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관계 집착증

아이루다 2014. 10. 8. 14:42

사람들의 걱정거리 중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것에 대한 고민은 꽤나 흔한 편이다. 아마도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약하게 혹은 심각한 수준으로 어려움을 느낄 것이며, 이 때 많은 이들이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데 있어서 도대체 어느 선까지를 허용하고 거부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다.
 
그래서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상대가 자신에게 약간 불성실하다 싶으면, 그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집착이나 손해같이 느껴져서 기분이 상해 결국 관계가 단절되기도 하고, 실제로 집착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은 그것이 집착이란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집요하게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기도 한다.
 
그리고 보통 대부분 사람들은 그 자신이 관계에 집착한다 싶으면 자존심의 상처를 받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그 관계를 수평적인 관계로 유지하려고 하다가 결국엔 서서히 멀어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래서 보통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설령 그것이 집착증이라고 해도 언제든 안 만날 수 있다는 점에 있어서 큰 문제로 확대되지 않는다. 실제로 우리 인간의 발달 과정을 보면, 이런 친구들과의 관계에 대한 고민은 청소년기에 한 때만 중요할 뿐, 그 후 성인이 된 후엔 다른 훨씬 복잡하고 어려운 것들 때문에 언제 그랬냐는 듯 잊혀져 버리고 만다.
 
반면에 성인이 된 후엔 좀 더 복잡하고 좀처럼 해결하기 힘든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진다. 그것은 바로 결혼을 통해 맺어진 부부나, 부부의 결실로 탄생한 자녀와 같은 직접적인 관계들이 있고, 거기에 더해서 자신의 배우자 집안과의 관계가 바로 그런 관계의 종류이다.
 
친구나 동료 같이 평범한 관계와는 달리 가족이란 이름으로 엮인 관계는 천륜이라고 한다. 하늘이 맺어준 인연인 셈인데, 실제로 이 말은 맞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아이가 태어남과 동시에 죽는 순간까지 유지가 된다. 이와는 달리 부부간의 관계는 이혼을 하게 됨과 동시에 남남이 되긴 하지만, 결혼이 유지되는 동안만큼은 부모와의 관계보다도 더 강한 관계성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그로 인해서 배우자 각 당사자는 서로의 집안과의 관계인 시댁과 처가에 대해서 실제로는 관계가 없으나 아내나 남편과의 관계를 위해서 중요하게 유지되어야 할 관계로 취급된다. 물론 사실 이것은 지역과 문화적으로 많이 종속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나 대한민국은 이런 관계를 다른 나라보다 유난히 중요하게 취급한다.
 
아무튼 이것은 가족이든 배우자 집안이든 상관없이 일반적인 수준에서 알고 지내는 관계와는 달리, 끊고 싶다고 해서 끊어지지 않는 것이 그 특징이다. 그래서 성인이 된 많은 이들은 이 관계 속에서 큰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로 인해서 부모와 자식간의 갈등, 형제간의 갈등, 부부 갈등, 시댁 갈등, 처가 갈등 등으로 나타난다.
 
생각해보면 이것 말고도 참 어려운 관계가 하나 더 있긴 하다. 그것은 바로 직장 내 사람들과의 관계이다. 이 역시도 부부처럼 직장을 그만둠과 동시에 분리될 관계이긴 하지만, 직장을 다니는 동안만큼은 절대로 무시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거의 모든 관계에 대한 갈등은 앞에서 말한 가족간의 갈등과 직장 내에서의 갈등으로 수렴된다. 상황에 따라 가끔은 아주 오래된 친구와의 갈등 문제도 생겨나긴 하는데, 결국 그런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멀어지면서 해결이 되곤 한다.
 
물론 많지는 않지만 어떤 사람들 중에서는 친구와의 관계에 집착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보통 나중에 상처를 크게 입거나 혹은 자신의 가족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해결이 되기도 한다. 뭐, 사람에 따라 평생 그렇게 사람도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단 직장 내에서의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 대한 고민은 그 직장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해결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물론 좀 더 강한 성격과 뛰어난 능력으로 그것을 극복할 수는 있지만, 그런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어느 정도는 견뎌야 한다.
 
또한 그리고 나이를 먹으면 직급과 조직 장악력이 높아져서 자연스럽게 해결되기도 하니, 젊은 시절에 받는 스트레스는 나름대로 풀면서 버텨내야 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그리고 정 안되면 부서를 옮기거나 아예 회사 자체를 옮기는 방법도 있어서 어떤 식으로든 완전히 해결하는 방법도 존재한다.
 
