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소심함의 정체

아이루다 2015. 3. 25. 14:32

 
스스로를 소심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소심함에 대해 고민을 하고 산다. 그리고 이들의 대부분 고민 중 하나는 바로 자신이 다른 사람의 시선과 평가에 너무 과도한 신경 쓰고 산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다른 이들의 별 생각 없이 한 말과 행동을 크게 확대 해석하거나, 우연히 접한 사건 등을 가지고 자신과 연관되었다고 여기면서 불필요한 신경을 쓰기도 한다.
 
그것은 남들에게 받은 어떤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거나 반대로 필요에 의해서 부탁을 할 때도 잘 하지 못할 때도 나타난다. 그리고 이런 증상은 거절을 했을 때나 거절을 당했을 때, 남들이 판단하는 자신에 대한 평가나 이미지에 대해서 과도한 걱정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즉, 타인의 머리 속에 들어있는 평가도 불가능하고 제어할 수도 없는 생각에 집착하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원래 우리는 우리 자신의 성향을 소심하거나 그 반대인 무덤덤한 것으로 구분을 한다면, 가능하면 무덤덤한 쪽에 속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소심한 것은 방금 든 예만 해도 그렇고 이것 이외에도 많은 상황에서 우리를 많이 피곤하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소심한 사람들도 스스로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가끔은 큰 용기를 내어서 부탁을 거절하거나 힘든 부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끝은 아니다. 왜냐하면 결국 마음이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순간은 편해졌을지 모르지만, 잠을 자기 전에 계속 그것이 생각나서 결국 잠을 설치는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래서 다시 또 그런 상황이 오면 또다시 그럴까 봐 망설이게 된다.
 
그런데 원래 소심한 것은 단지 단점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과도하기 때문에 문제가 될 뿐, 어떤 식으로든 상대편 입장에 대한 배려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상대가 나쁜 의도를 가지고 이용해먹는 것이 아니라면 무딘 것보다 소심한 것이 나을 수도 있다. 보통 무딘 것은 상대적으로 좋은 것으로 여겨지긴 하지만, 미세한 감정적 흐름을 잘 파악하지 못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도 모르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소심한 사람들은 그것을 고치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것은 거의 본능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소심한 사람은 그 특징으로 인해 이득보다는 손해를 더 많이 보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희망과는 달리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착하지 않기 때문에, 소심한 사람들은 그 성향으로 인해서 자주 이용을 당하고 소소한 배신을 잘 당한다. 하지만 소심한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상처를 입으면서도 그 소심함으로 인해서 그 안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살아가게 된다.
 
결국 그래서 사람들 대부분은 소심함을 좋아하지 않는다. 또한 소심한 사람에게는 더욱 좋지 않는 상황이지만, 상대적으로 보면 인간적인 매력 자체도 떨어진다. 왜냐하면 소심한 사람은 지속적으로 손해를 보고 있기 때문에 같이 어울리다 보면 바보 같아 보여서 답답하기도 하고, 실제로 괜히 같이 있다가 덩달아서 손해를 입기도 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소심한 사람을 그리 좋아하지 않고 또한 소심한 사람들에게 그것을 고쳐야 한다고 비난이 섞인 조언을 하곤 한다.
 
하지만 사실 소심함의 당사자들이 그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들 역시도 그 문제점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을 고치는 것은 너무도 힘들다. 앞에서 말했듯 잠시 고쳐지는 듯 해도 결국엔 잠자기 전에 그것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를 소심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그것을 고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이 소심함을 고치기 위해 우선 먼저 시작하는 것은, 바로 상대의 부당한 부탁을 거절하거나 필요한 도움을 요청하는 것 등이 된다. 즉, 자신이 남을 대하는 태도를 바꿈으로써 그것을 고치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대부분 실패를 하고 만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한번 용기있게 발을 딛고 난 후, 사실 큰 문제가 없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 후로는 좀 더 적극적으로 살아가기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럴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그래서 대부분의 이런 시도는 실패를 하고 만다. 그리고 그 이유는 바로 그 소심함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고치려는 노력을 하기 때문이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소심함은 상대를 어떻게 대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소심함이 발생하는 진짜 이유는 바로 소심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나 방식으로 부터 발생한다.
 
