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결정장애

아이루다 2014. 10. 4. 09:00

 
제목으로 사용한 이 용어는 다소 생소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아는 분들 아는, 어느 정도는 알려진 용어이기도 한데, 이 말을 누가 처음 공식적으로 사용했는지, 또한 사전에서 찾아서 나올만한 단어인지도 정확히 알 수 없긴 하다.
 
아무튼 이 결정장애란 말은 어떤 상황에서 무엇인가를 선택을 해야 할 때, 그것을 쉽게 내리지 못하고 질질 끌거나, 상황에 따라 계속 마음이 바뀌어서 결국엔 최종 선택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의 증상을 의미한다. 물론 이런 증상은 거의 모든 사람이 약한 수준에서 경험하기 때문에, 정확히 적용될 상황을 정의할 수 없다.
 
단지, 이것에 대한 어느 정도의 두리뭉실한 한계점을 말하자면 그것은 아마도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해서 어떤 손해를 입거나 혹은 아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뜻하는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런 결정장애를 경험하게 될까? 선택이란 것은 무엇인가를 새롭게 만드는 창조의 고통도 아니고, 그저 사지선다형 답처럼 그 중에서 가장 정답에 가까워 보이는 것을 선택하면 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그 선택을 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을 느낄까?
 
오늘은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정장애를 경험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스스로 인식할 만큼 심각한 수준이 아니라서 보통은 그냥 넘기고 자신의 기억에 남기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것을 상당히 심각한 수준으로 경험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본인에게도 꽤나 큰 스트레스일 것이다.
 
과거엔 결정장애가 있는 사람을 우유부단한 성격이라고 칭하곤 했다. 하지만 결정장애는 우유부단한 성격과는 조금 그 원인에서 차이가 난다. 실제로 파악해보면 우유부단한 성격은 결정장애의 한 요소로 보는 것이 더 사리에 맞다. 생각보다 결정장애의 원인은 꽤나 복잡한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겪는 결정장애 상황은, 배가 고픈데 무엇을 먹어야 할지 고민하는 경우이다. 물론 그날 컨디션에 따라 명확히 땅기는 음식이 있는 경우는 별 상관없으나, 어떤 날은 어떤 것도 먹고 싶은 것이 없는 날도 있다. 그런데 배는 고파서 먹긴 해야 한다.
 
영화도 비슷하다. 영화를 보고 싶은데, 보고 싶은 영화가 딱히 없다. 그럴 때 우리는 꽤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기도 한다. 단지 영화는 먹을 것과는 달리 보고 싶은 것이 없으면 안보는 쪽으로 결정할 수 있다.
 
옷을 고를 땐 사람마다 정말로 큰 차이가 난다. 물론 옷을 고르는 과정을 결정장애라고 표현하면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을 고르는데 왜 이것이 결정장애로 판단될까?' 라는 생각을 할 지 모르지만, 실제로 이것 역시도 결정장애의 일종이다. 단지, 이것이 누구에게 손해를 입히거나 신경을 쓰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서 큰 문제로 부각되지 않을 뿐이다.
 
그럼 이제부터 결정장애의 원인을 하나씩 알아보기로 하자.
 
가장 첫 번째는 자신감 부족이다. 보통 이런 경우는 성격적인 우유부단함으로 나타난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 상황이 되었을 때, 자신의 선택이 제대로 되었을 지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하기에 계속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듣거나 설령 최종적으로 결정되었다고 해도, 누군가 반대하는 한 마디만 해도 쉽게 흔들린다.
 
이런 이들은 이 성격으로 인해 평생에 걸쳐서 결정을 잘 못하는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그래서 남자가 이럴 경우엔 보통 강한 성격의 여자를 선호하는 경향도 나타난다. 즉, 자신이 결정을 내릴 강단이 부족하니 자신의 배우자를 통해 그것을 채우려는 것이다. 여자 역시도 마찬가지다. 우유부단함이 심한 성격일수록 성격적으로 강한 남자를 선호한다.
 
