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행복의 원인

아이루다 2015. 1. 16. 08:01

 
제목으로 사용된 '행복의 원인' 이란 말은 언뜻 듣기엔 매우 어색한 말이다. 이것과 비슷한 또 다른 어색한 표현을 하나 적어보면, '삶을 사는 원인' 이 있다.
 
물론 사는 원인을 아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도 그것은 모를 지라도, 오늘 이 글에서는 이것과 비슷하게 어색하지만 행복의 원인에 대한 것을 적어보려고 한다. 사실, 사는 원인보다 이 행복의 원인은 표현에 있어서 어색할 뿐, 실제로 그렇게 뜬구름 잡는 이야기는 아니다.
 
왜 행복의 원인을 알고 싶어하는지 묻는다면 이렇게 답을 해주고 싶다. 원래 모든 행복은 원래 고통을 기반으로 한다. 그런데 그 원인이 되는 고통의 무엇인지 좀처럼 짐작이 가지 않는 행복들이 있다. 그래서 그것은 마치 원인이 없는 행복처럼 느껴진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일단 쉽게 배부른 행복을 생각해보자. 이것의 원인은 바로 배가 비어서 느끼는 배고픔의 고통이었다. 잠자는 행복은 피곤함이 주는 힘듦이 원인이었을 것이다. 똥을 싸는 행복은 먹은 것이 소화되어서 배가 아파온 원인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런 것들의 원인은 이렇게 단 하나만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원인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쇼핑이 주는 행복의 원인은 무엇일까? 좋은 차를 사거나 멋진 시계를 살 때 행복한 원인은 무엇일까? 여행을 갔을 때 행복한 원인은 무엇일까?
 
이런 행복들은 아무런 고통도 없이 발생하는 행복이다. 쇼핑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고통스럽지 않다. 좋은 차나 시계 역시도 마찬가지다. 또한 여행을 가지 않았다고 고통스럽지도 않다. 그렇다면 이런 것들을 통해서 얻는 행복은 원인이 없는 행복일까?
 
지금부터 이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지난 글들에서 살기 위해 먹는 것과 먹기 위해 사는 것에 대한 해석을 할 때, 그것을 양적과 질적 행복 혹은 필수와 선택적 행복이란 관점으로 그것에 대해 말했었다. 그런데 그 설명들에서 빠진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그런 행복들이 나뉘게 된 차이점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로 그 행복의 원인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이것을 고려한 상태에서 보면, 앞에서 말한 먹고 자고 싸는 세 가지 행복은 양적 행복이며 필수적 행복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에 설명한 것처럼 그 원인을 알아내는 것이 매우 쉽다. 우리는 생존하기 위한 에너지를 얻는 것과 다음 행위를 위해 몸에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그런 행위들을 하고 있으며, 그것을 위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 몸은 주기적으로 원인을 발생시켜 준다.
 
그래서 그 원인들은 명확하게 드러나게 된다. 때가 되면 배가 고프고, 밤이 되면 졸리고, 먹고 나서 일정시간이 지나면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가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행복은 그래서 이해하기가 쉽다.
 
문제는 질적 행복 혹은 선택적 행복에 대한 원인 분석이다. 이것은 도대체 너무도 다양해서 하나의 키워드로 묶어 놓을 수가 없다.
 
그래도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차례로 다양한 형태의 행복에 대한 접근을 시도해봐야 한다.
 
쇼핑을 할 때 느끼는 행복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쇼핑을 해서 산 제품에 대한 필요성이다. 이것은 실제로 가장 중요한 목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두 번째는 쇼핑을 하는 과정에서 얻는 행복이다. 이것은 얼마나 더 고급스러운, 아니 얼마나 종업원들이 더 떠받들어주는 곳에 가서 쇼핑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보통은 비쌀수록 더욱 더 만족스럽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자신이 산 제품에 대한 타인들의 평가이다.
 
단순한 쇼핑이라는 한 가지 행위에서 세 가지나 되는 각자 중요한 이유가 나타난다.
 
첫 번째인 자신이 필요한 제품을 사는 것, 이것은 실제로 우리 인간의 삶의 근본적인 목적이다. 즉, 이것은 사실 질적이거나 선택적 행복이 아니다. 이것은 양적이며 필수적 행복에 가깝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이 있어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나뉘게 된다. 그것을 우리는 필수품과 사치품으로 나누는데, 사실 이 분류는 시대와 각 문화적 특징에 따라 너무 다른 잣대를 가지고 있어서 한 나라의 한 문화권이 필수로 여기는 것을 다른 나라와 나른 문화권에서는 전혀 필요 없는 쓸데 없는 제품이라고 여기게 된다.
 
