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왜 생각을 하고 살아야 할까?

아이루다 2015. 1. 18. 10:41

 
나름대로 생각을 하면서 사는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이들이나 혹은 좀 더 전업적으로 철학이라는 학문을 연구하는 분들에게 '왜 생각을 하고 살아야 하는지' 에 대해서 물어보면 아마도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런 분들이 많은 이야기를 하는 이유 자체가 바로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 글을 쓰는 나 자신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정말로 솔직히 말해서 왜 생각을 하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정말로 제대로 된 이유를 말할 수 없음을 고백하고 싶다.
 
아마도 그냥 쉽게 이것에 대해서 대답을 하자면, 우린 동물이 아닌 인간이라는 지성체이기 때문에 생각을 하고 살아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정도 대답만 해도 보통 철학자의 권위에 눌린 일반 사람들은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이처럼 웃기는 말이 어디 있겠는가? 인간이기 때문에 생각해야 한다 라니.. 이것은 마치 왜 연주를 해야 하느냐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두 손을 가졌으니 악기를 연주해야 한다 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생각을 할 능력을 가졌으니 생각을 하라니, 도대체 이것이 왜 생각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될까?
 
철학자들의 고유 영역에서 인간은 동물의 범주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이것은 정말로 당연한 것인데, 동물이지 않고 인간이기 위해서 평생 생각하고 사고한 사람들이 어찌 인간을 동물의 범주로 넣겠는가? 그러니 당연히 답은 인간이기 때문에 생각해야 한다 라고 나오는 것이다.
 
만약 어떤 철학자에게 이것에 대해서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 아마도 그는 화를 내거나 혹은 좀 더 다른 대답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대답은 바로 인식하는 존재로써의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존재에 대한 인식은 실제로 그냥 인간이기에 생각하라는 대답보다는 훨씬 더 본질에 가까운 설명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사는데, 왜 자신이 소중한지, 또 그 소중한 자신이 도대체 어떤 존재인지 알지도 못하는 것은 마치 남들이 모두 금을 중요한 금속이라고 말할 때, 왜 금이 중요한 금속인지 알지도 모르면서 금을 모으는 꼴이 된다.
 
설령 아무것도 몰라도 그 금을 들고 나가면 얼마만큼의 값을 받을 수 있는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그 금을 모으는 이유 정도는 알고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질문이다.
 
존재에 대한 인식은 실로 중요한 것이긴 하다. 하지만 실제로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것을 단 한차례도 경험하지 못한 채 평생을 살다가 죽는다. 그렇다면 그것은 필수적인 것은 아닌 듯 보인다. 그래서 다시 집요하게 그것에 대해 따지고 들어가면 철학자들은 좀 더 생각을 하다가 일반 사람들에게도 통할만한 이유를 댈 것이다.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데, 행복하고 싶다면 행복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는데, 적어도 자신을 알아야 그것에 대해 조금은 알 수 있다고 설명해줄 것이다. 이것은 맞다. 우리들 대부분은 원래 자신이 뭘 해서 정말로 행복해 하는지 잘 모른다. 실제로 자신이 행복하다고 믿는 사람들조차도 그것이 정말로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니고 행복을 외부에서 정의 당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부모님이, 친구가, 사회에서, 국가에서 정해준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상식이라고 믿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야 할 길이라고 믿고 산다. 그리고는 그 안에서 최대한 자기 합리화와 만족을 느끼려고 애쓴다.
 
물론 실제로 이것이 자기 몸에 맞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데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강요당한 행복을 스스로에게 주입시킨 후 계속 자신에게 그것이 정말로 행복한 것이라고 최면을 거는 이들도 많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행복에 대해 좀 더 깊은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런 관점에서 보면, 철학자들의 이번 대답은 제법 괜찮다. 누구나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하기에, 자신에게 어떤 것이 진정한 행복일지를 찾는 과정에서 분명히 자기 관찰과 인식 그리고 이런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생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대답은 한정적이다. 그래서 왜 인간이 생각을 하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포괄적인 입장을 대표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런 의미로만 해석될 때, 정말로 행복한 사람은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진정한 행복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을 해야 한다고 정의한다면, 이미 행복한 사람은 생각이 필요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이렇게 집요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렇다면 행복한 사람은 생각을 안하고 살아도 되냐고 말이다. 그러면 철학자들은 잠시 난처한 얼굴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많은 상황에 대해서 충분히 생각을 하고 살았기에 금새 좋은 해답을 내 놓을 것이다.
 
지금 당장 행복하다고 해서 사는 동안 그 행복이 계속 유지될 수는 없다. 실제로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우리의 미래는 모두 불투명하다고 말이다. 그래서 언제든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살 수 있는 자신만의 가치와 행복을 찾아야 한다고 말이다.
 