두 번째는 정보의 다양성이다. 이 원인은 현대에 들어서 더욱 더 심화되었는데, 특히 인터넷이 발달함에 따라서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까지 접하게 될 정보의 양이 너무도 많이 늘었다는 점으로 인해 생겨났다.
 
어떤 결정을 위한 선택을 내릴 때, 그것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많은 관련 정보를 접하는 것은 절대로 잘못된 행동이 아니다. 이것은 나름대로의 현명함이며, 좋은 행동 습성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정보 자체가 너무 다양하고 많으며 심지어 그것에 대한 의견이 극과 극으로 치닫게 될 때, 우리는 심각한 혼란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어떤 제품을 구매하려고 할 때, 누군가는 심하게 욕을 하고 반대로 누군가는 최고라는 칭찬을 하는 평가를 보게 된다면 도대체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또한 거기에 더해서 인터넷 댓글 알바가 성행이라는 정보까지 얻게 되면, 사람들의 의견에 대한 기초적인 신뢰조차 흔들린다.
 
또한 더해서 기자들이 쓴 기사나 블로거들이 쓴 그나마 조금은 더 신뢰할만한 정보도 볼 수 있게 되겠지만, 기자들 역시 신뢰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고 블로거들 역시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어디까지 믿고 정보로 간주할 수 있을 지부터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이 고민이 바로 결정장애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세 번째 제품의 다양성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각 나라나 혹은 각 나라에 속한 제품들이 생산하고 있는 상품들의 품질이 상향 평준화로 가고 있다. 그래서 예전엔 그냥 특정 회사의 제품이 한 분야를 휩쓰는 일이 많았다면, 지금은 너무도 많은 회사들이 비슷한 동종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으며 품질 면에서도 큰 차이가 안 나는 경우도 많다.
 
특히나 전자 제품 분야가 그것이 심한데, 밥을 먹으로 근처 식당에 가는 것도 비슷한 원리이다. 식당이 하나만 있으면 거기만 갈 수 밖에 없지만, 식당이 늘어나면 늘어 날수록 선택의 폭이 넓긴 하지만, 각 식당이 모두 비슷한 수준의 맛을 낸다면 결국 언젠간 어디를 가고 싶은지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없을 때가 온다.
 
대형마트에 진열된 제품들 역시도 비슷한데, 동종 제품을 5개 정도 놓으면 사람들은 쉽게 결정을 해서 사가지만, 동종 제품을 수십 개를 두면 소비자들은 선택을 하지 못해서 결국엔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심리적 실험을 한 결과가 있을 만큼 다양함에 대한 결정장애는 확실히 존재한다.
 
그리고 이 원인은 다음 이어지는 원인들의 기저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대안이 존재함으로써 우리는 언제든 최고의 선택이나 혹은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지 못할 확률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특히나 최고의 선택에 대한 집착은, 이 순간 어떤 것을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후로도 계속 좀 더 나은 것이 있지 않을까 하면서 끝없이 집착을 보이는 경우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네 번째, 베스트 오브 베스트 증후군이다. 이것은 자신이 선택한 것이 자신이 선택 가능한 것들 중에서 최고의 결과가 나오길 바라는 심리로 인해 벌어지는 현상이다. 이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생각으로써 그 정도가 심하지만 않으면 그리 문제는 없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이것에 대한 심각한 수준의 집착을 보인다. 그래서 어떤 선택을 할 때, 자신이 선택한 것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자신이 선택하지 못한 것에 대한 집착을 보이게 된다.
 
쉬운 예로 여행을 떠날 때, 두 개의 선택 가능한 경로가 있을 때 하나를 선택 했다면 그것만을 신경 쓰고 가면 된다. 그런데 만약 그 길이 우연한 사고로 인해 막혔고, 다른 선택 가능한 길이 막히지 않는 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때부터는 자신이 선택한 것에 대한 후회로 인해 결국 심각한 수준의 짜증을 내게 되고 최종적으로는 길도 막히고 여행도 망치게 되는 것이다.
 
