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재미와 행복

아이루다 2015. 2. 14. 08:59

 
재미있는 것은 행복한 것인가? 보통은 맞다. 그렇다면 행복한 것은 재미있는 것인가? 이 질문은 조금 생각해봐야 한다. 왜냐하면 행복했다고 해서 꼭 재미있었던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기 때문이다. 누군가 들어가고 싶은 학교에 최종 합격 했을 때, 분명히 행복했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재미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랑하는 연인의 품에 꼭 안겨 있을 때, 분명히 행복했지만, 재미있는 것은 아니었다. 감동적인 영화를 보고 그 여운을 즐기고 있었을 때, 그 영화가 꼭 재미있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행복한 것은 꼭 재미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재미있는 것은 행복한 것인가? 일단은 맞는다고 대답을 했는데, 다시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TV 속에서 너무도 재미있게 개그를 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나오면 모두들 재미있어 죽는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사람이 아동 성추행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기사가 떴다. 그러자 사람들은 모두 이 사람을 비난하고, 욕하고, 그 사람이 나오는 방송 자체를 보지 않으려 하고, 방송국 역시도 말 그대로 통 편집을 통해서 이 사람의 출연 분을 제거한 후 방송을 한다.
 
물론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 반응이다. 아동 성추행이라니, 죄질 중에서 정말로 나쁜 죄질이다. 그런데 다른 이들이 몰랐을 뿐이지, 이 사람은 몇 년간 그렇게 지내왔다. 단지 대중이 모르고, 방송국이 몰랐을 뿐일 것이다. 아니면 알고도 모른 척 했거나. 아무튼 우리는 모두가 같이 몇 년간, 아니 더 오랜 시간 동안 성추행을 해왔을 이 사람의 개그를 보면서 재미있어 했다. 그리고 그 사건이 알려지지 않았다면, 이후로도 한참 오랜 시간을 더 재미있어 했을 것이다. 사실 아동 성추행이란 사건과 이 개그맨의 재미는 전혀 연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사실을 알고부터는 이 재미를 거부한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싫기 때문이다. 증오스럽고, 화가 난다. 분노가 치민다. 그래서 재미 있는 것도 재미가 없다. 하지만 사실 재미가 없어진 것이 아니다. 단지 재미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즉, 재미를 행복이라고 가정한다면, 행복을 거절하고 있는 셈이 된다. 물론 보고 싶어도 못 본다. 방송국에서 더 이상 방송을 안 하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대다수는 해도 안볼 것이다.
 
우리는 갑자기 행복한 것을 버린 셈이 되었다. 사실 행복한 것을 버리는 것은 결코 쉽지 않는 일이다. 그럼에도 아무런 미련 없이 버렸다. 그런데 다른 방송국에서 또 다른 개그맨이 너무 웃긴다는 말을 들었다. 이젠 그 문제 개그맨 대신 새로운 개그맨을 본다. 그리고 또 재미있다. 이젠 그 개그맨이 음주 운전을 하다 걸리거나, 도박을 했거나, 가정 폭력을 썼다는 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재미있다. 그래서 행복하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좀 그렇다. 자신의 행복이 이러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재미가 있으면 행복하다는 생각에 약간 금이 간다. 도대체 뭐가 빠졌을까?
 
사실 여기에서 빠진 것은 바로 행복을 느끼는 대상에 대한 안정성이다. 즉, 이런 행복은 언제든 날라갈 수 있다. 우리 자신의 의지가 아닌, 그 개그맨을 삶을 사는 방식으로 인해 사라진다. 그렇다고 해서 그 개그맨의 사생활을 늘 감시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까진 행복하지 않으니까. 물론 하는 사람도 있다. 일명 스토커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그래서 비 상식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집착이라고도 한다.
 
안전하지 못한 행복, 언제든 깨질 수 있는 행복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결국 그것을 행복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한다. 사실 행복은 안전함으로부터 와야 한다. 우리가 행복을 느끼는 이유 자체가 안전함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그 행복 자체가 불안하다면 어떻게 그것을 행복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 행복의 불안함이 생기는 이유는, 당연히 그 행복 자체가 외부에서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것도 자신과 거의 상관없고, 잘 알지도 못하는 이들로부터 오는 행복이라면 더욱 더 그렇다. 어떻게 될지 모른다, 어떤 사람인지도 모른다는 것은 결국 불안함은 야기시킨다. 그래서 결국 불안해진 우리는 그것을 행복이 아닌 단지 재미로만 보게 만든다. 그래야 언제든 버릴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버릴 수 있는 행복이라 말이 과연 적당한 표현이 될 수 있을까?
 
