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집착의 본질

아이루다 2015. 2. 6. 07:23


인간에게 있어서 다른 이들과의 관계는 삶의 과정에 있어서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인간관계는 우리의 행복에 정말로 깊게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기 때문인데, 사실 이 관계만 잘 맺고 살아도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는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을 정도이다. 우리가 인간관계를 통해 행복을 느끼는 이유는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하나는 바로 그것을 통해 얻는 즐거움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득이다. 두 개로 나뉜 즐거움과 이득은 다른 개념으로 보이긴 하지만, 우리 인간을 생존시켜 줄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실제로는 같다. 여기에서 즐거움은 언뜻 생각해서 생존과 연결되지 않지만, 우리가 왜 즐거움을 느끼면 좋아하는 지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간다.

 

우리는 보통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을 때 행복한데, 사람과의 관계가 바로 그 가치를 인정 받는 자리이며, 가치가 있는 사람일수록 사실상 생존 가능성이 높다. 흔히들 착각을 해서 우리는 인간을 원래 가치를 추구하는 존재인 냥 여기지만, 우리가 가치를 추구하는 진짜 원인은 바로 그것이 우리를 더 오래 살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래서 우리는 인간관계를 통해 큰 행복을 느끼는 만큼 또한 아주 심하게 종속되어 있다.

 

결국 인간관계가 주는 행복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은 관계를 맺길 즐겨 하고 원하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이 관계가 맺고 싶다고 맺어지는 것도 아니고, 유지하고 싶다고 해서 유지되는 것도 아니란 점이다.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인간과 개 사이와는 다르다. 개는 살아있는 동안 변함없이 주인에게 충성을 하지만, 인간과 인간은 그렇지 못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개와 다르게 계산 할 수 있는 능력이 탁월하게 발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능력으로 인해 우리는 자신에게 득이 되지 않는 관계는 유지하려고 하지 않는다. 물론 여기에서 득이라고 표현한 것은 단지 돈과 같은 물질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실 명시적인 물질적 이득보다 재미, 감동, 즐거움, 공감, 대화, 보살핌, 인정, 동조 등의 행복하고 좋은 감정을 경험하기 위해서 관계를 맺는다. 물론 사업상 관계처럼 처음부터 물질적 이득을 명확히 원하는 것도 있다.

 

하지만 이미 말했듯 우리는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을 늘 줄 수 없으며, 자신이 원하는 것도 언제든 얻을 수가 없다. 그래서 인간관계는 끝없는 저울질이 되는데, 이 시소게임에서 매력이 풍부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기본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 그래서 별다른 매력이 없어서 다른 이들을 끌어들이는 능력이 부족하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기본적으로 종속적인 입장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청소년 시절부터 소위 말하는 인기 있는 아이들을 부러워한다. 그리고 그 인기를 얻는 아이들을 잘 살펴보면, 다른 아이들이 갖지 않는 장점 한두 개 정도는 반드시 가지고 있다. 그것은 재미난 화술이나 뛰어난 운동 신경, 잘난 외모나 타고난 부드러운 성격 등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매력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누구나 다른 이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을 가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통 우리는 사람을 사귈 때 생각보다 머리가 복잡하게 돌아간다. 물론 이런 것들은 명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끝없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그래서 우리는 아는 사람들과 매일 비슷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매일 조금씩 바뀐다. 그 덕분에 결국 장기적으로 보면, 호감이 비 호감으로, 비 호감이 호감으로 변하는 경우도 흔히 일어난다. 그것은 지난 10년간 주로 만났던 사람들 목록만 떠올려 봐도 된다. 특히 젊은 사람일수록 이 목록이 바뀐 비율이 월등히 높다. 그리고 일정 기간이 흘러서 서로 어느 정도 알 때까지 다 안 상태가 되면, 그때야 비로소 어느 정도 고정이 된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친구라는 별도의 용어를 써서 칭한다. 그리고 나이를 먹을수록 점차 고정이 된다.

