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행복하다는 믿음

아이루다 2014. 12. 5. 08:09

 
행복은 두 번 말할 필요도 없이, 인간에게 있어서 최고의 가치이다. 우리는 수 많은 삶의 이유를 생각하고, 수 많은 삶의 가치를 추구하며,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온갖 종류의 생각과 행위를 하지만 그것들의 모든 목적은 오직 존재의 행복 그 하나 뿐이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고 싶어한다. 또한 우리는 자신의 삶에 대한 점수를 메길 시점이 오면, 인생을 만족스럽게 살았거나 혹은 성공적으로 살았느냐를 판별하는 기준을 보통 행복하게 살았느냐 여부를 가지고 따진다. 즉, 인간인 우리는 현재가 행복하며, 미래 역시 행복하고 싶어하고, 자신이 과거의 삶이 행복했었기 바랜다.
 
성인이 된 인간은 보통 이것에 대해 알고는 있지만, 생각보다 아는 것 이상으로 행복의 추구는 매우 절실한 목표란 점은 잘 깨닫지 못한다. 우리가 행복이 최고의 목표임에도 그것을 잘 감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의 거의 모든 행위가 행복 그 자체가 아닌, 행복으로 가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일을 열심히 해서 돈을 벌었을 때, 우린 행복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최종 목표인 행복이 아니다. 실제로 제대로 된 행복은 그 돈을 썼을 때 얻어진다. 돈을 번 상태는 그 돈을 쓸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래서 이때 우리는 미래에 얻어질 행복에 대한 기대치를 갖을 수 있기에 행복한 것이다. 이것도 일종의 행복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하면 가짜 행복일 수 있다.
 
만약 그 돈을 써서 기대한 만큼 행복을 얻지 못하는 순간, 우린 돈을 벌었을 때 얻은 행복감이 전부 부정되어 버리기 때문에, 사람들은 헛돈을 쓰는 순간에 그 돈의 액수에 상관없이 몹시 당황하거나 분노하거나 돈이 아깝게 여겨지게 된다.
 
즉, 돈을 번 후 돈을 행복으로 제대로 교환해내지 못하면 그때는 그 가짜 행복의 정체가 들통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돈을 쓰는데 매우 조심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조심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돈으로 교환하는 것들은 늘 우리의 예상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것이 행복으로 가는 여정이든 아니면 최종적으로 행복한 것이든 상관없이 우리는 결론적으로 행복하면 된다. 아무리 큰 실수를 저질러도 그것이 행복함을 부르는 실수면 용서가 되듯, 우리는 행복하기만 하다면 거의 모든 과정을 묻어둘 수 있는 능력도 있다.
 
이런 우리의 행복에 대한 거의 무한대의 욕망은 우리가 스스로를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고 믿게 만든다. 즉, 우린 누구나 자신이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실제도로 정말로 행복한지에 대한 여부에 상관없이 행복한 삶을 산다고 믿는다.
 
놀랍게도 이것은 일종의 플라시보 효과를 일으킨다. 정말로 자신이 행복하다고 믿고 살면, 실제로 행복한 삶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긍정적 사고방식이라고도 부르기도 하는데, 여기엔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이 플라시보 효과는 늘 100%가 아니라는 점이다.
 
자신이 실제로 행복을 느끼는지에 상관없이 자신의 삶이 행복한 것이라고 판단하려면 일단 그 기준점이 필요하다. 즉, 무엇인가를 근거로 자신의 삶이 행복하다고 믿어야지 그냥 어느 날 나의 삶은 행복한 것이야 라고 정의한다고 해서 그것을 스스로 믿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기준점을 마련하는 과정이 결국 문제가 되고 만다. 스스로 느끼는 행복이라면 어떤 기준점도 필요 없지만, 자신이 행복하다고 믿기 위해서 필요한 기준점은 스스로 마련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엔 주변 사람들을 바라 봐야 하는 것이다.
 
결국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행복 기준을 스스로가 아닌 타인에게서 찾게 된다. 하지만 그 타인들 역시도 우리들 자신과 같은 과정으로 그 기준점들을 마련해놨다면 도대체 그 기준점의 정당성은 어떻게 보장 받을 수 있을까?
 
우리는 주변 사람들 뿐만 아니라 간간히 보는 TV나 책 등을 통해서도 좀 더 다양한 삶의 행복 기준점을 찾는 경우도 있다. 아무튼 옆집 사람이든, 직장 동료이든, 고등학교/대학교 동기, TV 속 출연자, 행복한 삶이라고 말하는 작가, 행복을 찾아 떠나는 만화 주인공 등등, 어떤 식으로든 접하게 되는 모든 행복하다는 증거가 될 수 있는 것들을 찾게 되면 그것을 내부적으로 각인을 시키게 된다.
 
그것은 여행, 맛 집 탐방, 운동, 화목한 가족, 즐거운 소풍 등등이 될 수 있다. 이것보다 좀 더 경쟁적인 부분은 명품 백, 좋은 집, 좋은 차, 공부 잘하는 아이, 좋은 직장, 새로 산 옷, 새로 장만한 비싼 IT 기기 등이 될 수도 있다.
 
