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하고 싶어서 하다

아이루다 2014. 10. 25. 08:22

 
흔히 쓰는 말들 중에서 '하고 싶어서 한다' 라는 말이 있다. 예를 들면, 영화를 보고 싶어서 영화를 본다. 독서를 하고 싶어서 책을 읽는다. 운동을 하고 싶어서 자전거를 탄다. 여행을 가고 싶어서 제주도에 간다 등등이 있다.
 
이런 표현은 우리가 꽤나 자주 쓰는 것이라서, 들어도 그리 어색하지 않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 때, 흔히 이런 식으로 표현을 하여 어떤 행동이나 생각을 하는 이유를 설명하곤 한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이 표현은 뭔가 좀 이상한 구석이 있다. 왜냐하면 재미있게도 원인과 결과가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무엇인가를 하는 이유가 바로 그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린 이런 표현을 자연스럽게 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왜 이렇게 이상한 표현법을 쓰는 것에 대해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 실제로 이 표현법을 잘 생각해보면 정작 가장 중요한 내용이 생략되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물을 먹고 싶어서 물을 먹는 것은 물론 물을 먹고 싶어서 먹는 것은 맞다. 그런데 여기엔 ‘목이 마르다’는 사실, 즉 우리의 몸에 물이 부족하여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물을 먹어야 한다는 숨겨진 내용이 생략되어 있다.
 
하지만 물을 마시고 싶은 대다수의 사람은 모두 같은 이유이므로 그냥 물을 마시고 싶다라고 말 만 하지 왜 물을 마셔야 하는지에 대해서 설명할 필요가 없다. 비슷한 예로 밥을 먹고 싶다면 배가 고프기 때문이다.
 
그런데 물을 먹고 싶은 것은 반드시 이것 하나만의 이유만 존재할까? 만약 우리가 물을 먹고 싶은 이유가 단 하나만 존재한다면 물을 먹고 싶어서 물을 먹는다는 표현은 그리 틀림이 없다. 문제는 만약 물을 먹고 싶은 이유가 두 개 이상 존재할 경우, 타인의 이런 표현을 들은 우리들은 그것의 숨겨진 뜻을 해석하기 위해서 상황이나 경험, 상대의 특성까지 고려해서 유추해낼 수 밖에 없다.
 
물론 물의 경우엔 거의 목이 마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을 먹거나 입을 바싹 마르게 하는 어떤 것을 먹어서 그럴 수도 있는 상황 역시도 존재한다는 사실 역시도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이 영화, 책, 운동, 여행 등을 바뀌면 물보다 훨씬 더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단순히 생각해봐도 주변에 누군가 '영화를 보고 싶다' 라는 표현을 하거나, '여행을 가고 싶다' 라는 말을 할 때, 그 사람이 왜 그것을 하고 싶은지를 판단하는 과정은, 그 사람의 생각을, 듣는 우리 자신의 생각을 통해 추측하는 방법이 우리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쓰인다.
 
만약 그 말을 들은 당시 우리 자신이 요즘 나온 정말 보고 싶었던 영화가 있었다면, '아 저 사람은 그 영화를 보고 싶어서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고, 어떤 영화든 간에 설레는 첫 데이트를 앞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 저 사람도 나처럼 누구와 만나서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것인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것은 여행의 경우에도 완전히 동일하게 적용된다. 삶이 지겨워서 여행을 가고 싶거나, 어딘가 흥미로운 장소를 가고 싶다는 본능적 탐험 욕구일수도 있다.
 
그런데 우린 왜 이런 식으로 말하는 표현법을 사용하게 되었을까?
 
아마도 우리가 어떤 표현을 할 때, 정말로 그것을 하고픈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일단 이런 모호한 표현은 자신의 진심을 숨기는데 큰 도움을 준다. 우리 인간은 자신이 가진 패를 모두 꺼내서 보여주는 것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우리 인간 세상에서 솔직함은 좋은 것이지만, 이득과 손해를 계산하는 시점에서는 그리 좋은 태도는 아니다. 어쩌며 우리가 솔직함을 미덕으로 칭송하는 이유가 다른 이들의 솔직함이 우리들 자신의 이득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또한 상대에 따라 딱히 자신의 속마음을 상대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는 관계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좀 알아서 알아줬으면 하는 심리도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여행을 가고 싶어서 여행을 가겠다는 표현에는 '너와 같이 가고 싶다', '나한테 여행 경비를 좀 보태달라', '내가 요즘 많이 힘드니 좀 위로해 달라', '여행을 갈 것이지만 너와는 갈 생각은 전혀 없다', '내가 요즘 삶에 대한 열정을 느끼고 있다', '나는 여행을 갈 만큼 여유가 있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달라' 등의 생각이 숨겨져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인해 그랬든 간에 이런 생략된 표현법은 상황에 따라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이다. 우리는 삶의 시간이 쌓여갈수록 그 사람과의 관계가 오래될수록 어떤 표현의 덜 오해를 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완전히 상대의 속마음을 들여다 볼 수는 없다. 심지어 말하는 당사자들도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잘 모르고 말하는 경우도 아주 흔하다.
 
