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성격의 분화

아이루다 2015. 1. 2. 09:31

 
인간의 성격은 참으로 다양하다.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경험했던 사람들을 떠올려보면, 마치 그것은 사람의 지문처럼 모두 독특한 특징이 있다. 물론 사람의 기본적 본질은 모두 같다. 하지만 성격은 그것에 더해서 환경, 주변 사람들, 경험, 신체, 지능 등의 요소에 따라서 정말로 다양하게 분화된다.
 
그래서 일란성 쌍둥이도 환경, 주변 사람, 신체, 지능은 모두 같더라도 살아가면서 쌓인 경험에 의해서 성격이 달라지게 된다. 실제로 어떤 면에서 경험은 성격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물론 나머지는 그 경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기억하느냐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요소이기에, 결국엔 중요도는 같지만 말이다.
 
원래 인간은 태어남과 동시에 기본적인 성향을 갖는다. 그것은 교육되거나 경험된 것이 아니라, 부모로부터 받은 기질이다. 이것은 까탈스럽거나, 섬세하거나, 무던하거나, 우직할 수 있다. 그래서 갓난아이들조차도 성격이 있다. 그리고 그 성격에 따라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초반부의 육아 난이도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그런 상태로 아이는 점점 큰다. 그러면서 점차로 주변 사물을 인식하고 자신에 대한 미약한 인식이 일어나게 된다. 이때 우리 인간은 삶 전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평생 동안 우리를 지배하는 원리로 작용한다.
 
그것은 바로 이 세상은 나 혼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란 것을 배우는 것이다.
 
이것은 각자의 환경에 따라서, 형제를 통해 배우기도 하고 어린이 집에 가서 배우기도 하고, 집안 모임에 갔다가 또래의 다른 아이를 통해 배우기도 한다. 그리고 그 시점은 모두 각자 다르다.
 
아무튼 이것은 우리의 최초의 좌절이다. 태어남과 동시에 아이는 부모의 관심을, 특히 엄마의 관심을 전적으로 받게 된다. 하지만 아이는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서 그 관심이 분산되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그것을 무척 싫어한다.
 
물론 배가 부를 때나 자신이 흥미를 가지고 놀 때는 그건 것을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언제라도 자신이 배가 고프거나 심심할 때, 부모는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해줘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이것은 아이들이 스스로 인식하고 있는 단계는 아니다. 그냥 본능이다.
 
결국 어린이 집에서 또래의 아이들과 경쟁을 해야 할 처지에 놓인 아이는 자신도 모르게 가장 힘있는 존재에게 - 아마도 먹을 것을 주는 선생님이나 제일 잘해주는 선생님 정도 될 것이다 - 가장 많은 관심을 받기 위해서 자신도 모르게 노력을 한다. 그리고 아이들조차도 그것을 위해서 상대의 기대치에 반응을 하려고 한다. 일명 '리액션' 이라고 부르는 이것은 인간의 본능적 행동 반응이다.
 
그러면서 어떻게든 어린 시절에 받았던 온전한 지위를 회복하고자 한다. 즉, 우리는 평생에 걸쳐 '나를 바라봐 줘' 를 마음 속으로 외치면서 살아가게 된다.
 
실제로 우리는 죽을 때까지 이것을 위해 산다. 어린 시절에 잃은 독점적 관심을 되찾고자 한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존재감이며 자존감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갖고자 평생 노력한다. 그래서 누구는 대통령이 되고, 누구는 위대한 과학자가 된다. 이것은 권력, 돈, 명예, 인맥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럴수록 어떤 식으로든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집중해 준다.
 
하지만 슬프게도 우리 인간은 다시는 어린 시절의 독점적 관심을 회복시킬 수 없다. 그나마 우리가 성인이 되어 그것을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바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그 어떤 관계보다 독점적이고 배타적이며 또한 더해서 집중적인 남녀의 관계를 '사랑' 이란 감정으로 설명하고, 그것의 강렬함에 대해 오랫동안 이야기 해 온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성인이 된 우리는 유일하게 사랑을 통해 어린 시절의 독점적 지위를 다시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같은 반응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것에 따라 결국 개인별 성격이 분화된다. 실제적으로 보면, 사람에 따라서 이 독점적 지위를 다시 가지고 싶어하는 사람의 정도는 천차만별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신이 타고난 지능, 신체, 환경, 주변 사람들에 의해서 그런 경험 자체를 모두 다르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독점적 지위를 상실한 아이는 몇 가지 패턴으로 그것을 극복하게 되는데, 이때 가장 크게 분화의 방향이 결정된다. 그리고 그것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 바로 앞에서 언급한 환경, 주변 사람들, 신체, 지능 등의 요소들이다.
 
