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이야기들

짧은 이별의 순간

아이루다 2015. 4. 13. 06:49

 

 

 

몇 달 전 지인의 가족과 어울려서 만난 적이 있다. 우리들은 보통 사람들의 만남처럼 같이 점심을 먹고, 그 후엔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그 지인은 조금 늦게 결혼을 해서, 이제 만 삼 년이 되가는 아이가 한 명 있다.

 

아이는 처음엔 낯을 가려서 우리를 어려워했다. 그러나 한두 시간쯤 지나자, 이젠 서서히 친해져서 우리를 보고 웃기도 하고, 장난을 치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새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커피 가게에서 나와 걸어가다가 서로 방향이 갈리는 곳에 도착하자, 우리는 그들 가족에게 손을 흔들어서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그런데 갑자기 그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아마도 갑작스러운 이별이 당황스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별다른 생각이 없이 왔었기 때문에, 어른들 역시도 헤어져야 할 장소에 도착해서야 그것을 인식하고 서둘러 인사를 나눴다. 하지만 어른들은 아이처럼 당황하지 않는다. 우리는 잠시 당황스러움을 느낄지는 모르지만, 금새 그것을 극복해내고는 웃는 얼굴로 헤어지게 된다. 하지만 아이는 그런 연습이 되어 있지 못하다.

 

사실 생각해보면, 어른들인 우리들 역시도 어린 시절에 그랬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오면서 끝없이 그런 환경에 노출이 되었고, 지속적으로 당황스러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서서히 그것에 적응했을 것이다. 이 말을 확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과정이 전혀 의식적이지 못하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른들도 가끔 당황스러움을 느낀다. 다 같이 모여서 재미있게 즐기는 자리에서, 친구 한 명이 숨길 수 없는 우울한 표정으로 일이 생겼다고 하면서 먼저 일어난다. 우리는 그때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최근 그리 좋지 않는 일이 많은 일어나고 있는 그 친구에게 또다시 갑작스러운 나쁜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일수도 있다

 

그리고 아이처럼 전혀 대비되어 있지 않는 갑작스러운 헤어짐의 감정으로 인한 당황스러움일 수도 있다. 그 날이 그 친구를 마지막으로 보는 날이 될 수 있다는 주책맞은 상상을 하기도 한다.

 

이번 영월 방문은 총 10일에 가까운 여정이 된다. 지난 금요일 밤에 도착해서는, 이번 주 일요일에 올라갈 예정이니 대충 그럴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 그녀는 나와 같이 왔다가 오후 차편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이번 주 금요일 밤에 다시 내려 올 것이다.

 

그런데 어제 영월 시외버스 터미널에 그녀를 데려다 주고 오는 도중 통화를 하는데, 그녀가 울음을 터뜨렸다. 서울에서는 매일 보고, 여기 있는 동안에도 계속 붙어 있었으며, 5일 지나면 또 볼 사이인데, 그녀는 이별을 당황스러워했다.

 

사실 이번 일정에서 나 역시 그런 당황스러움을 느낄 것 같아서, 그녀를 버스에 태워 보내고 돌아오는 길을 미리 염려했었다. 사람은 든 것보다, 나간 것이 훨씬 빈 자리가 크다고 하는데, 나 또한 그녀가 떠난 영월 집에 혼자 돌아오는 길에 내가 느낄 감정이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하지만 떠나는 입장인 그녀가 감정을 참아내지 못했다. 물론 평소에도 워낙 잘 우는 그녀라서 그럴 것이지만그녀의 울음에 나는 원래와는 다른 이유로 인해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생각을 해봤다. 그런 그녀와는 달리 나는 왜 괜찮은가에 대해서 말이다.

 

잠시 생각해보니, 나는 이미 여기에 도착한 후부터 천천히 그녀를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꺠달았다. 나는 그녀가 떠난 후 받을 상처를 대비해서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해놓은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나는 여기 있는 동안 온전히 이곳의 느낌을 즐기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그런 대비 덕분에 나는 어떤 어려움 없이 이별의 순간을 견뎌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나와 달리, 그녀는 그런 걱정을 할 수도 없었고, 하는 성격도 아니다. 그녀는 누군가를 남기고 떠나 본 경험이 없었고, 그래서 자신의 급격한 감정 변화를 견디지 못하고 자신도 모르게 감정이 격해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나중에 그것을 생소한 감정이라고 표현했다.

 

또한 나는 그녀의 그런 감정 상태가 예전에 만났던 지인의 아이의 그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헤어짐의 순간에 느껴지는 갑작스러운 당황함 속에 숨겨진 상실감이 아마도 그것의 원인일 것이다.

 

이것은 순수한 감정적 표출이다. 계산되거나 예측되지 않는 감정이다. 그런데 다양한 경험을 통해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된 우리들은 그런 순수하게 감정을 표출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요즘 누가 감정적으로 격해져서 울기나 하는 사람을 선호하겠는가사람들은 웃는 사람들만 좋아한다.

 

우리는 조금 후에 감정이 정리된 후, 그런 모습을 남들이 보면 비웃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서로 웃었다. 사실 많이 웃기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서로를 그리워했다. 멀리 떨어진 것도 아니고, 오랜 시간 헤어질 것도 아닌데, 그립다. 헤어짐이 시작됨과 동시에 그립다. 그리고 그 그리움은 우리가 다시 만날 때 좀 더 행복하게 해줄 것이다.

 

오늘은 월요일이다. 나는 어차피 이곳 영월에 있기에 어제나 그제나 오늘이나 모두 같다. 하지만 서울에 올라간 그녀는 다시 회사에 갈 것이고, 금새 복잡한 그곳에 익숙해져 갈 것이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갈 것이고, 금요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또 버스를 타고 이곳 영월로 올 것이다.

 

나는 그 시간이 오길 바라면서,  다시 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별로 보고 싶지 않지만, 결국엔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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