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귀찮음과 행복

아이루다 2014. 11. 28. 08:41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에게 가장 싸우기 힘든 적은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말하는 자신은 바로 다름아닌 '귀찮음' 의 본능이다.
 
귀찮음은 운동을 해야 하는 우리를 집 안에만 있게 한다. 귀찮음은 버려야 할 쓰레기가 산더미인데 그것을 며칠 동안 집안에 두게 한다. 귀찮음은 배워야 할 것들이 있어서 학원에 다니든지 아니면 주말에 도서관이라도 가서 공부를 해야 하는데 그것을 하지 못하게 한다.
 
우리는 보통 기준에서 귀찮은 일을 잘하는 사람을 부지런한 사람이라고 하고 반대로 다른 이들보다 더 못하는 사람을 게으르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게으른 사람은 귀찮은 것이 참 많고 부지런한 사람은 귀찮은 것이 훨씬 적어 보인다.
 
그런데 이 귀찮음에 대한 심리를 좀 더 면밀하게 봐보자. 왜냐하면 아무리 게으른 사람도 귀찮지 않은 일이 있으며 반대로 아무리 부지런한 사람도 귀찮은 일이 있기 때문이다. 이 현상을 잘 해석해보면, 귀찮음은 단지 부지런한 것이나 혹은 게으름의 척도는 될 수 있지만 그 본질적 원인은 아니라는 뜻이 된다.
 
즉, 부지런한 사람이나 게으른 사람이 되는 원인은 귀찮음 자체가 되는 것이 아니고, 단지 그 귀찮음을 느끼는 대상이 어디까지인지 그리고 얼마나 일상 생활과 겹치는지에 따라서 결정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부지런한 사람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해야 하는 많은 일상적인 것들에 대해서 귀찮음을 덜 느끼고, 반대로 게으른 사람은 상대적으로 훨씬 많은 것들에 대해서 귀찮음을 느낀다.
 
그럼 이제 우리는 귀찮음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왜 귀찮음을 느낄까? 이것을 부지런함과 게으름의 관점으로 보면 절대로 안보이던 본질이 이 관점을 벗어나서 보면 그 단순한 맨 살을 들어낸다.
 
보통 부지런한 사람은 자신의 부지런함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왜냐하면 보통 부지런함은 우리들 인간 사회에서 나름대로의 미덕이며 또한 그로 인해서 얻어지는 많은 장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바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해야 하는 많은 일들 하는데 있어서 상대적으로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쓰레기를 버리는 일도 즐겁게 할 수 있고, 설거지를 하거나 방 청소를 하는 것도 즐겁게 할 수 있다. 또한 다른 이들이 부탁한 것 역시도 흔쾌히 해 줄 수 있으며, 자신이 해야 할 많은 일들을 하는 것에도 덜 스트레스를 받고 할 수 있다.
 
반대로 게으른 사람은 여기에서 언급된 많은 것들에 대해서 귀찮음을 느끼고 그것을 하는 것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심지어 씻는 것도 귀찮음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씻는 것도 스트레스가 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게으른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의 수준을 훨씬 뛰어 넘기도 한다. 그래서 일하는 것도 귀찮아서 노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에게는 다른 이들의 비난을 피할 일을 안하고 놀 핑계가 필요할 뿐이다.
 
게으른 이들이 게으른 이유는 자신이 귀찮음을 느끼는 일들이 다른 이들보다 많고 또한 그 귀찮음을 느끼는 행동을 할 때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반대로 부지런한 이들은 자신이 귀찮음을 느끼는 일이 적기 때문에 세상을 살아가면서 훨씬 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 너무도 당연한 현상을 기반으로 하여 이젠 귀찮음의 본질에 대해서 알 수 있다.
 
귀찮음의 본질은 단순하다. 귀찮음은 우리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가에 대한 여부로 결정이 된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해야 할 때, 그것이 필요하다면 행복하거나 아니면 불행하지만 않아도 그것을 한다. 하지만 그것을 할 때 불행하다면 그것을 하기 싫어한다. 그리고 그것을 바로 귀찮음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부지런한 사람은 그래서 많은 일을 할 때 행복하거나 최소한 불행하지는 않다. 쓰레기를 버리는 일이 그리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고 나면 뿌듯하거나 속이 후련하다. 반대로 게으른 사람은 많은 일을 할 때 불행하다. 그래서 쓰레기를 버리는 일을 할 때 기분이 나빠진다. 물론 하기 전부터 생각만 해도 기분이 나뻐진다. 그래서 생각하기도 싫어한다.
 
왜 쓰레기를 버리는 일에 누군가는 행복해 하고 다른 누군가는 불행해 하는지는 따지지 말자. 이것은 개인의 취향이다. 산을 오르는 것이 행복한 사람이 있고 불행한 사람이 있다. 명품 가방을 사야만 행복한 사람도 있고 그런걸 사면 불행한 사람도 있다. 이것이 서로 왜 저렇게 해야만 행복할까 라고 따지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부지런한 사람이 귀찮음을 느낄 때가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해서 그리 행복하지 않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서 호두 먹는 것을 그리 즐기지 않는 사람은 호두를 까서 먹는 것이 정말로 귀찮을 수 있다. 반대로 호두를 너무도 좋아하는 사람은 까기 어려운 호두를 열심히 까서 먹는다.
 