 

만약 모든 관계가 시간만 흐르면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만은, 사실 많은 관계는 그 시작지점부터 많이 흔들린다. 왜냐하면 우리가 서로에게 느끼는 호감의 정도가 모두 달라서, 한쪽의 호감이 다른 한쪽의 호감을 보장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당연한 일인데, 우리 인간들은 원래 자신이 매력을 느끼거나 호감을 느끼는 부분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는 외모에, 누구는 밝은 성격에, 누구는 몸매에, 누구는 재미있는 성격에, 누구는 재주가 많은 것에, 누구는 카리스마에, 누구는 불타는 정의감에, 누구는 요령을 잘 피우는 것에, 누구는 자신을 지켜주는 것에 호감을 느낀다. 그러니 이것이 서로 잘 맞기란 사실 그리 쉽지 않다.

 

그리고 이 차이로 인해서 관계의 저울이 한쪽으로 기우는 사태가 벌어진다. 즉, 한쪽은 다른 한쪽에 호감을 느끼는 반면, 다른 한쪽은 별로라고 느끼게 되면, 호감을 느낀 사람은 어떻게든 그 사람과 친하고 싶어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상황으로 인해서 상처를 받는 것이다.

 

이것이 만약 동성간에 일어난 상황이라면, 보통의 사람들은 자존심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노력을 하다가 포기하고 말지만, 이성의 경우라면 좀 이야기가 복잡해진다. 왜냐하면 이성에 대한 호감은 동성에 비해서 훨씬 강하게 증폭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숨겨진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앞에서 관계를 맺는 것이 행복을 위해서라고 설명했었다. 사실 이것은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을 만큼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이 관계의 행복은 다른 인간과의 연관되어 있는 행복이라서 그것을 무한대로 추구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서 다른 종류의 행복인, 먹을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음식을 먹는 것은 행복한 일이고, 그것을 할 때 느끼는 행복은 딱히 이유가 없다면 제어될 필요가 없다. 즉, 우리는 돈이 없거나, 배가 너무 부르거나, 살이 찔 염려를 하지 않는 한, 먹을 것에 대한 행복을 무한대로 추구할 수 있다. 잠을 자는 것도 마찬가지다. 각종 취미 생활을 하는 것도 돈과 시간 그리고 장소 등의 제약이 있을 뿐, 그것을 즐기고 행복을 느끼는 것에 대해서 제한될 것이 없다.

 

사실 우리가 인간이 아닌 대상에 대한 행복추구는 대부분 이런 속성을 가졌다. 같은 생명체라도 동물을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개는 인간이 함께 놀아주면 발정기가 아닌 다음에야 늘 인간과 함께 하려고 한다. 예외가 있다면 인간을 귀찮아 하는 고양이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관계는 그 한계가 명확하다. 만약 우리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어떤 사람과 관계를 무한대로 추구해버리면, 상대는 몹시 당황하게 된다. 말 그대로 하루 종일 나와 놀아달라고 하는 꼴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간이 아이일 때만 가능하다.

 

우리는 어린 시절에 부모에게 끝없이 놀아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부모는 귀찮음을 참으면서도 아이와 놀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서 이것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게 변한다. 왜냐하면 그 자신도 단 한 명의 사람에게만 집중했다간 낭패를 볼 수 있음을 이해하게 되고, 사실 그런 행동을 했던 사람도 결국 반복적인 상처를 받아서 전략을 바꾸게 된다. 그리고 현실적으로도 한 사람하고만 놀면 금새 흥미도 잃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특정한 사람에게 너무 강한 끌림을 느껴서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상대가 그것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게 되면 바로 이때 집착이란 단어라 적용되게 된다. 즉, 집착은 어떤 대상에 대해서 자신의 행복을 무한대로 추구할 때 일어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이런 집착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한 사람과 극도로 높은 친밀도를 갖게 되면, 상대적으로 다른 이들과 보낼 시간이 너무 줄어들기 때문에 그것으로 인해서 미래의 삶에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더해서 한 사람이랑만 오랜 시간을 보낼 때, 늘 즐거운 것만도 아니고 지겨움까지 느낀다. 지겨움은 절대로 행복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성인이 된 후, 어떤 관계에서 무한대를 추구하는 경우가 있다. 유일무이하게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감정을 느낄 때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사랑에 빠지면 인간관계가 다 끊어지는 결과까지도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또한 사랑이 주는 강력한 힘이기도 하다.