이것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어떤 사람이 입가에 붉고 진득한 액체를 묻힌 채로 뭔가 반짝이는 물체를 들고 있다고 치자. 그럴 때 어떤 사람은 그가 방금 사람을 죽이고 그 피를 마셨다고 생각하면서 그가 들고 있는 물체가 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다른 사람은 그가 방금 햄버거를 먹다가 케첩을 입가에 묻혔으며 손에는 포크를 들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흔하지는 않지만 소수의 사람은 그 사람을 뱀파이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때 이 사람의 입에 묻은 것은 피가 될 수도 있고 케첩이나 고추장이 될 수도 있다. 손에 든 것이 칼이 될 수도 있고 포크가 될 수도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 사실을 결국 알 수 없다고 했을 때,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느냐는 오직 각 개인의 머리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즉, 여기에서 빨간색 액체와 반짝이는 물체는 다른 사람들의 하고 있는 생각이라고 대입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절대로 제대로 알 수 없다. 이것을 해석하는 것은 오직 제 삼자인 각자의 몫이다. 그런데 이 생각은 왜 다르게 나타나게 될까? 그것은 그것이 바로 각자의 경험과 상상력에 의해서 예상되기 때문이다. 사실 상상력 또한 경험을 기반으로 해서 나타나니, 결국 모든 것은 각자의 개별적 경험으로 귀결된다. 그것이 직접이든 간접이든 간에 상관없이 말이다.
 
소심한 사람의 소심함은 그래서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다. 상대의 생각을 예측하고 그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평가할지 걱정하는 사람은, 거꾸로 그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늘 그런 식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즉, 그래서 자신이 상대를 대하는 태도를 바꾸고 싶어 하는 것들은 결국 실패하고 만다. 왜냐하면 그렇다고 해도 자신이 남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은 바꾸지 못하는 한, 사실상 바뀌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원래 우리 인간은 경험하지 못한 것을 상상할 수 없다. 우리가 예상하는 것들은 모두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우리가 상대의 생각을 예측하는 것 역시도 모두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것을 알아채려면, 그 자신이 그런 거짓말을 해본 적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평생 한번도 거짓말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거짓말을 한다고 해서 그것을 알아챌 수는 없다.
 
그러니 소심한 사람의 상상력은 모두 그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그런 식으로 평가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그런 식으로 자신을 판단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근거가 된다. 그래서 그 자신이 타인의 부탁을 거절할 때 '힘들겠네요' 라고 말할 때는 사실 거의 절대적으로 안 되는 상황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상대가 조금이라도 '힘들겠는데요' 라고 말하는 투가 느껴지면 두 번 다시 부탁을 하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사실 이때도 제차 부탁을 하면 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이럴 수 있는 사람은 '힘들겠는데요' 라는 말을 할 때, 그 자신이 그냥 늘 상 하는 말일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늘 어떤 부탁을 받을 때마다 '힘들겠는데요' 라는 말로 시작하는 사람은 당연히 다른 사람이 그렇게 대답을 해도 그것을 쉽게 무시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소심한 사람은 자기 딴에는 최선을 다해 '힘들겠는데요' 라고 거절을 했음에도 또 다시 부탁을 해오면 도저히 거절을 하지 못하고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그것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거절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상대가 아닌, 자신의 경험에서 판단되고 있는 사고 능력이 만들고 있는 문제점인 것이다.
 
