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이야기들

마천동민

아이루다 2014. 3. 24. 08:39

 

꽤나 그럴듯한 이유로 이 송파구의 끝자락 그리고 하남시에 바로 붙은 마천동에 이사온지가 벌써 만 6년이 넘어가고 있다. 나는 뭐 지금까지 일명 부촌에서 살아본 기억이 별로 없어서 부자동네로 소문난 송파구이지만 전혀 송파구스럽지 않은 이 동네가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낮고 조밀조밀한 건물, 뜨믄뜨믄 서 있는 아파트 그리고 크게 형성된 시장 등이 이 동네의 첫 인상이었다. 그런데 이 모습은 내가 이곳에 이사오기 전까지 살던 영등포구 대림동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두 개의 동네는 뭔가 근본적으로 달랐다.

 

처음 그것을 느낀 것은 바로 이 마천동에서 시작되어 한강까지 쭉 이어지는 성내천로의 존재이다. 나는 사무실이 강변역으로 이사간 이후로 이 길을 통해 출퇴근을 하고 있는데 처음엔 자전거를 타다가 운동량이 너무 부족한 듯 싶어서 걸어다니기 시작한지가 거의 2년이 되어간다.

 

그 사이 내가 걸은 거리는 거의 오천 킬로미터를 넘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길에서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거의 평지로만 이루어진 이 길은 내가 음악을 들으면서 무엇인가를 생각하기에 최고의 장소가 되어 주었다.

 

이상하게도 집에서 가만히 있을 땐 머리 속이 무척 복잡한데, 그렇게 걸으면서 생각을 하면 생각의 집중이 잘 되는 경향이 있다. 분명히 몸은 더 부산한데도 불구하고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마도 내가 걷고 있다는 한 가지 동작 때문에 다른 그 모든 동작이 불가능함으로써 나타나는 듯 보인다.

 

반대로 집에 있으면 TV를 볼 수도 있고 컴퓨터를 볼 수도 있고 스마트 폰을 바라볼 수도 있기 때문에 집중하기가 힘들게 느껴진다.

 

여하튼 이 성내천을 따라 만들어진 그리 넓지 않지만 걷기엔 충분한 작은 길은 봄,여름,가을,겨울 모두 좋다. 그리고 물이 흐르는 곳에는 생명이 따라 흐른다. 백로, 왜가리, 해오리기, 까치, 집오리, 청둥오리, 커다란 잉어, 개구리, 참새, 비둘기, 너구리, 딱따구리, 두꺼비 등등 내가 본 종류만 해도 이 정도이다.

 

이들의 사는 모습을 보면 추운 겨울을 나는 모습에 안타까움도 느껴지고 먹이가 풍부해지는 봄,여름,가을이 되면 쑥쑥 크는 모습과 자신들의 새끼를 낳아 키우고 번식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확연하게 들어나 보이기도 한다. 모두들 그렇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성내천 말고 최근부터 산책을 다니기 시작한 뒷산이 있다. 이름은 천마산. 이름만으로는 엄청 높고 멋진 산 같지만 그냥 낮고 조그만 체구를 가진 전형적인 뒷산이다. 집에서 출발해서 정상까지 갔다오면서 중간에 만들어져 있는 운동기구를 이용해 몸도 좀 풀고 해도 한 시간도 안걸리는 거리이다.

 

그런데 이 산을 올라보니 작지만 오르막도 있고 능선도 있고 정상도 있다. 거기에 그리 사람의 손을 안탄 자연 그래로의 모습도 간직하고 있어서 간간히 지나가는 사람만 없다면 어디 강원도 골짜기의 산이라고 해도 괜찮을 만 하다. 단지 눈을 들어 멀리 시야를 보면 근처에 형성되어 있는 정말로 많은 집들과 아파트가 보이는 것이 좀 아쉬울 뿐.

 

그래도 이것이 어딘가. 서울 시내에서 한강까지 뻗어 있는 산책로가 있고 낮지만 산책을 하고 운동을 하기엔 충분한 뒷산이 있으며 대형마트처럼 카트를 몰고 다니면서 쇼핑할 수는 없지만 정말 싱싱하고 싸고 괜찮은 채소들과 과일들이 잔뜩 진열되어 있는 길고 활기 찬 시장도 있다.

 

거기에 이 모든 것을 다 걸어 다니면서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장점이다. 물론 비록 행정구역 상 서울에 소속되어 있긴 하지만 지하철 5호선 동남쪽 방향 마지막 역이며 오가는 모든 버스의 종점이 바로 코 앞인 이곳은 교통상으로 그리 편하지 않긴 하다. 하지만 또 그것은 그것대로 장점이 있다. 적어도 여기에서 출발 할 때는 지하철의 경우엔 100% 앉아서 갈 수 있고 버스도 잘만 골라타면 거의 앉아서 간다.

 

뭐 요즘은 버스도 지하철도 거의 안타는 것이 내 생활 패턴이긴 해서 이런 장점은 그리 크게 와 닿지는 않지만 이 동네에 사는 분들은 은연중에 편하게 느끼는 것일 것이다.

 

사람은 보통 자신의 사는 동네에 적응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나이를 먹을수록 그곳을 떠나기가 그리 수월하지 않다. 아마도 나는 언젠가는 이 동네를 완전히 떠나 내가 살고싶은 곳으로 이사를 가겠지만 서울에 사는 동안은 이 동네를 떠나지 않을 것 같다.

 

오늘은 아침 산책을 하는 길에 하나의 무덤을 보았다. 여느 집에서 키웠을 법한 몽실이란 아마도 개일 것으로 보이는 존재의 마지막을 보내주는 주인의 정성이었다. 나도 몽실이가 편히 쉬길 바란다. 우리 나루가 그러길 바라 듯.

 

 

산책길에 그냥 담아 본 사진이다. 희미한 안개를 뚫고 아침 해가 나무 사이로 비치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 자연은 우리에게 아무런 말도 안하는데 나는 왜 그들이 뭔가 말하고 있는 듯 느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