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행복 선호도

아이루다 2015. 2. 27. 09:30

 
사람은 자신이 소속된 사회 속에서 자신과는 다른 사람들과 다양한 형태의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이것을 좀 더 과장해서 표현하면, 우리는 관계 속에서 태어나, 관계 속에서 살다가, 관계 속에서 죽는다. 그리고 살아가는 동안의 모든 가치는 오직 관계에서만 통해서만 만들어 진다. 사랑도 우정도 믿음과 같은 좋은 가치들이나 미움, 배신, 불신과 같은 나쁜 것들 역시도, 다른 존재와의 관계가 없이 단지 혼자 살아갈 땐,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존재와의 관계가 삶에서 중요한 것은 아니니, 너 자신의 삶에 집중하라고 조언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조차도 그것을 들어줄 사람이 있어야 그 조언이 의미가 있다. 숲 속에서 혼자 하는 말은, 그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그저 소음을 뿐이다. 그래서 혼자 사는 것이 좋다고 말하는 이들 역시도 관계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물론 그것조차도 벗어난 사람도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사람은 말 그대로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에, 아무도 그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마존 밀림 속이나, 아니면 아주 멀리 안드로메다 은하에 우리가 모르는 어떤 존재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존재한다고 해도 우리가 그들을 알지 못하면, 그 존재가 우리들에게 의미나 가치를 느끼게 할 수는 없다.
 
이렇듯 우리는 관계라는 개념에 완전히 종속되어서 살 수 밖에 없다. 사실 우리가 관계에 종속되는 어쩔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많은 행복이 관계를 통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먹고 자는 등의 기본적 행복은 그렇지 않지만, 존재감, 자존감, 우월감, 소중함 등을 통해 얻어지는 행복은 모두 관계를 통해야만 만들어 진다.
 
그래서 다들 관계 맺기를 즐겨 한다. 사실 하고 싶어도 못할 뿐, 사람들은 누구나 관계를 원한다. 단지 자신에게 잘 맞지 않거나 혹은 호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아서, 그것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이렇게 누구나 원하는 관계는 어떤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바로 개인별 선호도이다.
 
우리는 흔히 많은 모임을 만들고 모이고 어울려 살아가지만, 그 안에 하나하나는 모두 자신만의 다른 선호도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술을 좋아하고, 누군가는 여행을 좋아하고, 누군가는 걷는 것을 좋아하고, 누군가는 먹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처음부터 이 모임이 특정 목적을 가지고 모인 모임이라면 그나마 별 문제가 없다.
 
자전거 동호회라면 그냥 모여서 자전거를 타니 별다른 문제가 없다. 등산 모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동창 모임이나, 그냥 친구 모임은 그렇지 못하다. 그 모임에 참석한 사람 하나하나가 모두 다른 선호를 가지고 있다. 거기에다 특정 목적을 가진 동호회라고 해도, 그들은 단지 자전거나 등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뒤풀이나 기타 다른 행동들을 하면서 동일한 문제가 반복된다.
 
물론 우리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어느 정도 어울리기 위해 그리 좋아하지 않아도 대충 어울릴 수 있는 능력 정도는 가지게 된다. 그래서 그 많은 모임들이 대충 유지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내면을 잘 들여다보면, 사실 그 안에는 몇몇 사람들의 대표적인 선호도와 나머지 사람들의 그저 그런 태도, 그리고 소수의 그것을 감내해 내는 사람들로 분리가 가능하다.
 
즉, 그 모임의 할 일은, 강한 의견이나 무리의 리더 격인 사람들의 선호도로 결정되고, 나머지 다수는 그냥 따르고, 소수는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다른 목적으로 인해 참는 것이다. 쉬운 예로 단지 밥을 먹는 모임이라고 해도, 어떤 메뉴를 먹는지, 어느 장소에서 먹는지를 결정할 때, 사람마다 좋아하는 음식 선호도가 달라서 이것을 모두가 만족스럽게 맞출 수는 없다.
 
만약 해물 탕을 먹기로 했다면, 해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먹는 동안 행복할 수 있고, 해물이 그저 그런 사람들은 그저 그렇게 배울 채울 것이고, 해물이라면 기겁하는 사람들은 역한 해물 냄새를 참으면서 그냥 밥과 적은 반찬을 억지로 먹을 것이다.
 