에어컨은 적도 지방과 같이 더운 곳에서는 반드시 있어야 할 제품이겠지만, 북극의 에스키모들에겐 정말 어처구니 없는 제품이 된다. 히터는 반대가 된다. 또한 같은 문화권이라고 해도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데, 같은 대한민국의 땅이라고 해도 수십 년 전만 해도 차나 냉장고는 사치품이었다. 심지어 전기밥솥도 그랬다.
 
좀 적나라게 하게 말하면, 우리가 원시 시대에 살았을 때, 두 손과 두 발로 채집이나 사냥을 하고 그것을 아무런 조리를 하지 않고 사는 그런 모습처럼 살 때, 우리 인간에게는 칼조차 사치품이었을 수 있다.
 
그래서 사실 필수품과 사치품을 나누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것은 단지 우리가 하려고 하는 일을 좀 더 편하게 해주는 도구들인 것이다. 우리는 이런 도구를 이용해 좀 더 편하고 또한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결과적으로 잉여시간이란 것을 얻어낼 수 있다.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가 주는 최고의 혜택이 바로 시간이다.
 
두 번째인 쇼핑의 과정 중 느끼는 행복은 바로 자기에 대한 만족감, 즉 자존감과 존재감에 연결이 된다. 이것은 과거 몇 차례 글을 써서 설명했었는데, 우리는 자존감과 존재감을 통해서 스스로의 값어치를 메기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존재로써의 가치성을 증명 받거나 증명하는 것과 연결되어, 결국 우리가 무리로부터 쫓겨나지 않을 수 있다는 안도감을 얻게 해주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
 
우리는 그래서 자신이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에 큰 만족감을 느낀다. 이것은 그리고 생존과 관련이 되어 있다. 따라서 이 행복은 본질적인 것이며 그래서 양적이고 필수적 행복이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쇼핑이 필수는 아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아주 다양한 경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인데, 누군가는 피아노를 치면서, 누군가는 게임을 하면서, 누군가는 일을 하면서 느낀다. 그 중에서 쇼핑은 돈을 이용해서 얻는 것이다.
 
세 번째인 결과물에 대한 타인의 평가는 자신이 첫 번째와 두 번째로 얻고자 했던 행복을 실제로 얻었다는 것을 다른 이들에게 공개적으로 인증을 받는 자리이다. 그래서 결국 자신이 현재 행복하다는 것을 알리고자 한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가 제대로 충족되지 못한 사람들이 그것에 대한 대안으로써 활용하거나 혹은 좀 더 부가적인 행복을 얻기 위해서 하는 행위인데, 실제로 현대 사회의 SNS가 그 역할을 충실하게 도움을 주고 있다.
 
그리고 이 행위에 숨겨진 본질은 바로 자신의 행복에 대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즉, 우리는 행복하고 싶다는 욕망으로 인해서 행복할 수 있는 것들을 선택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통해 자신이 행복한지에 대해 스스로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다른 이들의 지지가 필요한 것이다. 그것을 하면 행복한 것이라고 말이다.
 
많은 이들이 해외 여행을 하고 나면 수 많은 사진을 SNS 올리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행의 행복을 증명 받고 싶어하는 심리가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실제로 그 여행이 자신을 정말로 그렇게 행복하게 해줬는지 스스로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 여행 중에 행복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그건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자신의 처지가 좋았는지, 아니면 같이 간 일행과의 관계 때문에 좋았는지, 아니면 우연히 겪은 사건들로 인해 자신이 운이 좋다고 느껴서 행복했는지를 세세하게 분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을 모두 하나도 뭉쳐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정말로 자신이 그 여행 자체로 행복했는지에 대해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많은 시간과 돈을 썼기 때문에 그 여행이 그 자체로도 행복했어야 한다고 증명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만 앞에서 말한 것들은 사진에 찍히지 않는다. 거기엔 낯선 풍경과 즐겁게 웃는 당사자들의 행복함만이 담겨 있다.
 
여자에게 쇼핑이라면, 남자에겐 이와 비슷한 것이 사냥이 있을 것이다. 토끼 사냥을 가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 중 이런 내용을 얼마 전 읽었다.
 
