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변화의 시작 조건

아이루다 2015. 1. 9. 09:13

 
현대 사회엔 각종 중독 증상을 일으키는 것들이 있다. 흔한 예로 도박, 술, 흡연, 마약과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더해서 좀 덜해 보이긴 하지만 게임, 운동, SNS, 쇼핑 그리고 기타 그 여파로 현실 생활에 좀 심각한 영향을 주는 많은 것들이 모두 중독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여파의 파장이 오래되고 클수록 국가 차원에서 건강한 구성원을 위한 그것을 벗어날 수 있는 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경험은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도박, 술, 흡연, 마약 등의 중독 증상을 벗어나기 위한다면, 나라에서 재원을 대기 때문에 개인은 비용을 내지 않고 참여할 수 있는 각종 프로그램이 개설되어 있는 것으로 안다.
 
아무튼 이 모든 종류의 중독을 해결하는 프로그램이 공통적으로 반드시 진행하는 절차가 바로 자신이 중독자라는 것을 스스로 온전히 '인정' 하는 과정이다.
 
즉, 자신이 어떤 대상이든지, 이미 스스로는 되돌리 수 없는 단계를 넘어 섰다는 것, 즉 중독 상태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인데, 이것이 주변 사람들이 보기엔 '왜 저 사람은 그걸 인정하지 못할까' 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그 당사자들은 끝까지 자신의 중독을 부정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런데 이 웃기는 상황이 벌어지는 이유는 정말로 단순하면서 서글프다. 왜냐하면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의 삶이 더 이상 스스로 조절 가능한 능동적 삶을 살지 못하고 중독된 대상에 따라 그것에 종속된 삶을 사는, 자유를 뺏기고 또한 그것을 통해 즐거웠던 과거도 부정되고 더해서 미래까지 부정되는 심각한 상태에 놓이는 '현실'을 직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오랫동안 믿어온 그릇된 신념이나 사상과 비슷한 증상인데, 이것을 스스로 부정하는 순간 지난 수십 년간의 시간의 한 순간에 무의미해지기에 정말로 웬만한 충격 아니고서는 이것이 정말로 옳지 않다는 객관적 증거가 수 없이 나와도 스스로 그것을 인정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서 예전에 우주의 생성에 대한 가설에 대해서 두 그룹이 아주 심하게 대치를 했는데, 하나는 빅뱅에 의한 팽창설이고 다른 하나는 고정된 정적 우주론이었다. 두 그룹은 아주 맹렬하게 서로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비웃곤 했는데, 심지어 빅뱅이란 이름조차도 정적 우주론을 주장한 학자가 팽창론을 비웃기 위해서 만든 용어였다.
 
그 후 빅뱅에 대한 많은 과학적 근거가 계속 발견되어서 결국 우주는 빅뱅으로부터 출발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 되었지만, 정적 우주설을 주장한 과학자는 죽을 때까지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도 이 사람은 그 후 정말로 거의 확실한 증거가 나왔더라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눈과 귀를 막는 선택을 했을 것이다.

 

* 이 학자의 이름은 프레드 호일이다.
 
아무튼 그래서 진정한 의미의 '인정' 은 모든 중독을 벗어나는 절차의 시작이 된다. 이것은 스스로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으로써 매우 중요한 절차이다.
 
왜 인정이 중요한 절차인가 한지 간단히 생각해보자.
 
우리가 문제를 풀어 낼 때 가장 필수조건이 무엇일까? 문제를 푸는 능력일까? 아니면 문제를 푸는 기회나 시간일까? 실제로 이런 것들도 중요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문제 자체가 있어야 풀어 낼 수 있다. 사건이 없는 셜록 홈즈는 그냥 실업자일 뿐이다. 당연하지만, 문제는 해결책에 대한 필수 조건이다.
 
