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영원

아이루다 2015. 6. 1. 10:28

 

제자 : 영원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지요?

 

스승 : 영원은 시간이 없는 곳이다.

 

제자 : 스승님, 아무리 생각해도 시간이 없다는 개념이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시간이 없다는 것은, 시간이 멈춘 곳이란 뜻인지요..

 

스승 : 시간이 없는 곳이란 말의 뜻은, 그것이 아니다. 시간이 멈춘 곳은 시간이 있기 때문에 멈출 수 있다. 그렇기에 그것은 아니다.

 

제자 : 그렇다면 자유롭게 미래와 과거를 갈 수 있는 곳인지요?

 

스승 : 그것도 아니다. 과거와 미래 역시도 시간이 존재하기에 생겨날 수 있는 개념이다. 시간이 없는 곳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개념이 없다.

 

제자 : 그렇다면 저는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과거가 없다면, 모든 일의 원인이 없어집니다. 미래가 없다면, 모든 일의 결과가 사라집니다. 도대체 그런 세상이 존재할 수 있는지요.

 

스승 : 그런 세상은 존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세상을 경험할 수는 없다. 우리는 온전히 시간에 종속된 존재들일 뿐이다.

 

제자 : 그렇다면 영원한 삶이란 말도 역시 꿈에 불과한 것인가요?

 

스승 : 사실, 영원한 삶이란 잘못된 말이다. 원래 삶은 태어남과 죽음 사이의 시간을 의미한다. 그래서 삶은 반드시 시간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시간이 있는 곳이라면, 영원은 존재할 수 없다. 영원은 시간이 없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혹시나 아주 오래 사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어떤 오랜 시간도 언젠가는 끝이 난다. 우리는 단지 그 오래된 시간을 상상하지 못할 뿐이다.

 

제자 : 그렇다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결국 태어나서 자라서 죽는, 시간에 온전히 종속된 존재로써 무엇을 해야 할까요?

 

스승 : 사실,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네가 아무리 위대한 일을 해내더라도, 그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시간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제자 : 그렇다면 그냥 이렇게 살다가 죽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입니까?

 

스승 : 표면적으로만 보면 네 말이 맞다. 그것은 나와 너를 포함한 모든 존재들이 피해갈 수 없는 진리이다. 설령 미래의 인간들이 기술을 발전시켜 아주 오래 살아갈 수 있는 기계 장치를 만들었다고 해도, 그것은 바뀌지 않는다. 단지 그들은 시간을 좀 더 벌었을 뿐이다. 그것이 1억이든, 10억년이든, 1조년이 된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

 

제자 : 저는 슬픕니다. 제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결국 시간이란 녀석이 저를 갈기갈기 찢어 놓는 것 같아서 참을 수가 없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갈피를 못 잡겠습니다. 이렇게 사느니 그냥 빨리 죽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스승 : 네가 지금 죽음을 선택한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 사실 죽는 것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너는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빨리, 아주 조금 빨리 이번 생을 마감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아직 너는 알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그것을 알고 죽어도 그리 나쁜 결정을 아닐 것이라도 나는 생각한다.

 

제자 : 그렇다면 스승님은 그것을 알기 위해서 살고 계신 것인지요? 그리고 그것을 아셨는지요?

 

스승 : 나도 잘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나 역시 언젠가 그것을 알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것뿐이다. 하지만 반드시 그 날이 올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제자 : 그렇다면 왜 계속 살아야 합니까. 우리는 죽는 그 순간까지 영원함에 대해 이해조차도 못하는데 말입니다.

 

스승 : 너는 영원을 알고 싶으냐?

 

제자 : 네 정말로 알고 싶습니다.

 

스승 : 왜 알고 싶으냐?

 

제자 : 그것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해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알아 낸 것은, 저는 영원히 존재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렇게 살다 죽는 삶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저는 어딘가 진리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진리를 발견하게 되면, 영원히 존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이것은 확신입니다. 이미 앞서간 분들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스승 : 그 말은 맞다. 진리를 얻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해야 한다. 우리가 진리를 얻어서 시간이 없는, 영원을 이해하게 될 때, 우리는 더 이상 이 세계에 속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속에서 영원을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야 한다.

 

제자 : 왜 그래야 합니까?

 

스승선에 살아가는 존재는 넓이를 이해할 수 없다. 평면에 살아가는 존재들은 높이를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이 존재했던 선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자신이 갇혀있던 선이 보인다. 자신이 존재했던 면을 벗어나야 높이가 보인다. 우리는 시간에 종속되어 있다. 그래서 시간에서 벗어나야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선, 평면, 입체, 시간을 벗어나야 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벗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제자 : 그것이 정확히 무슨 의미 입니까?