토끼를 잡기 위해 사냥을 가는 남자를 길에서 만나 이미 잡은 토끼를 하나 건 내 보라고 말이다. 그러면 그 남자가 어떻게 행동할까?
 
토끼가 필요한 사람은 행복해 할 것이다. 왜냐하면 토끼를 사냥하러 갈 필요가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토끼를 잡는 행위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은 화를 낼지도 모른다. 또한 토끼를 많이 잡아서 남들에게 자신의 사냥 실력을 자랑할 사람은 찜찜하지만, 몰래 그것을 가방에 넣어 둘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중에 사냥에서 돌아와서 자신이 잡은 토끼의 마리 수를 늘리는데 사용할 것이다.
 
이것은 쇼핑을 가는 사람과 완전히 동일하다. 제품이 필요한 사람은 그 제품이 필요하기 때문에 누군가 그것을 주면 매우 좋아하게 된다. 하지만 쇼핑 중 얻는 즐거움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화를 내게 된다. 왜냐하면 바로 그것은 자신이 누릴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을 망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의 이유엔 자신 역시도 쇼핑을 해서 사고 싶은 제품이 있다고 스스로 믿고 싶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행위가 필수적이고 싶어한다. 결코 선택적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심리엔 바로 우리가 가장 알기 힘든 선택적 행위를 통해 얻는 행복에 대한 진정한 원인이 숨겨져 있다.
 
이것은 바로 '지겨움' 이다.
 
먹는 행복은 배고픔이 원인이다. 그런데 우리가 하는 모든 선택적 행복의 원인은 바로 지겨움이다. 즉, 잉여시간을 보낼 방법이 없을 때 우리가 겪는 고통이다.
 
실제로 이런 행복의 원인인 지겨움에 대한 이야기는 요즘 읽고 있는 책을 통해 얻은 힌트이다. 그래서 좀 더 자세한 설명은 그 책을 다 읽고 난 후 독후감 형태로 다시 정리해 볼 생각이다. 뭐, 그런데 따로 복잡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실제로 우리가 먹고 살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을 제외한 그 모든 행위는 아무리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가 있다고 믿더라도 결국엔 시간을 보내는 일이다. 즉, 지겨움을 없애는 일이란 것이다.
 
노동 생산성이 높아지고, 휴식에 의한 노동력 향상이 실제적으로 증명되면서, 현대 사회에서 가능하면 노동 시간은 최대한 짧게 하려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물론 오늘도 하루에 16시간을 일하면서 힘들게 사는 분들이 있긴 하지만, 많은 이들은 하루에 단 몇 시간이라도 더해서 주말이라도 되면 꼬박 48시간의 여유 시간을 갖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이 시간을 어쩔 줄 몰라 한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많은 이들은 이렇게 대꾸할 것이다. 그 시간도 모자랄 정도로 바쁘다고 말이다. 지금 뭔가 하고 있는데, 더해서 뭔가 더 하고 싶은데 할 시간이 없다고 말이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하는 가장 큰 착각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우리는 무엇인가를 하기에 시간이 모자라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우리들의 착각은 바로 이런 행복들의 원인이 없다는 더욱 더 커다란 착각을 만들어 낸다.
 
그것은 절대로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런 행복을 얻을 땐 반드시 지루함이 주는 고통이 있었기 때문에 현재의 행복을 얻으려고 노력하려는 태도를 가졌기 때문이다.
 
아주 바쁘게 움직이면서 활기차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집안에만 있고 게으르고 행복한 사람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둘 모두 행복하다. 단지 지루함이란 고통을 다루는 방식이 다른 것이다.
 
하나는 지루함을 바쁨을 이용해서 극복했고, 다른 하나는 지루함을 그냥 인정한 것이다. 그래서 사실 이 둘 중에서는 후자가 더 행복하다. 단지 그렇게 살면 삶이 너무 느슨해져서 특별한 능력이 없으면 굶어 죽기 십상이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게으른 것보다 부지런 한 것을 선호하다.
 
그렇다고 해서 부지런한 것이 게으른 것보다 우월한 것은 아니다. 단지 좀 더 건강하고 또한 돈도 더 벌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물론 건강과 돈은 행복의 중요한 구성 요소들 중 하나이기 때문에 게으름은 미래를 위해서 그리 좋은 행복 행동 양식은 아니다.
 
이런 식으로 모든 선택적 행복의 원인이 지루함에서 출발한다면 참 많은 것들이 차례로 설명이 된다.
 
