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행복 공감의 권리

아이루다 2015. 4. 5. 09:23

 
사람은 가능하면 많은 행복을 느끼려고 한다. 그리고 그 행복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좋지만, 그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와 공감할 수 있다면, 이 또한 아주 큰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재료가 되기도 된다. 즉, 행복 자체도 좋지만, 자신이 느끼는 행복과 비슷한 행복을 느끼는 존재를 만나서 그것에 대해 서로 인정해주고 알아줄 때, 원래 느낀 행복함보다도 더 큰 행복을 느낄 수도 있다.
 
그리고 이것을 행복 공감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이 행복 공감은 참 좋은 말이다. 우리는 홀로 행복할 수 있는 것도 좋지만, 다른 누군가와 그 행복을 공유함으로써 다른 많은 것들을 채울 수 있다. 그것은 행복과 행복 사이에 느껴질 수 있는 외로움을 해결할 수 있으며, 그 행복함으로 위해 직접 경험 하고 있지 않고 단지 그것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질 수 있으며, 혼자가 아닌 둘이기에 훨씬 안전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예를 들어서, 게임에 한참 빠진 아이들은 게임을 하는 중에도 좋지만, 게임을 하지 못하는 상태라도 그 게임을 같이 즐기는 친구들과 그것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순간 역시도 많이 즐겁고 행복해진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취미 생활을 즐길 때, 자신과 같은 취미를 즐기는 사람들이 모이는 동호회 활동을 하는 이유 역시도 마찬가지다.
 
그들 역시도 동호회에 가입했을 때, 자신이 즐기는 취미 생활을 더 잘 할 수 있는 장점도 중요하지만, 그것에 대해서 서로 대화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점 또한 매우 행복한 일이다. 이런 행동들은, 말 그대로 행복 공감을 경험함으로써 행복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아이를 낳은 엄마들 역시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아이로 인해 느끼는 행복을 다른 이들과 공감을 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한다. 사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보다도 그 당사자를 행복하게 해주는 일도 드물다. 단지, 그 일은 꽤나 힘들고 고되기 때문에 행복 공감을 통해서 그것을 좀 더 증폭시키지 않으면 엄마의 삶이 좀 힘들 수 있다.
 
그리고 더해서 이 행복은 문제 하나를 더 가지고 있다. 그것은 아이를 낳고 키우는 행복은, 그 자신에게나 남편에게 있어서 처음 경험하는 행복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여자들은 타고난 모성애로 인해서 자연스럽게 행복을 느끼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남자들은 꼭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 더 큰 문제이다.
 
물론 남자들 역시도 아이에 대해 여자만큼의 애정을 품을 수 있다. 그리고 행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남자가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외부 활동을 많이 함으로써 행복을 얻었던 남자라면, 아이로 인해서 집안에 들어올 때마다 답답하고 짜증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어떤 남자들은 책임감으로 인해 자신의 역할을 열심히 하겠지만, 문제는 이런 태도는 기본적으로 아이를 키우는 행복에 대한 공감이 없이 이루어지는 행위라서, 때론 아이 엄마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애정은 물론 아예 이런 책임감 조차도 없는 사람들도 사실상 존재하고 있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이 예를 통해서 우리는 행복 공감이 왜 우리를 더욱 더 행복하게 해주는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행복했던 기억과 행복할 수 있는 기대를 할 수 있게 만들어주고, 더해서 그 행복함을 얻기 위해서 아주 좋은 조력자를 얻은 셈이 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여행을 갈 때, 둘 모두 여행에 대해 행복해 하고 기대를 하면, 이 두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할 것 없이 서로 열심히 여행을 갈 준비를 한다. 또한 둘이 만나면 쉼없이 이번 여행에서 어디를 갈지, 무엇을 할지를 서로 이야기 하면서 행복해 한다. 그리고 어디에서 조그만 지식이라도 얻게 되면, 금새 상대에게 연락해서 알려주고는 서로 걱정하거나 기대를 하는 대화를 나눈다.
 