따라서 중독 문제를 해결해내기 위해서는 중독자가 자신이 '중독' 이라는 문제를 가졌다는 것을 인정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로 당연한 것인데, 만약 그 자신이 중독이 아니고 언제라도 끊을 수 있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결코 문제화 될 수 없다. 이 중독 말고도 우리 인간들이 가진 수 많은 문제점들이 해결이 안 되는 이유 역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자신이 그런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해결할 필요를 못 느낀다.
 
실제로 중독자들이 가진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가 바로 그 자신은 얼마든지 마음만 먹으면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믿음이다. 그래서 그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때 자신의 약함과 어리석음과 의지력 부족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인정은 단지 중독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시험을 보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점수가 몇 등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고, 현재의 자신의 학습 진행 상태를 객관적인 정보를 통해 인식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시험을 통해 받은 점수를 통해서 미래의 자신을 위해 부진한 것들을 채우라는 목적을 가진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이 목적이 변질된 지 오래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런 과정이 있어야 자신이 어느 과목에 문제가 있는지, 자신의 공부 방식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를 파악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냥 시험을 보고 점수가 낮으면 오늘은 운이 없어서 점수가 낮았다는 식으로 받아들여 버리고 나면, 실제로 다음 시험에서 어떤 변화도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대다수의 학생들이 이런 상태이다.
 
원래 말이 쉽지, 자신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물론 우리는 싫어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명백히 외부로 드러나는 것들인데, 외모, 키, 지능, 운동 능력 등이 그런 것들이다.
 
하지만 이런 것과는 달리 인간 관계 능력, 화술, 공감 능력, 이해력, 센스, 유머 감각, 업무 능력, 글쓰기 능력, 패션 감각, 음감, 노래 실력, 미적 감각, 미각 등과 같이 그 측정이 매우 미묘한 것들은 보통은 자신은 그것에 대해서는 최소 평균치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대부분의 외적으로 명확히 드러나는 것들은 학교를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깨지기 때문에 그나마 학교 다닐 때 열등감에 휩싸여 있다가도 사회에 진출한 후로는 보통, 그것을 대 놓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잊고 살면 된다. 실제로 그런 것들은 이미 모두 삶에 적용되어서 다들 그것에 맞게끔 살고 있기에 실제로 그것으로 인해 어떤 비난을 받을 필요도 없다.
 
하지만 회사 내에서 중요한 업무 능력과 같은 것은 그 측정 방식이 너무 미묘해서 누군가는 시간을 잘 지키는 사람, 누군가는 늦게까지 사무실에 남는 사람, 누군가는 남들보다 한 발 먼저 앞서 나가는 사람, 누군가는 윗사람에게 아부를 잘하는 사람, 누군가는 묵묵히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 누군가는 회의시간에 활발하게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 등으로 자신이 주관적 판단 아래 잘하는 사람을 평가 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자신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를 정확히 알 방법이 없다. 그리고는 자신의 기준으로 세상을 보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저렇게 하면 안 된다고 충고를 해 준다.
 
물론 이런 것들에는 어떤 정답은 없다. 누구나 자신의 잣대로 세상을 보게 되어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바로 자신이 생각하는 그 모든 것이 정답은 아니라는 점이다. 즉, 아무리 확신이 있고 명확하다고 믿더라도 그것이 잘못될 수 있다는 점을 늘 마음 속 한 구석에 새겨두어야 한다.
 
그래야 어느 날 우리 자신이 자신도 모르게 알콜 중독이 되거나, 담배 중독이 되거나, 심하면 마약 중독이 되었을 때 그것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 시작점이 되는 것이다.
 
그나마 이런 사회적으로 손가락질 받는 것들은 인정하기가 조금 쉽지만, 흔히 개인의 취향이라고 할 수 있는 수 많은 것들은 도대체 어떻게 스스로 인정을 할 수 있겠는가?
 
우리 인간은 원래 현실적 자신보다 생각으로 믿는 자신에게 훨씬 후하게 점수를 준다. 그래서 누구나 자신의 실제 모습보다는 자신이 믿고 싶은 모습으로 포장하고 살아간다. 심지어 외모조차도 그렇다.
 