더 흔한 예는 돈을 뽑으러 현금 지급기 앞에 섰거나, 대형마트에서 계산대 앞에 섰을 때도 발생한다. 여기에서는 자신이 선택하지 않는 것이 바로 옆에서 보이고 또한 그 효과가 즉시 나타나므로 자신의 앞에 선 사람이 뭔가 뭉그적거리거나 늦어지면 괜히 마음이 불편하고 괜한 짜증을 내게 된다.
 
그나마 이런 것들은 그냥 흘러가는 데로 흘러가면 짜증을 내든 뭐하든 간에 시간이 흐르면 해결이 되는 반면, 무엇인가를 사려는 사람이 이 증세가 심각하게 나타나면 큰 문제로 연결된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두 번째와 세 번째 원인과 결합되어서 다양한 정보와 다양한 제품이라는 지옥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문제는 최고의 선택이란 것의 기준점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자신만의 평가가 아닌 타인의 평가를 통해 완성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 때, 다른 이들의 시선을 인식하게 되면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행복론과도 관련이 있다. 결국 자신의 행복을 위해 선택하는 것들이 다른 이들의 시선에 의해서 강제적으로 그들이 선호하는 것이나 관심 있는 것들을 선택하게 되면서, 결국 그 어떤 선택도 최종적으로 당사자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이들과 더 복잡하게 얽힌 사람일수록 또한 어떤 선택을 하는 이유가 바로 자신의 필요성이 아닌, 어떤 자랑이나 단순히 다른 이들이 추천하거나 이미 구매했기에 따라 하는 행동일 때 훨씬 심각해진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런 행동 패턴은 생각보다 꽤나 빈번하게 일어난다. 많은 이들이 자신이 사는 어떤 상품이나 행동이 왜 그것을 사거나 하는지에 대한 스스로의 인식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이런 것들은 그 동안 살아 온 관성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즉, 자신이 자발적으로 만들어 낸 욕구가 아닌, 사회나 주변에서 그것을 사거나 하는 게 정상이라고 말해주는 것을 하는 것에 매우 익숙한 것이다.
 
그래서 결국 최고의 선택을 하고 싶다는 욕구는 어떤 경우엔 왜 그 제품을 사고자 했는지조차 잊게 만들어서 오직 누군가의 칭찬이나 부러움을 사고 싶다는 의도로 결정되게 된다.
 
다섯 번째는 후회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는 네 번째와 겹치기도 하는데, 조금 성격이 다르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선택이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좀 더 적극적인 것과는 다른, 자신의 선택이 적어도 평균치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즉, 후회는 평균도 안 되는 선택을 한 경우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나타난다.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베스트 증후군은 자신이 잘랐다는 우월감을 기반으로 나타나는 것이고, 반면에 후회에 대한 두려움은 자신의 열등감을 기반으로 나타난다. 즉, 자신이 하는 선택이 잘난 것을 증명하는 것에 집착하는 것이 아닌, 못한 것일까 봐 두려운 것이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실제로 자신이 한 선택의 순위를 메길 때, 평균 이하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그래서 그 당사자들에게 그런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지만, 세상의 모든 선택을 최고에서 최악으로 순서를 메긴다면 누군가는 중간 이하의 최악 선택 쪽으로 하고 있다는 뜻한다. 즉 우리가 그냥 평범한 수준의 사람이라면, 우린 평균적으로 50%의 평균 이상의 선택과 반대로 50%의 평균 이하의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선택을 잘못해서 후회하게 되는 일은 꽤나 흔하다고 볼 수 있다. 단지 그것을 인식하게 되느냐와 또 얼마나 쉽게 잊느냐가 관건일 뿐이다. 잘 생각해보면 살아오는 동안 어떤 제품을 산 후 반품하거나, 한쪽 구석에 버려두고는 있는지 조차 잊는 경우도 꽤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린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려는 경향이 무척 강하다. 그래서 실제로 A 전공을 전공했으면 큰 성공을 거뒀을지 모르는 사람이 어떤 집착으로 인해서 B란 전공을 선택한 후 평생을 구질구질하게 살더라도, A 전공을 선택했으면 잘 살았을지도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가정하지 않는다. 또한 B를 선택한 것을 '팔자' 이나 '운명' 이란 명목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실제로는 우리의 이런 능력이 선택에 있어서 하위 50%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유일한 희망인 셈이다. 또한 그것이 바로 그들이 한 순간의 선택의 실수로 인해서 평생 느낄 수 있는 좌절이나 후회로 인해서 절망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을 막아주는 힘이 되어 준다.

