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버림의 미학

아이루다 2015. 1. 26. 06:36

 
몇 년 전 아는 분이 이사를 해서 같이 도와 준 적이 있다. 원래 살던 곳이 복 층으로 된 오피스텔이었는데, 말이 복 층이지 올라가면 그냥 기어 다니는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그 공간은 뭔가를 수납하기가 좋았다. 그리고 그 지인은 인터넷을 통해 많은 제품을 주문했는데, 무슨 염려인지 몰라도 아무튼 어떤 제품이든지 그 포장을 버리지 않고 그 공간에 모아 두는 습관이 있었다.
 
그래서 이사를 하려고 수 년간 살았던 그 집을 정리하려고 보니, 그 공간에서 정말로 어마어마한 박스가 튀어 나왔다. 도대체 얼마나 오래 전에 샀는지도 모를, 그리고 그 박스 안에 있던 제품이 실제로 지금 있는지도 모를 그런 박스들이 한참이었다. 그래서 그걸 싹 정리해서 버려 버렸다.
 
그랬더니 그 분이 하는 말이, 내가 와서 참 다행이라고 했다. 자신은 그렇게 버리지 못한다고 말이다.
 
사실 나는 뭔가를 잘 버리는 스타일이다. 원래 집안에 물건이 많은 것을 그리 좋아하지도 않고, 미래에 일어날 어떤 사건들을 대비해서 뭔가를 가지고 있는 스타일도 아니다. 그래서 뭔가 집안에 너저분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것을 버리지 못해서가 아니라, 게을러서 그럴 뿐이다.
 
그래서 아마 그런 내 성격이 이사를 하는 집에서 짐 정리를 하는데 도움이 되나 보다. 물론 개인적인 입장에서 기억은 거의 나지 않지만, 뭔가를 막 버려서 문제가 된 적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쌓아두기 보다는 버리는 것이 좋다. 사실 불편하지만 않다면 집안이 텅 비어 있는 상태가 더 좋다. 단지 그럴 수 없을 뿐이다.
 
또한 이것은 버리는 성격이 좋고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 좋지 못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버리지 못하는 성격은 미래에 어느 날 혹시나 그것이 쓸모 있을지 모른다는 걱정으로 인해 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과하지만 않으면 가끔은 참 큰 도움이 된다. 반대로 잘 버리는 성격은 대부분 필요 없는 것이기에 좋지만, 어떨 땐 정말 필요한 것이 있어서 결국 다시 돈을 주고 사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원래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 끝없이 뭔가를 채운다. 그 대상이 집이라면 계속 가구와 전자제품 그리고 새로 산 각종 주방 용품들이 쌓여간다. 그래서 수십 년이 된 집에 가면, 방 하나가 거의 창고처럼 쓰이는 경우도 흔하다. 자식들이 살다가 떠난 공간은 금새 어머니의 개인 창고 공간이 되고 만다.
 
아무튼 우리 전 세대 어른들은 아끼는 버릇이 정말로 몸에 베여 있다. 그래서 그분들은 잘 버리질 못한다. 하지만 결국 그런 문제로 인해서 그분들이 사는 집에는 냉장고가 두 대, 아니 심하면 세 대에 김치 냉장고, 냉동실 전용 냉장고 등이 따로 있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냉장고 개수를 가지고 삶의 질을 따지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로 냉장고 갯수가 많은 것이 더 행복한 삶이 될 수 있을까?
 
예전에 읽은 기사에 따르면, 프랑스 사람들은 점점 더 냉장고를 갖지 않는 삶을 추구한다고 한다. 선진국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엥겔지수가 (총 지출에서 식료품에 지불하는 돈이 차지하는 비중, 후진국일수록 높다) 높은 나라인 프랑스는 원래 먹을 것을 매우 중요한 삶의 가치로 보고 살기에 유난히 먹을 것에 많은 것을 투자한다.
 
그런 그들이 냉장고를 줄이고 있다는 뜻은 아주 단순하다. 그것은 바로 최대한 신선한 식 재료를 먹겠다는 의지이다. 실제로 냉장고는 음식을 좀 더 오래 보존시켜주지만, 냉정히 말하면 그렇다고 해서 냉장고에 들어 있는 식 재료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맛있어 지는 것은 아니다. 사실상 밭에서 바로 캐어 먹는 채소는 그 어떤 순간에 먹는 것보다 훨씬 맛있다.
 
