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여자의 행복, 수다에 대한 이야기

아이루다 2015. 1. 1. 07:31

 
예전부터 '수다' 라는 용어는 보통 남자보다는 여자들을 대상으로 많이 쓰인 말이다. 하지만 '여자가 수염이 없는 이유가 말이 많아서' 라든가 아니면 '여자가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는 라는 말이 있은 것처럼 여자의 수다는 그리 좋은 의미로만 여겨지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나 남자 입장에서 여자의 수다는 뭔가 복잡하고 소란하며 쓸데없는 짓 같은 여겨지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저런 말들도 남자들이 만들어 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인간의 삶에서 수다는 정말로 중요한 행복 요소 중 하나이다. 이것을 수다라는 용어를 써서 그렇지, 대화라는 용어로 바꾸면 느낌이 확 달라진다. 수다와 대화는 별로 다름이 없지만, 남자들은 수다를 떨지 않고 대화를 하고 싶어한다. 뭔가 고급스러워 보여서 그럴까?
 
아무튼 수다 혹은 대화가 우리 인간에게 행복한 이유는 바로 그것을 통해 타인의 삶과의 교차부분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좀 더 쉽게 말하면 우리는 수다나 대화를 통해 상대를 좀 더 잘 알게 되며 더해서 자신을 남들에게 좀 더 잘 알려 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왜 우리는 자신을 남들에게 더 잘 알려줄 때, 그리고 상대를 더 잘 알게 될 때 행복할까? 이것은 제법 재미있는 숨겨진 의미가 있다.
 
대화라는 것은 원래 서로에 대한 정보를 주고 받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정보는 아주 다양한 형태로 구성된다. 물론 개인적 정보는 보통 한정적이긴 하다. 아무튼 우리는 대화를 통해 주고 받는 정보를 통해서 그 자신을 상대에게 또한 상대를 그 자신이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정보를 주고 받을 때 자신을 좀 더 포장함으로써 현실의 자신보다는 좀 더 나은 상상 속 자신을 만들어 내는 일을 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그 자신의 정보를 남들에게 전달 할 때, 절대로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모든 사람들의 대화 중에서 나오는 많은 상황들에 대해서 자신을 나름대로 객관적으로 말을 한다고 믿고 하지만, 실제로는 모두 자기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여 말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대화 중에서 자신을 조금이라도 더 유리하게 묘사하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모습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상대는 보통 그것의 진실에 대해 잘 알지 못하거나 혹은 그것이 눈에 보여도 관계를 위해서 좀처럼 반박하지 않는다. 만약 이것이 안될 경우 싸움이 난다.
 
예를 들어서 누군가 다툼이 일어난 사건을 이야기 할 때, 많은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상대를 자극한 것을 축소시켜 말하거나 혹은 아예 생략시켜 버리는 경우가 흔하다. 더해서 상대의 잘못은 작은 것조차 부풀려서 결국엔 거의 모든 것이 상대의 잘못으로 벌어진 냥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화의 오묘한 점은 바로 이런 억지가 통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결국 대화의 원리는 자신을 포장해서 상대에게 이야기 하고, 상대는 그것을 긍정해주는 것으로 정리된다.
 
결국 이 원리에 의해서, 이야기를 하는 당사자는 자신이 원래 사실을 왜곡해서 상대에게 전달했다는 사실보다는, 자신이 스스로 말한 자신을 원래 자신의 진정한 모습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즉, 언뜻 생각하면 정말로 우습지만, 자신도 모르게 자기를 부풀려 말하고는 그것을 스스로 믿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대화를 하고 나면 뭔가 뿌듯해진다. 좀 더 당당해지고, 좀 더 존재론적으로 나아진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이다.
 
더해서 상대도 역시 마찬가지 행동을 한다. 그리고 우리는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그것을 인정해준다. 상대가 자신을 인정해줬다면 그것은 인지상정이다. 당연히 그렇게 해줘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동시에 서로가 만족스럽게 된다. 거기에 더해서 그런 대화를 주고 받은 사람들끼리 뭔가 유대감이 생기고 결국 좀 더 신뢰도가 높아지게 된다.
 
쉽게 말해서 '나를 알아 주는 사람' 이 생겨난 것이다. 그것도 신뢰도가 높은 상태로 말이다. 이것이 대화가 주는 행복 요소 중 첫 번째이다.
 
대화를 통해 맺어지는 인간관계는 물론 이것보다 좀 더 많은 이득을 가져다 준다. 하지만 오늘은 이 주제를 관계로 까지 발전시키지 않을 생각이다. 오늘은 대화 자체에 좀 더 집중해보도록 하겠다.
 
일단 대화는 두 가지 형태로 나뉜다. 하나는 둘만이 나누는 대화인데, 관계에 따라서 즐거운 대화를 많이 나누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엔 속 마음을 많이 말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앞에서 설명한 대화는 주로 둘 사이의 대화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덜 왜곡된다.
 