오해는 갈등을 불러일으킬 여지를 만든다. 같이 여행을 가고 싶어서 여행 가겠다고 말했는데, 그냥 손을 흔들면서 잘 다녀오라고 하거나, 가서 선물 사오라고만 하면 상대는 말을 한 당사자는 속으로 삐지게 된다. 그리고 그런 태도로 인해서 이야기를 들은 상대 역시도 상대의 토라진 행동으로 인해서 기분이 나빠져서 결국 서로 좋지 않는 감정을 품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참 많이 일어나는 갈등의 이유이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이런 오해는 풀어낼 수 있을까? 혹은 오해를 만들지 않을 수 있을까?
 
이것의 답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그것은 바로 충분한 대화시간이다. 우리는 더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이 진짜로 무엇을 원하는지 상대에게 설명하게 된다. 그리고 상대 역시도 자연스럽게 상대가 무엇을 원하기에 저런 말을 했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대화의 시간이 부족하거나 혹은 처음 들었을 때 너무 확실하게 상대의 의도를 예단 하여 더 이상 정보를 알아보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이런 경우도 존재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그것을 하고 싶다고 했을 때, 그 자신은 그것을 하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없을 경우, '저 사람은 왜 저런 것이 하고 싶을까?' 라고 속으로 생각하게 된다. 즉, 이런 경우엔 상대의 생각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나 자신이 별로 하고 싶지 않거나 혹은 싫어하는 일일 경우 도저히 그 사람이 왜 저런 것을 하고 싶어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서 주말마다 고아원에 봉사를 가는 사람을 보면, 자신은 전혀 그런 것을 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왜 피 같은 주말을 자신을 위해 쓰지, 힘들게 남들에게 봉사나 하면서 사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원칙적으로 남을 돕고 사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남들을 돕고 싶어서 돕는' 사람들은 잘 이해가 안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형태의 자신을 위주로 한 타인에 대한 이해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서로를 오해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가 된다.
 
우리는 살면서 자연스럽게 타인의 하고픈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신도 하고픈 일을 타인에게 이야기 한다. 그런데 이것이 단지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 의 설명으로만 끝나게 되면 이것을 들은 상대는 말 그대로 상상의 나래를 편다. 그리고 그 자신의 머리 속에서 들었던 말을 강제로 적용하여 운이 좋다면 의도대로 해석하기도 하고, 운이 없다면 전혀 동떨어진 해석을 해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서, 어느 날 어떤 여자가 우연히 어디선가 얻은 귤 하나가 있었는데, 방금 이를 닦은 탓에 먹기가 싫어서 그냥 가지고 있다가 지나가는 안면이 있는 남자에게 아무 생각 없이 먹으라고 줬을 때, 그 남자는 저 여자가 나에게 관심이 있나 라고 해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오해로 인해서 남자는 계속 여자의 행동을 해석하고 결국 여자의 친절을 자신에 대한 관심으로 결론을 내고 고백을 했다가 여자의 당황하는 얼굴을 보게 되고 만다. 그나마 이런 경우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끝날 수도 있지만, 부부나 부모와 자식의 경우 서로 주고 받는 대화가 꾸준하지 않으면 매우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갈등은 주로 이런 형태의 오해에서 시작된다. 신경을 쓰지 못하고 바쁘거나 정신이 없어서 서로에게 조금 상처를 주는 행동이나 말을 한 후, 그것을 왜 했는지를 서로 더 이야기 하지 않게 되면 상처를 입은 쪽에서는 상처를 준 사람의 행동의 이유에 대해 자신의 감정에 대입시켜 황당한 오해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자주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화목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는, 가족간의 대화가 중요하게 강조 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잘 인식하지 못하지만, 대화가 많은 가족일수록 화목하다. 이것은 대화가 많아서 화목한 가정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대화가 많으면 서로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생기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대화를 할 때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되어있다. 그래서 이야기를 하다가 보면 예를 들어, 여행을 가고 싶어서 가는 것의 숨겨진 이유를 자연스럽게 공유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을 들은 상대는 왜 혼자서만 여행을 가고 싶어하는지 오해를 했다가도, 요즘 부모가, 배우자가, 아들과 딸이 어떤 힘들어 하는 일이 있거나 혹은 영화에서 본 어떤 장면으로 인해서 감명 받은 장소를 가고 싶어하고 있다는 추가적 정보를 얻어낼 수 있다.
 