그리고는 호두를 까먹지 않는 사람에게 '왜 저 사람은 호두를 까먹지 않을까?' 라고 의문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사람이 부지런한 사람이란 보장은 없다. 반대로 호두를 안 까먹는 사람 역시도 게으르다는 보장이 없다. 
 
평소 근면하고 부지런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는 가족 모임 때 외식을 하는 것을 매우 번잡하게 느끼는 분들이 있다. 연세가 꽤나 드신 어른들 중에서 그런 분들이 꽤나 있는데, 집에서 해 먹으면 되는데 왜 번거롭게 식당에 가서 돈들이고 귀찮은 일을 하는지 불만을 토로하시는 것이다.
 
식당에 가는 일이 귀찮은 것은 이런 분들이 게을러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이분들은 아주 오랫동안 이런 형태의 삶에 익숙해져 있어서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 것이 그리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반대로 늘 식당에서 밥을 사먹는데 익숙한 사람들은 편하게 식당에서 밥을 먹지 왜 힘들게 집에서 밥을 하는지 불만을 갖게 된다. 이 사람들의 경우엔 식당이 행복하고 집 안 식사가 불행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귀찮음은 자신의 행복과 불행에 대한 취향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것을 부지런함과 게으름의 척도로 삼기 때문에 결국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일단 부지런한 사람들은 게으른 사람들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자신은 그것을 하는 것에 대해서 그리 어렵지도 않고 힘들지도 않으며 생각해보면 하면 훨씬 좋은 것임에도 않고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운동을 한참 열심히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은 왜 이리 좋은 운동을 하지 않을까 하면서 그들의 게으름에 대해서 혀를 차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게으른 사람들은 자신보다 부지런한 사람들의 강요로 인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집안이 더럽든지 아니면 안 씻든지 모두 자신의 몫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가지고 사람 자체를 평가하려고 한다. 단지 그 자신은 그것에 대해 관심이 없고 해도 행복하지 않아서 안 할 뿐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행복 취향으로 인해서 자신의 삶이 억울하게 평가 받는 것이다.
 
그래서 그 자신이 호두나 게살을 먹는 것을 좋아해서 남들보다 훨씬 재미나게 호두를 까거나 게 껍질을 벗기거나 할 수 있고, 새로 나오는 아이폰을 사기 위해서 새벽부터 가서 기다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일상을 그리 잘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인해 이런 자신의 특징을 모두 무시당하고는 그냥 게으른 존재로 낙인을 찍혀 버리게 되는 것이다.
 
여러 명이 모여서 어디 펜션이라도 가게 되면, 거기엔 정말로 부산하게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굽는 사람들도 있고, 이것을 아주 맛있게 먹는 사람들도 있고, 딱히 끼여들 역할이 없어서 조용히 남들 이야기나 들으면서 술을 마시는 사람도 있고, 끝난 후 설거지를 담당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모두는 각자 자신이 잘하고 재미 있고 행복하거나 최소한 불행하게 느끼지 않는 것을 하는 것이다. 만약 어떤 이가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굽는 것을 자신도 없어하고 그 연기가 너무도 싫다면 이 사람은 게으르거나 부지런한 성격과 상관없이 그냥 그것을 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이런 정리가 가능하다.
 
부지런하다는 것은 남들보다 더 많은 것에서 행복을 느끼거나 적어도 불행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다. 게으른 사람이란 것은 남들이 보통 해야 한다고 말하는 일상 생활을 하는 것이 불행하게 느끼는 사람이다. 그리고 보통 사람은 이것이 어느 정도 수준에서 절충된 사람이다.
 
이것의 원리는 단순하다. 사람은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할 때는 누구나 부지런하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불행한 일을 할 때는 게을러진다.
 
하지만 또한 반드시 이렇게만 나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는 해야 할 일이란 '의무' 가 있기 때문이다. 즉, 집안 일을 너무도 하기 싫은데 가족을 위해 해야 할 경우가 있다.
 
행복하지 않고 불행한데도 해야 할 일이기에 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일' 이 된다. 이것은 마치 회사에서 일을 하는 것과 같다. 하기는 싫지만, 해서 행복하기 보다는 불행하기 쉽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 그나마 회사 일은 월급이라도 받지만, 집안 일은 그것도 없고 늘 상 반복되는 지겨운 일이니까 더욱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가정 주부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기에 그것을 한다. 이것은 언뜻 보기엔 그 사람이 매우 부지런한 사람인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그것은 남들 시선에서 자신의 집이 지저분하고 살림을 하는 자신이 게으른 사람처럼 보이기 싫어서 매우 억지로 하고 있는 경우다.
 
이것의 문제는 행복하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실제로 불행하게 느껴지는 일을 매일 반복적으로 해야 할 일이기에 혹은 혹시나 집에 찾아 올 손님에게 책을 잡히지 않기 위해 부지런하게 했다면 그것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내부적으로 스트레스가 쌓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스트레스는 가끔 히스테릭 하게 남편이나 아이들에게 표현되곤 한다. 그래서 결국 무슨 병이 난 것처럼 매일매일 답답함을 동반한 우울증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주부 화병의 가장 흔한 예가 된다.
 
