 것이 사실은 온전히 행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혼자서 술을 먹어도 되고, 앞에 있는 사람이 술을 먹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 하지만 술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술을 잘 먹는 것이 증명되어야 행복하다. 그래서 상대에게 술을 먹인다.
 
이것이 문제다. 스스로 행복한 듯 행동하지만, 제대로 행복하지 못하다. 그래서 늘 행복이 부족하다. 그러니 다른 이들에게 그것에 대해 인정을 받아야 만족스럽게 된다. 즉, 다른 이들의 부러움이나 질투심을 유발시켜야만 자신의 행복이 완성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끝없이 자신의 행복을 자랑하고 싶어한다.
 
이미 말했듯, 온전한 행복은 혼자서 끝난다. 다른 이들과 공유될 필요도 없고, 알릴 필요도 없다. 차라리 숨겨야 한다. 자신만 너무 행복하게 살면, 질투를 받아서 삶을 사는 것이 곤란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들 대다수는 그런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조건도 능력도 안 된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이들의 인정이 필요하다.
 
행복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자부심을 가진 영역이 전체에게도 인정이 되어야 한다. 똥을 빨리 싸는 능력은, 있다고 해도 자랑하기도 힘들고, 실수로 자랑하다간 변태가 될 수 있다. 또한 잘하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도 아무도 그것에 관심이 없으면 이내 시들해진다. 우리는 남들이 관심이 많은 영역에서 잘할 때, 부러움과 질투를 얻어낼 수 있다.
 
아마도 이것에 대한 가장 최고의 행동은 역시 돈을 쓰는 일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누구나 돈이 많은 것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돈이 많고, 잘 쓰고, 비싼 것들을 아무런 제약 없이 사는 사람을 보면 큰 부러움을 느끼거나 강한 질투심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돈은 돈을 쓰는 행위 자체로 행복하기가 무척 힘든 것 중에 하나이다. 사실 우리가 돈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이유는, 돈을 써서 무엇인가를 사거나 했을 때 그 결과로 인해 행복해야 한다. 이때 돈은 그 행복을 도와주는 수단일 뿐, 돈 자체는 의미가 없다.
 
아무리 비싼 식사를 해도, 미각이 무뎌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면, 그 식사에 큰 돈을 지불한 의미가 없다. 비싼 개인용 비행기를 사서 탈 수 있어도, 고소공포증이 있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것을 즐길 수 있어야 돈이 의미가 있다. 그래서 행복을 느낄 대상이 딱히 없는 사람들은 돈이 있어봐야 행복하지 못하다.
 
그런데 돈만 많은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돈을 쓰는 것 자체를 행복으로 삼는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돈을 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다른 이들의 부러움과 질투를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요즘 세상에서 부러움과 질투를 살 수 있는 것 중에 돈만큼 확실한 것도 없다.
 
결국 돈을 쓰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시선이 돈으로 쏠리길 바란다. 즉, 돈만이 행복을 위한 최고의 가치라는 생각이 지배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사실 그런 사회이다. 그러니 이들은 끝없이 돈을 쓰는 것을 자랑한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행위는, 그것을 바라보는 이들을 끝없이 자극하고 욕망을 갖게 만든다.
 
그들의 삶을 보면, 돈이 많으면 그 자체로 얼마나 행복할지 상상하기조차 힘들어 보인다. 단지 돈만 많으면 행복이 굴러들어올 듯 하다. 사실 아마도 원래 그들도 그랬을 것이다. 돈만 많으면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에 돈을 많이 모았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행복은 다르다. 돈은 행복으로 가는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에, 자신의 행복을 제대로 찾지 못하면, 돈은 그냥 많은 것뿐이다. 돈은 어느 정도만 적당히 있어도 충분히 좋다. 그리고 자신을 정말로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생길 때, 돈은 비로소 그 의미를 갖기 때문에, 행복 찾기 연습을 제대로 해두지 못하면 여분의 돈은 생각만큼 가치가 없다.
 
하지만 그것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끊임없이 무엇인가 돈을 쓸 대상을 찾는다. 그리고 돈을 벌어야 하는 기업들은 그들에게 무엇을 해야 행복해 보일지를 알려준다. 그리고 이들은 최종 목표인 부러움과 질투심을 얻기 위해서 자신들의 행위를 어딘가에 자랑을 한다. 즉, 아무리 돈이 많아도 늘 관심은 부족하다.
 
그리고 이들의 행위는 다른 이들의 욕망을 자극하고, 이것은 계속 밑으로 내려온다. 일명 낙수효과가 생겨나는 것이다. 물론 밑으로 내려올수록 욕망의 대상은 작아진다. 처음엔 비행기에서 출발했지만, 밑으로 오면 좋은 자전거로 바뀐다. 하지만 돈의 액수만 차이가 날 뿐,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 없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어느 날 모든 사람이 돈의 가치를 부정하는 때가 오면, 가장 불행해질 수 있는 사람들은 바로 돈을 쓰는 행복으로 살아가던 사람이다. 아무리 돈을 쓰고, 그것을 알려도 그것은 마치 똥을 잘 싸는 능력과 같이 인식된다면 도대체 무엇을 통해 행복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들은 끝없이 돈을 쓰는 행복을 자랑하고 경쟁한다. 그리고 이것은 매우 효과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그런데 조금만 시선을 돌릴 수 있다면,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 돈을 있는 것이 좋긴 하지만, 자신만의 다른 행복도 충분히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벗어난 순간, 돈은 사실 생활에 필요한 수준에 불과해진다.
 
이것은 일종의 프레임이다. 거기에 갇혀 있으면, 그 프레임 안에서 통하는 논리에 승복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프레임 자체에서 빠져나오면 된다.
 
물론 이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그래도 노력이라도 해보는 것이 노래도 못하면서 노래방에 가고, 술도 못 먹으면서 술집에 가서 힘들어 하는 것보다는 나은 것이 아닐까? 돈을 많이 벌 수도 없으면서 왜 돈이 많은 것이 행복한 곳에 가서 늘 불행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가?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담 - 4  (0) 2015.05.14
상담 - 3  (0) 2015.05.13
그 어떤 것도 고정될 수는 없다  (0) 2015.05.08
고정된 미래  (0) 2015.04.27
상담 - 2  (0) 2015.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