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생각 없이 살기

아이루다 2015. 1. 21. 07:00

 
흔히들 뭔가 별다른 걱정 없이 철딱서니 없이 사는 듯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는, 다른 이들이 비난과 조언이 섞인 듯한 말투로 '생각 좀 하고 살아라' 라는 말을 하곤 한다.
 
그리고 이것은 그 말을 들은 당사자를 부끄럽게 만드는 경향도 있다. 보통 대부분의 사람은 생각하지 않고 사는 삶을 그다지 자랑스럽게 여기지는 않는다. 그래서 남들에게 이런 지적을 받게 되면 화가 나거나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생각 없이 사는 삶의 가장 흔한 예는 바로 '아이들' 이 될 것이다. 아이들은 원래 생각 없이 산다. 물론 그 아이들도 생각을 하긴 한다. 단지 그것이 어른들 눈에 보기엔 생각이 없는 듯 보일 뿐이다. 아이들은 어떤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 어떤 캐릭터를 흉내 낼지, 올해 생일 선물은 무엇일지, TV 속 영웅이 되고 싶다는 생각들을 하고 산다.
 
아이들이 이렇게 생각 없는 듯 살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뿐이다. 아이들이 생각해야 할 것들은 이미 부모가 다 알아서 생각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걱정이 없다. 걱정은 부모의 몫이며 그래서 아이는 마냥 행복하기만 하면 된다.
 
이런 아이의 행복이 줄어드는 것은 바로 소위 말하는 '철이 들었을 때' 부터 이다. 철이 들기 시작할 때, 우리 인간에게 나타나는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주변 인식 능력이다. 빠르면 중학교 시절, 늦으면 고등학교 시절, 어떤 사람은 평생 오지 않는 이 사춘기의 특징은 바로 '자기'를 인식하고 '남'과 나를 구분하기 시작한다.
 
남과 나를 구분하기 시작한다는 의미의 가장 좋지 않은 점은 바로 남과 나를 비교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본격적으로 열등감을 생산해낸다. 그래서 생각이 많아질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이 시기엔 단지 자신의 능력이나 문제점만을 걱정하기 때문에 희망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잠을 잘 잘 수 있다.
 
실제로 생각이 더욱 많아지는 시기는 바로 30대를 넘어 40대로 왔을 때이다. 이때는 더 이상 큰 변화가 일어나기 힘든 시기이다. 즉, 이미 40년 동안 살아 온 삶이 나머지 삶을 거의 다 결정해버린 상황이다. 그리고 이때 우리는 사춘기 시절에 생각했던 것들과는 다른, 삶에 대한 좀 더 본질적인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바로 먹고 사는 고민이다.
 
그리고 우린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 그리 행복하지 않다고 말이다.
 
이것에 대한 생각이 들고나면, 이젠 행복을 찾으려고 애쓴다. 실제로 이 상황은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수준이 아니고,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수준이다. 그래서 어떤 글을 읽거나 다른 이들의 조언을 받아도 거의 도움이 되질 않는다. 머리 속 지식은 다른 지식을 받아들임으로써 고칠 수 있지만, 마음이 느끼는 것, 즉 감정은 조절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 전체적인 이야기를 종합하면, 생각 없이 사는 것은 행복한 삶이란 결론이 나온다. 그리고 생각이 많은 이들은 행복하지 못한 상황에 처한 것이 맞다. 그러니까 생각하고 살라는 조언은, 행복하지 말라는 조언과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정말로 생각 없이 사는 것이 좋을까?
 
사실상 어떤 조건만 갖춰지고 그것이 미래에도 거의 변화 없는 상황이라면, 개인의 입장에서만 보았을 땐 생각 없이 사는 것이 개인을 훨씬 행복하게 해주고 또한 더해서 삶을 윤택하게 해준다. 문제는 보통 사람들이 이런 조건을 갖추기도 어렵고, 더욱 더 문제점은 우리는 홀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일단 행복의 조건은 개인별로 다를 것이지만, 대충 나열해보면, 첫 번째 조건은 바로 개인의 건강이다. 우리는 몸이 살아 있어야 살 수 있다. 그러니 몸에 문제가 생기면 그 어떤 것도 의미가 없다. 건강한 사람들은 건강에 대한 중요성을 잘 느끼지 못해서 몸을 너무 함부로 대하는 경향이 많은데, 실제로 건강을 잃어보면,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 행복 요소인지를 절실히 느끼게 된다.
 