그래서 소심함을 고치고 싶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자신이 늘상 하고 있는, 상대를 지속적으로 판단하는 버릇을 버려야 한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고 싶지 않다면, 먼저 속으로 끝없이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그 버릇을 그만두지 못하고 표현도 못하면서 속으로만 끝없이 비난을 하다가 보면, 그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비난을 받을까 봐 걱정이 되어서 결국엔 끝없이 타인의 눈치를 보는 소심한 성격이 되는 것이다.
 
같은 증상이긴 하지만, 마음이 여유로워서 부탁을 잘 들어주는 사람은 부탁도 잘한다. 그래서 같이 부탁을 잘 거절하지 않더라도 큰 문제가 없다. 문제는 스스로를 소심하다고 평가하는, 부탁을 거절 못하면서 부탁도 못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리고 거기엔 끝없는 타인에 대해 평가를 하는 잘못된 버릇이 숨겨져 있다.
 
남을 자꾸 자기 마음대로 평가하고 판단하는 버릇이 결국 소심함의 근원이 되고 만다. 그래서 결국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그렇게 좋지 않게 평가할까 봐 걱정이 되어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고, 할 권리가 있는 부탁마저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음식점에서 일을 하다가 보면 손님의 요구 등이 너무 짜증이 나서 속으로 욕을 해댄 사람은, 그 자신이 손님으로써 다른 음식점에 갔을 때, 손님으로써 당연히 받아야 할 요구를 하지 못하고 종업원의 눈치를 보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배려의 수준이면 나쁘지 않다. 하지만 잘못된 대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이 종업원 입장일 때를 생각해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 종업원이 뒤에서 욕을 하거나 서비스로 가져다 줄 음식에 침을 뱉는 상상을 하게 되면 부탁 자체를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자신이 당한 것이 있으니 다른 사람에게 더 심하게 하는 사람보다는 훨씬 낫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보통 진상이 되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손해를 입는 것은 결국 진상이 아닌 소심한 사람 쪽이다. 그리고 우리는 누구나 손해를 싫어한다.
 
정리해서 설명하자면, 소심함은 분명히 자신을 고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것을 고치기 위한 노력으로 보통 사람들이 선택하는 방법은 문제가 있다. 그리고 그 문제로 인해서 보통 실패를 한다. 그래서 진정한 해결책은 상대를 대하는 태도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판단하는 좋지 않은 버릇을 없애야 한다.
 
물론 이것은 매우 힘들다. 오랜 시간 동안 늘 상대의 옷차림, 말투, 행동거지, 표정, 버릇 등을 분석해서 자기 마음대로 평가하면서 살아 온 사람이 갑자기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아무런 평가를 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단지 이것을 조금이라도 줄여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원래 통상적인 해결책인 사실 다른 사람의 평가에 대해 무관심해지라는 소리와 비슷하다.
 
이 두 방법의 차이라면 다른 사람의 평가에 무관심해지라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것에 대해서 무관심해지라는 것이다. 이것은 비슷해 보이는 말이지만 사실은 완전히 다르다. 그리고 전자는 결코 소심함을 해결될 수 없는 방법이고, 후자는 어느 정도만 되면 꽤나 확실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이다.

또한 전자의 해결책은 그것이 너무 잘되면 안하무인이 되어서 말 그대로 진상이 될 수 있는 문제를 안고 있지만, 후자의 해결책인 경우에는 잘될 경우 타인에 대한 불필요한 선입견이나 경험으로부터 오는 잘못된 판단 등을 방지할 수 있는 추가적으로 좋은 효과를 불러 올 수도 있다.
 
