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목적의 목적

아이루다 2015. 1. 8. 07:10

 
인간이 하는 일들은 대부분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단 하나만의 목적을 가진 것일 수도 있고, 여러 개를 동시에 목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아무튼 우리는 보통 목적 없는 일은 하지 않는 편이다. 그나마 별 생각 없이 하는 아이들의 놀이와 같은 것들은 목적이 없다고 느낄 수 있지만, 최소한 재미를 위한다는 목적이 있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서, 남들과 친하게 지내기 위해서, 따뜻하기 위해서, 즐겁기 위해서, 새로운 것을 보기 위해서, 맛난 것을 먹기 위해서, 활기찬 생활을 위해서, 건강을 위해서, 미래를 위해서, 아이를 위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평화를 위해서,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심심하지 않기 위해서, 외롭지 않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한다.
 
이렇게 나열된 것은 모두 어떤 행위의 목적이라고 칭해질 수 있는데, 이것 말고도 엄청난 숫자의 목적들이 이 세상엔 존재한다. 아마도 그것을 다 따지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이 목적이 어떤 식으로든 이뤄졌을 때, 그것의 결과는 대충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만족할 만큼 성공한 것, 다른 하나는 불만족스럽지만 남들만큼은 성공한 것, 실패는 아니지만 거의 실패와 다름 없는 것, 마지막 하나는 실패한 것이 된다. 이것을 좀 더 크게 나누면 그냥 성공과 실패로 나뉠 수 있을 것이다. 시험을 보고 합격이나 불합격 판정을 받는 것이 바로 그런 형태로 명확히 결론이 나는 목적의 예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목적이 있고 그 결과가 있다면, 우린 정말로 무엇을 위해 그것을 하는가 이다. 즉, 우린 목적을 위해서 그것을 하는지 혹은 그 목적의 결과를 위해서 그것을 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이것에 대한 답은 쉽다. 그것은 바로 우리는 그 목적에 대한 성공적 결과를 위해서 한다. 즉, 목적은 그 목적 자체보다 그 목적으로 인해 얻어지는 성공한 경우에 얻을 수 있는 결과를 위해서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많은 목적들은 각자 어떤 결과들을 가지고 있을까?
 
예를 들어서 직장을 다니는 목적을 생각해보자. 직장에 다니는 목적은 원래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으나, 지금은 단순화 시켜서 '돈을 버는' 목적만 있다고 치자. 그리고 이것의 성공적 결과는 '월급을 받는 것' 일 것이다. 그렇다면 월급은 우리가 최종적으로 원한 결과인가?
 
이것을 알아내기 위해서 잘 생각해보면, 이것은 직장을 다니는 목적의 숨겨진 목적이다. 그래서 월급도 최종 결과가 아닌 하나의 목적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월급을 받은 목적을 달성하게 되면, 우리는 그 다음 무엇을 할까? 당연히 이 돈을 쓰게 된다. 그렇다면 직장을 다니는 목적은 월급을 받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또한 월급을 받는 것의 목적은 돈을 쓰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여기에서 마지막 목적인 돈을 쓰는 것은 참 다양한 용도로 정의될 수 있는데, 병을 치료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하거나, 은행에 저금을 할 수 있다. 아무튼 잘 생각해보면 어떤 목적으로 돈을 쓰던 간에 그 목적 또한 최종적으로 원한 것은 아니란 점을 알 수 있다. 이것들이 가진 공통적 최종 목적은 과연 무엇일까?
 
병을 치료하는 것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는 목적을 가진다. 아프면 죽기 때문에, 아프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아플 때보다 아프지 않을 때 행복하다. 영화를 보는 것은 영화를 보는 것을 통해 행복하고 싶어한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은행에 저금을 하는 것 역시도 미래에 좀 더 나은 삶을 위한 투자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최종 목표는 아닐지 모르지만, 다시 또 한 번 들어가면 결국 미래의 행복을 목적으로 한다.
 
이것을 좀 더 정리해서 보면, 우리가 '그것을 왜 하는지' 를 질문 받으면 답을 할 때는 보통은 단순히 현재 그것의 목적만을 이야기 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 목적들은 이후 많은 연계된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흔하다.
 
직장을 왜 다니냐고 물으면, 돈을 벌려고 다닌다고 대답하고, 돈을 왜 벌려고 물으면, 돈이 있어야 세상을 살 수 있다고 답하고, 왜 세상을 살려고 하냐고 물으면, 잠시 말문이 막혔다가 행복 하려고 한다고 답을 할지도 모른다. 혹은 왜 그런 것을 묻는지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보통, 목적을 향해 가는 길에서는 바로 앞의 목적만을 보는 경향이 많다. 위의 예에서 보듯, 우리가 회사에서 일을 하는 목적은 분명히 그 일을 하는 목적을 통해서 다시 돈을 버는 목적을 달성한 후, 최종적으로는 행복이란 최종 목적을 얻으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들 머리 속에서는 최종 결론, 즉 행복이라는 목적보다는 당장 주어진 일을 해내서 상사에게 깨지지 않는 것이나 직장 사람들과 무리 없이 잘 지내는 것에 대한 목적이 가득하다. 그러다 보니, 가끔은 왜 회사에 다니고 있는지조차 잊어 버리게 된다.
 