 

또한 추가적으로 사회가 점점 더 경쟁이 심화될 경우, 우리는 우리들 자신이 하는 선택에 대해서 혹시나 잘못된 선택을 해서 갑자기 경쟁에서 밀리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하게 된다. 그래서 결국 모든 결정이 남들이 안전하다고 말하는 것만으로 선택을 하려는 형태로 쏠린다. 요즘 우리 사회가 요즘 공무원 같이 안정적인 직장을 선호하는 경향 역시도 일종의 결정장애의 한 단면인 것이다. 물론 이것은 먹고 사는 현실이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기도 하다.
 
여섯 번째는 어려서부터 다른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선택을 당한 경우이다. 그리고 그 강제로 대신 선택을 해주는 사람은 주로 부모이다.
 
이 경우는 요즘 점점 더 심해지는데, 아이의 삶을 고정시키려는 부모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의 삶은 계속 부모에 의해 선택이 되고, 결국 대학까지 선택된 아이는 그 선택이 잘못되었을 경우라고 해도 자신이 한 선택이 아니기 때문에 부모만 원망할 뿐 자신의 책임은 잘 느끼지 못한다.
 
이렇게 자란 사람은 책임감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해서 사회 생활을 할 때도 늘 핑계만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행동 패턴을 보이게 된다.
 
안타깝지만, 이런 사람들은 중요한 인격 형성시기에 선택을 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마마보이와 같은 별칭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한 번 이렇게 형성된 성격은 결혼 이후에도 바꾸지 않아서 결국 아내와 엄마 사이의 큰 갈등을 초래하는 경우도 흔하다.
 
 
결정장애는 혼자만 있을 땐 거의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옷을 하나 사는데 수십 일이 걸리든, 일 년이 걸리든 그것은 그 사람의 몫이다. 하지만 결정장애는 다른 이와의 관계 안에서 나타날 땐 갈등을 불러 일으킨다. 우유부단한 성격이거나, 너무 많은 정보를 찾으려 하거나, 너무 다양한 제품을 선택의 대상에 두거나, 최고의 선택만을 하려고 하거나, 후회할까 두려워 선택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증상이 심각해지면 결국 같이 있는 사람들과 뭔가 엇나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점점 더 다양화되고 복잡해지고 정보화 되고 있기에 이 결정장애는 점점 더 심각해질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지금 이 순간에도 그것이 심각하지 않을 뿐, 어떤 결정을 잘 내리지 못해서 불 필요한 시간을 쓰는 사람들도 꽤나 있다.
 
물론 심사숙고는 삶의 지혜로운 면이다. 단지 그 심사숙고가 과하게 되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점점 더 빨라지는 현대 사회에서 아이러니하게 결정의 순간은 점점 더 길어지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래서 이것은 심사숙고가 아닌, 선택에 대한 자신이 없거나, 최고의 선택만을 하고 싶은 욕심이거나, 다른 이들의 평가에 민감해지는 우리들의 자화상이 아닌가 싶다.
 
어떤 면에서 결정장애는 어떤 욕심의 결과이기도 하다. 물론 우유부단한 성격이나 마마보이적 기질은 그 사람의 의도로 인해 벌어진 것은 아니니 한쪽으로 치워 놓더라도, 다양한 제품과 그 만큼이나 다양한 정보를 배경으로 최고의 선택, 후회 없는 선택을 하려고 하는 그 욕구는 욕심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결정장애를 치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단, 내려 놓는 것이다. 그리고 기대치를 줄이고 결과를 최대한 그대로 받아드리려고 노력하는 모습이다.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자신의 한 선택이 후회도 없고 최고 이길 바랄까? 누구 그러한 권리를 줬을까? 그것이 단지, 과거에 몇 차례 운이 좋아서 나온 결과라는 것을 인정하기란 많이 힘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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