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고정된 미래

아이루다 2015. 4. 27. 14:28

 
꽤나 오래 전에 미국의 미남 배우 중 하나인 톰 크루즈가 주연으로 맡은 '마이너리티 리포트' 라는 영화가 개봉되었었다. 그때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보고 꽤나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었던 개인적인 기억도 있다.
 
이 영화는 몇 명의 예측자들이 미래에 일어날 범죄를 예측해내고, 그것을 근거로 경찰들이 그 범죄가 일어나기 전에 범인을 체포하는 줄거리를 가진 영화였다. 그래서 저지른 범죄가 아닌, 저질러질 범죄에 대한 심판을 하는 내용이라서 생각에 따라서는 꽤나 혼란스러운 내용이기도 했다.
 
사실 그 내용만 다뤄도 꽤나 복합적인 사고가 나올 수 있지만, 오늘은 그것보다는, 예측된 미래에 대한 얘기를 해보고 싶다. 이 글은 조금 흥미로울 수도 있고 뻔할 수도 있다. 아무튼 천천히 들어가보도록 하자.
 
얼마 전에 TV 프로그램인 서프라이즈에 영국 경찰에서 활동했었다는 한 초능력자의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뭐 사실 확인은 하지 않아서, 그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영국 경찰이 그녀의 은퇴식 때 공식적으로 그녀의 존재를 인정했다고 하니, 어느 정도는 사실인 듯 하다.
 
그녀는 사이코메트리, 즉 특정 사물이나 상황에서 과거에 일어난 일과 미래에 일어날 일등을 예측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그 능력을 통해 각종 범죄 사건을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된 모양이었다. 사실 조절만 된다면 범죄자를 찾는데 그보다 더 좋은 능력은 없을 것이다.
 
초능력은 현재까지는 명확하게 증명된 것은 아니니,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여부는 그냥 넘기고, 다른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얘기해보고자 한다.
 
우리는 흔히 초능력을 통해 과거를 보는 일과 미래를 예측하는 것을 같은 능력으로 인식하기 쉬운데, 사실 과거를 보는 것과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정말로 다른 일이란 점을 상기해야 한다. 왜 그런지 설명은 하겠지만, 사실 그것은 너무도 단순한 일이다.
 
과거는 이미 일어난 일이다. 즉, 고정된 일인 것이다. 반면에 미래는 일어날 일, 즉 아직까지 인간의 개념으로써는 고정되지 않는 일이다. 즉, 과거를 보는 것은 이미 고정된 것을 보는 것에 불과하지만, 미래를 보는 것은 일어날 일을 보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미래를 보고 난 후, 그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갖게 될까?
 
미래를 볼 수 있다는 말은, 우리가 단지 미래는 알지 못할 뿐, 고정되어 있다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우리들 중 누구도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없는 한, 우리의 미래는 모두 고정되어 있다. 그리고 이 말을 통해 아무리 먼 시간 후의 미래조차 이미 고정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런 거의 무한대의 시간 속에서 단지 100년 남짓한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삶 역시 마찬가지다.
 
미래가 고정되었다는 말이 가진 의미는 사실 무시무시하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우리가 매일 하고 있는 작은 행동이나 버릇이 이미 고정된 것을 하나씩 실천하는 것이란 말은 꽤나 소름 끼치는 일인 것이다.
 
우리는 보통 미래를 위해 현재를 최대한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노력한다. 힘들지만 공부를 하고, 놀고 싶지만 일을 한다.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미래를 위해 저축을 하고, 당장 사고 싶어도 꾹 참고 여유가 될 때까지 기다린다. 그런데 이런 행동들이 모두 이미 결정된 것이라면, 과연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자유의지란 것이 있다는 말 자체가 무의미해지고 만다.

 

그리고 그것이 진실이라면, 오늘 우리가 하루를 보람차게 보내고 느끼는 만족감이나 미래를 위해 오늘의 힘듦을 견뎌낸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을 할 수 있을까? 사실 모든 것이 결정되고 고정되어 있는 세상이라면 우리 인간에게 남아 있는 가치란 단 하나도 없다.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에 빠지는 것도, 어떤 사건을 겪으면서 폭풍같은 감동을 느끼는 것도 이미 모두 이미 고정된 것이 단지 그날 그것이 실현되고 있을 것 뿐이라면 말이다.

 

물론 좋은 점도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진정으로 운명적 관계를 믿을 수 있다. 누군가와 죽음마저도 두렵지 않는 사랑에 빠졌다면, 정말로 운명의 상대를 만난 것이다. 이미 고정되었으니, 다른 누군가와 그런 사람에 빠질 수도 없다. 오직 그 사람만 가능한 상대인 것이다. 하지만 고정되었다는 것은 이런 경우에나 우리를 위로할 뿐이다.
 