이 대답을 듣는 순간,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어떤 면에서 우리가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 가장 본질적인 이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의 삶은 대부분 예정되어 있긴 하지만, 개별 사건이나 개인별로 일어나는 일들은 전혀 예측 불가능하다. 즉, 태어나고 자라고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고 늙고 죽는, 큰 흐름은 거의 비슷하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개인별 경험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도대체 미래를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가 행복하다고 해서 미래를 낙관할 수 없으며, 현재가 불행했다고 해서 미래까지 불행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우리는 보통 희망을 갖고 살아간다. 이런 우리들의 특징으로 인해서 현재가 행복하다는 이유만으로 생각을 하지 않고 사는 것은 마치 오늘 배 불리 먹었다고 해서 내일 먹을 것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사는 것과 같다.
 
이렇게 보면 왜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어느 정도 정형화 되었고 또한 수긍이 가능한 답이 나온 것 같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번 더 질문을 던져보자.
 
만약 생각이란 것이 행복을 위해 해야 하는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결국 정말로 행복한 사람이라면 생각을 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라고 말이다. 이것은 좀 헷갈리는 질문일 수 있기에 다시 설명을 해보겠다.
 
1. 현재 행복하지 않다.
2. 행복하기 위해서 생각을 한다.
3. 생각을 해서 자신의 진정한 행복을 찾았다.
4. 그 덕분에 정말로 행복해졌다. (이 행복은 평생 흔들리지 않으며, 불안하지도 않다.)
5. 이젠 무엇을 위해 생각을 해야 할까?
 
이 절차를 거꾸로 보면, 결국 행복하지 않는 사람만 생각을 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왜냐하면 4번에 온 사람은 더 이상 행복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어졌다. 말 그대로 자신에게 진정한 행복을 찾았으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이 사람에게 생각에 대한 이유는 없다. 그래서 5번인 질문이 나온다.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그리고 이젠 철학자들에게 물어봐야 한다. 당신들이 지금 생각하고 산다는 것은 바로 당신들 역시도 진정한 행복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하지만 철학자들은 이 질문에 대해서 '아니오' 혹은 '네' 라고 대답을 할 것이다. 그것은 철학자 당사자들의 상태에 따라 달렸는데, 스스로 진정한 행복을 찾은 사람은 '아니오' 라고 말할 것이고, 아직 못 찾은 사람은 '네' 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아니오' 라고 말한 진정한 행복을 찾은 철학자에 대해 생각해보자. 이 사람은 이미 진정한 행복을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생각을 계속 한다. 왜일까? 정말로 생각은 그 어떤 경우에도 상관없이 인간이라면 해야 하는 본질적인 것일까?
 
아니다. 이것의 답은 쉽다. 왜냐하면 그 철학자의 진정한 행복이 '생각’ 그 자체 이기 때문이다. 철학자들은 생각하고 사는 삶을 행복으로 느낀다. 즉, 이것은 지적 호기심일 수 있고, 탐구심일 수 있다. 혹은 인간에 대한 이해나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것 그 자체를 행복하게 느낀다. 진정한 의미에서 사유의 즐거움이다.
 
자, 그렇다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생각하고 사는 것을 진정한 행복이라고 느낀 철학자가 자신의 행복을 타인에게 강요하고 있다. 즉, 다른 이들에게는 다른 사람이 말한 행복이 아닌,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결국 자신의 행복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고 있는 꼴이다.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철학자 본인이 인지할 수 있을까?
 
물론 철학자는 자신이 자신의 행복을 다른 이들에게 강요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좀 더 나은 삶에 대한 제안이며 방법론이라고 말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하기에 이 대답은 좀 옹색하지 않을까?
 
실제로 우리가 다른 이들의 행복을 인식하는 것은 사실 대 놓고 하는 강요가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은 이러이러해서 행복하게 느낀다고 말하지, 자신처럼 해야 행복한 삶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물론 그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사람은 보통 왕따가 되기 마련이다.
 
철학자들이 더 곤란할 수 있는 질문은 이제 그만 하고, 이젠 우리가 주제로 삼았던 '행복' 에 대한 추가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사실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우리의 이득을 추구한다는 것과 동일하다. 우리가 미래를 예측해서 무엇인가 방향을 잡는 것 자체가 바로 미래의 이득을 위해서 하는 일이며, 그것이 잘 되었을 때 우리는 행복함을 느낀다.
 
물론 행복에 대한 본질적 이야기는 그 동안 수 많이 해왔고, 그래서 이 글에서 그것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들 생각은 없다. 단지 이 시점에서 우리가 왜 생각을 해야 할까 와 그것의 답인 행복해야 한다는 것과 행복은 이득을 얻는 행위라는 것을 서로 연결하면 결국 우리는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옴을 알 수 있다.
 