 

우리는 사랑을 할 때 아이와 같아진다. 우리는 아이처럼 유치해지고, 아이처럼 칭얼댈 수 있다. 우리는 아이처럼 상대에게 나만 바라봐야 한다고 요구할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랑의 본질은 집착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집착이라고 칭하지 않는다. 이것은 집중이고 몰입이다. 집착이 서로 비슷한 강도를 가질 때 불려지는 명칭이다. 하지만 한쪽이 상대에 비해 심하게 집착을 하게 되면, 그것을 구속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무튼 이 집착 덕분에 사랑에 빠진 남녀는 다른 인간관계에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언젠간 사랑은 식기 마련이고, 그럴 때 사랑의 늪에서 빠져 나온 사람들은 불쑥 불안함을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오랜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과만 보낸 덕분에 다른 관계에 너무도 소홀히 했다는 후회가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정이 식어가는 연인은 그 줄어가는 행복감 때문에도 싸우지만, 불안함으로 인해서 더욱 싸우게 된다.

 

그래서 결국 그 때를 잘 이겨내지 못하면 아무리 사랑을 했더라고 결국 이별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기를 잘 넘기면, 사랑을 이룬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적당히 거리를 두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이 사랑에 빠진 남녀를 제외한 모든 관계에서 집착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과의 관계에 어떤 집착을 느끼는 사람들은 그것으로 인해 큰 고민이 생긴다. 사실 자신이 누군가에게 집착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매우 불쾌한 감정이다. 왜냐하면 이미 저울이 기울어서 자신이 불리한 상황에 놓인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반대로 마찬가지다. 누군가 자신에게 집착을 하고 있으면 불안함과 미안함이 혼재되면서 기분이 나빠진다.

 

우리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손해를 볼 상황에 놓인 것을 몹시 싫어한다. 우리가 지기 싫어하는 이유 역시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집착이 바로 우리가 어떤 관계에서 명백히 패자 입장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징표이다. 그래서 집착하는 사람은 자존심도 상처입고, 그 집착하는 자신이 한심하고, 그렇다고 해서 아무리 노력해도 그것은 더욱 집착으로만 느껴질 뿐, 상대를 전혀 변화시킬 수 없다.

 

또한 상대가 아주 냉정하게 연락을 끊고 아예 무시하면 그나마 남은 자존심으로 버틸 것인데, 평소엔 귀찮아 하다가 가끔 자기가 아쉬울 때만 친한 척 하게 되면 이때는 정말로 감당하기가 힘들어 진다.

 

그리고 이 집착은 특정 대상으로 느끼기도 하지만, 그냥 관계 자체에 집착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보통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오직 인간관계를 통해서만 가능할 때 나타난다. 물론 이것은 단지 인간관계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단 하나만 있다면 그것에 과도하게 집착하게 된다.