이것은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시작해서, 여행을 하는 중에서도 그렇고, 여행이 끝나고 돌아 온 후에도 한참 진행되는 행복함이다. 행복 공감은 그 행복함에 대한 기대를 나누고, 그 행복함을 얻기 위해서 서로 더 노력하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어서 좋고, 그 행복을 경험한 후 추억으로 만들어서 교감할 수 있어서 좋은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좋은 것이기에, 중간에 만날 수 있는 장애물이나 힘듦 정도는 서로 열심히 노력해서 극복하려고 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혼자서 막막한 상태에 비해서 비교도 안될 만큼 큰 용기를 준다. 그래서 어떤 것들은 아예 시도도 못하는 것을 친구와 함께라면 용감하게 해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는 힘의 근원이 바로 서로 느끼는 행복함의 공유이다. 즉, 행복 공감인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그 중 한 명은 여행을 좋아하는데 다른 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그냥 다른 행복 중 하나일 때 일어날 수 있다. 이런 상황일 때,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은 혼자서는 두렵고 힘들어서 같이 갈 친구가 필요하다. 하지만 사실 이때 여행을 준비하면서, 여행을 하면서도, 여행을 갔다 온 후에도 이 사람은 그 친구의 소극적 태도로 인해서 끝없이 상처를 받게 된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여행에 아주 큰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기에, 행복한 당사자에 비해서 매우 소극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여행지를 알아보거나, 준비 중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하려는 의지나, 어디를 갈지 결정하는 것이나, 그 여행지에 대해서 무엇인가 정보를 찾아보려는 시도나, 여행 중에서 만난 문제를 해결할 때, 돌아와서 그 여행에 대한 정리를 할 때도 모두 비 협조적이거나 방관자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은 비록 여행을 같이 떠날 사람을 얻어서 안전함은 확보했지만, 사실상 행복 공감은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고, 차라리 혼자서만 안달 난 듯 느껴져서 기분이 많이 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은 자신이 느끼는 행복을 상대가 많이 느끼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기 보다는, 상대는 왜 이런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지에 대해서 실망하면서 기분이 많이 상하게 된다.
 
아이를 낳은 후, 밖에서 겉도는 남자에 대해 분노를 느끼는 아이 엄마들 역시도 마찬가지다. 사실 아이의 엄마는 그 누구보다도 남편의 도움이 필요하다. 육아는 원래 엄청난 난이도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편이 아이를 키우는 행복에 대한 공감을 해주지 않을 경우, 남자는 배타적이며, 타율적이며, 방관자적인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이때 역시도 여자는 남자가 아이를 왜 사랑하지 않는지를 이상하게 여긴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친구에게 느꼈던,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을 상대가 행복하게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보다,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을 상대는 왜 느끼지 못하는 지에 대한 의문을 품는 것과 같다.
 
사실 아이는 보편적으로 사랑스러운 존재이고, 많은 사람들이 행복함을 느끼는 대상이긴 하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럴 수는 없다. 더해서 끝없이 돌봐줘야 할 어린 아이는 사실상 여자에게도 애증의 대상이 된다. 물론 주로 사랑의 감정이 우세하고 아이를 통해 느끼는 화는 상대적으로 적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여자는 남자가 자신이 아이를 사랑하듯, 남자 역시도 아이를 사랑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실 이 때 여자가 원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행복에 공감해주는 남자이다. 그리고 그 공감을 요구하는 태도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육아를 성실하게 도와주는 남자의 태도를 바라고 있다.
 
아마도 남자가 아이에 대한 애정이 거의 없이, 오직 책임감으로만 아이를 돌봐주었다면, 여자는 조금 서운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그렇게 화를 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행복은 억지로 강요해서 만들어질 수는 없다는 점이다. 여행을 같이 떠난 친구가 느끼는 행복이나, 아이를 낳은 후 남편이 아이를 통해 느낄 행복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서 만들어질 수는 없다. 그것은 그 당사자들이 느껴야 할 행복이다.
 
물론 사람은 변하기에, 언젠가 시간이 지나서 처음엔 그냥 별 생각 없이 여행을 다니던 사람이 정말로 여행을 좋아하게 되는 경우나, 아이가 크면서 점점 귀여워지고 예뻐지면서 아이를 점점 더 좋아하게 되는 아빠들도 많다. 그래서 나중엔 행복한 가정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좀처럼 그렇게 변하지 않는 사람들이며, 그 중에서도 관계를 끊을 수 없는 부부가 가장 큰 위험한 상태가 된다.
 
사실 친구는 그런 점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친구는 부부에 비해서 만나고 헤어짐이 그나마 좀 자유롭다. 만약 어떤 친구가 여행을 그리 즐겨 하지 않는다면, 다음엔 다른 사람과 여행을 가면 된다. 친한 친구보다 차라리 잘 몰라도 여행을 정말로 행복하게 즐기는 사람과 떠나는 여행이 훨씬 더 나을 수 있다.
 
