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엉뚱한 조언

아이루다 2015. 5. 29. 09:13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형태를 크게 두 가지로 구분을 하면, 무의식적으로 살아가는 삶과 역시나 무의식적이지만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삶으로 나눌 수 있다. 이 둘은 무의식적이란 것에서는 동일하지만, 내용 면에서는 차이가 많이 난다.
 
일단 첫 번째, 무의식적으로 살아가는 삶은, 말은 살아간다고 했지만, 사실은 살아지는 삶이다. 즉, 태어났기에 자랐고, 자랐으니 살다가, 때가 되면 죽는다. 이렇게 단순히 표현하니까 삶 자체가 좀 허무해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인간들 중 대부분이 이런 삶을 산다.
 
그리고 두 번째의 삶은 이와 비슷하지만, 자신이 살아가면서 이뤄야 할 목표나, 해야 할 것들을 향해 가는 목표 지향적인 삶을 산다.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은 소수이지만, 세상에 끼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커서 마치 그 숫자가 좀 많이 보이는 착시 현상을 일으킨다.
 
그리고 더해서 우리는 보통 첫 번째에 속해 살지만, 두 번째의 삶을 살고 있다고 믿고 싶어하기에, 스스로를 두 번째 분류에 넣길 원한다. 그래서 사실상은 첫 번째에 속하지만, 두 번째에 속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꽤 된다. 그럼에도 이것이 그럴듯해 보이는 것은, 사실 이 둘의 경계지점도 매우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모두 무의식적인 삶이란 점에서 같기 때문에 좀 더 큰 관점에서 보면 차이가 없다고도 말할 수 있다.
 
첫 번째 분류에 속한 사람들은 보통 가지고 태어난 능력이 별로 없다. 그래서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다. 즉, 평범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들은 노력을 해도 잘 안되고, 뭔가 남들과 다른 것을 하려고 해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남들처럼 산다.
 
이 중에서 도덕성이 결여된 사람은 도둑질이나 강도 등등 각종 범죄에 연류 되기 쉽다. 그리고 보통 수준의 도덕 교육을 받은 사람은 소위 말하는 서민이 되어 세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이들을 평생 동안 괴롭히는 것은 바로 자신에 대한 불만족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불만족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서 발생되는 돈, 명예, 존재감, 물질적 만족 등등이 모두 함께 포함된다.
 
이것으로 인해 이들은 살면서 끝없는 불만을 갖게 된다. 그래서 범죄에 연루되거나 혹은 끝없이 불만을 늘어놓는 사람이 되거나 아니면 평생을 자책하거나 불안해 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행복과는 아주 먼 거리에 있다. 그래서 이들은 행복하기 위해서 다른 방안을 찾아야 한다.
 
두 번째 분류에 속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능력이 뛰어나다. 이들은 머리가 좋거나, 신체 능력이 뛰어나다. 그래서 뭔가 노력을 하면 얻어지는 것이 많다. 그러니 점점 더 목표 지향적으로 변한다. 사실 이들이 목표 지향적인 삶을 사는 것은 자신이 원래 가진 의지가 아닌, 해서 잘 되니까 그렇게 사는 것이다.
 
누구도 밤 새워 공부를 한 자신보다 옆에서 한 시간 공부를 하고 성적이 더 잘 나오는 사람을 그냥 바라볼 수 없다. 우리는 좌절을 경험하면, 그것을 극복하고도 하지만, 너무 힘들 땐 외면한다.
 
아무튼 이들은 주로 성공한다. 경제적으로도 성공하고, 사회 지위적으로도 성공한다. 돈, 명예, 존재감, 물질적 만족을 모두 얻는다. 하지만 이들은 늘 자신과 같은 것을 원하는 이들과 노력 경쟁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그들을 몹시 피곤하게 한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고 삶이 고단하다고 느낀다.
 
이것 역시도 행복과는 아주 먼 거리에 있다. 그래서 이들 역시도 행복하기 위해서 다른 방안을 찾아야 한다.
 