 

사실 이 집착은 지금까지 설명한 집착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왜냐하면 특정한 사람에 대한 집착은 오직 그 사람에게만 나타나고, 그것이 연인으로써 맺어져 잘만 되면 좋은 결과로 갈수도 있지만, 특정한 행복요소에 대한 집착은 그 대상이 그리 좋은 것이 아닐 때, 큰 문제가 발생한다. 또한 나름대로 좋은 대상이라고 해도 과도하게 되면 주변 사람들에게 좋지 않는 영향을 미쳐서 결국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먹을 것에 심하게 집착하는 사람은 자칫하면 게걸스럽고 탐욕스럽게 보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좋지 않는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것과는 다르게 등산과 같은 취미에 집착하는 것은 건강엔 도움이 되지만, 너무도 심하게 하면, 만나는 사람마다 등산을 가지고 하는 바람에 주변 사람들이 다들 피하려고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특정한 사람이든, 행복을 느끼는 요소이든 집착이라고 평가될 만큼 과하게 되면 무조건 문제가 생긴다. 즉, 집착은 해서 좋을 것이 없는 감정이다. 물론 어떤 특정한 역할이나 목적에 집착하는 것은 위대한 일을 해내는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집착이라기 보다는 집요함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옳다. 집요함과 집착은 비슷하면서도 다른데, 집요함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행복여부에 상관없이 집중하는 상태를 의미하고, 집착은 바로 그 자체가 행복을 위한 행동이란 점에서 다르다. 하지만 집착을 집요함으로 변형시켜서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구분하기가 좀 어려운 경우도 있다.

 

사실 무슨 무슨 홀릭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런 경우이다. 특히 일중독자 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일에 집착하고 있는 것인데, 보통 일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것이라서 그것을 집요함으로 잘못 해석하기도 한다. 또한 본인도 그렇게 행동한다.

 

사실 집착을 해석하고 판별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집착의 개념을 이해하고 자신이 집착을 가지고 있는지 스스로 판별하는 방법은 그냥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대한 감정을 바라보면 된다. 원래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하면 무조건 기분이 좋아야 한다.

 

하지만 뭔가 그리 좋은 감정이 느껴지거나 찜찜함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집착하고 있는 중이란 뜻이다. 이것은 결코 좋지 않는 감정이기에 누구나 그러고 싶어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래서 말 그대로 쿨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집착은 쉽게 해결될 감정이 아니다.

 

그나마 쿨한 사람들은 그냥 원래 그것에 관심이 없었던 것뿐이다. 특히나 어떤 사람들은 인간관계 자체에도 그리 관심이 없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보통 인간관계로부터 얻는 행복을 넘어서는 행복을 찾은 사람이거나 오랫동안 감정을 줄이는 훈련을 해서 감정 자체가 심하게 무뎌진 사람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기대도 없고 실망도 없기 때문에 상처를 받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집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는 것일까? 기분이 나쁘고 저울이 기울어서 계속 손해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인가? 혹은 남들이 그리 좋지 않게 보는 집착을 가져서 결국 끝없는 상처를 받아야 할까?

 

일단 집착의 두 가지 경우인, 특정 존재에 대한 집착과 자신의 행복 요소에 대한 집착은 해결 방법이 다르지만, 범용적으로 적용시킬 수 있는 것은 바로 어떤 식으로든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다른 행복을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말이 쉽지 결코 행동하고 변화하기가 쉽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의 조언을 들을 땐 고개를 끄덕이지만, 집에 오면 금새 도루묵이 되기 십상이다. 사실 집착을 없애는 것은 정말로 힘들다. 그래서 집착을 없애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자신이 그것에 대해서 집착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집착을 그리 좋은 것이 아님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에, 그것을 잘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당장은 조금씩이라도 행복하기 때문에, 집착으로 인정하고 나면 그 작은 행복조차도 날아갈까 봐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사실 어떤 면에서 보면, 우리의 이런 태도가 집착을 극복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되고 있다. 그래서 집착은 마치 중독처럼 가장 먼저 그것을 스스로 인정함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특정한 사람이든, 먹을 것이든, 쇼핑이든, 등산이든, 일이든 상관없이 우리가 집착하는 모든 것은 사실상 중독 상태인 것이다.

