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여우의 신포도

아이루다 2015. 1. 20. 09:06

 
밤하늘에 떠 있는 무수히 많은 별들을 보다가 보면, 도대체 저 많은 별들의 숫자가 얼마나 되고 더해서 그 수 많은 별들이 모인 은하는 또 얼마나 많이 되는지를 생각하다가, 문득 자신이 정말로 초라해지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수천 억 개의 별이 모인 은하가 또 수천 억 개가 있다고 하는데, 그 별들이 우리의 태양처럼 몇 개의 행성들을 거느리고 있다면 과연 이 우주에는 얼마나 많은 행성들이 존재할까? 그리고 그 중에서 이 지구라고 불리는 바닷가 모래알보다도 존재감 없는 행성에서 또한 수십 억의 인간 중 하나 뿐이며, 지구가 존재했던 수십 억년의 시간 중에서 겨우 백 년을 살다가 죽는 우리 자신을 떠올리다 보면, 어쩌면 그 초라함은 당연한 것일 것이다.
 
그래서 가끔은 세상으로부터 한걸음 물러나서 세상을 바라보면, 개인의 희로애락, 다른 존재와의 갈등, 사회를 시끄럽게 하는 온갖 문제들 역시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럴 때마다 이 희미하고 존재감 없는 우리들이 추구하는 그 모든 가치와 그것으로 인해 벌어지는 수 많은 사건과 갈등을 한꺼번에 몰아서 그것들이 모두 의미 없음을 한탄하기도 한다.
 
그 덕분에 백 년도 못살면서 천 년을 걱정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스스로 비웃는 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백 년도 못살지만, 우린 손 끝에 가시 하나가 박혀서 그것이 곪고 붓고 아프면, 길을 가다가 갑자기 너무도 등이 가려운데 손이 닫질 않으면, 새 신을 신어서 뒤꿈치가 까져서 걸을 때마다 아프면, 속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갔는데 정밀 검사를 해봐야 한다는 소리를 듣는 순간, 그 수 많은 별이나 셀 수 없는 지구와 같은 행성이나 이 지구 상에 있는 수십 억 명의 인간에 대한 관념들은 모두 사라지고, 그 순간엔 자신에게 찾아 온 걱정과 고통으로 인해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다가 다시 그 고통이 사라지면, 다른 이들이 겪는 또 다른 형태의 그런 고통들을 바라보면서 백 년도 못살면서 천 년을 걱정한다고 말한다. 즉, 자신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우린 초연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우리들의 이런 태도는 왜 나타나게 될까? 다른 이들은 그것을 갖지 못해서 안달이 나서 사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은 뭔가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믿기 때문일까? 돈을 위해, 명예를 위해, 체면을 위해, 권력을 위해 무엇인가를 끝없이 하고 사는 이들을 바라보면서 우리 인간의 삶의 허무성을 지적하고, 그렇게 살지 말라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그런데 정말로 우리는 그런 것들을 바라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갖지 못하니 그런 것들은 별 가치가 없다고 스스로 세뇌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가끔 로또 1등이 되어 수십 억이나 수백 억의 돈을 벌었던 사람이 기껏해야 10년만에 모든 돈을 탕진하고 로또가 되기 전보다도 훨씬 좋지 않은 삶을 사는 기사를 보곤 한다. 또한 부잣집에서 태어나 부모의 재산을 마구 써대다가 결국 집안이 망했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그리고 '돈이 인생에서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라고 말하거나 먼저 '인성을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인간은 참으로 다양한 형태의 행복을 추구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의 행복은 다른 이들에게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로또에 당첨되어 수백 억을 벌었지만, 그 돈을 흥청망청 금새 다 써버리는 사람은 그것을 쓰는 것이 행복 했을 것이다. 단지 그 사람의 문제는 미래 예측 능력이다. 인생은 겨우 백 년이지만, 돈은 쓰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돈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있어야 행복하다. 그 이상이 되면, 우리는 돈의 노예가 된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들이 끝없이 많은 돈이 있길 바랄지도 모르지만, 너무도 많은 돈이 있으면 우리가 사는 삶에서 소소한 즐거움이 많이 사라지고 만다.
 
물론 어떤 이는 매우 사치스러운 삶을 사는 것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경우엔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하지만 평소에도 아끼고 살고, 물건 값을 깎아서 사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은 돈이 필요 이상으로 많으면 그 행복을 잃어버리고 만다.
 
이것은 마치 게임을 할 때, 치트 키를 쓰는 것과 같다. 즉, 하고 있는 게임에서 자신이 제어하는 주인공을 무적 상태로 만들어서 적을 모두 죽이는 것은 잠시 신나지만, 금새 그 게임을 지겨워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한번이라도 이것을 맛본 사람은 다시는 그 게임에서 처음에 느낀 재미를 찾을 수 없다.
 