사실 재미와 행복의 차이는 여기에서 나타난다. 우리는 보통 재미있는 것을 행복한 것이라고 믿고 싶어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언제든 버려질 수 있다. 반대로 행복한 것은 쉽게 버려질 수 없다. 그렇지만 재미는 쉽게 얻는다. 반대로 행복한 것은 어렵게 얻어진다. 그래서 행복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얻기 힘든 행복을 찾기 보다는 얻기 쉬운 재미를 찾아 다닌다. 그리고 그 재미가 행복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하지만 재미는 금새 얻는 만큼 금새 사라진다. 아니면 버려질 수 있다.
 
재미있는 코믹 영화를 보고 나면 잠시 기분이 좋다. 그러다가 금새 잊어 먹는다. 재미는 없었어도 감동적인 영화를 한 편 보고 나면 그 여운은 길게 남는다. 평생을 가기도 한다. 좋은 영화들이 원래 그렇다. 그 기억이 오래 가서 나중에 또 봐도 좋다.
 
힘들게 산에 올라 정상에 서 있을 때,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산에 오르는 것이 재미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재미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드물다. 대부분의 산에 오르는 이들에게 왜 산에 오르냐고 물으면, 재미있어서 오른다는 사람은 없다. 다들 좋아서 오른다고 한다. 공기가 좋고, 자연이 좋다고 할 것이다.
 
사실 이렇게 단편적으로 말하기엔, 재미는 행복과 매우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래서 너무도 재미있는 것은 정말로 행복하게 해주기도 한다. 단지 그 너무도 재미있는 것이 드물다는 것이 문제다. 대부분은 어느 정도 재미있다. 우리는 자신을 너무도 재미있게 해주는 것이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가치를 부여한다. 그래서 행복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냥 어느 정도 재미있는 것은 거기에서 머문다. 그리고 언제든 버릴 수 있다. 하지만 일단 가치가 부여된 재미는 행복이 되며 그래서 버리기가 힘들어진다.
 
이런 복잡성으로 인해 우리는 재미와 행복을 혼동한다. 그래서 행복하고 싶다면 재미를 찾게 된다. 사실 재미는 쉽게 찾아진다. 돈만 내면 재미있게 해주는 곳들이 널렸다. TV를 봐도 되고, 영화를 봐도 된다. 책도 그렇고 각종 연극이나 문화 상품들이 그렇다. 게임도 그렇고 놀이 공원이나 각종 레포츠가 그렇다. 이 세상은 행복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만큼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 단지 돈이 필요할 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떤 것이든 할 땐 좋은데, 하고 나면 금새 잊혀진다. 또한 또 할 땐 금새 또 좋아진다. 마치 무슨 주사를 맞는 듯, 즉시 반응한다. 문제는 자꾸 약효가 줄어든다는 점이다. 한 번 느낀 재미는 점점 줄다가 재미가 없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최대한 재미 있는 것들을 회전시키려고 한다. 어제는 놀이공원에 갔었고, 오늘은 게임을 하며, 내일은 영화를 볼 것이다.
 
이렇게 계속해서 재미를 느끼면 마치 행복하게 사는 것 같다. 그런데 잠자리에 누우면 뭔가 허전하다. 그리고 재미있었던 동안 묻어 둔 걱정거리들이 막 밀려든다. 그래서 TV라도 켜서 머리 속 생각을 지우려고 한다. 요즘은 스마트 폰이 있어서 이것이 더욱 쉽다. 거기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그래서 계속 재미는 있다. 그래서 행복하다고 느낀다. 그런데도 뭔가 허전하다. 아무리 재미가 있어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마치 아무리 맛있는 것들만 골라 먹고 다녀도 아주 가끔은 엄마가 해주는 된장찌개를 먹고 싶은 마음이다. 그냥 가끔 그렇다. 뭔가 마음을 채울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우리는 재미는 있었지만, 행복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아니 행복하긴 했는데, 정말로 제대로 된 행복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행복을 찾기가 너무 힘드니, 그냥 빠르게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을 찾는 편이 낫다. 그래도 혹시나 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들어보지만, 그들은  재미에 대해서 말하고 있으면서 어떻게 하면 행복한지에 대해서 말을 해준다고 착각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 역시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재미있게 사는 법은 아는데, 행복하게 사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것을 제대로 알기가 힘든 것은 바로 그것이 우리들 자신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것을 좀 더 간단히 정리하면, 재미는 외부에서 오는 자극인 반면, 행복은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우리는 동네에 있는 나무 한 그루에도 행복할 수 있다. 그 나무에 자신만의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면 말이다. 집, 아이, 취미, 일, 여행 모두 마찬가지다. 스스로 그것에 의미만 부여하고 가치를 느낄 수 있다면, 그 대상은 무한대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모른다. 알고 있다고 믿지만, 거의 모른다. 왜냐하면 자신에 대해 거의 생각을 하지 않고 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해야 자신에게 이득인지 정도만 생각한다. 사실 그것이 행복이기도 하다. 그래서 거기까지 에서 머문다.
 