그래서 예쁘지 않아도 '매력 있게 생겼다', '귀여운 구석이 있다', '미소가 선하다', '턱 선이 아름답다' 등으로 단점보다는 장점을 주로 바라보려고 한다. 문제는 그것이 단순한 긍정적인 생각으로만 그쳐야 하는데, 이것을 진짜 자신의 모습으로 착각을 하는 경우가 벌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상속의 자신과 현실의 자신의 차이는 다른 이들의 스쳐 지나가는 말에 의해서 뜬금없이 드러난다. 즉, 스스로는 나름 예쁘다고 자부를 하거나 나름대로 능력 있다고 생각하고 살다가, 다른 사람이 그냥 하는 말 중에서 당사자의 외모에 대한 비하나 혹은 능력이 떨어짐을 언급하면 그것으로 인해 깊은 상처를 받는 것이다.
 
물론 이런 경우에 일단 다른 이에 대해 마구잡이 식으로 잣대를 들이대고 재단을 하는 사람들 자체가 원래 큰 문제이다. 하지만 그런 어처구니 없는 말들을 신경 쓰면서 자신의 중심을 잃는 사람들 역시도 평소에 너무도 자신에 대한 과도한 평가를 해 놓았기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의 차이가 클수록 행복감은 떨어지게 된다. 말 그대로 자기 자신에게 원하는 욕망의 크기가 현실적 자신에 비해서 너무 커서 도저히 그 차이를 줄일 수 없기 때문에 늘 욕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 즉 불행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러다가도 가끔 옷을 사러 갔다가 점원이 의례히 하는 말인 '딱 맞는 옷이네요' 라는 등의 말을 듣기라도 하는 순간 기분이 좋아져서 자신도 모르게 지갑을 열고 만다. 그리고는 결국 쓰지 않아도 될 돈을 쓰고, 또 다신 그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쇼핑을 하러 가게 된다.
 
뭐 이것도 능력만 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것에 심하게 중독되면 감당하기 힘든 돈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비싼 가게일수록 더욱 더 입에 발린 말을 하는데 능숙하기에 결국 더 비싼 곳으로 향하게 된다. 실제로 그래서 쇼핑도 일종의 중독 중 하나로 분류된다.
 
사람들 중에서 온전히 자신에게 만족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는 조금씩 자기 자신에게 크거나 작은 불만을 가지고 산다.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뭔가 어떤 변화를 하고 싶다는 욕구도 가지고 있다.
 
소심한 사람은 대범한 마음을, 용기가 없는 사람은 용기를, 집착이 심한 사람은 쿨함을, 아프거나 몸이 허약한 사람은 건강을, 사람을 잘 사귀지 못하는 사람은 사교성을 갖길 바란다. 하지만 또한 자신이 가진 현재 상태를 벗어날 수 없음을 알기에 이것에 대한 스스로 만든 나름대로 합리적인 장점도 알고 산다.
 
소심한 사람은 다른 이들의 기분을 잘 맞춰주고, 용기가 없는 사람은 괜한 용기를 부렸다가 위험해지는 상황을 모면할 수 있고, 집착이 심한 사람은 그로 인해서 나타나는 집요함의 장점을, 몸이 아픈 사람은 집에서 뭔가 정적인 일들을 할 수 있고, 사교성이 부족한 사람은 자신만의 세상을 바라보는 남들과는 조금 다른 삶을 살 수 있다.
 
이것을 장점으로 받아들여서 스스로 행복하게 산다면 이것 또한 좋다. 문제는 자신에게 가진 불만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난다.
 
그런데 생각만 하고 행동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스스로 아직도 마음 속에서 그것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인정을 제대로 하지 못하니 중독자와 똑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문제가 없으면 해결책이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변화의 시작은 바로 온전한 인정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것만이 유일하게 변화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더해서 이런 종류의 인정은 진지함을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장난으로 끊은 담배는 꼭 다시 피우게 되는 것이다. 담배를 끊고 싶다면 자신에게 진지해지고 담배 중독자란 점을 인정해야 한다.
 
