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이야기들

회자정리

아이루다 2015. 6. 18. 07:26

 

며칠 전 옥수수를 심었다. 밭에 심은 것은 아니고, 모종판에 심었다. 처음 해보는 시도이다. 올해는 작년과 다르게 옥수수를 거의 씨로 심었는데, 봄에 심은 씨들은 잘 자랐으나, 요즘 심은 씨들은 잘 발아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심은 자리를 파보니, 개미들이 씨를 먹고 있었다.

 

봄철 밭을 막 간 후에 심은 씨는, 개미들이 자리를 잡기 전이라서 잘 발아를 한 모양이다. 그런데 요즘은 개미들이 자리를 잡은 듯, 심은 씨가 절반도 넘게 발아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모판에 심기를 시도했다.

 

모종판에 씨를 심은 경우, 매일 물을 줘야 한다고 한다. 동네 할아버지가 해준 조언이다. 그런데 내가 영월에서 매일 물을 줄 수 있는 것은 한 달에 한번 정도이다. 그것도 일주일 밖에 시간이 안 된다. 그럼에도 시도를 했다. 그리고 오일째가 되니, 옥수수 순들이 절반 정도는 나왔다. 언제나 아름다운 생명의 힘..

 

2층 망원경 창고 안쪽에서는 딱새부부가 둥지를 틀었다. 아쉽게도 각도가 잘 나오질 않아서 보기는 쉽지 않지만, 알을 낳은 것을 손으로 만져만 보았다. 아마도 딱새 새끼들도 이번 주쯤에 부화가 되질 않을까 싶다.

 

봄이 되고, 여름으로 가는 길목이다. 그래서 이곳은 생명의 탄생과 성장이 한참 이뤄지고 있다.

 

이런 소식과 달리 삶의 불꽃이 꺼져가는 슬픈 소식도 전해졌다. 신장 문제로 인해서 오랫동안 힘들어 했던 매형의 몸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누나네 부부는 십여 년 전, 신장 이식 수술을 했다. 실제로 이식을 받는 것은 매형이지만, 굳이 부부라고 표현을 한 이유는, 그 신장을 누나가 줬기 때문이다. 이때 농담으로 누나는 열녀 소리를 들었다.

 

아무튼 매형은 그 후로 그 소중한 신장을 정말로 조심스럽게 다뤘다. 특히 먹는 것 하나에도 건강에 특별한 신경을 썼다. 워낙 성격 자체도 부지런하고 집요한 구석이 있어서 더욱 더 그랬다.

 

그런데 최근 몸에 이런 저런 문제가 많이 일어나는 듯싶더니, 위암이 심각한 상태로 발견된 모양이다. 아직 최종 조직 검사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의사의 말에 따르면 거의 확실하다고 한다.

 

위암 4, 말 그대로 말기 암이라고 한다. 그래서 의사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소식을 전하는 누나의 언어는 소리가 아닌 문자였다. 그래서 나는 그 글자를 하나씩 치고 있는, 누나의 마음을 읽을 수가 없다. 또한 그 글을 읽고 반응하는 내 감정을 숨길 수도 있었다. 문자가 주는 혜택이라고 할까?

 

마음 한 구석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과 다정했고 서로 아끼던 두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 특히나 누나네 부부는 최근에 이곳 영월에 와서 이틀을 자고 간 적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멀쩡해 보이던 매형이, 이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는 사실이 현실감 있게 다가오질 않는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도 그렇다.

 

누나네 부부에게는 한 명의 딸이 있다. 딱 한 명만을 낳아서 잘 키웠다. 지금은 대학교에 들어가서 한참 공부 중이다. 조카 아이는 아빠를 특히나 좋아했다. 워낙 똑똑하기도 했고, 책임감도 강하고, 가정 일에 적극적이며, 사실 아빠로써 뿐만 아니라, 남편감으로도 넘칠 정도로 충분했다. 단 하나, 건강만 제외하면 말이다.

 

그 두 여자가 남편과 아빠로써 한 남자를 보낼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마음 한 구석에 남은 깊은 답답함을 애써 무시하고는 제 삼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모습을 바라봐야 할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유진이는 그날 밤 닭똥같은 눈물을 흘린다. 그렇게 많이 본 것도, 그리 오래 알아 온 사이도 아닌데, 그리 슬퍼하면서 운다. 그녀의 가진 풍부한 감정은 가끔 나를 놀랍게 한다.

 

여기 영월에는 새로운 생명이 싹트고 있다. 언어적 의미만이 아닌, 정말로 그렇다. 그런데 또 다른 한 쪽에서는 태어난 삶이 마감을 하려고 한다. 물론 여기에서 태어난 옥수수와 딱새보다 매형이 좀 더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올해 태어난 그들 역시도 우리들처럼 한계를 가진 존재들이니까 말이다.

 

특히나 옥수수는 짧게 겨우 가을 무렵이면, 땅과 물과 햇빛으로 키운 풍성한 옥수수 씨앗을 남기고 올해 생을 마감할 것이고, 우리는 그 옥수수가 남긴 씨를 맛있게 먹을 것이다. 그리고 그 씨들의 일부는 남아서 내년에 또 다른 생을 시작할 것이다.



회자정리라고 했다. 만나는 자는 헤어지기 마련이라고 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숱하게 많은 만남을 가진다. 그것은 식물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고, 어떤 장소일 수도 있으며, 오랫동안 몸 담을 직장일 수도 있고, 평생 동안 사용할 아끼는 물건이 될 수도 있다. 사실 우리는 언제나 만남을 통해 모든 관계를 시작한다.

 

하지만 그 모든 관계는 늘 끝이 있다. 아끼는 물건은 고장이 나거나 잊어 버려서 끝이 나고, 어떤 장소는 그곳을 떠남으로써 끝이 난다. 또한 30년을 넘게 다닐 직장 역시도 퇴직과 함께 끝이 나고, 사람과의 만남은 끝없이 헤어짐으로 통해 끝이 난다. 그리고 결국 우리 자신의 죽음으로써 모든 것과 한꺼번에 이별을 한다.

 

그러니, 우리가 만남을 통해 이어진 인연을 헤어짐을 통해 끝내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란 없다. 모든 만남의 끝은 헤어짐이다.

 

그럼에도 거자필반이란 말도 있다. 헤어짐은 또한 만남을 가져온다는 말이다. 하지만 올해 옥수수와 헤어지고, 내년에 그 씨로 새로운 옥수수가 나온다고 해서, 올 해 헤어진 옥수수를 다시 볼 수는 없다그래서 이 말은 훨씬 원론적이면서 철학적인 의미를 가진다. 결국 난 이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아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나는 이별과 죽음을 알고 삶의 무의미함도 알지만, 바로 옆에서 일어나는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한 소식은 나를 깊은 침묵으로 빠뜨리고 만다. 그리고 나의 마음 속은 그것으로부터 오는 무게로 인해 답답함을 느낀다.

 

내가 아닌 다른 이의 죽음이 이럴진대, 내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스스로 지난 시간 동안 해온 오만한 생각들이 한참 부끄러워지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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