그렇지만 우리가 하고 있는 행복을 위한 계산법은 부모님이, 선생님이, 세상이 알려준 계산법이다. 그것은 내가 만든 계산법이 아니다. 우린 모두 다른 행복을 느끼는데, 계산법은 같은 것을 쓴다. 그러니 운이 좋아야 그 계산법이 맞는다. 대부분은 잘 맞지 않는다. 그래서 행복하기가 힘들다. 결국 어떤 식으로든 자신만의 계산법을 찾아야 제대로 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힘들다.
 
그래서 당장은 재미를 찾는다. 재미는 단순한 계산법으로 처리가 된다. 돈만 있으면 해결이 가능하다. 돈만 있으면 정말로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고, 새로운 곳을 여행할 수도 있고, 특이한 취미를 즐길 수도 있다. 놀이공원도 갈 수 있고, 영화도 보며, 책도 사서 볼 수 있다. 게임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운동도 하며, 카메라 하나 들고 전국을 돌 수도 있다. 사실 이런 것들로부터 진짜 행복을 얻는 사람들도 있으니, 이것이 단지 재미만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이것은 모두 그들의 계산법이지, 우리 자신의 계산법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서 일단 인생의 목표는 돈이 된다. 재미를 느끼려면 돈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돈만 있으면 골프도 치고, 세계 유람선도 타고, 최고급 스포츠카도 몰 수 있다. 예쁜 여자도 만나고, 심지어 연예인도 사귈 수 있다. 돈만 있으면 재미있는 것은 한도 끝도 없다. 아마도 얼마 후엔 우주도 갈 것이다. 비록 밤 하늘 별 한번 쳐다본 적은 없지만, 우주선을 타고 무중력을 경험하는 것은 아주 큰 재미를 줄 것이다. 짜릿할 것이다.
 
그런데 가끔 엄마가 비 오는 날 해준 김치전이 생각난다. 겨울 방학 때 친구들과 만났는데, 돈이 없어서 아무데도 못 가서 결국 바람을 막아주고 해가 들어오는 양지에 모여서 웃고 떠들던 생각이 난다. 일년 동안 모으고 또 모아서 사고 싶었던 장난감을 사서 신나게 돌아오던 기억도 난다. 지금은 전화만 하면 금새 치킨이 배달되어 오고, 멋지게 인테리어 된 곳에 가서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모이고, 사고 싶은 것은 언제든 바로 카드로 긁어서 살 수 있지만, 그냥 그때가 그리울 때가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감정은 금새 잊게 된다. 왜냐하면 또 다른 재미가 찾아와서 머리 속을 채우기 때문이다. 재미가 있는 동안은 그 재미에 빠져서 집중하기 때문에 사고가 멈춘다. 시간이 흘러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진짜로 행복한 시간은 그 시간을 멈추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더 이상 그 시간이 흐르지 않고 거기에서 멈췄으면 하게 된다. 즉, 행복할 땐 단지 집중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냥 온 몸으로 느끼고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이런 행복을 맛보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단 몇 차례뿐이다. 그리고 보통은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래서 정말로 무엇이 행복인지 모른다. 그러다 보니, 재미가 있어서 느끼는 행복감 정도만으로도 만족스럽다고 느낀다. 하지만 이런 이들조차도 아이를 키우면서 진정한 행복을 경험한다. 그것은 재미있는 것은 아니다. 힘들지만 가치가 있다. 어느 맑은 봄날, 아이와 함께 나온 나들이 중, 남편과 함께 뛰어 노는 아이의 모습은 마치 사진처럼 각인된다. 그리고 그 행복은 가슴 속 깊이 새겨진다. 그래서 평생을 간다. 그리고 이때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이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다. 무엇이라도 자신이 가치를 느끼는 것을 할 때, 그렇게 느낀다. 행복할 때 우리는 그 순간에 그것을 느낀다. 행복은 그것을 한 후에 계산해서 느끼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그 순간 느끼는 것이다. 재미난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그것이 재미있었으니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은 단지 계산일 뿐이다. 자신의 삶을 평가하고 계산해서 행복을 결정하려고 하는 것은 결국 자의적 판단일 뿐이다.
 
물론 요즘은 많은 이들이 그것을 위해 자신이 스스로 자랑스러울 만한 재미있는 순간을 올려놓고 객관적 평가를 받으려 애쓰지만, 사실 그럴수록 그 행복은 낮은 수준이란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것뿐이다. 사진 속 행복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알리고 있는 것이다.
 
재미는 행복을 위한 좋은 경로이다. 하지만 재미만이 유일한 길은 아니다. 그런데도 그 길은 다른 길에 비해서 쉽게 갈 수 있기에 다들 거기로 몰려든다.
 
물론 인생은 각자의 선택이다. 그래서 여기에서 만족하고 머물든지, 아니면 좀 힘들더라도 자신만의 계산법을 만들어서 행복을 찾든지는 알아서 선택해야 할 것이다. 어떤 삶을 살든, 사실 큰 상관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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