그래서 월급이 나오지 않아도 한참을 인간관계 때문에 다니기도 하고, 돈을 꾸준히 벌긴 했지만 쓸 시간이 없어도 별 생각 없이 회사를 계속 다닌다. 혹은 결혼을 하고서 아내와 아이를 위해 꾸준히 돈을 벌어다 주는 존재로써 자신의 역할을 스스로 정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이런 태도는 언젠가 거울을 바라보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기회를 빼앗아 버린다. 스스로에게 지금 행복한지를 묻는 질문을 말이다.
 
그 어떤 일이든지 최종 목적을 망각하는 순간 우리의 목적은 모두 방향성을 잃는다. 그래서 행복하기 위해 회사를 취직했다가 심한 스트레스로 인해서 과로 사를 하거나 자살을 하는 경우도 생긴다. 뭐, 이렇게 극단적인 상황은 아니더라도 스트레스로 인해 건강이 상하거나 가정 문제가 심각하게 될 수도 있다.
 
결혼을 하는 목적도 비슷하다. 결혼은 두 사람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한 것이다. 하지만 살다가 보면 끝없이 충돌이 일어난다. 그럼에도 이것을 지혜롭게 넘기는 방법은 둘 모두 행복 하려고 한다는 목적이 같기에 이것에 대한 이야기를 꾸준히 함으로써 해결이 가능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갈등을 가진 부부는 상대에 대한 기대치로 인해 실망하는 것에 대한 것만 중요하게 다룬다.
 
그리고 모든 목적의 최종 목적 자체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중간에 길을 잃은 후 헤매다가 결국 사회적으로 유명한 멘토들을 찾아서 조언을 받으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매우 좋은 말을 해준다.
 
실제로 많은 멘토들은 꽤나 직관력이 있어 보인다. 언어 능력이나 표현력도 매우 좋다. 그렇다면 이들은 뭔가 남들과 다른 능력을 가진 것일까? 아니다. 이들의 능력은 단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 인간이 사는 최종 목적을 볼 줄 아는 능력이다. 즉, 우리 인간이 과연 무엇을 위해 그 많은 생각과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서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많은 사연들을 가진 이들에게 모두 적절한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것이다.
 
원래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았을 때, 타인의 삶을 파악하는 것은 쉽다. 그래서 그들의 하소연을 듣다 보면 결국 해결책은 단 하나뿐이다. 중간 목적에 빠져서 허우적대지 말고 최종 목적을 찾으라고 조언을 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멘토들의 조언은 매우 통찰력이 있고 그래서 더욱 그럴 듯 하게 들린다.
 
보통 사람들이 가진 문제는, 실제로 그 문제에 빠져 있는 사람은 그 뻔한 사실이 잘 안 보인다는 점이다. 우리는 보통 어떤 목적을 가지고 움직일 때, 머리 속에 그 목적만으로 가득 채우고 살게 되면, 그 목적을 이루는데 있어서는 꽤나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 집중도가 높아서 - 문제는 그 목적을 통해 이루려는 최종 결론을 망각하게 된다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결혼을 한 부부가 신혼에 서로 주도권을 두고 싸우는 모습이 바로 정확히 눈 앞의 목적에 매몰되어 허우적거리는 우리들 모습의 어리석은 단면을 보여주는 예가 된다.
 
특히나 그 목적을 이루는 중에 받는 스트레스 강도가 높으면, 그것으로 인해 자기 조절력이 제대로 동작을 안 하게 되고, 결국엔 그것으로 인해 실제로 자신이 행복하게 해주고, 그것을 통해 행복해야 할 당사자의 최종 결론을 무너뜨리게 되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은 돈을 벌어서 집에 가져다 주어서 행복하고 싶은 남자가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인해서 가정에 돌아가 아이들에게 소리를 치고, 아내에게 온갖 짜증을 내면서, 그 자신이 얼마나 힘들게 돈을 벌고 있는지 일장 연설을 늘어 놓는 모습을 통한 예로써도 알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목적에 빠져서 결론을 잊은 경우는 정말로 흔하게 일어난다. 왜냐하면 실제로 우리의 삶의 패턴이나 사고 방식이 모두 그렇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우리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온갖 잡생각은 끝없는 연상작용으로 동작한다. 그래서 길을 가다가 간판 하나를 통해 떠오른 생각은 결국 며칠 전, 시집을 잘 간 친구에 대한 질투심으로 끝날 수 있다. 생각뿐만이 아니다. 대화 내용 역시도 온갖 주제가 끝없이 흘러 간다.
 