하지만 셋 이상의 대화가 되면 왜곡은 한층 심해진다. 왜냐하면 거기에서부터는 미묘한 신경전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즉,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둘 사이와는 달리 경쟁이라는 요소가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둘의 대화는 100% 서로에게 집중하게 된다. 둘 사이에 다른 것에 정신 팔릴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요즘은 스마트 폰이 있긴 하지만.
 
하지만 셋 이상이 되면 이젠 다르다. 집중은 분산된다. 그래서 둘 사이의 대화 주제로 사용된 내용들이 셋 사이에서는 잘 나타나질 않는다. 물론 아주 오래되고 신뢰도가 높은 사람들은 셋 사이에도 둘 사이의 대화 내용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셋 이상이 모인 대화의 내용은 조금 덜 진지해지고 조금 더 재미있어 진다. 왜냐하면 재미있는 사람이 더 집중을 받기 때문인데, 이 재미가 대화의 행복함을 올려주는 두 번째 행복 요소이다.
 
앞에서 말한 나를 알아주는 행복과 재미가 주는 행복 그리고 이것을 통해서 미래의 어느 날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거나 혹은 또 다른 시간에 다시 만나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가능성이 높어진 것이 바로 세 번째 기대 행복감으로 이어진다. 물론 이것은 인간관계의 중요함으로 연결이 된다.
 
결국 수다나 대화는, 사람만 잘 사귀면 그것만큼 쉽게 얻을 수 있는 행복이 없다. 여기에 더해서 만날 때 맛있는 먹을 것을 같이 먹기라도 하면, 이것은 뭐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행복이다.
 
물론 대화는 약간 소모성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즉, 대화만을 통해서는 뭔가 만들어지는 것이 없다. 그래서 남자들은 이것에 대해서 그다지 좋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먹는 것도 그렇고 대화도 그렇고 실제로 여자들이 좋아하는 행복 요소들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소모성 성격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그래서 여자는 대화, 음식, 쇼핑과 같은 소비성 행복을 주로 느끼고 남자들은 이것과는 다르게 좀 더 생산적인 행복에 집중하다. 그래서 남자의 행복 요소가 여자들 보다 훨씬 다양하다. 하지만 문제는 남자의 행복은 분산으로 인해 깊지가 않다. 많은 남자들의 행복을 그것 자체의 행복보다는 그것의 결과물을 통해 행복해 한다.
 
그래서 고생을 하면서 행복을 느끼는 것을 선호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 시대가 바뀐 것이다. 이젠 고생하면서 느끼는 행복은 점점 더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인간 사회가 문명화되면 될수록 그렇게 바뀌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서 수다를 무시하는 남자들 역시도 실제로는 수다를 엄청나게 좋아한다.
 
하지만 남자들의 머리 속에는 아주 오래 전부터 내려온 수다에 대한 일종의 잘못된 인식이 박혀 있어서, 맨 정신일 때는 수다에 대해 경계한다. 하지만 그런 남자들이 수다스러워지는 순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술을 먹을 때이다.
 
남자들이 술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중에서 술을 먹을 때 터진 말문이 아마도 가장 큰 이유가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술을 먹은 남자의 수다는 여자의 그것을 훨씬 뛰어 넘는다.
 
어느 찻집에 갔는데, 거기에 여자들이 모여서 좀 시끄럽게 수다를 떠는 장면을 본 경험을 한 사람은 거의 대부분일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술집에 갔는데 그것과는 비교도 안되게 더 심하게 떠드는 남자들을 본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남자들은 기본적으로 여자보다 공격적이다. 그래서 그들은 훨씬 더 시끄럽고 소란스럽다. 마치 싸우는 것처럼 느껴지지 때문이다.
 
또한 여자의 수다와 남자의 수다의 차이점 중 하나는, 여자의 수다는 주로 웃음소리를 통해 그 시끄러움이 생겨난다면, 남자의 수다는 몇몇의 고성에 의해 발생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대화 장의 분위기는 여자들 쪽이 훨씬 부드럽고 즐거워 보인다. 남자들을 일단 술도 들어가서 훨씬 더 감정적으로 대화를 하기 때문에 분위기가 그리 좋지 않다.
 
그래서 남자들은 남자들끼리 대화를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그리고 단 한 명이라도 여자가 끼어 있으면 남자들의 대화 분위기는 훨씬 부드러워 진다. 비율이 반반만 되도 거의 대화는 여자들 분위기로 흘러가서 훨씬 더 부드럽고 즐거워진다.
 
또한 여자들의 대화는 매우 비유적이고 은유적이다. 그들은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직접적으로 공격하지 않고 또한 인상을 쓰지도 않으면서 은근히 비난한다. 하지만 남자들은 직설적이다. 그래서 자칫하다간 감정이 쉽게 상하고 심하면 싸움이 나기도 한다.
 