그렇지만 가족간의 갈등은, 특히나 부부와 둘 사이에 낳은 자식을 제외한 나머지 친인척과의 관계와의 갈등은 실제로 그것을 그리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가 크게 번지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가족 갈등 1순위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며느리와 시어머니와의 갈등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남자들은 아직도 효도를 아내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으며,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오래된 전통으로 인해서 여자가 시집을 오면 마치 그 집안의 사람이 되는 것인 냥 취급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에 시작되는 갈등이다. 특히나 부엌을 둘러싼 두 여자의 갈등은 장기를 두거나 술 한잔 하면서 지내는 남자와 장인어른과의 관계에 비해서 무척 충돌할 위험이 큰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런 2차적 관계는 부부나, 자식과 같이 1차적 관계와는 달리 분리가 전혀 불가능한 관계가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보면, 시댁이나 처가보다도 직장 내 관계가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직장 내 관계는 먹고 사는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 직장은 옮기는 순간 쉽게 끊어지는 관계이다. 즉, 그곳에 속해있을 때만 중요할 뿐이다. 시댁이나 처가 역시도 마찬가지다. 부부간의 관계가 끊어지는 순간 남남이 된다. 그나마 부부간의 관계는 공동 운명체이고, 자식의 경우 낳았으니 책임이 있다. 하지만 과연 내 부모가 아닌, 배우자의 부모에 대해서 어떤 책임을 가져야 할까?

 

물론 부부는 자신의 부모와 천륜 관계이니 서로가 자신들의 부모에 대해서는 책임이 있다. 그래서 부모가 더 이상 경제 생활을 하지 못할 경우, 자식은 부양의 의무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것은 기본적으로 온전히 각자의 부모에 대한 각자의 책임이라고 봐야 한다. 기본적으로 부부는 공동 경제 생활을 하기에, 각자의 부모에게 얼만큼의 부양을 해야 하는 가는 각자의 가치관과 경제력에 따라 다를 것이다. 여기에서는 서로의 합의가 중요하다. 그런데 한쪽이 자신의 부모에게는 이 정도는 해야 한다고 우기는 순간 갈등이 커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보다도 약하지만 또한 각자 형제간의 갈등도 존재한다. 보통 시누이나 처남 등으로 표현되는 이런 관계는 특히나 여자 쪽에서 심하게 부침을 받기도 한다. 그것은 불필요한 참견이나 혹은 시어머니와 한통속이 되어서 며느리로 들어온 여자를 심하게 몰아붙이는 경우도 발생하게 된다.
 
아무튼 여자 입장에서는 남자의 부모는 그저 남자의 부모일 뿐이다. 또한 남자 입장에서 여자의 부모는 그저 여자의 부모일 뿐이다. 만약 그것으로 인해서 스스로 참을 수 없을 만큼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그 관계는 단절시켜야 옳다. 또한 남자나 여자 형제 문제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좀 더 냉정한 시각에서 보면 각자 자신의 집안간의 관계라고 해도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차라리 안보는 것만 못하다면 그것이 천륜이라고 해도 끊을 수 있다. 그러니 부모와 자식 관계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면 분리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심각한 부당함에 놓이거나 도저히 자신이 감당하긴 힘든 대접을 받으면서도 사회적 시선이나 배우자와의 관계성이 틀어질 것이 두려워 그것을 끊어내지 못하고 살아간다. 이것은 전통적으로 효부와 효자의 관점에서 사람을 평가하는 우리들의 공통적인 관습과 서로의 부모에게 각자가 효도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부부 공동의 책임으로 끌고 가려는 부부 각자의 욕심에 의해 벌어진다.
 
우리가 관계를 오직 의무감으로 맺거나 혹은 갑과 을의 한쪽으로 기울어진 상태로 맺어지게 되면 다른 한쪽은 심각한 수준의 스트레스를 느끼게 되는 것은 당연한 원리이다. 인간이 관계를 맺는 가장 기본적 이유는 바로 그 관계를 통해 행복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관계에서 이득을 추구하고 안전함을 보장 받는다. 그런데 이것이 보장될 수 없는 관계는 더 이상 관계가 아니다.

 

많은 오래된 이야기나 주변의 이야기에 따르면 '피는 못 속인다든가' 혹은 '혈연은 끊을 수 없다' 라는 말들을 하곤 하는데, 이것은 우리가 원하는 것이지 결코 현실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왜냐하면 정말 좋지 않는 콩가루 집안이 실제로 꽤나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은 천륜이라고 칭해지지만, 실제로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끊을 수 있다. 또한 그렇게 사는 사람들도 꽤나 된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는 주인공을 버리고 떠난 지 30년 만에 찾아 온 아버지를 미움과 그리움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받아들이는 이야기가 소개 되지만, 실제로 얼굴이 기억도 안 나는 사람이 갑자기 자신의 부모라고 찾아오면 누가 그 사람을 부모라고 받아 들일 수 있겠는가? 이것은 단지, 드라마 속의 이야기일 뿐인 것이다.
 
