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상처주는 사람, 상처받는 사람

아이루다 2014. 10. 31. 08:44

 
사람들은 참 다양한 성격을 가지고 있고, 그로 인해서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자신과 잘 맞거나 혹은 감당할 수 있는 성격과 잘 맞지 않거나 감당하기 힘든 성격을 경험하게 된다.
 
물론 이것 역시도 우리 자신의 성격과도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서, 나 자신이 타인에 대한 이해심의 폭이 넓다면 감당할 수 있는 성격이 넓어지고, 반대로 좁다면 감당할 수 있는 성격이 좁아지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결정하는 요소 중 중요한 것은 바로 얼마나 타인이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것을 참아 낼 수 있는가 이다.
 
우리는 보통 인간 관계에서 상대가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느낌, 즉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고 자기 편한 대로 하는 태도로부터 자신도 모르게 상처를 받게 된다. 하지만 이 순간 상대 역시도 그런 생각을 잘 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즉, 그 자신이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하다가, 결국 상대가 자신도 모르게 상처를 입고 있는 경우인 것이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의도적으로 하기도 한다. 자신이 몹시 싫어하는 사람이거나 혹은 과거에 자신에게 상처를 입혔던 사람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 일부로 그런 짓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간혹 아주 통쾌한 경험을 하기도 하는데, 일단 이런 경우는 오늘 이야기에서 빼기로 한다.
 
아무튼 우린 누군가가 우리 자신을 함부로 대하고 상처 입는 말을 할 때,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왜 저 사람은 상대가 상처 입을 수 있는 말을 저렇게 쉽게 할까? 자신도 같은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쁠 텐데' 라고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보통 하는 이런 생각은 큰 착각이 숨겨져 있다. 그리고 오늘은 그것에 대해서 글을 써내려 가려고 한다.
 
일단 첫 번째는, 앞에서 말했듯 상대는 자신이 하는 말을 실시간으로 인식하지 못한다. 즉, 그 자신이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것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물론 실수로 상대의 명백한 상처를 건드는 경우도 있긴 하다. 그럴 경우 우린 보통 그 자리에서 사과를 한다. 최근 아이를 잃은 사람에게 아이 이야기를 꺼낸 경우 등이 그렇다.
 
두 번째는 그 상대는 자신이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그대로 제 삼자를 통해 그 자신이 들었을 때 놀랍게도 상처 받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가장 큰 착각을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병신' 이란 말을 들으면 불같이 화를 낸다. 하지만 요즘 남자 고등학생들의 대화를 들어보라. 그들은 이 말을 정말로 아무런 의미 없이 사용하고 있다. 그냥 말끝에 달린 조사처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단지 단어의 사용에 관련된 이야기지만, 실제로는 좀 더 복잡하다. 사람들은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정도에 대한 평가 기준이 다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조금이라도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듯 느껴지면 기분 나빠하고, 또 어떤 사람은 주변에서 보기에 좀 심하다 싶어도 별 상관하지 않는다.
 
이런 차이로 인해서 부부 폭력에 노출된 사람들이 그런 상태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런 폭력이 단 한차례의 뺨 때리기만 경험해도 바로 이혼을 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병원에 가야 할 정도로 심각한 폭행을 당해도 참고 넘어간다.
 
그런데 왜 이런 차이가 생겨날까?
 
아마도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자존감이 아닌가 싶다.
 
어려서부터 부모나 주변으로부터 함부로 대함을 당한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거기에 자존감이 맞춰진다. 그래서 이런 이들은 어느 정도의 막대함을 잘 참아낸다. 또한 그 자신도 그것을 별로 크게 마음에 두지 않기 때문에 남들에게 그런 식으로 대한다.
 
그러니까 태어나고 자라고 살아가는 환경에 따라서 우리는 매우 다른 형태의 이해와 반응을 보여주게 되는 것이다. 공사판에서는 상스러운 언어들이 난무하겠지만, 잘 차려 입은 파티장에서는 누구나 선한 표정과 좋은 단어만을 골라 쓰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자신이 참아낼 수 있기에 다른 이들에게 그런 말을 한다. 즉 참을 수 있는 말 = 남에게 해도 되는 말이 된다. 단지 차이라면 살아 온 환경에 따라 그것의 차이가 심한데, 이것이 서로 크게 다를 경우 누군가는 그냥 내뱉는 말이 누군가에겐 큰 상처가 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잘못된 조합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란 것이 바로 세 번째 고려해야 할 점이 된다.
 