우리 인간이 채워두고는 버리지 못하는 것이 단지 이런 물리적인 것만이 아니다. 우리는 지식적으로도 많은 것을 채운 후 그것을 기억하고 산다. 그래서 살면서 거의 쓰지 않는 지식들 역시도 흥미나 호기심 혹은 그것이 필요하다고 느껴서 기억하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채워놓고 버리지 못하는 것은 바로 욕망이다.
 
우리 인간은 살아가면서 자신의 삶을 어떤 정형화 된 형태로 정의하는 것을 좋아한다. 즉, 우리는 경제적이나 관계적으로 어떤 상태가 되었을 때, 그것에 합당하다고 여겨지는 삶을 정의하는 것이다.
 
그래서 수입이 얼마가 되느냐에 따라서 즐기는 것들이 달라진다. 돈이 부족하다면 게임을 하거나 TV를 보고 즐거워하고, 조금 더 수입이 많아지면 조금 더 돈이 드는 여행이나 영화를 보고, 좀 더 많아지면 해외 여행이나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취미를 즐긴다.
 
이제 일반인 수준을 뛰어넘는 부를 축적하게 되면, 명품을 사고 비싼 자동차를 수집하기도 한다. 더해서 각종 일반 사람은 상상도 못할 일들을 하면서 산다.
 
즉, 우리는 여건이 되면 그 안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해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마치 20평의 집에서 살다가 40평의 집으로 옮겨 갔을 때, 새로 늘어난 20평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필요하다고 느끼는 많은 가구를 채우고 있는 원리와 같다.
 
원래 사실상 20평도 살만했지만, 40평이 되어도 좀 살다가 보면 뭔가 자꾸 채워져서, 그 공간이 그리 넓지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60평을 바라보게 된다. 물론 이런 집과 같은 단일 대상의 공간은 크기라는 한계점이 있다. 즉, 100평를 바라고, 200평을 바라지만 결국 1억평을 바라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가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욕망 그 자체는 도대체 끝이 없다.
 
이런 욕망은 마치 어딘가에 쌓인 박스와 같다. 계속 쌓일수록 움직여야 할 때, 그 과정을 힘들게 만든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당사자를 더욱 단단하게 고정시킨다. 그런데 이것은 좋기도 하고 좋지 않기도 하다.
 
일단 좋은 점은 고정된 것이 주는 안락함이다. 우리는 오래 된 집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새로운 곳은 늘 불편하거나 두려움을 가져오는 대상이 되곤 한다. 물론 젊은 시절엔 그것을 즐기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안주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래서 삶은 점점 고정되고 정형화된다.
 
안 좋은 점은 바로 고정이 가진 단점이다. 그 중의 가장 큰 문제는 고집스러워진다는 점이다. 젊은 시절엔 그래도 많은 것을 받아들였던 사람들이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더 가치관을 단단하게 만든다. 그리고 자신이 우연히 살았던 생애를 통해 얻은 지식을 통해 다른 이들을 재단하고 조언을 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단단히 고정될수록 움직일 수 있는 가능성이 낮아진다. 그래서 설령 뿌리를 박은 자리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고 심지어 행복하지 않을 경우라고 해도 이미 단단히 고정된 삶에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은 거의 없다. 그것은 경제적으로도 지역적으로도 삶의 패턴이나 자신이 그나마 즐기고 사는 것들에게 종속되는 것이다.
 
이 종속은 우리가 계속 자신이 속한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떠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떠나지 못하고 산다.
 
우리는 대부분 자신의 상황에 맞춰서 주변을 설계하지만, 사실 우리는 그런 행위를 통해서 자신을 끝없이 고정시키는 짓을 한다. 아이를 잘 키운다는 명목에 큰 돈이 들어가는 명문 학교에 넣거나 일년에 한 두 번은 꼭 해외 여행을 해야 한다고 믿거나, 자신의 사용하는 제품들은 적어도 어떤 수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면, 우리는 결국 그 정도를 유지할 수 있는 수입을 지속적으로 얻어야 한다.
 
