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효자되기

아이루다 2015. 5. 17. 10:53

 
나는 효자는 아니다. 아마도 그냥 평균 수준으로 부모님에게 하고 사는 것 같다. 그런데 요즘은 효자 소리를 가끔 듣는다. 그 누구도 아닌, 부모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
 
그런데 가끔 부모님이 사시는 집에 방문했다가, 부모님이 보시는 방송을 나도 보다 보면, 정말로 어처구니 없는 자식들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부모님은 그들의 이야기와 주변 이웃들 이야기를 이래저래 듣다 보니, 내가 효자라는 생각이 드셨나 보다.
 
나는 아주 예전에 했었던, 장학퀴즈라는 방송에 나가서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아, 점수를 얻지도, 잃지도 않아서 1등이 된 기분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방송들은 왜 자꾸 그런 특이한 사람들이 이야기를 할까? 사실 내 주변을 보면, 그 방송에서 나오는 그런 사람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사람은 모두 끼리끼리 모이니, 내 주변 사람들이 약간 특별할 수는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사실 방송에 나오는 수준까지 심하게 불효자인 사람들은 드물다. 우리는 적어도 양심이라는 것과 주변 사람들의 시선의식 이라는 두 가지 제어장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양심에 찔리거나, 주변 사람들이 알면 욕할까 봐서라도 어느 정도 까지만 불효자이다.
 
고마운 것이지, 아니면 좀 이상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자꾸 이상한 사람들이 방송의 주인공으로 나오고, 말도 안 되는 드라마 스토리들이 자꾸 방송되면서, 평범한 나는 자꾸 좋은 사람이 되어간다. 그리고 그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나는 저렇게까지는 안 당하고 사니, 행복한 편이구나' 라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제대로 된 판단일까? 자신의 불행이, 자신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그것에 대해 만족하려고 하는 것 말이다. 그것도 그렇게 더 불행한 사람은 아주 특별하거나, 만들어진 이야기 속에서나 나오는 사람들인데 말이다.
 
원래 정상적인 방송이라면, 지극히 개인의 문제조차도 그 안에 숨겨진 사회적 문제를 파해 치려고 노력해야 맞다. 모든 것은 개인의 문제이지만, 또한 모든 것은 사회적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방송들은 반대로 사회적 문제로 보이는 것조차도 모든 문제를 개인의 영역으로 보여주려고 한다.
 
그리고 그런 방송을 본 사람들은 자신보다 훨씬 못한 처지에 사는 사람들이나 혹은 못된 가족들과 사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상대적으로 덜 불행함에 만족한다.
 
사실 돈만 많으면, 명목상 효자는 많이 나올 수 있다. 우리가 효자, 효녀가 되지 못하는 이유의 대부분은 하나뿐이다. 돈이 부족하니, 돈 앞에서 답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타고난 착한 존재들이 아니다. 또한 타고난 악당도 아니다. 그래서 부족하면 더 갖길 원하고, 어느 정도만 채워지면 적당히 나누면서 살려고 한다.
 
그것이 자신이 생판 모르는 사람들도 아니고, 자신의 부모, 자식, 형제자매라면 더욱 그렇게 하기가 쉽다. 지금 도우면 언젠가는 자신을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도울 가치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하기에, 현실은 만만하지 않다. 모두들 돈에 쪼들리고, 돈에 허덕인다. 그러니 이것은 마치 며칠을 굶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지키려고 하는 것과 같다. 적어도 고양이에게 생선을 지키게 하려면, 고양이를 충분히 먹인 후 시켜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배고픈 고양이임에도 불구하고, 생선을 지켜야만 착한 사람이라고 강요되고 있다. 그리고 생선을 먹기라도 하면, 나쁜 존재, 의리 없는 존재, 신뢰할 수 없는 존재로 여겨진다. 과연 이것이 정당한 판단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고양이에게 충분히 먹이고 생선을 지키라고 하려면, 좀 더 큰 그림을 봐야 한다. 왜 우리가 고양이에게 충분히 밥을 주지 못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그림을 보다 보면, 어딘가에서 비만이 되어 뒹굴고 있는 다른 고양이가 보일 수도 있다. 즉, 이것은 생선을 지킬 고양이에게 줄 밥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고양이가 밥을 훔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그 살찐 고양이와 마른 고양이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전체적으로 해야 할 일이 된다. 그리고 방송은 이 문제를 시청자들에게 던져주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설득해야 한다.
 
개인의 시선은 모두 개인의 영역에 머무른다. 오직 언론만이 시선을 공적 영역으로 돌릴 수 있다. 그들은 그것이 직업이기에 가능하다. 그들 역시도 개인적 영역에서 접근하지만, 그 대상이 공정 영역에 있다. 이것이 언론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하지만 요즘은 점점 더 개인적 관점에서 세상을 본다. 언론이 앞장서서 더욱 더 그렇게 한다. 그리고 현재 행복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당신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이 있으니, 처지에 만족하라고 한다. 또한 사람들 역시도 이 마약과 같은 해결책에 위로를 받고는 스스로 덜 불행해진다.
 
덕분에 나는 오늘도 효자가 된다. 한 것도 없지만 그냥 불효자가 아니니, 효자가 되었다.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닌데, 얼떨떨하다. 생선이 그리 먹고 싶지 않아서 안 먹은 것뿐인데, 생선을 잘 지킨 착한 고양이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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