이미 앞에서 말했듯, 소심함은 분명히 장점을 가지고 있다. 너무 둔해서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혀 모르고 사는 사람보다는 훨씬 낫다. 단지 소심함을 장점으로 유지하려면, 최대한 사람을 가려 사귀어야 한다. 세상에는 소심한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해주려는 사람보다는, 그 소심함을 이용해서 자신의 이득을 챙기려는 사람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해서 상대를 생각해서 하는 배려는 엉뚱하게도 그 상대의 권리인냥 여겨지는 경우도 흔하다. 즉, 많은 사람들이 뻗을 자리가 되면 뻗을 뿐이다. 뻗게 해주었다고 해서 감사하기 보다는 그것을 당연한 것을 여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다. 소수의 사람들은 경우를 알고 감사할 줄 안다. 그래서 자신의 소심한 성격을 고치지 못할 것이라면, 적어도 평균 이상으로 착한 사람을 골라서 사귀어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그 소심함을 가진 채, 못된 사람들과 어울려서 끝없이 이용당하고 결국 버려지는 사람들이다.
 
이것은 절대로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경험이 되질 못한다. 이것은 그냥 상처로만 남을 뿐이다. 그래서 이런 상처가 많아서 너무도 방어적으로 변해 자신의 삶조차 망가뜨리는 일도 일어난다. 그래서 그것을 방지하려면, 일단 가장 먼저 남을 평가하는 버릇부터 고쳐야 한다.
 
물론 비슷하게 이용당하는 사람들로 소심한 것이 아닌, 순진하고 착한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이들은 사실 대책이 없다. 소심한 성격은 계산 능력은 있으나 자신이 가진 문제로 인해서 대인관계가 서툴러서 나타나는 문제라면, 순진하고 착한 사람은 계산 능력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은 운 좋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살아가길 바라는 수 밖에 없다. 단지 이 두 유형에서 소심한 사람은 착한 사람들에 비해서 훨씬 더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점이 문제이긴 하다.
 
흔히 소심함의 반대의 의미로 대범함이란 표현을 쓰기도 하지만, 사실 소심함의 반대는 정확하게 무덤덤함 혹은 무딘 것이다. 무디거나 무덤덤한 사람은 보통 다른 사람에 대해서 잘 평가하지도 않고, 그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유추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이들도 큰 문제가 된다.
 
그나마 소심함이 대범함과 대비되는 부분은 바로 손해를 입었다고 판단될 때, 그것에 집착하느냐와 그냥 쉽게 포기하고 다음 일을 위해 나갈 수 있느냐 정도의 차이가 된다. 그래서 이것은 사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대하는 차이라기 보다는, 단지 삶을 사는 방식의 문제일 뿐이다. 과거에 집착하는 사람과 미래를 향해 가는 사람들의 차이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감당할 수만 있다면, 무딘 것보다는 소심한 것이 나을 수 있다. 그것은 스스로는 조금 더 힘들지 모르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소소한 신경을 써줌으로써 인덕이라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무딘 사람은 그 무딘 성격으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해서, 그 자신이 어떤 일을 당했을 때 정작 그를 도와줄 사람이 없는 경우가 많다.
 
친구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으면, 귀찮더라도 한번 병문안 가 놓아야 그 자신이 아플 때 그 친구가 방문을 해주는 것이다. 무딘 사람은 아파서 입원해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그렇게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친구가 입원한 병원에 찾아가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선택은 개인의 자유이다. 그리고 당장은 소위 쿨하다고 평가될 수 있는 무딘 사람이 되는 것이 좋을 수 있다. 하지만 인생의 긴 흐름으로 보았을 때, 평범한 수준의 삶을 산다면 과연 어떤 삶이 더 나을까 는 생각해봐야 한다. 비록 소심함으로 인해 상처입고 배신감을 느끼더라도 꾸준하게 살아간 사람들에게는 결국 좋은 사람들이 남게 되어 있다. 반대로 쿨하게 살면 살수록 사람들은 떨어져 나가게 된다.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는 자신이 결정할 문제이지만, 평범한 삶이라면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좀 더 행복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더욱 더 그렇게 된다. 누구나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새로운 관계를 맺기보다는 기존의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심리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행복 파장  (0) 2015.04.11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  (0) 2015.04.06
집착의 본질  (0) 2015.02.06
구속에 대한 이야기  (0) 2015.02.02
개그가 재미있는 이유  (0) 2015.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