하지만 부부는 이것이 안 된다. 남편이 육아에 관심이 없다고 해서 다른 남자를 끌어들일 수는 없다. 사실 부부에게 있어서 이런 문제는 단지 육아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부부가 함께 하는 많은 종류의 행복이 바로 그 대상이 된다.
 
보통 친구는 처음부터 말이 잘 통하고 어느 정도 취미가 공유될 때 맺어지고 이어진다. 하지만 부부는 기본적으로 이런 역할에 대한 필요도 있지만, 좀 더 중요한 것은 경제적 목적과 안전한 삶, 그리고 정해진 삶에 대한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더 중요하게 여겨져서 맺어진 관계이다.
 
물론 처음부터 말이 잘 통하고, 취미가 비슷해서 결혼하는 부부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럴 때는 보통 다른 문제들이 걸리게 된다. 왜냐하면 결혼은 친구를 사귀는 것과는 달리 기본적으로 서로에 대한 책임감과 충성심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부가 말은 잘 통하고 행복하게 취미를 즐기는 것도 좋지만, 여자가 살림에 소홀하고, 남자가 돈 버는 것에 소홀하면, 그런 가정은 오래 가기가 힘들다.
 
반대로 서로의 책임감을 믿고 결혼한 부부라면, 당장 결혼 생활은 잘 유지가 되겠지만, 문제는 행복에 대한 공감이 되는 부분이 딱히 없어서 쉬는 날,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을 하게 된다. 물론 부부는 친구와 달리 아주 강력한 행복 공감이 하나 존재한다. 그것이 바로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조차도 공감이 잘 되지 못하면, 사실상 여자는 행복 공감을 경험하기가 무척 힘들게 된다. 그나마 행복 공감의 일부분은, 외부에서 다른 아이의 엄마등과의 대화를 통해서 채울 수 있지만, 정말로 큰 문제는 그 행복을 얻기 위해서 따라오는 힘든 일들을 같이 해줄 사람이 없다는 실질적인 문제가 된다.
 
그래서 이런 상태가 된 부부는 큰 위기를 맞게 된다. 물론 어떤 여자들은 포기하고 아이만 바라보고 살아가기도 한다. 남자는 그냥 돈을 벌어다 주는 존재로써만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행복 공감을 어떻게든 경험하기 위해 다른 여자들과 끝없이 대화를 주고 받아야 하는데, 문제는 그런 대화를 통해서 다른 남자들의 아이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듣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적인 빈곤함을 더욱 더 크게 느낀다.
 
사실 사회적 관점에서 봐도 부부간에 서로 아이에 대한 애정과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매우 타당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합리적으로 타당할 뿐, 그리 인간의 본성과는 먼 요구이다. 그것은 누구나 여행을 좋아하니, 너도 좋아해야 한다는 말이며, 내 친구들이 다 게임을 하니 너도 게임을 해야 한다는 소리와 같다. 그 어떤 행복도 각자만의 것일 수 밖에 없다.
 
이것은 행복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아이에 대한 부분은 여행과는 달리 부부 공동의 책임이 있기 때문에 훨씬 더 강력하게 그것에 대해 행복을 느껴야 한다고 주장할 수는 있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아이를 통한 행복은 여행을 통한 행복과 다를 바는 없다. 행복한 것은 행복한 것일 뿐이다. 그것은 강제될 수도, 강요된다고 해서 만들어지지도 않는다. 차라리 지속적으로 강요될 때는 부담감만 생기고 만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행복에 공감해주지 않는 사람들과 어울려야 할 때, 사실상 자신의 행복을 왜 공감해주지 못하는지에 대한 실망감은 숨긴다. 왜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지, 왜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지, 왜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지를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들 자신도 그것이 사실 문제가 있는 말이란 것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전략을 쓴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느끼는 행복이 가진 장점을 설명하거나 혹은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가치에 대한 주장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행이 가진 장점과 여행을 권장하는 사회 분위기를 소개하면서 여행이 좋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이를 키우는 행복과 미래의 삶이 주체들을 키워내는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자전거를 타면 건강해지고 삶이 활력적으로 변한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게임은 그런 것이 별로 없다.
 