이 말은 웃기는 것 같지만, 사실 너무도 당연한 말이다. 보통 사람은 철학자들이 말하는 원론적인 생각은 하지 않고 살지는 몰라도 사실 매일 어떤 생각은 한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자신에게 무엇인가가 얼마나 유리할지에 대한 판단과 현재 자신의 상태 그리고 미래의 이득에 대한 기대 등을 하는 것이다.
 
사람간의 관계, 최근 얻은 직장, 결혼할 사람, 키우는 아이 등등 뭐하나 이것으로부터 예외가 되는 것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당장도 이득을 위해 살기 때문에 이미 생각하고 사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면 좀 이상하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보통 하고 사는 생각과 철학자들이 하는 생각은 좀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실 여기에서 두 생각 사이의 본질적 차이는 없다. 단지 철학자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에게 정말로 이득이 되는 것을 알아야 한다" 라고 말이다.
 
우리는 정말로 눈 감고 있으면 코 베어가는 세상을 살고 있다. 우리는 실제로 사기를 당하는지 조차도 모르고 사기를 당한다. 아마도 자신이 사기를 당하지 않는다고 믿고 사는 사람은 사기 당한 것 자체를 인지하지 못해서 그렇다.
 
모든 돈을 버는 사람들은 조금씩 사기를 친다. 장사꾼이 그렇고, 기업이 그렇다. 모두들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법적 허용 범위 안에서 거짓말을 한다. 이것의 가장 첨단이 바로 광고이다.
 
우리는 자신이 실제로 원하는지 조차도 모른 채 그들이 말하는 것을 사고 쓰면 행복해진다고 믿는다. 말 그대로 도둑놈 천지에 집 문단속을 안하고 다니는 꼴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득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실제로 끝없는 손해를 보고 산다. 그리고 그런 이득은 모두 좀 더 계산 능력이 뛰어난 이들이 가져간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을 해야 한다. 우리가 생각을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사기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누군가 홍보하는 제품을 안 쓰고, TV에서 이야기하는 그럴 듯해 보이는 삶에 현혹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불필요한 물건을 사지 않고, 불필요한 여행을 가거나, 불필요한 집을 짓지 않는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들의 욕망은 끝없이 자극된다. 이것은 아무리 보지 않고 살려고 해도 어쩔 수가 없이 보인다. 그래서 우리가 휘둘리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 여기에서 우리를 스스로 지킬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바로 자기 중심점이다. 그리고 이 중심점을 찾기 위해서 스스로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을 잘 몰라서 헤매던 사람들은 또 다시 중심점을 잡아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들의 강연을 보고 책을 사면서 자신도 모르게 돈을 쓴다. 물론 이런 행위에는 정신적인 만족감이 있다. 강의를 듣고 책을 읽다보면 마치 자신이 중심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것이다.

 

하지만 냉정히 말하면 강연을 하고 책을 쓰는 사람들 역시도 자신의 행복, 즉 이득을 위해서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손해를 봐서 불행한 사람에게 또 다시 손해를 입힌다. 그렇지만 이런 행위를 우리 사회는 '힐링' 이라고 부른다.
 
중심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잠시 흔들렸더라도 생각을 하고 인식을 할 수 있으며,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 불행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흔들리고 나면 원래 자리가 어디였는지도 모른 채 옮겨진 그 자리를 자신의 자리라고 철석같이 믿는다. 이것이 자기 최면과 자기 합리화가 가져다 주는 선물이다.
 
그래서 어디서든 자신의 현재 자리가 최고의 자리라고 스스로 믿고 다른 이들에게 그런 식으로 말한다. 어제는 결혼을 해서 행복했다고 말하고, 내일은 이혼을 해서 행복하다고 말한다. 이런 우리들의 태도는 주변에 있는 또 다른 이들을 끝없이 흔들어 댄다. 서로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으니 떠돌다가 서로가 계속 부딪힌다. 이 충돌은 영원히 계속 이어진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철학자들 역시도 자신이 말하는 생각하는 삶이 바로 자신의 이득을 더욱 극대화 시켜야 한다는 결론에 동의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모든 인간의 보편적 삶이기 때문이다. 또한 동물들 역시도 하고 있는 짓이다.
 
실제로 이것까지를 바라보는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이것을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 자신을 제대로 돌아본 사람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자신이 행복하게 느끼는 것을 매우 자주 절대화 시키는 버릇을 가지고 있다. 즉, 가치화 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습성이 바로 우리의 한계점이 되고 만다. 철학자들의 한계가 바로 이렇게 생성되고 만다.
 
진정 행복한 사람은 생각을 할 수 없다. 생각은 행복하지 않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혹은 생각 하는 것 그 자체가 행복한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이것은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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