이 상황을 각각 행복, 행복도 불행도 아닌 상태, 불행 세가지 상태로 말할 수 있다. 즉, 단지 음식을 먹는 모임 하나에서 먹는 메뉴 하나로 인해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선호하는 것을 하려고 한다. 해물보다는 육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고기를 먹으려고 할 것이고, 육류보다는 샐러드와 같은 채식을 즐기는 사람은 샐러드 바를 선호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나 그 결정을 자신이 하길 바란다. 즉, 자신이 그 결정권을 쥐고 있을 때 행복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을 좀 더 전문적인 표현으로 지배력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권력을 원하는 핵심 이유이다. 우리는 어떤 모임, 더 크게는 국가에 이르기까지 이런 지배력이나 장악력을 원한다. 이것이 권력욕의 기본이다. 그리고 거기엔 자신이 행복한 일을 결정하고 싶다는 욕구가 숨겨져 있다.
 
물론 이것과는 조금 다르게, 자신이 꿈꾸는 세상이나, 자신의 역량을 발휘해 자기 증명을 하고 싶은 욕구로 인해 권력을 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 역시도 자세히 보면, 역시나 선호도이다. 자신이 꿈꾸는 세상 자체가 일종의 선호도이며, 이것을 누구나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 역량을 발휘하여 자기 증명을 하는 것 역시도 말 그대로 그것을 할 때, 스스로 만족스럽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인간에게는 주도권, 지배력, 장악력은 매우 중요하다. 단지, 그러기 위해서는 일정의 책임이 있다. 즉, 어떤 모임을 잘 이끌고, 사람들의 불만을 최소화 시켜야 한다. 그래야 이탈자가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자기 위주로만은 할 수 없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포기한다. 그리고 차라리 자신이 여러 가지 상황을 모두 다 즐길 수 있도록 훈련한다. 술, 담배, 등산, 자전거, 운동, 수다, 커피, 와인, 여행을 즐기고, 음식 종류도 가리지 않고 먹을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도대체 이런 능력조차도 개발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서서히 관계가 좁아진다. 즉, 결국엔 자신과 잘 맞거나 혹은 자신이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 하고만 어울려 지내게 된다.
 
그리고 소수의 어떤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권력 의지를 드러낸다. 즉, 모임의 대표가 되고, 나라의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것이다. 보통 대통령까지 욕심을 낼 정도로 권력 의지가 있는 경우는 드물지만, 일반적으로 모임이나 회사 등에서 정도라면 모임의 대표나 회사의 사장 정도는 노리는 것이다. 그리고 대 놓고 감투를 원하지는 않아도, 눈에 보이지 않는 주도권을 가지려고 애쓴다.

 

이 심리가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 호감을 얻으려는 이유 중 하나가 된다. 그래서 호감을 얻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 수록, 그들은 나중에 또 다른 사람과 어떤 것에 대한 선호도로 인해 의견 충돌이 날 때, 내 편이 되어줄 것이다. 즉, 해물탕을 먹으로 가자고 할 때, 그러자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란 이야기이다.
 
아무튼 어떤 형태든 간에 주도권은 행복과 밀접하게 연관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쉴 새 없이 주도권을 원한다. 이것은 다시, 자신이 선호하고 잘하는 것을 남들도 같이 좋아해주기 바라는 마음으로 연결이 된다. 즉, 자신이 술을 좋아하고 잘 먹으면, 다른 사람들도 그래야 좋은 것이다. 그래서 아무나 만나도 술을 좋아하고 잘 먹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자신의 선호도 대로 원하는 행복을 얻을 가능성이 높다.
 
자신은 등산을 좋아하는데, 다른 사람들 대부분은 싫어한다면, 그것은 난감한 상황이 된다. 그래서 여자들이 아이를 낳게 되면, 계속 아이 이야기를 하고, 결혼을 아직 하지 않았거나, 했어도 아이를 낳지 않는 친구에게 끝없이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주문한다. 왜냐하면 그 사람도 아이를 낳아야 자신의 행복 선호도와 맞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아이를 낳지 않은 사람과 계속 아이 이야기를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선호도에 대한 주도권 싸움은 이젠 보이지 않는 행복 경쟁처럼 변한다. 즉, 사람들은 끝없이 자신이 행복을 느끼는 대상을 주변에 홍보하려고 애쓴다. 등산은 하는 사람은 등산 하는 것을, 아이을 낳은 사람은 아이를 키우는 것을, 영화를 보는 사람은 영화 보는 것을, 여행을 하는 사람은 여행을 하는 즐거움을 말한다.
 