우리는 자신이 참아낼 수 있기에 남들에게 그렇게 대하는 것만은 아니다. 여기에는 조금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이 상처를 입는 것과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같은 수준으로 작동되고 있지 않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당하는 무시를 꽤나 잠 참아내는 반면 반대로 자신이 남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또한 다른 어떤 사람은 자신이 당하는 무시는 거의 참지 못하면서도 남은 아주 쉽게 무시한다.
 
여기에서 전자에 해당되는 사람을 우리는 '좋은 사람' 이라고 평가하고 후자에 해당되는 사람을 '진상' 이라고 평가한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자신이 참아내는 만큼 남들에게 한다. 즉, 판단 기준점이 자신에게 맞춰져 있어서 자신이 '바보' 이란 말을 듣고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면, 남들에게 '바보' 이란 말을 쓴다. 반대로 '미친 놈' 이란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나쁘다면 남들에게 '미친 놈' 이란 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지만 좋은 사람과 진상은 다르다.
 
좋은 사람은 '바보' 라는 말을 듣고 기분이 나쁘지도 않으면서도 다른 이에게 '바보' 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반대로 진상은 '바보' 라는 말을 듣고 참지 못하면서도 다른 이들에게 '바보' 라는 말을 쉽게 쓴다.
 
평범한 이들과 이런 사람들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일단 좋은 사람의 경우를 보자. 좋은 사람의 경우는 또 다시 두 가지 경우로 나뉜다. 하나는 다른 이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즉 나름대로의 삶의 철학이나 신념 등이 있는 사람이 있고, 다른 하나는 타인의 시선에 지극히 종속적인 사람이 있다.
 
일단 자신만의 철학이 있는 사람은 그것이 주는 자존감을 통해서 다른 이들의 평가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을 바보라고 부르거나 미친 놈이라고 하는 말에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말을 쓰는 것을 보통 사람들이 싫어한다는 것을 알거나 혹은 나쁜 뜻을 가진 말을 안 쓰는 것이 버릇이 되어 있어서 다른 이들에게 쓰지 않는다.
 
반대로 타인의 시선에 민감한 사람은 자신은 남들에게 기분 나쁜 말을 들어도 그것을 표현하지 않으려고 한다. 즉, 내부로는 쌓이는데 겉으로는 멀쩡한 척 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도 자신이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알기에 다른 이들에게도 이런 표현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이란 존재는 뻗을 자리가 되면 뻗기 때문에, 이렇게 참는 사람의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 중에서 진상이 존재한다면 끝없이 이들을 괴롭히게 된다. 즉, 이런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내부적으로 심한 상처를 입는 경우가 많다. 일종의 '착함 증후군' 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진상군에 속한 사람들은 왜 그럴까를 생각해보자. 이들 역시도 자존감이 가장 큰 원인이다. 이들은 자존감이 낮아서 열등감이 심하기에 다른 이들의 말에 쉽게 상처를 받는다. 또한 자신이 열등감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우월감을 느끼길 원한다. 그리고 이것은 상대를 무시하는 행동이나 말을 통해서 드러난다.
 
즉, 이들은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고, 그 사람들이 그것으로 인해 기분 나빠하고 불행함을 느낄 때 상대적으로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마치 자신이 상대보다 더 나은 존재인 냥 스스로 착각하면서 만족해 한다.
 
우리 사회처럼 돈의 가치가 우선시 되는 사회에서,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하나는 지위나 돈이 없는 경우인데, 이 땐 자신을 함부로 하는 다른 사람들의 태도를 그냥 받아들인다. 다른 하나는 돈이 많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아서 자신감이 생겼을 경우인데, 이 때 자신은 돈이나 지위가 높기에 그런 대접을 받지 않아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누군가 자신을 조금이라도 무시하는 듯 보이면 바로 폭발해 버린다.
 