결국 이 모든 것은 단 한 가지로 압축된다. 여자는 대화에 능하고, 남자는 대화에 서투르다. 하지만 남자들 역시도 수다를 떨고 싶어하기에 여자들의 흉내를 내지만, 잘 해내지 못한다. 그래서 남자들은 자신들이 잘 못하는 것을 잘 해내는 여자들의 수다를 비난하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결국 찌질한 행복 질투심이다.
 
물론 수다의 문제는 분명히 존재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소모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명백한 전제가 깔려 있다. 그래서 남자들의 정당성은 어느 정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자신도 좋아하는 수다를 못한다고 잘하는 상대를 쓸데 없는 시간을 보낸다고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리고 남자들 역시도 수다를 배워야 한다. 더해서 수다의 기본인 상대의 말에 조금 과하게 반응하는 자세, 그리고 상대를 인정해주고, 아니 인정해주는 태도를 배워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편을 들어주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래야 상대가 계속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조심을 해야겠지만.
 
어차피 수다를 통해 행복을 얻는 사람이라면 가능하면 잘해서 더 행복한 것이 좋지 않겠나? 그리고 더해서 현대 사회에서 남자의 역할을 이제 명확하지 않다. 여자들은 거의 대부분의 분야에서 남자의 역할을 모두 해낸다. 지금은 남자는 사냥을 하고 여자는 채집을 해야 하는 원시시대가 아니다.
 
우리는 이제 성 역할에 따로 명확한 구분이 없다. 남자도 여자 일을 하고 여자도 남자 일을 한다. 그런데 행복만은 아직도 여자와 남자가 구분되어 있는데, 문제는 남자의 행복보다는 여자의 행복이 훨씬 더 낫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여유가 있을 때를 기반으로 한다. 당장 먹고 살기 힘들면 남자의 행복이 훨씬 더 나을 수 있다. 왜냐하면 소비성 행복을 즐기는 못하는 여자는 정말로 삶이 너무도 구질구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그래서 가난한 것을 정말로 싫어한다.
 
만나고 먹고 사는 것으로부터 행복을 얻는 사람들이 그것을 하지 못하고 일만 해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 때 얼마나 스스로가 불행하게 느낄지를 상상해보면 이해가 된다. 반대로 남자는 이런 입장에 있어도 자신이 맡은 책임을 다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만족을 한다. 그래서 어려울 때는 남자가 훨씬 더 잘 버텨낸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면 이젠 입장은 완전히 바뀐다. 남자는 그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래서 결국 남자는 여자에게 빌붙게 된다. 실제로 그래서 많은 남자들이 결혼한 자신의 아내를 통해 행복을 느낀다. 그리고 가끔 혼자 있는 순간이 되면 무엇을 해야 할 지 몰라서 헤매게 된다.
 
물론 많은 남자들은 다른 친구들과의 만남이나 취미 생활 등을 통해 자신 혼자만의 행복을 찾기도 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남자의 행복은 힘을 잃는다. 운동도 몸이 따라줘야 할 수 있고 술도 친구와 돈과 친구의 돈이 있어야 마실 수 있다. 남자들이 퇴직하면 일명 '삼식이'가 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다행인지는 몰라도 요즘 젊은 사람들은 수다의 본능이나 혹은 여성적 행복을 따라가고 있다. 그들은 그래서 맛있는 먹거리를 찾아 다니고, 만나서 수다를 떨고, 쇼핑을 하면서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여자들 역시도 심한 조건부 행복에 너무 가치를 주입했다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너무 심하게 맛있는 먹거리에 집착하고, 관계에 집착하고, 쇼핑에 중독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그리고 운동을 너무 안 해서 젊음이 끝나갈 무렵 몸이 심하게 상한다.
 
또한 대화의 주제 역시도 너무 편중되어 있다. 여자들 대화 내용의 90% 이상은 연예인, 드라마, 쇼핑 목록, 시댁 이야기이다. 특히나 여럿이 모이는 것을 선호하는 여자들의 습성이 이런 대화 주제의 편중화를 더욱 심화시킨다. 그래서 가끔 둘이서 만나는 것도 연습해야 한다. 어렵겠지만 말이다.
 
실제로 남자든 여자든 둘만의 대화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이 꽤나 된다. 너무도 오랫동안 여럿이서만 즐겁게 대화 하는 것에만 익숙해져 있어서 그런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점점 더 부담이 가중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좀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대화 주제에 대해서 생각하고, 대화 자체를 너무 재미로만 간주하지 않는 태도가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수다나 대화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 또한 건강하게 해주는 좋은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이왕지사 하려면 좀 더 잘하려고 하는 노력이 자신의 삶을 좀 더 밝게 해줄 것이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변화의 시작 조건  (0) 2015.01.09
목적의 목적  (0) 2015.01.08
우연과 필연  (0) 2014.12.29
자기 기준점  (0) 2014.12.27
장점과 단점  (0) 2014.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