부모와 자식 관계도 끊을 수 있는 마당에 형제나 기타 다른 관계를 끊는 것이 뭐가 어렵겠는가? 그럼에도 오늘도 많은 이들은 끊어야 할 관계를 정리하지 못하고 그 관계 속에서 끝없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음에 고통스러워한다. 그리고 그 배경엔 바로 사회적 시선이 한몫하고 있다. 즉, 다른 이들이 비난할까 봐 겁이 나서 그러고 있는 것이다. 혹은 그런 취급을 받아도 혹시 유산이라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주변을 맴돌고 있다. 이것은 차라리 조금 낫지만, 돈과 행복을 바꾸는 꼴이다.

 

원래 관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계속 설명했던 가족이나 직장과 같이 이미 정해진 테두리 안에 고정된 관계가 있고, 다른 하나는 친구나 지인들이라고 할 수 있는 선택 가능한 관계이다. 그런데 고정된 관계는 보통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맞추기가 힘들고 선택적 관계는 자신의 행복으로 인해 집착이 발생해서 힘들다. 그래서 이 둘은 기본적으로 입장이 달라 보이지만, 사실 그 내부에 깔린 본질은 같다. 그것은 바로 관계를 통한 행복 실현이다.
 
하지만 어떤 종류의 관계이든 그것을 통해 끝없이 상처를 받고 있다면, 결국 작은 행복을 위해서 큰 불행을 쌓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이런 종류의 눈 앞의 행복에 대한 집착은 마음을 다르게 먹는 것에 따라서 언제든 극복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하는 생각과 관계가 깨졌을 때 받을 고통이나 불행함이 두려워 끝없이 굴복을 하고 있는 패턴인 셈이다.
 
또한 많은 이들이 끊어야 하는 관계임에도 그것에 대해 확실한 태도를 보이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말 그대로 '척' 을 졌을 때,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이 불편함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환산되어서 우린 자신도 모르게 큰 문제가 없다면 그것을 그냥 수용하려고 한다.
 
하지만 문제는 모든 이들에게 공통으로 나타나는 '뻗을 자리가 있으면 뻗는다' 의 원칙이다. 누군가 다른 누군가에게 과도한 요구를 했을 때, 상대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 같다면 다음엔 훨씬 더 강한 요구가 오게 된다. 하지만 반대로 초반부터 강하게 끊으면, 그 한계를 인식하고는 당분간은 조심하려고 한다.
 
그래서 결국 받아들이면 들일수록 상대는 더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된다. 그리고 당사자는 이미 여러 번 상대를 위해 참았기 때문에, 결국 터뜨려야 할 순간조차도 그 동안 들인 노력이 아까워서라도 더 참게 된다. 이것이 결국 관계 집착증의 가장 큰 이유가 되는 셈이다.
 
사람은 원래 쉽게 얻는 것은 자신의 권리로 이해한다. 그러니 그것을 어렵게 얻게 해야 고마워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모든 이가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누구나 있으니까 처음부터 조심을 하는 편이 좋다. 이미 한 번이라도 잘 양보하는 사람이나 순종적인 사람이란 인식이 박히면 그때부터는 사정없이 요구를 하기 때문이다.
 
관계를 유지하려고 계속 피해를 보고 양보하고 스트레스 받는 것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냥 그 관계에 집착하는 것이다. 싫다는 사람에게 계속 연락하는 것과 마찬가지란 뜻이다.
 
이미 그런 관계적 스트레스 말고도 이 세상을 살려면 스트레스 받는 것은 사방에 널렸다. 그리고 해결 불가능한 자신의 아이와의 관계나 직장 내 관계 역시도 늘 위험요소이다. 그런데 왜 여기에 더해서 딱히 꼭 유지할 필요도 없는 관계까지 사회적 시선이나 집착으로 인해 유지하면서 살아가려고 하는가?
 
조금만 달리 보면 시댁, 처가, 형제, 자매보다 옆집에 친절한 이웃이 훨씬 더 좋은 관계가 될 수 있다. 왜 자신에게 더 좋은 관계는 두고 답도 없는 관계에 매달리면서 생을 낭비하려고 하는가?
 
물론 제일 좋은 것은 모두 서로 단점은 있더라도 어느 정도 선에서 관계가 지켜지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러면 가족만큼 좋은 것도 또 없다. 하지만 그런 운이 따르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웃기는 말로 좋은 시댁을 만난 여자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고' 까지 말해진다.
 
나의 모든 관계는 오직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만 존재해야 한다. 그것이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것의 가장 큰 원칙이다. 그래서 하고 싶어서 하든, 두려워서 하든, 그것을 하면서 스트레스 받는다면 모두 집착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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