우리는 매일 이런 사람들이 저지른 재미난 진상 짓에 대한 기사나 이야기를 듣곤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참 운 없는 조합이 생겨난다. 진상군에 속한 사람들은 보통 주변에 사람들이 점점 없어지기 때문에 결국 소심하여 참는, 착함 병에 걸린 사람만 남는다. 그래서 이 둘은 자주 친구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결국 한쪽은 끝없이 상대를 이용하고 괴롭히고 다른 한쪽은 그것을 다 참아내면서도 차마 그것을 거절하거나 화를 내지 못하는 소심함 때문에 매일매일 괴롭지만 친분을 유지한다. 부부간에도 이런 경우가 많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 번째로 생각해야 할 점은 바로 어떤 사람들은 정말로 자기 안의 세계에 갇혀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사람을 만났더라도 그 사람이 그런 성향인지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이들은 사회 속에서 생존에 대한 훈련이 되어서, 어울릴 때는 나름대로 적절한 반응을 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이들은 마치 정상적인 사람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이들의 모든 관심은 오직 자신에게만 있다. 이것을 단순히 이기적이라고 표현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누구나 이기적이지만, 다른 이들의 삶이나 생각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속한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일단 자신을 제외한 거의 모든 것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래서 친구들이나 기타 자신이 아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거의 관심이 없다. 단지 이들은 자신의 지인들이 그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 들으면서 그냥 오버스러운 반응만 해준다. 그리고는 며칠 후 물어보면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들 중에서 욕심이 적은 이들은 의도하지 않게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반면, 욕심이 많은 이들은 살아가는 과정 자체가 주변에 끝없이 상처를 주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상처를 주고 받고 하는 것에 대한 경계지점은 모두 다른 이들과의 끝없는 충돌 속에서 만들어 지는데, 다른 이들에게 관심 자체가 없으니 그것이 제대로 형성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나이를 먹어도 자신이 하는 말과 행동이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지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도 없게 된다.

 
또한 이들중 욕심이 많은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이득을 줄 수 있는 존재에게만 관심을 갖는 태도를 보이게 된다. 그래서 자신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강한 존재에게 한없이 굴복하고, 자신에게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하는 약한 존재는 그냥 무시한다.
 
이런 이들의 무시하는 성격으로 인해서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공통적으로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어서 다른 이들이 상처 주는 말을 해도 잘 알아듣지 못한다. 마치 머리 속에 언어 필터가 따로 하나 더 있는 것처럼 다른 이들의 말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석한다. 그래서 상처도 잘 안받는다.
 
예를 들어서 '너 오늘 옷이 좀 독특하다' 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사람은 '아 오늘 옷 조합이 안 좋구나' 라고 받아드리는 반면, 여기에 속한 사람은 '너 오늘 옷이 꽤나 튀어서 예쁘구나. 그래서 저 애는 날 부러워하는 구나' 라는 식으로 해석이 된다.
 
이들 그룹에 속한 사람은 마치 욕심이 적은 경우라면 좋은 사람처럼 보이고, 욕심이 많다면 진상군에 속한 사람과 비슷하지만 실제로 그 근본적인 원인은 다르다.
 
그리고 정말로 놀라운 사실인데, 이들은 세상에 꽤나 많다.
 
예전에 이런 사람들을 구분하는 법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중국 인구가 몇 명인지를 물어보는 질문이었다. 이것이 대략이라도 근처에 가는 사람이 많지만, 백 만명 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재미로 하는 참고일 뿐이다.
 
사람은 날카로운 칼로도 상처를 입지만, 말로 입는 상처는 어떨 땐 칼보다 훨씬 더 아프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가능하다면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안 하는 것이 좋다. 물론 상대가 받아들임에 따라 그 수위는 조정될 수 있겠지만, 누군가처럼 늘 존댓말을 쓰는 것도 좋은 버릇 중 하나인 것 같다.
 
하지만 우린 자신이 받은 상처는 잘 기억하는 반면, 자신이 다른 이들에게 어떤 상처를 입히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아는 사람들 중에서 누군가 자신의 말에 계속 상처를 받는데도 그냥 참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잘 못한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사람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폭발하면, '잰 왜 저럴까', '그렇게 안 봤는데 영 별로 네' 라고 생각한다. 혹은 '내가 그렇게 큰 잘못을 했나', '아니, 그렇게 기분이 나쁘면 예전부터 말을 하지' 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상대방의 태도를 비난한다.
 
하지만 정말로 잘 생각해보라. 이것이 원천적으로 과연 누구의 책임인지. 상처를 받은 사람의 책임인지 아니면 상처를 준 사람의 책임인지 말이다. 칼이 손가락을 베었을 때, 피를 흘리는 손가락이 잘못인지, 피가 묻은 칼이 잘못인지 생각해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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