어떤 아이는 그것을 절대로 놓지 못해서 계속 잡고 있으려고 한다. 하지만 학교 같은 경우, 이것이 유지되려면 일단 머리가 좋아야 한다. 즉,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바로 그 지위를 정하는 사람이 되는데, 결국 아이들이 선생님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는 공부를 잘해야 한다. 물론 돈이 많은 부모를 가졌거나 유명인의 자녀인 경우에도 가능해진다.
 
그래서 학교엔 늘 눈에 띄는 아이가 있고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아이가 있기 마련이다.
 
결국 똑똑하거나, 부모의 능력이 출중하거나 해서 선생님의 관심을 받는 아이는 그것이 누군가에 의해 밀려나지 않는 한, 유지가 된다. 그래서 평생을 그것의 가치를 위해 살아가게 된다. 물론 이것은 긍정적인 면에서 보면 좋은 성향이 된다. 왜냐하면 무엇이든지 1등을 하려는 성향으로 인해서 매우 도전적으로 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성향의 가장 큰 문제는 결국 1등은 한 명일 뿐이란 것이다. 시골 학교에서 너무도 유명해서 선생님의 관심을 잔뜩 받던 아이가 어느 날 서울로 전학을 오면 평범한 그룹에 속해버리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아이의 스스로 가진 능력이 이것을 넘어서지 못하면, 아이는 좌절하고 삐뚤어지게 된다.
 
어른 역시도 마찬가지다. 1등이 되지 못해서 좌절하는 것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아이는, 결국 언젠간 1등을 하지 못하는 날이 오기 때문에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속으로 몹시 삐뚤어져 있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것을 좋아하고, 일명 '갑질'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왜냐하면 상위권으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정말로 대단한 경쟁자들이 출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훨씬 더 많은 돈, 훨씬 더 똑똑한 머리, 훨씬 더 대단한 부모를 가진 사람들과 충돌을 하면 정말로 심각한 상처를 받게 된다.
 
이것은 어린 시절의 좌절과는 상황이 다르다. 이미 자신에 대한 정의를 해 놓은 상태에서 겪는 좌절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어떻게든 극복해야 할 대상이지만, 문제는 능력이 안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결국 심각하게 뒤틀릴 수 밖에 없다.
 
이런 아이들과 다르게 어떤 아이들은 쉽게 이것을 포기한다. 이런 아이들은 보통 집안에 이미 형제들이 있어서 미리 그것을 경험한 경우가 많다. 보통 그리고 이것은 막내들보다는 막내를 가진 형이나 누나, 언니, 오빠들이 그렇다.
 
막내가 태어남과 동시에 이미 독점적 관심의 지위를 박탈당한 아이는, 이미 가정에서 그것에 대해 경험했기 때문에 그것에 과하게 집착하지 않는다. 물론 그 아이들 역시도 그것을 원하긴 하지만 다른 전략을 쓴다. 그것은 바로 선생님의 관심보다는 친구들의 관심을 많이 받는 것이다.
 
선생님의 관심은 조건이나 성적 등에 의해서 한정적으로 작동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친구들의 관심은 밝은 성격, 운동 능력 등도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실제로 아이들은 성적이나 부모가 누구인지 보다는 함께 있으면 잘 맞고 재미있는 아이를 친구로 삼는다. 그래서 말 그대로 학창시절 친구가 가장 순수하다고 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한 명의 독점적 역할을 하는 선생님에서 아이들로 그 방향을 전환시킨 경우가 된다. 그래서 실제로 많은 아이들은 학창시절엔 친구관계를 절대적 사명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왕따를 당하거나 친구들이 자신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면 금방이라도 죽을 듯한 고민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 증상은 대학시절을 거쳐 직장에 진출하고 가정을 가질 때가 되어야 비로소 수그러든다. 왜냐하면 그땐 좀 더 영악해졌기 때문에, 좀 더 멀리 보고 계획을 하기 때문이며 더해서 가정을 갖게 될 때는 가정을 통해 아내와 남편 그리고 자신만을 바라봐 주길 바라는 아이들을 통해 이것이 충족되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모든 아이가 친구를 잘 사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결국 선생님의 관심도, 친구들의 관심도 못 받는 아이들이 생겨난다. 이 아이들은 쉽게 말하면, 도드라지는 매력이 없는 아이들일 가능성이 높다. 운동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성격이 독특한 아이도 아니고, 활달하지도 못하고, 오히려 수줍음이 많은 아이들이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 아이들 중 왕따가 되는 아이들이 생겨난다.
 
이 경우에 속한 아이들은 독점적 지위에 대한 좌절을 학교뿐만이 아니라 이미 가정에서도 심하게 느꼈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아이가 이렇게 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부모는 자신이 충분히 아이에게 잘해줬다고 강변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가 설령 딱히 매력이 없어도 밝게 자라지 못한 것은 거의 부모의 탓이다.
 