여기에서 담배가 스트레스를 푸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믿는 작은 희망은 그 진지함과 인정을 앗아가 버린다.
 
물론 그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담배를 계속 피우고 싶다면 말릴 필요가 없다. 남들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담배든 술이든 마약이든 도박이든 개인의 선택이다. 말린다고 말려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것을 바꾸고 싶다면 달라진다.
 
그리고 이런 본질적 문제보다도 어쩌면 표면에 드러나는 문제 하나가 우리를 훨씬 더 힘들게 만들지도 모른다. 그것은 바로 자신에 대한 인정을 제대로 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변화를 계획할 때 처음부터 무리한 목표를 세우게 된다.
 
신년이 되면 담배를 끊겠다든가, 하루에 14시간을 공부하겠다든가, 매일 8시간을 보던 TV를 단번에 끊겠다든가, 1년에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 사람이 한 달에 책을 10권을 읽겠다든가, 매일 아침 잠과 사투를 벌이는 사람이 새벽 6시에 일어나 운동을 하겠다든가 하는 등이다.
 
이런 눈에 뻔히 보이는 상황뿐만이 아니다. 게을러서 여행 한번 가는 것이 일인 사람이 캠핑을 다니겠다고 장비를 사는 것이나, 카메라를 사서 사진을 찍겠다고 나서는 일들 역시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게을러서 살림을 하는 것이 귀찮은 사람이 제빵기나 혹은 각종 주방 용품을 사서 요리를 하겠다고 덤비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나타나는 시간과 돈 낭비의 결과를 초래한다. 그리고 그것보다도 더 무서운 자신에 대한 끝없는 실망을 야기시킨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낮아진 자존감은 결국 개인의 행복감을 떨어뜨리게 된다.
 
아침 잠이 많다면 저녁 시간에 활동을 계획해야 한다. 저녁에 술자리가 잦고 아침 잠이 많은 사람은 아예 운동을 시작하면 안 된다. 게으른 사람들은 야외 활동을 필요로 하는 등산, 여행, 카메라, 캠핑 등의 취미 생활을 시작 해서는 안 된다. TV를 보지 않는 시간에 딱히 그것을 대처할 수 있는 시간 보내기 방법이 없는 사람은 TV를 벗어날 수 없다.
 
일단 자신의 성격을 인정하고 그 후로 거기에 잘 맞는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담배를 끊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바로 담배를 서서히 줄여가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식으로 담배를 끊었는데, 하루에 20개피를 피우던 것을 일년에 걸쳐서 하루에 한 개피 피우는 정도까지 줄이는 것이다. 그리고는 최종적으로 끊었을 때 무리가 없게 된다.
 
더해서 담배를 끊음으로써 남는 돈을 모아서 자신이 좋아하는 또 다른 어떤 것을 위해 투자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오늘도 자신이 새벽에 일어나 운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담배를 끊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열심히 노력하면 가족과 잘 지낼 수 있다고 믿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모든 노력은 이미 처음부터 자신의 문제점에 대한 '인정'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성공보다는 실패할 확률이 훨씬 높다. 그렇지만 이 사실도 인정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것은 능력이 없으면 처음부터 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물론 그런 것도 있겠지만, 가능하면 현실적인 계획을 세우라는 것이다. 야외 활동을 그리 즐겨하지 못하는 성격이면서 사진을 찍겠다고 처음부터 수 백 만원 하는 카메라를 사는 것이 문제이다. 이럴 땐 처음엔 싸고 가벼운 카메라를 사서 들고 다니면서 해보고 나중에 결정하는 것이 훨씬 더 낫다. 그리고 잘하면 정말로 게으름을 극복하고 카메라에 빠질 수도 있다.

 

우리들에게 처음에 무리한 시도로 인해서 원래 그것을 제대로 즐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회조차도 망가뜨리는 경우도 참 흔하게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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