 

그러니 중독 해결책을 충실히 따라야 한다. 물론 마약이나 술과 같은 중독은 명시적으로 치료기관이 있지만, 집착에 대한 치료기관은 없기 때문에 온전히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차이만 있다. 그래서 더 어렵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중독은 중독 후유증을 견뎌내는 것이 관건이라면, 집착은 그 집착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 넘을 수 있는 다른 행복거리를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집착 상태에 빠져 있으면, 기분이 좋지 않아서 의욕 자체도 줄어들어서 평소보다도 더 무엇인가 다른 시도를 하는 것이 힘들어 진다. 이점이 집착이 가진 가장 무서운 것이기도 하다.

 

아무튼 일단 집착을 인정했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그것은 가능하면 육체적 활동이 좋은데, 정신적 활동보다 효과가 좀 더 명확하기 때문이며, 또한 머리를 덜 씀으로써 집착에 대한 생각을 잘 지울 수 있다는 점이 좋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행동을 해야 한다. 물론 등산 집착증에 걸린 사람은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지만, 등산과 같은 행동도 큰 도움이 된다.

 

물론 그것을 처음 할 때, 그리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럴 땐, 적당히 좋아하는 사람과 그것을 함께 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 훨씬 나아질 것이다. 몸의 문제로 인해서 그것이 힘들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무엇이든 자신이 육체적 활동을 할 수 있는 어떤 것을 생각해야 한다. 아주 조금만 흥미도 좋다. 미술을 하든, 피아노를 배우든 상관없다. 요리도 좋다.

 

이것을 시작만이라도 하고, 일정 시간만 버텨내면 우리는 그것을 통해 새로운 행복감을 맛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원래 가졌던 집착을 털어내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후 느끼는 집착은 조금 다를 것이다. 이런 경우는 그 집착의 정도가 너무 심해서 도대체 어떤 일을 해도 쉽게 대처가 되지 않는다.

 

이때는 그냥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다시 사랑에 빠지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자신의 했던 사랑을 유일하고 최고의 가치였다고 계속 믿게 되는 심리로 인해서 쉽게 포기하지 못하기도 한다. 물론 이것은 정말로 큰 착각이다. 그래서 단지 그 운이 따르지 않으면 어정쩡하게 몇 년을 지내게 될 것이다.

 

집착은 병도 아니고, 이상한 것도 아니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집착은 언제든 일어나게 된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느끼는 행복에 대해서 모두 집착을 한다. 엄마는 아이에게, 아빠는 가정에, 아이는 장난감에게, 젊은이는 친구나 출세에, 노인은 건강에, 여자들은 먹을 것에, 남자들은 운동이나 취미에 그리고 모든 공통적으로 인간은 돈에 집착한다.

 

그래서 집착하는 자신을 너무 과도하게 비난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인간으로써 자연스러운 것이다. 단지 과도한 집착은 자신을 망가뜨리는 역할을 하게 되므로 경계를 해야 한다. 그리고 이미 그런 것이 있다면 앞에서 말한 방법대로 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집착은 또한 시간이 흐르면 참 헛된 것이란 생각이 들게 해주는 감정이다. 10년 전 헤어지면 죽을 것 같았던 연인도, 결혼 후 여느 평범한 부부처럼 늙어간다. 또한 그 당시엔 그것을 꼭 해야만 했다고 믿었던 것들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왜 그랬는지 스스로 이해가 안 갈 정도로 변하기도 한다.

 

인간에게 있어서 집착은 끝없는 본질과도 같지만, 그 대상 자체는 계속 바뀌게 된다. 그래서 여론조사를 해보면, 각 나이 대에 중요하다고 느끼는 것에 대한 대답이 다르다. 우리는 보통 부모, 친구, 사랑, 출세, 자녀, 배우자 순으로 변형되어 간다. 그래서 장기적인 시점으로 자신의 삶을 바라 볼 수 있다면, 생각보다 쉽게 그것으로부터 빠져 나와 적당히 즐길 수 있게 된다. 생각보다 우리의 삶은 그리 복잡하지도 의미 있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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