두 번째 중요한 것은 먹고 사는 능력, 즉 경제력이다. 그리고 첫 번째 조건인 건강조차도 돈이 있으면 훨씬 유리하다. 이런 식으로 돈이 충분하면 많은 것이 해결이 된다. 먹을 것, 잘 공간, 취미 생활을 할 수 있는 여력, 심지어 생각에 따라서 남을 도울 수도 있다. 세상에서 가장 돈이 많은 빌 게이츠의 취미 생활이 바로 기부이다.
 
세 번째는 화목한 가정이다. 실제로 이것은 돈과 거의 비슷할 수준으로 중요하다. 돈은 우리를 불행하지 않게 해주는 역할이 더 큰 반면, 화목한 가정은 본격적으로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이다. 거기에 더해서 개인이 예상치 못하는 미래의 불행, 즉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큰 병에 걸리는 불행을 당했을 때, 나를 끝까지 지켜줄 수 있는 사람들이다.
 
네 번째는 친구들이다. 물론 가정 안에서 충분히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이들도 있다. 그럴 경우 친구는 그다지 필수 조건은 아니다. 그럼에도 친구가 필요한 이유는, 우리는 매일 밥만 먹고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기분 전환이 필요하다. 그리고 작은 자극도 필요하다. 이런 것들은 삶을 살아가는 데 좋은 활력소가 된다.
 
다섯 번째는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취미 생활이다. 이것은 종류가 하도 많아서 개인별로 흥미를 느끼는 분야를 찾으면 된다. 그나마 여기에서 우선 순위를 두자면, 가능하면 건강해질 수 있는 취미를 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조건이 충족된다.
 
아마도 이 정도만 갖추면 개인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행복은 거의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조건이 갖춰진 사람은 생각이 없이 살아도 충분히 행복하면, 다른 이들의 부러움을 한껏 받을 것이다.
 
그런데 개인이 행복하면 이젠 더 이상 생각을 안 해도 될까? 문제는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바로, 우리 인간이 사는 사회는 절대 개인적인 입장에서만 바라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회라는 공동체에 속해 살기 때문에, 사회의 현재와 미래가 바로 개인의 현재와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것을 좀 더 극적인 예를 들면, 과거 러시아에서 태어난 귀족의 자제들이 아무런 걱정 없이 풍족한 그들의 삶을 살다가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 도망치거나 죽음을 당한 상황을 떠올리면 된다. 실제로 이들은 풍족한 경제 생활, 건강한 몸, 각종 파티 문화, 흥겨운 놀이 등등 충분히 행복했을 수 있다. 하지만 사회의 급격한 변화는 개인의 삶을 완전히 무너뜨려 버렸다. 과연 그들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신들이 누린 것들이 사회의 대다수를 구성하는 농민들의 피와 땀이란 것을 인식할 수 있었을까?
 
이런 식으로 개인의 삶은 사회의 변화에 따라 급격한 요동을 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개인의 행복이 충분하다고 해서 그것만 보고 살 수가 없다. 사회의 변화는 개인의 잠재적 위험요소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이유로 인해서 우리는 생각을 하고 살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나를 제외한 다른 이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자신이 속한 사회에 어떤 잠재적 문제가 있는지 계속 바라봐야 한다. 이것을 우리는 사회에 대한 관심, 공공의식 등으로 말하는 데, 사실 이것은 각 개인의 미래에 닥칠 불안 요소에 대한 대비이다.
 
그래서 조금 머리를 굴릴 수 있는 사람은 현재 자신이 행복하다고 해서 마냥 그것을 누릴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생각을 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 맞다. 만약 자신이 충분히 행복하다고 해서 그냥 그 행복을 즐기면서 별 다른 생각 없이 살게 되면, 그것은 마치 아이들의 행복과 같다. 그 아이들의 행복에는 부모가 하는 걱정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모가 사고로 돌아가시게 되거나 이혼을 하게 되면 아이는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다. 우리 개인도 마찬가지다. 개인이 아무리 행복해도, 나라가 망하거나 사회에 큰 문제가 발생해서 분열을 하면 그때부터는 행복할 수 없다.
 