하지만 같이 많은 대화를 했다고 해도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제 삼자의 이야기를 주로 하는 사람들은 이런 행운이 없을 수도 있다. 그것이 유명 연예인에 대한 이야기거나 옆집 아이, 각자의 친인척, 친구들의 이야기가 주로 대화 주제가 되면 우리는 좀처럼 오해를 풀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 어렵다. 단지 이런 경우라도 공감대 형성으로 인해 즐거움을 얻게 되어서 서로 참아낼 수 있는 한계치가 늘어나는 장점은 있다.
 
아무튼 어떤 주제인지 상관없이 많은 대화는 관계 유지에 있어서 큰 도움을 준다.
 
우리가 어떤 것을 하고 싶을 때, 왜 그것이 하고 싶어서 한다는 표현을 쓰는지에 대한 정확한 이유는 알 수가 없다. 그것은 정말로 미묘하고 복잡할 수 있기 때문에, 관계에 따라, 상황에 따라, 현실적 문제에 따라, 현재 기분에 따라 모두 다른 이유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자신조차도 우리가 왜 그것을 하려고 하는지에 대해서 스스로도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이 역시도 다른 사람들과 자신이 왜 그것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을 찾아낼 수도 있다.
 
또한 그 순간엔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다고 해도, 그런 경험을 한 후에 혼자서 그것에 대해 생각을 하다 보면, 자신이 무엇인가를 하고픈 이유에 대해서 진정한 자신의 본심을 알아낼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도 역시 일종의 자신과의 대화인 것이다.
 
하지만 우린 평소에 대화도 부족하고 더해서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도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오늘도 영화를 보고 싶어서 영화를 보고, 여행을 가고 싶어서 여행을 떠나고 있다.
 
물론 이것을 왜 하고 싶어하는지에 대해서 정확히 아는 것은 의미가 없을 수 있다. 그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다면 뭐 하러 그것을 따질 필요가 있겠는가?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신이 그것을 하는 이유를 잘 모르고, 자신의 상대 역시도 그것을 그 자신의 마음대로 해석해서 오해하는 상황이 자주 빚어지면, 갈등이 싸움이 되고 결국엔 회복할 수 없는 관계가 되어 버리고 만다. 그것이 부부인 경우엔 현실은 심각하다.
 
그리고 자신이 왜 그것을 하고 싶은지를 잘 알지도 못하고 무작정 그것을 하면 행복하다는 이유로 많은 것을 하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것을 유지하지 못하고 결국 짧은 기간을 불태우다가 그만 두는 경우도 흔하게 생긴다. 사진을 찍고 싶어서 찍는다는 사람은 사진을 찍는 그 자체가 좋은지, 그 사진을 찍어서 어딘가에 자랑하는 것이 좋은지를 스스로도 잘 몰랐을 때, 잘못하면 골방에 카메라와 렌즈가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의지적인 문제로 접근하려는 경향이 있으나, 정말로 하고픈 일이 있다면 그 누구도 그것을 하는데 게으르지 않다. 만약 그것을 하는데 게으르다면 그것보다 더 하고픈 일이 있어서 하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우린 다른 이와의 대화와 나 자신과의 대화를 끝없이 시도 해야 한다.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서 상대에게 진심을 이야기 하고, 자신에게 이야기 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것이 조금이나마 상대를 덜 오해하게 만들고, 우리 자신도 스스로를 덜 오해하게 하는 유일한 길이다.
 
 
 

 

'심리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처주는 사람, 상처받는 사람  (0) 2014.10.31
성격 스펙트럼  (0) 2014.10.28
평범한 사람이 변화하는 법  (0) 2014.10.21
왜 그것을 하면 행복할까?  (0) 2014.10.19
관계 집착증  (0) 2014.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