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이야기들

기억의 궁전

아이루다 2014. 4. 25. 09:02

 

오늘 글은 내 기억의 궁전을 뒤져서 내 자신에게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하고 싶다. 간만에 그나마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글이 될 듯 하다.

 

'폰 노이만' 이란 사람이 있었다. 유명하기도 하고 유명하지 않기도 하고. 아무튼 나는 이 사람에 대해서 대학시절 내가 택한 전공 덕분에 처음 인지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컴퓨터에 관련된 것이었다.

 

폰 노이만은 매우 다양한 분야에 많은 업적을 남겼고 그 중 하나가 바로 우리가 현재 각 가정과 사무실 등에서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의 기본 구조를 설계한 것이다. 실제로 현재 현대인들이 매우 자주 쓰고 있는 스마트 폰 역시도 이 폰 노이만의 설계 구조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즉 우리는 지금 바로 호주머니에 그가 설계한 구조의 발전된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폰 노이만은 일명 천재 중의 천재 라고 일컬어지는 사람이다. 우리는 보통 머리 좋은 사람으로 '아인슈타인' 등을 꼽지만 정말로 순수하게 머리가 좋은 사람만 따지면 아마도 인류 역사상 1등을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머리가 좋은 사람이다. (여기에서 머리는 순수하게 IQ를 의미한다)

 

그의 능력은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 그것을 통한 엄청난 암산 실력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자신이 기억하는 그 모든 것을 '기억의 궁전'에 정밀하게 기록해 두었다.

 

이 사람과 관련된 에피소드는 꽤나 많은 편이니 관심 있는 분들은 인터넷 검색을 한 번 해보시기 바란다. 그리고 관련은 없지만 테슬러란 분에 대해서도 검색해보면 꽤나 재미있는 것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최근에 본 미드 중에서 셜록 시즌3 삼부작이 있었다. 원래 이 극 중 주인공인 셜록은 지난 시즌 1, 2에서 그 자신의 기억의 궁전에 대해 몇 차례 언급을 했었다. 이 셜록 역시도 거의 모든 것을 모두 기억하는 사람 중 하나였는데 그것을 통해 정말로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었다. 특히 사람들의 옷이나 장신구, 향수 등을 인식한 후 그 제품을 유추해서 사람의 특징을 파악하는 것은 그만의 특별한 능력으로 보여지기도 했다.

 

그리고 시즌3 에서는 그만큼이나 대단한 기억력을 가진 존재가 한 명 더 나왔다. 수 많은 상류 인사들의 비밀을 파악하고는 그들을 협박하고 회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 정부로부터 특별한 신분을 보장 받고 있는 듯 보이는 셜록의 형조차도 절대로 건들면 안 되는 인물이라고 말한 그를 셜록은 수사를 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더 자세한 내용은 직접 보시길)

 

좀 더 오래된 기억을 돌아가면 내가 매우 좋아한 미드 '하우스' 에서도 이런 비슷한 환자가 한 명 나왔다. 여자로 기억되는데 자신의 살아온 삶의 모든 장면을 기억하는 여자였다. 하지만 이 여자는 이 능력으로 인해 매우 불행했고 그로 인해 그 능력을 저주스럽게 느꼈다.

 

이 여자의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다. 11살 때 동생이나 친구들과 정말로 진지한 감정으로 평생을 서로 챙겨주기로 맹세를 했다고 가정했을 때 그 자신은 성인이 되어서도 이 때 기억을 완전히 가지고 있는 반면 그 상대는 이미 희미해졌거나 아예 잊어버리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을 때 배신감을 크게 느끼게 된다.

 

이것은 사람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진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같이 잊혀질 것들이 마치 어제 일처럼 또렷하게 기억이 나니 결국 수 많은 사람들의 행동과 말이 모두 거짓으로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더 좋지 않은 것은 바로 좋지 않은 기억을 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망각의 능력을 갖지 못해서 생각도 하기 싫은 것들을 평생 잊지 못한 채 살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소중한 이들의 죽음이나 마음이 찢어지는 이별을 매일 어제 일처럼 기억이 난다면 얼마나 힘든 일 일까? (글을 쓰다 보니 이것을 예전에 썼던 것 같다. 내 기억의 궁전은 정말로 뒤죽박죽 난리다 ㅎㅎ)

 

이 여자에게 기억의 궁전은 저주의 영역이 되어 있다.