그리고 실제적 삶에서도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떤 장소를 방문하지만, 우연히 눈에 띈 것들 사거나 하는 경우도 많다. 보통 우리가 어떤 목적만을 온전히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목적만을 제대로 기억하면서 살기도 힘들다. 또한 이것의 연쇄적인 결과로 결국 평소엔 그 목적만을 기억하면서 살려고 애쓴다. 그래서 머리 속에는 그 목적만이 남아있고, 그 목적을 통해 이루려고 하는 결론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이렇게 정말로 그것을 왜 하려는 지 이유를 잊어먹는 우리는 그래도 그것을 계속 해야 하기 때문에 이젠 본격적으로 그 목적에 정당성, 의미성, 가치성을 부여하기 시작한다. 정말로 웃기지만, 사실이다.
 
왜냐하면 머리 속에는 그 목적들만이 남아 있고, 그래서 마치 그 자신의 삶이 그 목적만을 위해서 사는 것처럼 느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그 목적에 대한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회사를 다녀서 돈을 버는 것이 결국엔 모두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서인데, 회사 일이 너무 힘들거나, 회사 일에 너무 빠져서 결국 다른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면, 결국엔 그것으로 인해 불만을 가진 가족들에게, 그 회사 일을 하는 것이 자신을 포함한 전체 가족의 삶을 위해서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그리고 그것을 통해 얻는 돈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게 되는 것이다.
 
결혼을 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원래 목적인데,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 남편의 권리에 대한 정당성이나 아내의 권리의 의미성을 서로 주장하거나, 돈을 버는 주체로써 남편의 가치와 살림을 하는 주체로써 아내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이다.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그리고 이때 근거가 되는 서로의 부족함은 과연 무엇을 기준으로 느끼는 것일까? 옆집 사는 사람인가?

 

시댁이나 처가 혹은 직장내 그리고 지인 사이에서 다른 갈등을 겪는 경우, 그것으로 인해 불행하다면 그 관계를 정리하든지 아니면 적극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우리가 사람과 관계를 맺는 그 모든 이유는 바로 행복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남편이든 아내든 직장 상사든 뭐든 똑같다. 

 

하지만 우린 뭔가 미래에 닥칠 손해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조그만 가능성을 가지고는 그 관계를 어떻게든 유지만 시키려고 한다. 그리고 아주 오랜시간 동안 스트레스를 받고 산다. 하지만 그 사람 역시도 행복하니까 한다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그 사람은 내가 바뀌지 않으면 결코 멈추지 않는다.
 
어떤 제품이 싸다는 이유로 사는 경우도 그 제품을 사는 행위 자체가 행복해서 사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는 그 제품을 사야 할 이유를 한 가득 준비하는 경우도 흔하다. 옷이 사고픈 사람은 입을 옷이 없으며, 여행을 가고 싶은 사람은 머리 속을 비우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이 둘 모두 그 과정이 행복하기에 하는 것뿐이다.
 
원래 인간에게 있어서 '왜 그것을 하느냐' 에 대한 질문의 답은 유일하게 하나뿐이다. 그냥 행복 하려고 한다.

 

왜 그 차를 사려고 묻는다면 행복하니까 산다고 대답하면 된다. 이때 그 차가 얼마나 가치 있는지에 대해 일장 연설을 안 해도 된다. 왜 그것을 알고 싶은지 물으면 행복하고 싶어서 그렇다고 하면 된다. 진실에 대한 기대나 지적 호기심 같은 말 안 붙여도 된다. 왜 사람들과 잘 지내지고 싶어하냐고 물으면, 행복하니까 한다고 하면 된다. 인간관계의 중요성에 대해서 딱히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왜 그곳으로 여행을 가려고 하냐고 물으면 행복하기 위해서 간다고 하면 된다. 재충전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고, 그곳에 가면 얼마나 볼 것이 많고 새롭고 멋진 곳인지 설명할 필요가 없다. 왜 그 음악을 들으면 좋으냐 라고 물으면 그냥 행복하다고 대답하면 된다. 그 가수의 숨겨진 이야기나 받은 상이 무엇인지를 딱히 더 추가할 필요가 없다.
 
왜 술을 마시는지, 왜 담배를 피우는지, 왜 운동을 하는지, 왜 남을 돕는지 물어도 모두 대답은 같다.
 
나머지 설명은 모두 자투리일 뿐이다. 복잡하고 장황하게 설명을 하면 듣는 사람이 그것을 이해 해주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것을 함으로써 행복해진다는 결론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 잘못하면 실제로는 행복하니까 하면서도 스스로를 세뇌시켜 마치 어떤 의미가 있어서 초인적인 인내력과 돌과 같은 의지력으로 해낸다는 착각마저 하게 된다.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자신이 이를 악물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이를 악문 이유는 바로 행복하기 위해서라는 목적에서는 전혀 다를 바가 없다. 누구도 불행하기 위해서 이를 악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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