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행복해야 할 이유

아이루다 2015. 1. 19. 16:33

 

어떤 대상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사용되곤 한다. 하나는 그 본질을 계속 찾아가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으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을 분석함으로써 본질에 다가가는 방법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행복에 대해 알고 싶을 때에도 같은 원리를 적용할 수 있다. 하나는 바로 행복 그 자체가 무엇인지를 분석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행복으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을 통해서 행복을 이해하는 방법이다.

 
원래 나는 어떤 것에 대해서 쓸 때, 가능하면 첫 번째 방법인 본질적인 접근을 추구하는 편이다. 그래야 착각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해와 달에 대해 알고 싶을 때, 단순히 지구의 관점에서 보면 마치 둘은 같은 크기의 물체로 인식될 수 있다. 실제로 눈으로 보는 크기는 거의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와 달이 일종의 반대 개념으로도 인식 된다. 이것은 아주 오랫동안 인간이 잘못 생각해온 착각이다. 천문학이 발달하면서 이젠 해는 스스로 빛을 내는 항성, 달은 그것과는 비교도 안되게 작지만, 지구와 가까운 거리에 있고 태양빛을 반사하면서 밤에 빛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둘은 실제로 비교 대상이 아니다.
 
그렇지만 어떤 경우엔 단지 현상만 가지고 보는 것이 좀 편한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서 밤하늘의 별자리를 바라 볼 때, 지구에서 거리까지를 생각하면 도저히 별자리를 그릴 수 없다. 그때는 그냥 눈에 보기에 밝은 별을 기준으로 그어야 편하다.
 
사설이 길었는데, 아무튼 오늘은 행복의 현상에 대해서 글을 써 볼 생각이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길 원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행복하길 원할까? 물론 행복하면 기분이 좋고 유쾌해지면서 뭔가 설명할 수 없이 좋다. 이것이 행복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아마도 우리 몸 내부적으로 호르몬이 분비되어서 그럴 것이다. 뭐, 지금 그런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제 우리가 행복하면 좋은 이유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좀 생각해보자. 그냥 막연하게 행복하고 싶다는 것 말고, 정말로 행복하면 무엇이 좋을까?
 
일단 가장 중요한 것은 몸의 컨디션이 좋아진다. 우린 행복을 느낄 때 몸과 마음이 다 편해진다. 이것은 매우 좋은 느낌이다. 이것은 아마도 긴장이 풀리는 현상일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몸이 편해져도 행복을 느낀다. 온천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딱히 행복한 상황이 없어도 몸에서 주는 느낌이 좋아서 기분이 매우 좋아진다.
 
인간에게 있어서 육체적 만족감은 생각보다 매우 중요한 행복 요소이다. 행복해서 몸이 편해지든, 몸이 편해져서 행복해지든 상관없이 우리의 행복 중 많은 부분이 육체적 만족으로부터 온다. 음식을 먹는 것도 실제로는 오감을 통해 받아들이는 좋은 감각적 느낌을 즐기는 것이다. 잠을 자거나 똥을 싸는 것도 마찬가지다.
 
행복이 좋은 두 번째 이유는 바로 행복하면 착해진다는 점이다. 우리는 실제로 이 부분은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감정적 기복을 가지고 있는데, 어떨 땐 좀 착하고, 어떨 땐 덜 착하다. 또한 어떨 땐 쉽게 넘어가는 상황을 어떨 땐 폭발하여 화를 내기도 한다.
 
이것을 결정하고 있는 것이 바로 현재 얼마나 행복한가에 대한 여부이다. 그래서 흔히들 어디선가 기분이 나빠진 상태에서 연인을 만나서 괜한 트집과 화를 내는 경우도 많다. 이럴 때 당시는 죽일 듯 밉지만, 조금 지나면 자신이 왜 그리 화를 냈는지 이해하기가 힘들고 더해서 금새 잊어 먹는다.
 
사자나 곰 같은 거대 육식 동물들도 배가 부를 땐, 강아지와 같다. 동물이 포악스러워지는 것은 배가 고플 때이다. 배가 고프다는 것은 불행하다는 뜻이고 배가 부르다는 것은 행복하다는 뜻이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모두 기분이 좋을 땐 착해진다.
 
이 착한 상황은 예상치 못하게 좋은 효과를 가져다 준다. 그것은 바로 주변 사람들에게 친절해진다는 점이다. 아무리 못된 신데렐라의 계모도 만약에 자신의 딸이 왕자와 결혼을 할 수 있었다면, 당일 날 신데렐라에게 하루 휴가를 줬을지도 모른다. 계모가 그리 포악해진 이유는 바로 자신의 딸의 불행 때문에 자신이 불행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게 오랜 시간 행복하게 보낸 사람들은 기질 자체가 부드럽게 바뀐다. 그래서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성격이 부드럽고 모가 나지 않았다. 이런 아이들은 거의 대부분의 상황을 좋게 넘어가고 화를 웬만해서는 안 낸다.
 