만약 어떤 일을 주기적으로 할 때 그것으로 인해 계속 기분이 나빠진다면, 그것은 자신이 하면 안 되는 일이다. 물론 그것을 억지로 의지적으로 계속 하면 어떤 시점이 되면 익숙해져서 편해지기도 하지만, 꼭 그렇게만 해서 해결 할 필요는 없다.
 
집안 일을 하는 것이 너무도 스트레스라면 가끔 도우미 아주머니를 불러서 일을 시키면 된다. 그 분들은 일로써 그것을 하고 또한 그 일 자체를 훨씬 덜 스트레스 받아 하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것이다. 이것을 부끄럽게 여길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부지런함을 매우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왔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게으름을 들키는 것을 싫어한다. 심지어 두려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마다 현모양처가 꿈인 사람도 있고, 직장에서 일을 하는 것이 꿈인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단순히 행복의 방향성의 차이일 뿐, 결코 그 사람을 판단하는 잣대로 작동해서는 안 된다. 어떤 변태 성욕자들은 정말로 부지런하게도 겨울 그 추운 날에도 밖에서 자신의 성기를 꺼내 놓고 지나가는 여자들이 보도록 한다. 실제로 이런 경험을 한 여자분들이 꽤나 많은 편인데, 아무튼 자신이 행복하다면 이런 짓까지 하는 것이 인간이다. 하지만 이것을 부지런하다고 판단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 행복의 도덕성에 대해서만 판단해야지 그것만 딱히 문제가 없다면 그 사람이 어떤 것에 게으르고 어떤 것에 부지런한지, 즉 어떤 것을 불행하게 느끼고 어떤 것을 행복하게 느끼는지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
 
특히나 살림에 좀 자신 있다는 주부인 경우 다른 이의 집안 살림에 과도하게 조언을 해서 큰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도 많은데, 특히 고부갈등에서 살림에 능한 시어머니와 살림에 서투른 며느리 사이에서 이 문제가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는 형편이다.
 
하지만 우리는 보통 자신이 부지런하게 하는 일은 당연하게, 자신이 게으르게 느끼는 것도 당연하게 생각한다. 즉, 세상의 기준점을 바로 자신으로부터 맞춘다.
 
이 말은 세상의 행복한 것에 대한 기준점을 자신이 마련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자신이 행복해 하는 일은 남들도 행복해 해야 하고, 반대로 자신이 행복하지 않거나 불행한 일은 남들도 그래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물론 보통 행복에 대해서는 이렇게 극단적으로 생각하지 않지만, 우리는 부지런함과 게으름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하다는 가치 판단기준의 근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내부적으로는 분명히 행복과 불행에 대한 선호도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들에게 터무니 없이 부지런함을 강요하게 되는 것이다.
 
이 말은 그대로 행복을 강요하는 꼴이 된다.
 
물론 부지런함은 좋은 것이다. 부지런함은 더 위생적인 것이며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이것은 개인의 취향이다. 즉, 행복과 불행에 대한 개인의 선호도이란 것이다. 물론 병적으로 게으른 증상과 같은 정신병 치료를 받아야 할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매우 극소수이다.
 
만약 부지런함의 수준이 잘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도 밖에서 만날 땐 보통 문제가 되질 않는다. 문제는 같은 집에서 살 때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부지런함과 게으름은 결혼 할 때 배우자로써 절대적으로 살펴야 할 중요한 심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외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끝없이 부지런함을 덕목으로 강요해 온 우리나라 사회에서 게으름은 늘 천대를 받았다. 하지만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그 모든 문명의 이기들은 대부분 게으른 사람들 덕분에 만들어진 것이다.
 
누구나 빨래를 하는 것을 행복을 여기고 열심히 했다면 지금 세탁기가 발명되었을 리가 없다. 설령 만들어졌다고 해도 결국 안 팔려서 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최근에 나온 아이패드와 같은 것들도 마찬가지다. 이 제품은 이미 집안에 한 대쯤 있는 컴퓨터를 키고 그 앞에 갈 불편함을 없애는 목적으로 만들어 진 제품이다. 또 앞으로 어떤 목적으로 우리들의 게으름을 이겨낼 수 있게 해줄 제품들이 나올까?
 
아무튼 결론적으로 자신이 느끼는 그 모든 부지런함의 대상은 그것을 하는 자신이 불행하지는 않기 때문에 그렇다는 점을 정확히 이해하자. 우리는 그것을 하는데 행복하다면 정말로 많이 부지런해진다.

 

또한 취미라고 해서 스스로 좋아한다고 정의하고 있지만, 그것을 할 때마다 약간씩 귀찮음을 느낀다면, 실제로 그 자신이 그것을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좋아하는 것이 아니란 점도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우린 보통 자신이 가치 있다고 느끼면 그것을 아주 쉽게 착각하여 마치 자신이 그것을 정말로 좋아한다고 믿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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