그리고 이런 아이들은 커서도 계속 이런 성격이 유지된다. 어딜 가도 존재감이 없고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도 무척 낮다. 그래서 불행한 삶을 살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아이들은 독점적 지위를 거의 느끼 보지 못하기 때문에, 가정에서도 좌절하고 학교에서도 좌절하고 사회에 나와서도 좌절을 경험한다.
 
물론 두 번째 그룹에 속한 친구들과의 관계를 통해 독점적 지위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는 아이들 중에서도 결국 경쟁에서 밀린 많은 아이들 역시도 이 그룹에 속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단지 그 아이들은 설령 경쟁에서 밀렸다고 해도 소수의 자신만의 친구들을 만들거나 혹은 완전히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독점적 지위를 복구하고자 노력하기 때문에 결과는 다르다.
 
실제로 평생 1등을 원하는 사람들이나 혹은 너무 좌절을 해서 존재감이 거의 없는 사람의 비중은 전체에 그리 크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두 번째 그룹에 속해 적당히 좌절하고 적당히 만족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이 안에서도 매우 다양한 분화가 이뤄진다.
 
이것의 예 중 하나가 바로 거짓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다. 일명 허풍을 떤다고 표현하는데, 실제로 이 허풍의 근원은 바로 자기를 좀 더 바라봐 달라는 것이다. 자신이 좀 더 중요하고, 가치 있으며, 관심을 가져줘야 할 대상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예로는 스스로를 화려하게 꾸미거나 남들에게 관심을 받을 수 있는 매력을 가진 상대를 연인으로 삼는 방법도 사용한다. 이런 방법은 매우 즉시적으로 작동한다. 화려한 옷과 화장만 하고 나가도 사람들의 시선이 무척 많이 쏠리는 것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여자들의 노출로 이어진다.
 
가장 재미난 말 중 하나가 여자들의 화장과 노출이 바로 자기 만족이란 설명이다. 이것은 절대로 아니다. 우린 누구도 무인도에 혼자 있을 때 화장을 하거나 노출하지 않는다. 이것은 그 여자들이 사는 집을 들어가보면 안다. 이들 역시도 다른 이들이 자신을 좀 더 바라봐 주기만을 바란다. 그리고 그 다른 이들 중에서 '너'는 속해있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지식을 뽐내는 데 있어서, 어떤 이들은 자신의 운동 능력을 과시하는데 있어서, 어떤 이들은 성격을 통해서, 어떤 이들은 외모를 통해서, 어떤 이들은 자신은 안되었지만 자녀의 뛰어남을 통해서, 어떤 이들은 돈을 통해서, 어떤 이들은 지위를 통해서 모두 같은 것을 얻으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이것은 각자가 가진 장점을 최대화 시키고, 우연히 얻은 기회를 자신의 능력으로 환산시키면서 얻어진다. 그리고는 자신의 본질적 모습은 결국 어린 시절 부모들이 재미있게 TV를 보고 있을 때 그 앞을 가로 막는 아이의 심리와 이들의 심리는 전혀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을 망각한다.
 
그리고는 우린 모두 이 순간에도 '나만 바라봐 줘' 혹은 조금 포기해서 '나도 좀 바라봐 줘' 라고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외치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이제 마지막으로 의문이 생긴다. 우린 왜 이것에 평생을 매달리게 될까가 궁금해진다.
 
답은 단순하다. 부모의 관심은 아이의 생존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누군가의 관심을 받을 때 생존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렇기에 아이의 관심에 대한 욕구는 본능적이며 절대적이다. 새들이 새끼를 먹일 때, 가장 입을 크게 열고 시끄럽게 우는 새끼에게 먹이를 주는 것을 보면 이것이 쉽게 이해가 된다. 자생력이 없는 새끼들은 부모의 관심을 끌어야 산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스스로 생존 능력이 생겨난다. 또한 이것이 생존에 대한 욕구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 욕구를 생존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것으로 일부를 대체할 수 있다.
 
즉, 스스로 가진 능력으로 인해 충분히 생존할 수 있다면 어린 시절에 가진 그 독점적 지위를 통해 얻는 생존 가능성에 대한 욕구를 만족 시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른이 되면 아이들에 비해서 이 심리는 몹시 깊은 영역으로 숨게 된다. 그래서 마치 어른들은 그것을 갖고 있지 않은 듯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딘가를 가서 누군가가 자신을 좀 더 특별하게 대접해주면 금새 기분이 좋아지며, 사람들과 어울릴 때 자신이 좀 더 주목을 받으면 금새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 우리가 가진 어린 시절의 좌절은 절대로 끝나지 않는다. 단지 오랜 시간 동안 갈려서 둥글둥글해지고 또한 실제로 생존이란 최종 목표에서 이것은 그리 큰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계산할 수 있기에 조금 포기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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