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이야기들

혼자 살아가기

아이루다 2015. 3. 19. 08:54

 



어제는 하루 종일 봄을 부르는 비가 내렸다. 서울에 있었다면 좋으면서도 좀 귀찮은 비였겠지만, 이곳 영월에서 내리는 비는 내 작은 감성을 한껏 적셔준다. 특히 지붕에 내린 비가 배수관을 따라 흐른 후, 밑으로 떨어지면서 나는 소리는 일정한 리듬감을 주면서 묘한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빗방울들은 하나씩 둘씩 여기 저기 가끔씩 데크위로 고인 물에 동심원을 그리면서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도시의 일은 그렇지 않지만, 시골의 일은 대부분이 비가 오면 멈춘다. 나 역시도 해야 할 밭 정리를 조금만 하다가 멈췄다. 일을 계속 하기엔 비가 너무 많이 왔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땅에 살았었던 오래 전 사람들도 그랬을 것이다. 밖에서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비가 오면 일 하기를 멈추고, 그날 하루는 떨어지는 빗물을 바라보면서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사실 영월에 있는 동안 비가 내리게 되면, 해야 할 일들이 급격히 줄어들어 버린다. 비록 많이 하는 것도 아니지만, 비가 오면 밭일도 못하고 흐리기 때문에 밤에 별 사진 촬영도 못한다. 그래서 낮이고 밤이고 딱히 할 일이 없다. 뭐 물론 해야 할 회사 일은 있다. 하지만 출퇴근도 없고, 밥을 먹으로 어딘가 식당에 가는 것도 아니기에 시간은 무척 많다. 아마도 바쁜 회사 일이 있었다면 좀 정신 없이 일을 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딱히 그런 일도 없다.
 
그래서 사실상 심심해진다. 딱히 할 일이 없는 날에 느끼는 심심함이다. 그런데 이곳에서의 심심함은 도심의 심심함과는 또 다르다. 그 차이를 설명할 수는 없다. 그냥 다르게 느껴진다. 그것이 나의 착각일 수도 있고, 아니면 진짜로 뭔가 다른 것일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을 딱히 알고 싶지는 않다.
 
도시의 심심함은 답답함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여기의 심심함은 어떤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무엇인가를 딱히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나는 그 순간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몰론 그렇다고 해서 하고 싶은 것이 정확히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매우 불규칙적으로 변한다. 영화를 보다가, 밖에 나가서 사진을 찍다가, 그냥 걷다가, 창문을 멍하게 바라보다가, 잠시 되지도 않는 명상을 하다가, 장작을 가지고 와서 불을 때다가, 요리를 하다가, 커피를 타서 먹다가, 간식이 있는지 찾아보다가, 컴퓨터를 바라보다가, 게임을 하다가, 일을 하다가, 잠시 누워서 있다가, 책을 읽다가, 블로그 글을 쓴다.
 
이것은 계획되지 않는다. 그냥 순간에 하고픈 것들을 한다. 혹은 반드시 해야 할 것은 아니지만 하면 좋은 것들도 있다. 그런데 정말로 신기한 것 하나는, 바로 어떤 순간에도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 이것은 내 개인적으로는 좀 큰 변화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나는 원래 꽤나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고 살았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거의 끊었다. 물론 온라인 상에서는 아주 가끔 연락을 하긴 하지만, 실제로 사람을 밖에서 만나는 일은 일년에 한두 번 정도에 불과하다. 내가 사람을 만나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단 한가지 이유만이 남았다. 그것은 사람을 만나도 동일하게 심심하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사람간의 대화 중에서 아주 쉽게 지루함을 느낀다. 사실 사람들 간의 대화 내용을 주의 깊게 듣다 보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우리는 매일 많은 대화를 하지만, 우리는 매일 같은 내용을 반복한다. 1년 전 만났던 친구를 다시 만나면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 달라진 것은 없다. 단지 그 내용만 바뀌었을 뿐, 형식은 동일하다.
 
그때도 집안 이야기를 했고, 정치 이야기를 했고, 친구들 사는 근황을 이야기 했다. 그때도 건강 이야기를 했고, 직장에서 불안한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이야기 했고, 나중에 하고 싶다는 사업 이야기도 했다. 하지만 바뀐 것은 하나도 없다. 아마도 그나마 바뀌는 것이라면 좀 더 나이를 먹으면 아이들 결혼 시키는 문제라든가, 은퇴 후 삶에 대한 이야기 정도가 될 것이다.
 
그 무의식 중에서 오고 가는 수많은 대화들은 모두 기억되지 못하고 허공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대화를 하는 것인지, 대화라는 행동을 하는 것인지 구분하기가 힘들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을 인식하는 순간 서로 할 말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반복되지 않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이것은 대화 주제를 선정하는 것에 있어서도 큰 어려움을 느끼게 한다. 도대체 원하는 대화 주제에 내가 맞추기가 힘들다 물론 대꾸는 해줄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은 나름대로 오랜 산 시간이 준 능력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정치 이야기, 스포츠 이야기, 집안 이야기, 직장 이야기에 대해서 맞장구는 쳐줄 수 있다. 하지만 내 머리 속은 그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계속 겉돌게 된다.
 