 

가장 최근의 내 기억의 궁전에 들어가면 '하니발 라이징' 이란 책이 있다. 이 책은 실제로 영화를 꽤나 오래 전에 봤는데 우연히 최근 이 책을 읽을 기회가 되어 현재도 읽고 있다. 아무튼 이 책에서는 양들의 침묵에서 무서운 조언자로 나온 하니발 렉터 박사의 성장기와 그가 왜 그런 사람이 되었는지를 알게 해주는 이야기라 펼쳐져 있다.

 

그리고 이 책의 서두엔 바로 하니발 렉터의 깊고 무서운 기억에 궁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너무도 끔찍한 기억이기에 그 자신도 봉인을 해둔 채 있는지 조차 몰랐던 기억이다.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하면 혹시나 읽으실 분들에게 사전 정보를 주게 되니까 여기까지만 언급 하겠다.

 

가끔 나는 내가 이런 능력을 가졌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글 제목처럼 기억의 궁전을 가지고 그 안에 내가 살아온 모든 기억을 온전하고 가지런하게 정리해 두었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또한 그것을 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난 머리를 가지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또한 이런 생각도 든다. 뭐 사람마다 다르지만 뛰어난 기억능력과 암산, 추리 능력은 그 개인을 뛰어난 존재로 보이게 할 수는 있지만 결국 그를 타인들과 분리된 존재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고 거기에 더해서 뭔가 차원이 다른 영역으로 보여지는 '창의력' 관점에서 보면 그다지 필수적인 능력은 아닌 것 같다.

 

머리 좋기만 따지면 아마도 폰 노이만은 아인슈타인의 그것을 훌쩍 뛰어 넘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창의력, 사고의 발상 전환 등의 관점에서 보면 아인슈타인의 그것을 폰 노이만은 절대로 넘지 못할 것이다. 있는 것을 가지고 뛰어나게 잘 하는 사람과 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은 매우 다른 영역이다.

 

폰 노이만은 평생 여성에 대한 성적 집착을 했다고 전해지고 셜록은 시청자들한테는 사랑 받지만 극 중 나오는 다른 이들에게는 그다지 좋은 존재로 취급되지 않는다. 실제로는 거의 괴물 취급을 받는다. 그리고 하우스에 나온 여인 역시도 평생을 그것으로 인해 불행한 삶을 살았으며 좀 다르지만 렉터 박사는 천재적이고 인육을 즐기는 끔찍한 존재로 묘사된다. 물론 여기에서 실제로 존재한 사람은 폰 노이만 뿐이다.

 

나는 남들처럼 평범하게 뒤섞이고 삭제되고 부풀려지고 조작된 기억을 궁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글을 쓰면서도 내 기억의 궁전이 얼마나 뒤섞여 있는지 스스로 알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모든 능력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어쩌면 우리 유전자적 특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뛰어난 머리는 생존을 유리하게 만들어서 결국 자손의 번식을 유리하게 해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을 하기 전에 스스로 너무 불행해지거나 아예 짝을 찾지 못하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자연은 냉정하게 개체의 생존을 결정한다. 그리고 아무래도 나와 같은 조건을 가진 개체가 좀 더 자연에 잘 적응한 존재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즉 좀 더 사회성을 가진 존재가 뛰어난 능력을 가진 존재보다 자연 적응적이란 뜻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사회성이 뛰어난 존재는 아니다 ㅎㅎ

 

아마도 행복한 삶에는 천재적 능력이 아닌 수재급 정도의 능력이 더 좋은 듯 하다. 천재란 어떤 의미에서는 그 자신과 공감해줄 수 있는 존재를 주변에서 절대로 만나기 힘든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행복은 머리가 좋다고 더 잘 느끼는 것이 아닌 타인들과의 교류와 교감 속에서 나타나기 쉽기 때문에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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