하지만 사실 행복하다는 관점에서는 아이나 자전거나 여행이나 게임이나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왜 게임에 대해서는 다른 것들에 비해서 타당한 주장을 할 수 없을까? 그것은 바로 게임은 행복하긴 하지만, 그것이 가진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아서 사회적으로 그 타당함이 그다지 통용되지 않는 탓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사회적으로 충분히 조작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서 우리나라 옆에 있는 일본이란 나라에서는 만화 산업이 엄청나게 발전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만화에 대한 이미지가 그리 썩 좋지 못하다. 왜냐하면 오래 전 만화를 그다지 좋은 것이 아니라고 정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만화를 보는 것의 행복을 주장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즉, 우리가 자신이 느끼는 행복에 대해 그 어떤 타당한 이유를 대고 합리적으로 설명하려고 하더라도, 사실 그것은 그냥 자신이 느끼는 행복이 그것에 맞춰진 것뿐이다. 그래서 만약 다른 사람이 특이하게 그런 보편적 행복에 그리 관심이 없다면, 그것은 단지 사람을 잘못 만난 것이다.
 
잘못 만난 친구는 헤어지고 안보면 끝이다. 그런데 부부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이것에 대한 답은 없다. 셋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하나는 끝없이 시도를 해서 그 사람을 바꾸는 것이다. 이것은 행복에 대한 정당성만 있다면 해볼 만 하다. 두 번째는 포기하고 사는 것이다. 단지 부부의 역할로써만 함께 하는 삶이다. 사실 우리나라에 많은 부부들이 이렇게 산다. 세 번째는 친구처럼 헤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힘들지만 다른 기회를 위해서 한번 용기를 내볼 만 하다.
 
그리고 이것은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한 처리 방안일 뿐이다. 우리 인간은 생각을 하고 살 수 있기 때문에, 그 문제점을 예상한다면 이미 맺어지기 전에 고려해야 할 사항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래서 결혼을 단지 삶을 같이 살아가는 생활적 존재로써만 바라보지 말아야 한다. 결혼은 생각보다 행복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그 행복은 우리가 믿는 안정적인 직장, 돈, 다른 이의 평가, 외모 등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사실 가장 중요한 행복은 둘 사이의 행복 공감으로부터 온다.
 
이것을 간과하게 되면, 많은 다른 부부들처럼 각자 행복하고, 각자 외롭게 살아간다. 뭐 물론 이런 삶이라고 해도 안정적으로 살면서 돈에만 큰 문제 없다면 상관없다는 사람들도 꽤나 있을 것이다. 이들에게는 단지 위기만 없으면 된다. 그래서 이것은 일종의 도박이기도 하다.
 
그리로 설령 혹시 처음엔 안정을 위해 선택한 사람이라고 해도,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일명 행복에 대한 보조를 맞추는 일이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이미 자신이 느끼는 행복에만 안주하려는 태도 역시도 좋지 않다. 우리는 행복을 새롭게 만들어 낼 수 있다. 노력만 하면 언제든 가능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가치를 통해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치는 시간과 노력만 투자 된다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사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이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보통 우리는 그런 노력보다는 아예 친구 자체를 바꾸는 것을 택한다. 그리고 이것이 좀 더 현명한 생각이다. 왜냐하면 누군가의 행복 취향을 바꾸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 공감을 원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믿는 것과 달리 그 행복에는 어떤 당위성도 없다. 그래서 그것을 권리로 주장해서는 안 된다. 설령 아이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는 남편이라고 해도 그것은 남편의 행복에 대한 권리이다. 이 남편은 단지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만 질책 받아야 한다. 아이를 왜 사랑하지 않느냐를 가지고 질책을 하게 되면, 이 남자는 답을 할 수 없다.
 
친구에게 여행이 좋다고 강요하거나, 운동을 강요하거나, 책을 강요하거나, 영화를 강요하거나, 게임을 강요하거나, 노래방에 가자고 강요하거나, 술을 강요하거나 모두 마찬가지다. 그 어떤 행동도 자신이 행복하다고 해서 상대가 해야 할 당위성은 없다.
 
그리고 이것을 잊지 않을 때, 우리는 노력이란 것을 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상대가 그것을 좋아하게 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힘이 되어준다. 그리고 그런 노력이 쌓일 때 비로소 상대가 변화될 수 있다. 그때가 되어야 비로소 행복 공감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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