이미 고정된 미래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운명은 고정되었고, 우리는 매일 매일 정해진 행동을 하면서 매순간 1mm나 1초의 차이도 없이 계획된 모든 생각과 행동을 정확하게 해내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나 자신의 행동이나,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의 행동이 이미 예정되어 있다는 뜻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과거는 고정된 것이 확실하다. 이미 지나간 시간을 바꾼다는 개념은 아직까지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유명한 SF 영화, 터미네이터에 나온 존 코너의 엄마 사라 코너는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그리고 그 신념을 가지고 행동했다.
 
그런데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정이 우리가 믿고 싶어하는, 바꿀 수 있는 미래를 완전히 부정한다. 그들은 고정된 미래를 본다. 그리고 이렇게 고정된 미래에서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이 온 우주가 모두 고정된 채 매일 미래를 향해 가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에겐 미래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런 사람이 실존한다는 것이 증명되는 순간,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잃는다.
 
물론 우리는 미래를 위해 끝없이 노력을 한다. 그런데 이럴 경우 우리들의 노력이란 것인 과연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 사실 노력조차도 고정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노력하는 것도 고정되어 있고, 노력하지 않는 것도 고정되어 있다는 뜻이다.
 
예전에 들은 이야기 중, 어떤 사람이 왕이 될 운명이란 점쟁이의 말을 듣고 평생을 왕이 될 준비만 하다가 죽었다는 조금 어처구니 없는 내용을 가진 것이 있었다. 그러면서 노력하지 않으면 예측된 미래도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금 생각하면 약간 이해 가지 않는 결론이 기억이 나는데, 아무튼 이 사람은 노력했다면 왕이 되었을까?
 
다른 관점으로, 인간에게 있다고 믿어지는 자유의지가 없다는 것은 우리의 사고 체계 자체를 뒤흔드는 폭탄과 같은 발언이다. 우리는 자유 의지가 있다는 관점에서 모든 개념을 잡는다. 그래서 사람들을 계몽하고 처벌하면서 사회 윤리를 실현한다. 또한 노력의 가치를 부여하고 성공에 대한 희망을 불어 넣는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아주 오래 전부터 모두 정해진 것이 매일 실천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면, 과연 우리 인간의 존재는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우리는 바둑판에 놓인 돌보다도 못한 존재가 되고 만다. 비록 바둑돌은 단지 바둑을 두는 사람의 생각에 따라 놓여지는 바둑돌이지만, 매번 다르게 포석되고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단 한번 살 뿐이고, 그것도 이미 고정된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더 의미가 있을까?
 
그럼에도 우리는 오래된 버릇으로 고정된 과거와 고정된 미래를 같은 선상에 두고 본다. 즉, 과거를 보는 능력이나 미래를 보는 능력을 같은 것으로 간주하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하나 더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앞에서 나온, 미래를 바꾸는 일이다. 미래가 정확히 예측이 되고, 그 미래를 바꿀 수 있다면, 과연 이것은 무슨 의미를 가질까? 미래는 완전히 고정된 것은 아니라는 뜻이 될까? 아니면 그렇게 바꾼 미래가 사실 제대로 된 미래라는 의미가 될까? 즉, 바꾼 후의 미래가 사실 정확히 계획된 미래이고, 보여진 미래는 단지 환상인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물론 알 길이 없긴 하다. 무엇이 정확한 미래였는지 지금 이 순간에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래는 너무도 많은 것들로 인해서 변화가 가능하기 때문에 현재까지는 정상적으로 방법으로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사실 원자 단위까지도 모두 미래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에, 우리가 우주의 미래를 계산하는 일은 현재로써는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아주 먼 미래에 정보를 담을 수 있는 양 자체가 현재에 비교해서 엄청나게 늘고 그것을 다루는 속도 또한 현재에 비교해서 상상도 못할 정도로 빨라지만, 우리는 지구에서 벌어지는 정도의 미래는 예측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지구를 이루는 모든 원자들의 위치와 상태를 입력한 후, 1초 후, 1분 후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태양계로 은하계로 확장도 가능할 것이다. 우리 인간의 기술 발전이 현재 수준을 지속적으로 유지한다면, 아예 불가능한 미래만은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된 후, 우리가 미래를 예측해서 그것을 수시로 바꾼다면, 과연 이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까? 우리는 미래를 바꾼 것일까? 아니면 이미 예정된 다른 미래를 실천하고 있는 것일까?
 
영화 데스티네이션은 죽음에 대한 필연성을 다룬 것으로 유명한 영화였다. 우연하게 죽음을 피한 이들이 결국 모두 차례대로 죽음을 당한다는 이 영화는 단순한 흥미 위주로 그것을 다루었지만, 죽음이라는, 인간에게 가장 큰 공포를 예정된 것으로 다루긴 했었다.
 
이 정해진 미래에 대한 생각은 딱히 해답이나 결론을 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번쯤 흥미롭게 생각해볼 만한 주제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행복 경쟁  (0) 2015.05.13
그 어떤 것도 고정될 수는 없다  (0) 2015.05.08
상담 - 2  (0) 2015.04.21
상담 - 1  (0) 2015.04.20
착한 사람  (0) 2015.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