가장 먼저 남자와 여자들이 추구하는 행복을 생각해보자. 남자들은 보통 생산적 행복을 추구한다. 그래서 시간과 노동력을 투자해서 뭔가를 만들고 가꾸고 힘들게 이겨낸다. 반대로 여자들은 소비적인 행복을 추구한다. 그래서 먹고 쇼핑하고 즐겁게 대화를 한다.
 
이 두 개의 입장은 결과물 적인 측면에서 보면 분명히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보면 둘 모두 시간을 보냈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일한 결과를 가지고 있다. 즉, 남자의 행복이나 여자의 행복 모두 지루한 시간이 아닌, 뭔가를 하는 시간을 보낸 것이다. 단지 남자는 노동력을 투자해서 힘들게 했지만, 여자는 돈을 투자해서 편하게 했다.
 
그래서 여자가 결국 이긴다. 남자의 경우엔, 과정이 힘들 수 있다. 즉, 토끼 사냥에서 결과물인 토끼를 얻는 목적일 때 과정은 힘들면서도 흥분될 수 있다. 문제는 그렇게 해서 얻은 토끼가 시장에서 사는 토끼에 비해 나을 것이 없다는 것과 더해서 대부분의 경우엔 돈이 훨씬 더 많이 든다는 점이다.
 
이것이 현대 사회에서 남자의 행복이 문제가 되는 가장 큰 이유가 된다. 아무리 열심히 잘 만들었어도 일반적으로 공산품보다 나을 수 없다. 더해서 돈도 더 드는 경우가 흔하다. 그래서 결국에 남자는 자신이 만든 결과물을 누군가 만족스럽게 잘 써는 것을 좋아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보통 여자다.
 
이 관계가 결국 남자의 행복이 여자의 행복에 종속되는 결과를 가져오고 만다. 그래서 현대 사회에서 많은 남자들은 여자에게 빌붙어서 행복을 추구한다. 이것에 관한 이야기는 과거에도 몇 차례 했었다.
 
결과물이 없는 여자의 행복은 그 자체로 행복하고 끝나는데, 결과물을 기대한 남자의 행복은 누군가에게 그 결과물을 보여주고 과시하고 더해서 잘 쓰여야 행복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현대와 미래의 남자들에게 주어진 큰 숙제가 될 것이다.
 
결국 이런 성향으로 인해서 남자들의 자신의 생산성이 가치가 있어지는 시골의 삶을 선호하고 여자들은 소비를 쉽게 할 수 있는 도시의 삶을 선호하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 즉, 보통의 전원생활은 원래 남자들의 로망일 뿐이다. 여자들은 흙 냄새나 벌레가 많고 살기 불편한 곳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아무튼 현대 사회는 이미 양적 그리고 필수적 행복은 거의 다 얻고 살고 있기 때문에 바야흐로 선택적 행복을 얼마나 잘 얻느냐를 가지고 행복의 척도로 삼는 시대가 되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살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고 먹기 위해 사는 시대가 되었다는 뜻이 되며, 또 다른 말로 하면 얼마나 자신에게 주어진 잉여 시간을 지겹지 않게 보내고 있는 것이냐를 가지고 판단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우리가 왜 지겨움을 느끼는지에 대한 설명은 앞에서 말했듯 독후감을 통해 설명하겠다. 지금은 그냥 상식적인 수준에서만 이해하면 된다. 그리고 이것은 매우 쉽다. 왜냐하면 방에 혼자서 한 시간만 아무것도 안하고 있으면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지루함은 참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오늘도 행복을 느끼고 사는 그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그렇게 행복을 느끼는 원인이 바로 지루함이란 고통을 없애려고 한 행위로부터 나오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거나 인정하기가 쉬울까? 이미 그런 행위에 대해 가치와 의미를 한껏 부여해 놓은 상태인데 말이다.
 
등산을 하는 이들은 등산을, 운동을 하는 이들은 운동을, 글을 쓰는 이들은 글을, 쇼핑을 하는 이들은 쇼핑을, 많은 만남을 즐겨 하는 이들은 만남의 가치를 각자 가지고 있는데 말이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은 마치 삶을 사는 원인이 바로 부모가 낳았기 때문이라고 인정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실제로 사실이지만, 우리 머리 속에는 각자의 삶에 대한 의미가 충분히 들어있기 때문에 좀처럼 인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실 우리가 사는 평생 동안 하는 일이 바로 그 의미의 정당성을 얻고자 하고 있다는 점을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인지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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