이러면 어떤 것이 일어날까? 당연히 아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들의 평가도 좋게 된다. 우리 인간에게 자신에게 호의를 품은 사람은 많을수록 이득이 커진다. 즉, 이런 착한 상태에서 오랜 시간을 산 사람은 주변 사람들에게 인덕을 많이 얻어서 이후 삶이 더욱 풍요로워진다. 더해서 인맥이 넓어져서 사람을 만나는 행복도 누리면서 살아가게 된다.
 
이 얼마나 좋은 효과인가? 우리가 행복해야 하는 이유는 실제로 첫 번째보다 이 두 번째 이유가 더 중요할 것이다.
 
행복이 좋은 이유의 세 번째는 시기나 질투심과 같은 자신을 비하시킬 수 있는 감정이 덜 든다는 것이다. 이것도 참 중요한 것인데, 누구를 부러워하는 정도까지는 상관없지만, 본격적으로 질투하고 시기심이 들면 삶 자체도 불행해질 뿐만 아니라, 그런 감정이 드는 자신에 대한 혐오감까지 생겨난다.
 
네 명의 친구가 모두 같은 회사를 지원했다고 했을 때, 그 모두가 합격을 하면 그들의 우정은 유지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중 하나가 탈락을 하게 되면, 나머지 세 명은 탈락한 한 명과 자연스럽게 거리가 멀어진다. 왜냐하면 합격한 사람들은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이고, 탈락한 사람은 질투심이 생겨서 결국 자격지심으로 인해 만남을 유지하기가 힘들다.
 
우리가 보통 어떤 것에 질투를 느끼지 않는 것은 둘 중 하나이다. 첫 번째는 그 대상에 관심이 없어서이고, 두 번째는 이미 자신도 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흔히 자신이 관심이 없는 분야에 대해서 별다른 감정이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신이 마치 질투를 하지 않는 존재인 냥 착각하게 된다. 설령 관심이 있더라도 주변 사람들에 비해서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다면 질투심이 나지 않는다.
 
고등학교 시절에 젤 못나고 찌질한 친구가 사회에 진출한 후 뭔가 큰 운이 따라서 외제차를 몰고 왔을 때, 그 친구를 무시하던 친구들은 변함없이 계속 그 친구를 무시하고, 그 친구의 운을 폄하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질투심이다. 우리는 이런 경우를 흔히 본다. 단지, 질투심을 대 놓고 표현하지 않을 뿐이다.
 
평소에 성격이 매우 좋아 보이는 어떤 주부도 아들이 어떤 대학교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후, 옆집 아들이 같은 대학교에 지원해서 합격한다면 그것을 온전히 축하해줄 수 없다. 그러려면 자신의 아들 역시도 합격 했어야 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행복했던 그 주부는 그 정도는 숨길 수 있다. 혹은 그것을 질투가 아닌 부러움 정도로 넘길 수도 있다.
 
실제로 이 세 번째 현상으로 인해서 두 번째 착해 보이는 착시가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는 충분히 행복하다면 다른 이의 행복을 축하해 줄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
 
행복이 좋은 이유의 네 번째는 바로 행복의 절대 필요 양을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좀 어려운 개념이 될 수 있는데,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행복을 담을 수 있는 내부적 그릇이 하나씩 있다. 이것은 물론 매우 깊어서 잘 차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아무튼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그릇은 일종의 완충 작용을 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평소에 열심히 행복해하면서 그릇을 채워두면 나중에 불행이 일어나도 그 행복 그릇을 소비하면서 버텨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일로 인해서 그 그릇이 바닥이 나게 되면 우리는 본격적으로 불행함을 느끼게 되면, 그럴 경우 앞에서 말한 모든 행복의 좋은 것들이 이젠 역으로 불행이 나쁜 점으로 동작하게 된다.
 
우리는 컨디션이 나빠지고, 성격이 더러워지며, 사람이 떠나고, 질투심에 사로 잡혀서 살게 되는 것이다.
 
누가 이런 상태를 바라겠는가? 실제로 이것은 스스로의 명줄을 줄이고 있는 행위이기도 하다. 이런 식으로 오래 살게 되면 그 스트레스로 인해서 수명이 줄어든다. 그리고 건강에도 치명적으로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이다.
 
아무튼 이 그릇은 삶을 사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우리가 어떤 불행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을 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가정에서 아이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며 큰 행복을 얻은 아빠는 직장이라는 불행한 공간에 나가서도 버텨낼 수 있는 힘을 낼 수 있다. 이것은 바로 아빠가 아이들과 놀면서 자신의 행복 그릇을 많이 채워 넣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행복한 순간만이 연속될 필요가 없다. 어디선가 행복감을 충분히 채울 수만 있다면, 불행한 곳에서도 꽤나 오래 동안 버텨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채울 때 중요한 것은 바로 얼마나 강렬하게 행복했느냐의 여부이다.
 
우리는 보통 자신이 행복한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얼마 정도까지 행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모른다. 정말로 어디까지 행복해 봤는지 알 길이 없다.
 
그래서 보통은 자신이 최대한 느끼는 행복 수준을 최고로 인식한다. 하지만 실제로 행복감의 깊이는 알 길이 없다. 정말로 행복한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지 알 길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냥 표정을 통해 상황을 통해서 그것을 유추할 뿐이다.
 