돈이 많은 사람들의 불행은 바로 이것이다. 감당할 수 없는 돈을 가졌거나, 돈이 너무 갑자기 생겨서 도저히 소화해 낼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겪는 고통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경우엔 거의 대부분 파멸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도 잃고 돈도 잃고 인생도 잃는다.
 
이 경우를 제외하고는 돈은 많을수록 좋다. 우리가 '돈이 행복의 열쇠는 아니다' 라고 말하는 것은 돈을 벌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예술가도, 시인도, 철학자도 마찬가지다. 인간 사회에 소속되어 사는 이상, 돈이 없으면 우린 죽는다.
 
단지 돈은 행복을 얻는 중요한 도구라는 점에서 한계를 가지고 있다. 즉, 돈 = 행복이 아니고 돈은 행복을 위한 가장 필수적인 조건이 된다. 그리고 이 필수적인 조건은 많을수록 좋은데, 능력에 따라 가질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무리한 욕심을 내는 것은 결국 행복 자체를 망치는 꼴이 된다.
 
돈은 행복의 열쇠가 맞다. 하지만 자신의 능력 이상의 돈은 불행이며, 더해서 자신이 가질 수 없는 돈에 욕심을 내는 것은 원래 최종 목적인 행복을 파괴하는 현상을 가져온다. 그래서 우리는 돈에 대해서 어느 정도 선에서 자신의 한계점을 인정해야 한다. 실제로 돈은 아무나 많이 버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인정을 했다고 해서 우리 스스로를 돈으로부터 해방되었다고 믿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마치 우주를 바라보면서 인간의 한계점을 말하는 것과 같다. 그 자신도 그 인간 중 일부이면서 마치 인간을 벗어난 듯, 삶과 죽음을 초월한 듯 말하는 것은 발바닥에 가시만 박혀도 금새 깨지고 만다.
 
그나마 우리가 돈으로부터 해방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충분히 많은 돈이 있을 때밖에 없다. 돈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믿거나, 자신은 돈의 가치를 추구하지 않겠다고 믿는 사람들은 자신의 소중한 존재, 즉 아내나 남편 그리고 아이나 부모가 치명적인 병에 걸려서 큰 돈을 들여서 수술을 해야 살 수 있는 처지에 놓였을 때, 돈이 없어서 수술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이야기는 인간 존재에 대한 초월함이나 돈에 대한 해방을 추구하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다. 이 말은 우리가 그런 것들에 대해서 너무도 명백한 한계를 가지고 있는데도 스스로를 착각 속에 빠뜨려서 마치 자신은 다른 이들과 달리 그런 세속적인 것들에서 벗어 났다고 믿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실제로는 인정하는 태도가 훨씬 더 나아 보일 때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의 거품을 걷어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이다. 인간은 원래부터 그 한계점이 명확한 존재이다. 이것을 부정하고 스스로 뭔가 다른 존재가 된 것처럼 자신을 인식하는 태도는 스스로의 주변에 벽을 치는 행위가 된다.
 
물론 그 안에서 자신의 생각에 안주하고 더해서 만족감을 느끼고 산다는 것도 일종의 인생을 사는 한 가지 방법일 수는 있지만, 그런 착각 속에서 평생을 사는 것이 어찌 스스로 믿는 진실을 찾은 것이란 말인가.
 
우리가 바닷가 모래알보다 못한 존재이고, 돈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할 때, 뭔가 다른 길을 찾으려고 노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그렇지 않고 스스로를 그런 것들로부터 벗어났다는 착각을 하고 살면, 다른 길을 찾으려고 조차 안 하게 된다.
 
결국 많은 대다수의 많은 이들은 돈의 가치에 함몰되어 있고, 그것을 보면서 자신은 그들과 다르다고 느끼는 존재들 역시도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에 매몰되어 있기는 마찬가지다. 단지 그것이 돈이 아닌 것 뿐이다.
 
물론 가능만 하다면, 돈보다는 자신만의 가치를 추구하면서 사는 것이 좋다. 이것은 단순하게 생각해도 좋은데, 경쟁이 치열하지 않기 때문이며,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더해서 그런 가치는 보통 자신이 가장 잘하는 분야에서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돈 버는 재주가 없는 사람에게 이보다 더 쉽게 얻을 수 있는 가치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뒷짐지고 물러나서 '저 포도는 분명히 신 포도니까 먹지 않을 거야' 라고 말하고 떠나는 여우의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여우는 단지 그 포도를 딸 능력이 없었을 뿐이다. 물론 정말로 포도가 시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각의 한계  (0) 2015.02.11
버림의 미학  (0) 2015.01.26
행복해야 할 이유  (0) 2015.01.19
절망에 대해서  (0) 2015.01.10
변화의 시작 조건  (0) 2015.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