그래서 원래 아이는 자신의 행복을 지키고 싶으면, 부모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부모가 위험한 곳에 가지 않도록, 부모가 싸우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아이들의 인식 능력은 그것을 하기엔 부족하다.
 
하지만 성인이 된 이들이라면 자신이 속한 사회의 문제점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 성인들은 그럴 수 있는 인식 능력이 있다. 그리고 가능하면 많은 성인들이 사회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수록 그 사회는 좀 더 안전해지고 좀 더 미래가 보장되게 된다.
 
개인이 사회에 관심을 갖는 것은 참여의식이나 공공의식과 같이 이름 지어서 뭔가 의미 있는 짓처럼 꾸밀 필요가 없는 행위이다. 이것은 전체에게 닥칠 수 있는 불행함을 방지하고자 하는 각 개인별 노력이다. 그래서 누군가를 걱정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나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개인의 영역에서조차 행복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자신만의 공간에 갇혀서 사회 문제를 바라보려고 하지 않는다. 물론 개인의 영역에서 먼저 행복해져야만 전체를 바라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길 수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어떤 문제들은 개인의 영역이 아닌 것이 많다. 실제로 그런 것이 더 많다.
 
그래서 우리는 개인의 문제를 좀 더 큰 영역에서 그림을 그릴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럴수록 더 좋은 해결책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영역에서 불행하다면 생각이 많아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개인의 영역에서는 생각이 없을수록 행복하다. 하지만 사회적 영역에서는 사회 전체가 행복해질 수는 없다.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이것을 과거에 공산주의라는 이론으로 인간을 위한 이상향을 만들었지만, 실제로 인간의 능력으로는 이런 사회를 만들어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개인은 개인의 조건과 어느 정도의 만족감으로 인해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지만, 사회는 그렇지 못하기에 우리는 결국 생각을 안하고 살 수 없다. 문제는 개인의 영역에서 불행한 경우, 자신이 어떻게 더욱 행복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다 보니 그 생각의 범주가 개인적 영역에 머물게 되고, 개인의 영역에서 행복하면, 행복하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살게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사실상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들이 드문 세상이 되어 버린다.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은 개인적 영역에서는 참 좋은 삶이다. 그것은 아이들처럼 행복한 세상이다. 하지만 아이의 행복은 불안 요소를 가지고 있다. 부모는 평생 아이를 책임지지 못한다. 그래서 아이는 결국 언젠가는 부모의 걱정을 이어 받아야 한다. 그래서 그 자신도 부모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언젠간 불행함을 정면으로 봐야 할 때가 온다. 아무리 보기 싫어도 행복 요소에서 가장 중요한 '건강' 은 평생 지킬 수 없다. 우리는 결국 건강을 잃고 죽음을 맞는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동안 평생 행복하기란 참으로 힘들다.
 
결국 언젠가는 생각이란 것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단지 지금 이 순간 행복하다고 해서 다른 이들의 삶에 아무런 관심 없이, 자신의 행복만을 즐기면서 살거나, 지금 이 순간 불행하다고 해서 온통 자신의 삶에만 모든 관심을 가지고 사는 태도는 언젠간 전체의 문제로 인해 파편을 맞을 수 있다.
 
우리는 또한 그런 파편을 맞게 되면, 그런 상황을 초래한 이런 불합리한 사회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고 분노하지만, 결국 평소에 사회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 자신이 그런 파편을 맞게 되었다는 것조차도 잘 인식하지 못한다.
 
아마도 인간가 고도로 발전된 사회 시스템을 갖게 되면, 모든 인간이 행복할 수 있을 것이고, 그때가 되면 그 누구도 생각이란 것을 하고 살지 않게 될 것이다. 인간의 가장 좋은 미래는 생각 없이 살 수 있는 사회이다. 물론 철학자들은 이런 미래를 끔찍하게 여기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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