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이야기들

잡문

아이루다 2014. 7. 23. 08:53

 

10시가 되기 전 어김없이 눈이 감기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새벽 6시도 되기 전에 눈이 떠진다. 하지가 지난 지 겨우 한달 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눈을 뜬 시간에 창 밖은 어둡다. 아마도 5시도 채 안된 듯 하다. 어제 밤에 평소보다도 더 일찍 잠자리에 들어서일까?

 

가끔은 대학생 시절의 그때처럼 아침 10시나 심하면 점심 먹을 시간이 다되어 일어났던 나의 올빼미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아침 잠이 늘 부족했던 난 언젠가부터 아침 형 인간이 되어 버렸다.

 

내 주변 사람들은 늙어서 그렇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긴 하다. 지금이 과거의 대학생 시절보다 늙은 것은 사실이니까.

 

잠을 일찍 깨는 이유 중 큰 것은 바로 머리 속을 끝없이 머무는 생각인 듯 하다. 잠자기 전까지 지속되던 생각과 잠을 깬 후 바로 들기 시작하는 생각. 그것은 특정한 형체를 가진 것도 아니고 어떤 일관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날 그날 다른 생각들과 다른 걱정거리들이 반복되거나 새롭게 나타난다.

 

그것은 먹고 살기 위해서 해야 하는 프로그램 알고리즘이거나 밖에 뽑아야 할 잡초이기도 하다. 때로는 겨울을 날 난방용 기름을 주문해야 하거나 혹은 화장실을 청소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일 때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아니더라도 예전에 내가 했었던 어이 없는 행동에 대한 기억도 나고 실수를 했거나 양심의 가책을 느꼈던 과거 일들 역시도 가끔 머리 속을 문득 문득 스쳐 지나간다. 어떤 기억은 쓴 웃음을 어떤 기억은 자신에 대한 자책을 어떤 기억은 희미한 웃음을 짓게 만든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는데 왜 어떤 기억들은 이리 끈질기게도 나를 평생 따라 다닐까? 잊지 않고 싶은 것도 있지만 어떤 것들은 완전히 기억에서 삭제를 하고픈데.. 이것은 왜 안될까?

 

이것을 좋게 해석하면 그것을 기억함으로써 다가올 미래의 삶을 제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리라. 실제로 그런 기억들은 그런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아마도 좀 더 미래가 되어서 내 자신의 삶에 대해 조금만 더 자신 있어지면 나의 과거는 쓴 웃음보다는 작은 미소로 변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비가 내린다. 2014 7 23일날 영월에 있는 나의 작은 집에 비가 내리고 있다.

 

며칠째 계속 지저귀던 새는 비가 오니 조용하다. 그리고 아마도 낮에 그리 울어대던 풀벌레들도 조용할 것 같다. 오늘은 비만이 유일하게 소리를 낼 자격이 있다.

 

빗방울이 숲의 나무 잎과 풀잎에 떨어지는 소리는 내 오래된 싸구려 스테레오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한줄기 음악과 합쳐져 나를 한 없는 환상의 세계로 데려간다. 그리고 아침의 짧은 노동과 그 땀을 깨끗이 씻어낸 몸으로 빗소리와 음악소리를 들으면서 쓰는 글엔 나의 부족한 글 솜씨가 어김없이 드러난다.

 

아침에 내린 커피는 이미 식어 미지근해졌지만 그 쌉쌀한 맛과 쓴 맛이 나의 혀끝에서 머물다 간다.

 

혼자 있어도 좋은 날이지만 이런 날 누군가와 같이 이 빗소리를 듣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서로 그냥 빗소리를 듣고 있어도 한 없이 좋을 그 사람이라면 말이다.

 

나 자신의 호사가 조금 미안하다. 하지만 나에게도 변명할 꺼리는 있다. 내가 이런 삶을 살기 위해서 포기해야 했던 것들 역시도 꽤나 많았으니까. 그리고 그 동안 살아왔던 나 나름대로의 진지한 삶 역시도 또한 나의 좋은 핑계거리 중 하나이다.

 

하지만 결국 내가 살아 온 삶을 돌이켜 보면 한없이 비겁하고 한없이 어리석었을 뿐이다. 거기에 아마도 미래의 나의 삶 역시도 과거의 나에 비해서는 나아졌겠지만 역시나 비겁하고 어리석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리 실망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원래 인간이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직 나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며 우리가 지구라는 행성에서 살아가는 미약하고 의미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내가 잘하는 것은 나의 이런 진정한 모습을 조금이라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는 것? 아니 그것을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럴 것 같다고 스스로 착각하고 살아간다는 점일 것이다. 그런 생각도 못하는 이들이 태반인데 이 정도면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또 한번의 어리석은 위로를 한다.

 

지금 창 밖에 수 없이 떨어지는 빗물들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여행을 해 온 것일까? 그 물들은 공룡의 배속에 들어갔다가 거대한 오줌으로 방출되었을 수도 있고 수십 억년을 우주에서 여행하다 우연히 지구에 도착한 작은 운석 속에 담겨 있었을 수도 있다. 또한 태평양의 긴 수염고래 뱃속에서 나온 지 수 일밖에 안 되는 것 일수도 있다.

 

머리 속 상념은 끊임없이 흘러가고 나의 손가락은 그것을 끝없이 화면에 보이는 글자를 만들어 내고 있다. 지금도 음악이 흐르고 지금도 비가 내리고 지금도 지구는 자전을 하고 지금도 태양은 수소 두 개를 합쳐 헬륨을 만들고 있고 지금도 나는 죽음으로 향해 가고 있다.

 

내가 존재 하지 않았던 시간과 내가 존재하지 않을 시간의 작은 틈, 이것이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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