이것은 나름대로의 스트레스이다. 그래서 말없이 주고 받는 대화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대화 속에서 숨겨진 심리들이 너무도 쉽게 드러난다. 이것을 바라보는 것도 꽤나 곤욕이다. 그 이야기를 왜 하는지를 뻔히 알면서 듣는 경험을 해본 사람이라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만나서 즐거워야 할 대화는 즐겁지 못한 결말을 내고 만다. 그리고 이것이 반복되자, 나는 더 이상 사람들과의 만남을 즐기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그래서 요즘은 점점 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성격적으로 혼자 있는 것을 행복하게 느끼는 사람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단지 사람과 만나는 것이 혼자 있는 것에 비해서 그다지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 뿐이다. 난 원래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행복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내가 이렇게 세상과 분리된 채로 살 수 있는 아주 큰 이유는 단 한 명의 소중한 사람이 있어서 가능할 것이다. 그녀마저 없었다면, 아마도 나는 우울증에 걸렸을지도 모른다.
 
그녀와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서로 대화를 나눈다. 그것은 문자로도, 음성으로도, 직접 만나서도 이루어진다. 그리고 아마도 우리가 나누는 대부분의 대화들 역시도 내가 지루함을 느꼈던 그런 주제들일 수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와의 대화에서는 그런 뻔하고 지루한 것을 잘 느끼지 못한다. 그것은 아마도 적절하게 대화 주제들이 섞여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주 가끔 제 삼의 대화 상대에 대한 희미한 욕구를 느낀다. 원래 이 욕구는 꽤나 강했었다. 이 블로그를 처음 운영하기로 했을 때도 사실 원래 나는 대화를 나눌 친구를 찾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를 알려주고 그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나타나길 바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서서히 그것을 포기했다. 왜냐하면 사실 이런 주제들에 대한 관심은 극히 일부에게서나 나타날 수 있으면, 또한 설령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해도 쉽게 섞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원하는 대화 상대는 이상 속에서나 존재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났다.
 
아마도 나는 앞으로 많은 시간을 홀로 보내게 될 것이다. 뭔가 좀 더 스스로 완성이 된 후라면, 또 다시 인간 관계를 맺기 시작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그것은 장담할 수도 없고, 지금으로써는 그다지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TV가 끊기고, 인간 관계가 끊기고, 요즘은 사람들이 좀 진지한 대화를 하는 내용들까지도 끊기고 있다. 마치 인간 그 자체에 관심이 줄어들고 있는 듯 말이다.
 
이것이 좋은 것인지, 아닌 것인지 알 길은 없다. 단지 이렇게 뭔가가 떨어져나갈 때 나에게 남는 것은 시간이다. 그리고 이런 시간들은 내가 느끼는 것에 따라서 심심함 혹은 자유로움 등으로 표현된다. 좀 우아하게 표현하고 싶다면 자유로움으로, 좀 현실적으로 표현하자면 심심함이나 나른함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이 이번 영월 방문 중 4일째 되는 날이다. 나는 월요일 오전에 출발해서 점심 무렵에 여기에 도착했고, 지금이 목요일 아침이다. 오늘 아침은 어제 내린 비 때문인지, 무척 맑다. 아마도 나는 글을 대충 마무리하면 나가서 새 사진을 찍을 것이다. 새들이 포즈를 취해줄 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들어와서는 남은 회사 일을 좀 더 하게 될 것이다. 그러다가 점심이 되면 요리를 해서 밥을 먹고, 커피 한 잔을 마실지도 모른다. 귀찮으면 안 먹을 수도 있다. 그리고 또 오후가 어떻게든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밤이 되고 잠을 잘 것이다.
 
이번 방문은 내일 아침에 끝이 난다. 토요일 결혼식이 있어서 올라가봐야 한다. 그리고 나는 다시 서울의 삶으로 돌아갈 것이다. 남은 시간이 심심해지는 곳으로 말이다.
 
누군가 나에게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선뜻 그것에 대해서 행복하다고 답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사실 나는 내가 지금 행복한지 않은지 정확히 모르겠다. 그냥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지금 불행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끔씩 맑은 하늘에, 비 내리는 테라스의 풍경에,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새들의 모습에, 잘 찍은 별 사진 한 장에, 쌀쌀함이 느껴지는 해질녘에, 운동을 하고 돌아와 따뜻한 물로 씻는 샤워 중에, 쓰고 싶은 글이 제법 잘 쓰일 때, 찍은 사진을 정리해서 올릴 때 행복하다.
 
나는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 행복할 필요는 못 느낀다. 사실 더 이상 행복하면 감당이 안될 것 같기도 하다. 따뜻한 것보다는 적당히 싸늘한 것이 좀 더 몸이 컨디션을 좋게 해주듯, 행복한 것보다는 적당히 불행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은 듯 하다. 물론 이 생각 자체도 나의 처지에 대한 합리화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능력만 된다면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이젠 모두 날려버리고 싶다. 물론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것 그 자체가 욕망이라서 이것도 하나의 욕망이 될 것이다. 그냥 날라갔으면 좋겠다. 마치 백지처럼 하얗게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내가 비어있길 바란다.
 
그런 날이 올지 까마득하지만, 희망으로 삼고 있다. 안 되도 어쩌란 말인가, 그것이 내 능력 밖이라면 말이다. 지금 글을 쓰는 중에 창 밖으로 새소리가 들린다. 다가가면 도망갈 녀석들이지만.
 
 


'소소한 이야기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회자정리  (0) 2015.06.18
짧은 이별의 순간  (0) 2015.04.13
12월 20일 마감산 산행  (0) 2014.12.21
잡문  (0) 2014.07.23
기억의 궁전  (0) 2014.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