결국 사람들은 모두 일종의 행복 전도사들이 된다. 하지만 사실 이 안엔 상대가 그것을 해서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자신이 선호하는 것을 그 사람들도 해서, 결국 좀 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자주 할 수 있다는 마음이 숨겨져 있다. 물론 그렇게 말은 하지 않지만 말이다.
 
하지만 등산을 홍보하던 사람이 어느 날 다리를 다쳐서 등산을 하지 못하게 되어서, 뜨개질을 하는 행복을 찾았다면, 그때부터는 갑자기 등산하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뜨개질의 좋은 점을 말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애쓰게 된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잘 들어주지 않으면, 갑자기 뜨개질을 그만두고 만다. 그리고 삶이 우울하다고 느낀다.
 
그런데 이 선호도를 돈의 관점에서 보면 어떤 현상이 벌어지고 있을까? 사실 현재 우리 사회는 돈이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회이다. 즉, 돈의 가치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이 올라가 있는 상태인 것이다. 그래서 단지 돈이 많다는 이유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다면 돈을 통해 행복을 얻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태도를 취하게 될까? 답은 단순하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다 돈으로 행복하길 바라게 된다. 하지만 돈은 사실 선호도는 아니다. 돈은 행복을 위한 도구일 뿐, 돈 자체가 행복으로 바로 연결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돈은 충분히 있지만, 돈을 쓰는 것을 통해 느끼는 행복이 별로 없는 사람들은, 돈 자체로 만으로 어떻게든 행복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런 노력의 결과로 인해서, 돈을 쓰는 것 자체는 행복하지 못해도, 그렇게 돈을 쓰고 있는 자신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통해서 행복을 얻을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이들은 다른 이들의 부러움을 못본척 하면서 속으로만 미소 지으며 더욱 더 돈을 쓴다. 좀 더 폼 나고 특별하게 화려하며, 누구나 함부로 따라할 수 없는 돈 씀씀이를 보인다. 그리고 그것을 할 때마다 한껏 행복한 미소를 보여주면서, 당신들도 돈이 많아서 자신처럼 쓰게되면 자신ㅇ과 같은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란 암시를 주려고 애쓴다. 그리고 실제로 돈이 중요해지고, 욕망이 끝없이 커지고 있는 사회에서는 그것이 통한다.
 
그리고 이들은 그것뿐만이 아니라, 좀 더 적극적으로 돈의 주도권을 홍보한다. 그것은 바로 돈이 없는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불쌍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누구나 돈을 원한다는 것을 이용해서, 자신과는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돈으로 환산시켜서 바라보는 짓을 한다.
 
즉, 생업으로 자신의 꿈을 위해 살아가는 수 많은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단지 돈으로만 환산시켜서 보는 것이다. 음악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꿈을 가지고 연극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꿈만 좇으면 모하냐는 식으로 바라본다. 꿈을 꾸는 이들의 행복을 돈으로 바꿔서, 돈 없으면 불행하다고 말해주려고 안달이 난다. 그나마 취미 생활에 대해서는 별로이지만, 어떤 이들은 취미 생활에서조차도 돈으로 비싼 장비를 사서 그것을 자랑하는 행복을 느끼려고 한다. 즉, 얼마나 그 취미를 잘 즐기느냐가 아닌, 얼마나 좋은 장비를 가지고 있느냐에 중심을 두는 것이다. 그리고 좋은 장비를 가진 사람일수록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것이 단지 돈이 정말로 많은 사람들만이 하는 짓이 아니란 점이 무섭기도 하다. 그냥 적당히 돈을 벌고 산 사람들 역시도 오랜 시간 동안, 이 돈에 의한 행복에 젖어서 결국, 자신의 자녀에게는 돈을 잘 벌 수 있는 직업을 갖길 바라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 현재 대한민국이 필요 이상으로 돈을 행복과 연관시키고 있는 가장 주된 이유가 된다. 돈으로 행복한 사람들이 돈의 행복을 홍보하고, 사실상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 그것으로 인해 끝없이 자극이 되어서, 꼭 필요가 없는 것이나 해서 별 다른 차이도 없는 행동들을 원하게 되면서 전체적으로 돈의 선호도가 지배하는 사회가 만들어 지고 있는 것이다.
 