물론 안정적인 직장은 그것을 가능하게 해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언제가 경제력을 잃게 된다. 그런데 그 시점을 늦추기 위해서 결국엔 자신의 의지와 반하거나 불행하거나 심지어는 범죄에 해당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하지만 그럴 때 우리 머리 속에는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 동안 벌려 놓은 것들이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상태에서 어떤 선택도 불가능한 것이다. 사실 실제로 이것은 틀리지 않다. 벌려 놓을수록 그것을 수습하기가 어려워진다. 그것은 쌓아놓은 박스와 같다. 많아질수록 그것을 치울 엄두가 안 나는 것이다.
 
우리는 그 어떤 것이든 쌓아두면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자신의 삶에서 무엇인가를 끝없이 쌓는다. 그래서 박스를 쌓고, 가구를 쌓고, 냉장고를 쌓고, 차를 쌓고, 돈이 허락하는 한 욕망을 쌓는다.
 
이렇게 쌓은 것들 중에서는 아주 가끔 정말로 필요한 것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에 쌓인 것이 너무 많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것들을 다시 우리를 목 죄어 온다. 그리고 발에 매달려서 우리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고정시킨다.
 
결국 가진 것이 많을수록 발걸음이 무거워져서 꼼짝도 못하게 된다. 물론 그 고정된 상태가 행복하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좋다. 분명히 고정된 것이 주는 장점이 있으니까 말이다. 문제는 그 고정 속에서 행복하지 못하다면, 아니 사실은 행복하지도 못한데 스스로는 행복하다고 믿고 산다면, 그때가 심각하다.
 
그래서 언젠가는 정리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자신의 스마트 폰에 저장된 연락처를 정리해야 한다. 그 숫자가 수백 명이 되어도 결국 그 중에 대부분은 마지막 연락을 한지가 몇 년 된 사람들이다. 카톡이나 기타 많은 관계들이 그렇다. 남겨야 할 사람들은 꾸준히 연락을 하거나 연락을 받기 싫은 사람들일 것이다.
 
또한 우리는 자신이 가치 있다고 느끼고 추구하는 것들을 정리해야 한다. 그래서 수 많은 대상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하기 위해서 샀던 많은 것들을 정리해야 한다. 그래서 오래된 인라인 스케이드, 운동 기구, 장롱에 숨겨진 카메라, 집 한쪽 구석에서 썩고 있는 자전거를 치워야 한다.
 
더해서 자신의 삶 속에서 해야 할 것들에 대한 목록도 정리해야 한다. 그것이 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해서 정말로 행복할 수 있느냐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 물론 돈이 있다면 무엇을 못하겠는가? 하지만 결국 그것을 해서 행복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단순히 돈을 써서 시간을 소비하고 있는 행위가 될 뿐이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사실은 시간이 아까워서 그렇다.
 
우리는 매일 살아온 삶은 늘어나고,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남은 날은 줄어든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미래가 짧아진다. 이런 원리로 인해서, 젊은 시절엔 미래가 많이 남아 있기에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많은 것을 쌓을 수 있다. 이런 것들은 사실상 모두 맛보기에 해당된다. 그래서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것들을 찾아내는 과정이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그런 과정을 통해 알아낸 자신만의 것에 집중하고 그 나머지는 버려야 한다. 그래서 남들이 행복하다고 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자신이 진정으로 행복하게 느끼는 것을 찾아서 그것을 하려는 행위 자체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오랜 시간을 투자해서 그것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 남들의 이야기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남들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것들을 가져다가 쌓아 둔다. 그것은 각종 제품이 되며, 해야 할 일이 되면, 해야만 행복함을 증명 받는 일이 된다.
 
그래서 머리 속엔 늘 뭔가 해야 할들로 가득하다. 신년이 되면 동해를 가서 뜨는 해를 봐야 하고, 여름이 되면 피서를 떠나야 한다. 가끔 외식을 해야 하며, 해외 여행도 가야 한다. 사둔 옷이 이미 가득한데도 매년 계절이 바뀔 때 입을 옷이 없어서 옷을 사야 하고, 충분히 더 쓸만한데도 새로운 신제품으로 바꿔야 한다.
 
이런 모든 행위는 돈을 쓰고 시간을 소비 시킨다. 돈은 써도 상관이 없지만, 이렇게 소비된 시간은 도대체 어떤 의미가 될까?
 