 

스승 : 네가 알고 있는 그 모든 것을 다 버려야 한다는 의미이다. 네가 알고 있는 가치와 믿음 신념 그리고 너 자신까지 모두 버려야 한다. 그것은 모두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이다. 네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얻는 모든 것은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이다. 그래서 네가 영원을 향해 가기 위해서는 그것들을 모두 버려야 한다.

 

제자 : 그렇다면 저는 어떻게 되는지요.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나면, 저는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요.

 

스승 : 너는 의미가 없다. 나 역시 의미가 없다. 모든 것이 무의미해진다. 적어도 영원은 그런 곳이다. 우리가 시간과 공간에 속해서 얻는 모든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10억년 전에 일어난 일과 10억 년 후에 일어난 일이 동시에 존재한다. 아니, 동시란 말도 틀렸다. 그곳에는 시간이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은 그냥 존재한다.

 

제자 : 스승님, 이 우둔한 제자는 그 말씀을 이해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스승 : 나 역시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말했듯이 나 역시 시간과 공간에 속해있다. 이 세상에 잡혀있다. 그래서 지식으로만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우리에게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영원을 향해 갈 수 있다. 단지 그 길이 너무 어려울 뿐이다.

 

제자 :  스승님조차 어려운 길을 제가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암울하고 답답하고 비관적일 뿐입니다.

 

스승 : 너무 일찍 포기하지는 말아라. 너는 아직 젊다. 그래서 너에게는 시간이 많다. 너는 시간을 뛰어넘어야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시간은 있다. 이 말은 아이러니하지만 사실이다.

 

제자 :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스승 : 만약 우리가 영원한 것을 경험할 수 있는 순간이 온다면, 모든 것은 멈출지도 모른다. 아니 모든 것은 단편적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저 각자 존재하고 있을 뿐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이어졌다고 믿지만, 사실은 이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포커 용 카드와 같다. 케이스에 들어 있을 땐하나의 카드이지만, 꺼내어 한 장씩 늘어 놓을 땐, 그것들은 모두 분리된다. 의미도 다르다.

 

제자 : 그 말씀은..

 

스승 : 실제로 이 세상이 그럴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우리는 잘 배열된 카드 속이다. 우리는 숫자가 일정하게 배열된 카드를 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카드는 언제든 뒤섞일 수 있다. 그것이 영원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2란 숫자를 가진 카드 뒤에 3이 꼭 나올 필요가 없다. 거기엔 8이나 9가 나올 수도 있다.

 

제자 : 시간이 뒤섞일 수 있다는 뜻인지요..

 

스승 : 그곳엔 시간이 없기 때문에 뒤섞일 시간조차 없다. 그냥 그렇다는 뜻이다. 이것은 상징적인 의미이다. 그리고 우리가 쓰는 모든 말고 글은 이 공간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을 말하고 쓰는 것조차도 이 공간에 갇혀 있다. 그래서 우리가 영원을 알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이 세상에서 그것을 표현할 있는 그 어떤 방법도 없다.

 

제자 : 알지만,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군요.

 

스승 : 그 말이 맞다. 나 역시 나의 스승님에게 그런 말을 들었다. 그리고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나는 떠나야 한다. 지금이 떠나야 할 시점이란 생각이 강하게 든다. 그리고 이 떠남은 나의 마지막 여행이 될 것이다또한 나의 마지막 시간이 될 것이다.

 

제자 : 갑자기 무슨 말씀이십니까?

 

스승 : 방금 나는 이제 내가 젊은 시절에 나의 스승님과 나눈 대화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분도 나처럼 홀연히 떠나셨다. 너 역시도 언젠가 너의 제자와 이런 대화를 나눌 시간이 올 것이다. 그리고 너는 그때 나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방금 이순간 이제야 나를 떠나신 스승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제자 : 그래도 너무 갑자기.. 그렇다면 지금 떠나시는지요?

 

스승 : 그렇다. 나는 시간에 너무 오래 머물렀다. 나는 이제 이 시간에서 벗어날 것이다. 그 때가 되었다.

 

제자 : 그렇다면 스승님은 이제 영원으로 가시는 것인지요?

 

스승 : 아직 모른다. 그것이 영원일지 아닐지는 가봐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이해를 한다는 개념조차 이 세상에 속해있을 뿐이다. 내가 영원을 경험하게 된다면, 나는 그냥 영원일 뿐이다.

 

제자 : 그렇군요. 부디 뜻을 이루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스승 : 희망을 잃지 마라. 너 역시 나의 길을 따라 오게 될 것이다.

 

제자 : , 스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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