결국 시작과 결론은 다르지만, 자신을 행복하지 못해서 문제가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자신의 행복에 대해 무의식적인 판단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고, 책을 보고, 강연을 듣는다.
 
그런데 아직 언급되지 않은 세 번째 분류의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아주 소수이지만, 존재하긴 한다. 그들은 바로 의식적인 사람들이다. 물론 의식적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실제로 의식적인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이들은 삶에 대해서 공통적인 지적을 한다.
 
그것은 바로, 그 어떤 것도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가진 것에 감사하고 갖지 못한 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세상을 살 때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해준다.
 
그리고 이런 깊은 성찰이 담긴 조언은 두 부류의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전달된다. 하지만 여기에서 문제가 나타난다. 그것은 바로 이들의 조언은 두 번째 부류에 속한 사람에게만 유효하다는 것이다.
 
첫 번째 부류에 속한 사람들은 사실상 그리 집착이 없다. 이들의 유일한 장점은 어떤 면에서 쉽게 포기한다는 점이다. 쉽게 포기하기 때문에 사실 그리 고민도 안 한다. 고민을 하더라도 그 고민은 아주 얕게 진행된다. 이들은 사실 살면서 단 한번도 깊은 고민과 진지한 성찰을 해본 적이 없다. 그냥 그때 그때를 살아갈 뿐이다. 그래서 오늘 이득을 보면 즐거워하고, 내일 손해를 보면 분해한다. 이것은 삶 전체 기간 동안 동일하게 유지된다.
 
하지만 이들 중에서 특정한 시기에 나름대로 고민이 심각해지는 시기가 있다. 그리고 보통은 그때가 자신의 평생 동안 먹고 살 길을 찾아야 할 때이다. 즉, 진로, 취직, 경력, 직종 등에 관련된 것들을 결정할 시기가 되면 고민에 휩싸인다. 하지만 이때조차도 그리 심각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기분은 나빠지고 화가 난다.
 
그래서 이들은 책을 본다. 그것이 바로 의식적인 사람들이 쓴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을 보니, 내려 놓아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은 오해를 한다. 뭔가 내려놓아야 할 것 같다고 느낀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들은 가져 본적이 없다. 그래서 가져본 적도 없는데, 버려야 한다는 말에 공감을 하고 있다.
 
살아오면서 제대로 된 욕심이나 욕망 그리고 집착을 제대로 가져본 적도 없는데, 책을 보니 그래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내려 놓는다. 사실 이것은 매우 쉽다. 가져 본적도 없는데, 내려 놓기가 얼마나 쉽겠는가?
 
그래서 이들은 이런 책이나 말을 통해서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자기 합리화의 기회로 삼는다. 자신이 그리 노력하지 않고 사는 삶에 대한 불안감과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을 없애는 것에 이용한다. 돈도 명예도 아무 소용없다고 하니, 비록 갖지는 못했지만, 가질 필요도 없어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책을 읽고 나면, 마음 한 켠이 편해진다.
 
물론 이것은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것이 자기 합리화라는 점이다. 가져 본 적도 없는데, 버리고 나서는 스스로 뭔가 내려 놓았다고 믿는다. 그리고 열심히 진지하게 살아야 할 소중한 자신을 삶을 무의식적이고 무의미하게 낭비하는 것에 대해서 더이상 고민을 하려고 하질 않는다.

 

합리화가 되면, 이젠 그런 고민들은 그냥 잊기만 하면 된다. 그냥 술 한잔 먹고 잊고, 신나게 놀고 잊고, 영화 한 편 보고 잊고, 친구 만나서 수다 떨면서 잊고, 여행을 가서 잊고, TV를 보면서 잊고, 스마트 폰을 바라 보면서 잊는다. 어떻게든 잊으면 해결된 것 같다.
 