냉정히 말해서 비싼 입장료를 받는 명품 클래식 음악회에 가봐야 일반적인 공연의 그것과 차이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사람은 관객 중 10%도 되지 못한다. 아무리 최고급 식 재료로 요리를 했다고 해도, 다른 일반적으로 맛있게 요리를 하는 집과 차이를 제대로 느끼는 사람은 전체의 10%도 안 된다. 와인이든 커피든 뭐든 똑같다. 우리가 즐기는 그 많은 것들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오감을 가진 사람들은 매우 희소하다.
 
이런 오감을 통한 직접적인 차이를 느끼는 사람이 적은 것만이 아니다. 우리는 여행 등을 통해 얻는 감성 자체도 부족해서 멋진 풍광이나 이국적인 세상을 제대로 느끼는 사람들조차도 드물다. 물론 모두들 약간의 차이는 느낀다. 하지만 그 차이에 비해서 들어가는 비용은 막대하다. 즉, 우리들 대부분은 스마트 폰으로 찍은 사진과 최고급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제대로 구분해 낼 수 있는 눈이 없다. 그럼에도 그 가격 차이는 수 십 배가 된다.
 
오디오도 마찬가지다. 와인도 그렇다. 고급스러울 수록 비싸지는 것은 무한대이지만, 그 차이를 느끼는 사람들은 매우 적다. 그리고 스스로 가진 허영심은 마치 자신이 그것들을 구분하고 즐길 수 있다고 믿게 만들기도 한다. 소중한 당신을 위해 준비했다고 광고하는 그 많은 것들은 사실 그들이 더 돈을 벌기 위해 만든 광고이지만, 정말로 그것을 하면 자신을 더 소중히 다룬다고 느낀다.

 

그래서 따뜻하기는 비슷하지만, 더욱 비싼 패딩을 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자신을 사랑하는 행위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또한 자신은 그런 대접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도 믿는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것의 진짜 차이를 느낄 민감한 감각 인식 능력이 없다.

 

사실 남들보다 훨씬 민감한 오감을 가진 이는, 현대 사회에 살아가기가 불편해서 죽을 지경이다. 그들은 민감한 오감으로 인해 끝없이 자극되기 때문에 각종 피부 트러블, 소음, 냄새로부터 오는 혐오감, 눈이 너무 자극되는 세상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다. 그래서 현재는 오감이 둔한 것이 더욱 살기 좋은 세상이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인 우리는 대충 적당한 선에서 충분히 즐기면서 살 수 있다. 하지만 끝없이 자극되는 욕망은 일 인분에 만 원 하는 돼지 갈비를 벗어나 한끼에 십 만원을 넘는 호텔 뷔페로 향하게 한다. 그러다 보니 돈이 부족하다. 그래서 돈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그렇지만 이것은 돈을 많이 가지고, 돈으로 행복한 사람들이 원하는 세상이다. 자신이 가진 것은 돈인데, 사람들은 모두 돈을 원하니, 돈을 가지고 사람들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 그리고 또한 자신이 하고 싶은 것만을 골라서 할 수도 있다. 돈은 권력화가 된다. 그리고 일반적 모임의 리더는 책임을 수반한 권력이지만, 돈은 책임이 필요 없는 권력이다.
 
즉, 돈의 힘에 굴복한 이들은 돈이 있는 한, 그 모임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그 모임에서 버텨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돈이 있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애쓴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번 돈으로 자신 역시도 자신보다 더 못사는 이들을 모아 놓고 같은 짓을 반복한다. 이 반복은 최하층의 사람들까지 내려간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이기에, 행복 선호도를 위해 어느 정도 홍보 활동을 하는 것은, 비록 자신을 위한 일이긴 하지만, 그것이 운동과 같이 좋은 것일 때는 오히려 좋다. 하지만 돈과 같은 종류의 행복은 그 한계가 없다는 점에서 상당히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것은 마치 마약이나 담배를 권하는 것과 같다. 한계도 없고 미래도 불투명하며 자신을 망칠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한번 짜인 이 구조에서 좀처럼 벗어나기가 힘들다. 그래서 가끔은 탈출을 꿈꾸지만, 결국 늘 현실의 벽을 체감한다는 말을 하면서 점점 자신의 자리에서 굳어져 간다. 그리고 굳어질수록 더욱 더 견고해져만 간다. 슬프지만, 또한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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