그것은 평생 운동을 하다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의 행복이나, 정말로 가고 싶었던 대학이나 직장에 합격했을 때 행복이나, 너무도 사랑하는 이와의 결혼 그리고 소중한 아이와의 관계 등등.. 아마도 누구나 운이 좋다면 한 번쯤 느껴볼 수 있는 행복감일 것이다.
 
이런 깊은 행복감은 행복 그릇을 차고 넘치게 채워준다. 그래서 그 후로 오랜 시간 동안 특별히 행복을 소비해버리지 않고 유지만 해도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그 그릇이 바닥이 나지 않도록 정말로 꾸준히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욕심이 많을수록, 욕망이 클 수록 이 그릇은 더 쉽게 바닥을 들어낸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욕심도 줄이고 욕망도 줄이는 훈련도 필요하다.
 
일단 행복 그릇이 한번 바닥이 나면, 그 후 대책을 세우기가 힘들다. 이것은 마치 은행에 들어 있던 돈을 모두 써버리고 이젠 빚을 내어서 살아야 할 형편에 놓인 사람과 같다. 물론 빚을 내면 당장은 살 수 있다. 하지만 빚은 계속 이자를 발생시킨다.
 
우리가 행복 그릇을 바닥내고는 행복 하려고 다양한 노력을 하는 것이 바로 이런 효과를 불러 일으킨다. 성격이 피폐해지고 삶이 우울해지면서 인간 관계도 힘들고 시기와 질투심으로 인해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게 된다. 이러니 어떻게 다시 원래대로 행복 그릇을 채울 수 있을 것인가.
 
원래 우리는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의 사랑으로 인해서 이 행복 그릇을 가득 채운 채 청소년기를 보내게 된다. 그래서 그 무렵 아이들은 정상적인 상태라면 늘 웃고 살게 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는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아는 것들이 많아지고 욕망이 커지게 된다. 그리고 이때 어떤 이들은 잘 풀려서 행복 그릇을 계속 잘 지킬 수 있지만, 어떤 이들은 몇 번의 큰 실수나 실패로 인해서 금새 행복 그릇을 바닥내게 되어 버리고 만다.
 
그리고 이것이 오랜 시간 계속되면 이 행복 그릇은 점점 작아져서 결국 없어져 버리고 만다. 이것을 우리가 우울증이라고 부른다.
 
일단 우울증에 빠지면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이 행복 그릇 자체가 없어진 상태로 발생한다. 도대체 행복할 수가 없고 가끔 행복해도 전혀 비축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또한 조울증까지 나타난다. 그리고 조울증에 걸린 사람은 결국 자살할 확률이 높아진다.
 
욕심이 많은 사람 역시도 행복 그릇이 줄어드는 효과를 가져온다. 그래서 결국 끝없는 감정 소모만을 하게 되는데, 결국 그것으로 인해서 삶이 매우 힘들어지고 불행해지고 만다.
 
우리 인간이 행복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것들 때문이다. 특히 네 번째 언급함 행복 그릇은 우리에게 닥칠 미래의 불행에 대한 큰 대비책이 되어 준다.
 
이렇게나 중요한 행복에 관해서 우리가 가진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우리들 자신이 정말로 행복한지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점이다. 이것은 많은 이들이 자신이 행복하다고 착각하고 사는 것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정말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아는 것은 그것을 위해 훈련을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행복하기 사는 법을 배우기 보다는 안전하게 사는 법을 배운다. 그래서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들을 이루고 지키기 위해 자신의 행복을 정의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착각의 가장 큰 이유로 작용한다.
 
물론 안전한 것도 행복의 일종이긴 하다. 하지만 안전한 것은 행복 그릇을 채울 수 있을 정도의 행복은 아니다. 그것은 단지 소모를 하지 않을 뿐이다. 우리가 만약 자신을 정말로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큰 불행을 당하게 되면 우린 금새 무너지고 만다.
 
그래서 실제로 현재 행복하게 사는 듯 보이는 사람들 역시도 단지 불행보다는 행복한 상황이 더 많이 벌어져서 버텨내고 있는 경우도 많다. 즉, 이들 역시도 행복 그릇은 거의 비었지만, 불행할 상황이 거의 없어서 행복한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것을 일명 조건부 행복이라고 한다. 경제적 문제가 없거나, 자녀 문제, 부부 문제 등이 적은 이들의 삶이 바로 그런 삶이 된다. 무난한 삶이라고도 하고 그래서 또한 전형적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삶은 그 조건들이 유지만 된다면 평생 그렇게 행복해 보이면서 살다가 죽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 그 중 하나라도 틀어지게 되면, 행복 그릇을 채우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 결국 그 단 한번의 치명적 불행으로 인해 완전히 삶을 놓아 버리는 경우도 벌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이 현재 행복하다면, 이것이 조건부 행복인지를 고민해봐야 하고, 현재가 불행하다면 자신이 무엇을 통해 행복할 수 있을지 그리고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 것 같은 것들이 정말로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지 고민해야 한다. 이것은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결국 이것만이 유일한 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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