반면에 두 번째 부류에 속한 사람들은 경쟁 스트레스에 너무 심하게 노출되면, 그런 글을 읽고 말 그대로 힐링을 받는다. 그래서 이들 중 아주 소수는 정말로 내려 놓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시 휴식 후, 다음 경기를 준비한다. 혹은 내려 놓지는 못해도 더 이상 얹으려고 하지는 않게 된다. 즉, 현재의 자신에 만족하면서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매우 좋다. 왜냐하면 이미 평생을 그렇게 살았기에 이미 어느 정도 성공을 해서 경제적으로 거의 문제가 없다. 그러니 시골에 집을 짓던지 아니면 돈이 무척 많이 드는 취미를 즐기면서도 살 수 있다. 해외 여행, 캠핑, 카메라, 각종 공연을 보러 다닐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은 행복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들 중 아주 일부는 의식적 단계로 진화한다. 즉, 이들이 읽었던 책을 쓴 사람과 같은 수준으로 발전해 나간다. 하지만 이미 말했듯, 이럴 수 있는 사람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런 과정을 겪고 세 번째 부류인, 의식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조언은, 당연히 자신이 걸어 온 길을 비슷하게 걷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즉, 적어도 비록 무의식적이라도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한해서, 삶을 의식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조언을 해준다.
 
그런데 이들이 쓴 글을 무의식적으로 살아지고 있는 사람들이 읽는다. 아니, 사실은 이들이 훨씬 더 많이 읽는다. 그리고 그것을 자기 편한 대로 이해하고 흡수해버리고 만다.
 
사실 이 세상에 소위 말하는 인문학 서적이나 위로를 목적으로 하는 힐링 주제에 관한 서적이 잘 팔리는 이유이다. 또한 그런 책들이 왜 그런 내용으로 밖에 채워지지 못하는지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런 책을 읽는 사람들은 단지 자신이 그렇게 사는 것에 대한 합리성이 충족되길 바란다. 그래서 그런 책들이 잘 팔린다.
 
그나마 제대로 된 의식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의 조언은, 첫 번째 부류이든, 두 번째 부류이든 어떤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문제는 사실은 무의식적인 사람이면서, 스스로 의식적이라고 믿으면서 조언을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무의식적인 조언을 한다. 그리고 그 무의식은 역시나 마찬가지로 돈과 명예와 존재감을 목표로 한다. 그러니 이들이 쓴 글이 어떤 내용으로 채워지겠나?
 
당연히 이들이 쓴 글은 사람들의 간지러운 부분을 긁어주거나,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만 해준다. 그래서 또한 사람들이 더 많이 찾는다. 그리고 베스트 셀러가 된다.
 
산에서 내려 오려면, 산을 한 번은 올라야 한다. 오르지 못한 산을 내려올 수는 없다. 우리가 뭔가 버리고 가기 위해서는 가진 것이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오르지 않는 산을 내려오려고 하고, 갖지 못한 것을 버리려고 한다. 그것은 그냥 산에 오르기 귀찮거나 가지려고 노력하기가 귀찮은 것에 대한 핑계일 뿐이다.
 
물론 이것을 모두 건너뛰고 진정한 의식적 단계로 갈 수 있다면, 그것은 최고의 답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가 무엇인가에 대해 해결책을 찾으려면 적어도 그것에 대해 깊고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범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삶에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진지해져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 글이 잘못 해석되면, 마치 삶은 무조건 열심히 목표를 사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해될 수도 있다. 사실 그런 이해조차도 모두 각자가 책임져야 할 몫이다.

 

그나마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괜한 걱정으로 인해 말하자면, 이것은 포기하라는 말도, 갖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도 아니다. 이것은 오직 자신의 삶에 진지해져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과연 누가 자신의 삶 앞에서 두 눈 똑바로 뜨고 그것을 바라볼 수 있겠는가? 이미 수십 년을 무의식 속에서 살아 온 삶인데 말이다. 단 한번도 왜 살아야 하는지를 의심하지 않은 삶인데 말이다.

 

어떤 삶을 살든지 상관없이, 스스로 만족스럽고 평화롭다면, 그래서 삶이 충분히 행복하다면 그것을 향해 가는 길은 각자가 알아서 결정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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