사실 우리는 냉장고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착각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정말로 좋은 식 재료를 원한다면 냉장고에 넣어서 보관하지 말고 당일 날 모두 먹는 것이 제일 좋다. 하지만 우리의 머리 속에서 냉장고는 더 좋지 않는 식 재료를 먹는 도구라는 인식을 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

 

가장 좋은 식재료는 밭에서 바로 캐어 낸 것이고, 가장 행복한 순간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이 순간이어야 한다. 그것을 미래를  위해 저장하고, 과거에 저장된 것을 꺼내는 것은 비슷하지만 이미 오래되어서 맛이 줄어든 채소와 같다.
 
많은 이들이 당장 행복한 것보다는 미래를 위해서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이 많으며 그 덕분에 바쁘게 사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끝없이 움직이고 그 덕분에 활기차게 사는 이들을 보면서, 자신의 느슨한 삶에 대한 반성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들은 모두 많은 냉장고를 가졌을 뿐이다. 바쁜 것은 결코 행복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정말로 큰 착각이다. 물론 바쁜 것 자체를 행복으로 느낄 수 있다. 그것은 존재감을 만족시킨다. 하지만 존재감은 우리를 얽매는 가장 무서운 도구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변화되는 삶을 경험하면서 살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더 자신을 고정시키고는 그것이 자신에게 가장 맞는 행복이라고 스스로에게 매일 교육시키는 삶을 산다. 물론 정말로 행복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실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도 참 많다. 그리도 행복한 웃음을 짓는데도 말이다.
 
그것은 많은 돈을 벌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서도, 좋은 남편과 아내를 만났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서도, 새로 산 집에 입주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서도, 진정한 사랑을 만났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서도, 얼마 후 떠날 유럽 여행을 갈 계획을 세우고 있는 사람들에게서도, 몇 년 만에 너무도 사고 싶었던 차나 가방과 같은 명품을 사는 사람에게서도 느껴진다.
 
심지어 TV에서 가끔 방송되는 자연 속에서 산다고 나오는 사람들에게서도 마찬가지다.
 
정말로 좋은 것은 외부로 표출되지 않는다. 그런 것들은 그냥 안에 머무른다. 너무도 좋다면 그냥 그것만으로도 만족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행복을 밖으로 표출하는 이유는 단 하나뿐이다. 그것이 바로 충분히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이들의 동의를 얻어서 추가적인 행복을 원하는 것이다.
 
사진을 찍는 것이 너무도 행복한 사람은 사진을 찍은 후 그냥 버릴 수 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을 너무도 행복해 하는 사람은 그림을 그린 후 버릴 수 있다. 그 어떤 것도 그 자체를 너무도 좋아한다면 그 자체의 행위로 끝난다. 우리가 그것을 자꾸 다른 이들에게 공개하는 이유는 바로 덜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더해서 그것으로 어떤 경제적 이득을 얻고자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것들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단지 어떤 이유로 인해서 자신이 원하든 아니든 어떤 곳에 고정되었고 더해서 행복하고 싶다고 해서, 현재 자신의 자리가 그 어떤 자리보다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자리라고 합리화 하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결국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고 고집스럽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정될 수 없다. 우리는 늘 변한다. 육체도 변하고 생각도 변하고 마음도 변한다. 이렇게 늘 변화무쌍한 삶의 본질을 거스르고 자꾸 고정시키려고 한다. 그것은 움직이지 않는 죽은 물고기와 같다. 물고기가 힘이 넘쳐서 팔딱거릴 때 살아 있는 것이다. 움직임이 멈추면 죽은 것이다.
 
안전함은 행복의 요소이지만, 행복이 안전함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안전함을 행복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우리는 돈에 의지하는 삶을 산다. 돈만이 안전함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고정된 것은 안전함을 보장해주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자체로 행복해질 수는 없다. 단단하게 뿌리를 박은 나무도 바람엔 흔들려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부러지고 만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작은 흔들림조차 거부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 우리가 무겁게 짊어지고 걷고 있는 부담스러운 짐이 되고 있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재미와 행복  (0) 2015.02.14
감각의 한계  (0) 2015.02.11
여우의 신포도  (0) 2015.01.20
행복해야 할 이유  (0) 2015.01.19
절망에 대해서  (0) 2015.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