여기에서 앞에 나열한 것과 뒤에 나열한 것은 종류는 달라 보이기도 하고 다르다고 말해지기도 하지만 실제로 크게 다르진 않다. 우리가 이것을 다르다고 느끼는 이유는 보통 앞의 것들은 쉽게 얻을 수 없지만 돈이 덜 들고, 뒤의 것들은 돈만 있으면 쉽게 얻을 수 있지만 돈을 쉽게 얻을 수 없다는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의 성향에 따라서 이것은 다르게 보이고 또한 그래서 사람의 따라 각자의 후보 군에 들어가기도 하고 빠지기도 한다. 아무튼 이런 과정을 거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만의 행복을 느끼는 항목을 보유하고 있게 된다.
 
하지만 다른 이들을 참고해서 얻어낸 각 항목들이 운 좋게 자신에게 잘 맞을 수도 있지만, 어떤 경우엔 자신이 전혀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것이 행복에 대한 매우 중요한 증거라고 말하면 이것을 쉽게 떨치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조차도 공통적으로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그 항목을 도대체 어떤 기준에서, 또 어디에서 얻어 왔냐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이들은 자신이 이미 충분히 행복하다고 믿거나 혹은 행복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그 항목들의 출처에 대해서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해외여행을 너무도 가고 싶어 하는 어떤 사람은 그것을 어느 날 본 해외 여행 전문가가 쓴 책을 보고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어떤 아름다운 스위스의 사진을 보고 느꼈는지 아니면 옆 자리 동료가 며칠 전 다녀 온 해외 여행에 대해 계속 떠들어 대서 느꼈는지 알 길이 없는 것이다.
 
사람들이 해외 여행을 갔다 오니 너무 좋더라고 말을 하고, 책을 보니 배낭을 꾸려서 떠나라 라고 말하고, 사진을 보니 너무도 아름다운 풍경이 보이고.. 자신의 현재 삶은 좀 덜 행복한 것 같으니까 결국엔 뭔가를 해서 행복하고 싶은 순간에 많은 이들이 행복했다고 말하는 해외 여행이 강력한 행복의 필수 조건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생각만큼 그렇게 작동되질 않는다. 어떤 경우엔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서 해야 할 숙제 같은 것들이 있고, 그래서 그것을 행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한다고 믿고, 또한 실제로 하면 행복하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런 항목들이 자신의 능력으로 충분히 소화가 가능한 사람이라면 좀 덜하겠지만, 돈, 시간, 능력이 부족하여 이루지 못한 사람의 경우라면, 이것은 과도한 욕망으로 변한다. 즉, 해서 행복해져야 할 것들이 역으로 하지 못해서 불행하게 되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지 못하기에 더욱 더 그것을 간절히 바라고 더 하고 싶어하게 된다. 결국 이런 변화는 원래 자신이 하려고 했던 행복한 삶을 위해 해야 할 것들이란 명목에 속해있던 것이, 처음부터 왜 그것이 그 항목에 들어갔는지에 대한 인식도 없이 반드시 행복하기 위해서는 해야 하면 하지 못하면 불행한 것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이런 것들은 실제로 하고 나면 행복하긴 하다. 그런데 그것은 그것 자체를 한 것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원하던 것을 이룰 수 있는 자신의 능력과 운과 환경의 변화가 만족스러운 것이 된다. 하지만 이 역시도 일종의 만족감이란 행복이기 때문에 우리는 흔히 이 만족감을 원래 그것을 했기 때문에 느끼는 행복이라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해외 여행을 너무도 가고 싶은데, 상황이 안되어서 못 가던 사람이 운 좋게 어느 날 좋은 기회를 잡아서 싸고 쉽게 해외 여행을 가게 되었다고 치자. 아마도 그 사람은 다시 또 언제 이런 기회가 올지 모르니 가능하면 더 많은 곳을 더 열심히 다닐 계획을 세우게 될 것이다.
 
그리고 고생은 했지만 정말로 열심히 다니고 사진 찍고 해서 다시 국내로 돌아왔을 때, 자신이 이런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이 매우 행복했고 또한 후에 그때 모은 기념품과 사진을 잘 정리해서 자신의 SNS에 올렸을 때 다른 이들의 반응을 보고는 매우 만족스러워 했다.
 
이 사람은 정말로 해외 여행을 행복하게 다녀온 것일까? 그리고 왜 이 사람은 해외 여행을 가고 싶어 한 것일까?
 
솔직히 이 사람이 해외 여행을 정말로 행복하게 다녀왔는지는 알 길이 없다. 왜냐하면 앞에서 말했듯, 해외 여행을 하면서 느낀 것이 행복했는지, 아니면 가고 싶었던 해외 여행을 갈 수 있어서 행복했는지를 그 스스로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왜 이 사람이 해외 여행을 가고 싶어했을 지에 대해서는 이런 식으로 말할 수도 있다.
 
그 사람 역시도 다른 이가 다녀 온 해외 여행 사진과 글을 봤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결국 이 말은 이 사람이 국내로 돌아와 정리해서 올린 그 사진과 글은 또 다른 이가 해외 여행을 가고 싶다는 욕망을 부추기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것들은 이런 운조차도 없다. 그래서 하고 났더니 만족감조차도 없어서 돈과 시간만 낭비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실제로 사람들은 이런 경험을 다수 하면서 살아간다. 맛 집을 찾아가서 맛이 없거나 멋진 여행지라고 찾아갔더니 멋지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런 경우라도 해도 기억 자체를 조작하여서 뭔가 조금이라도 좋은 기억을 남기고자 노력한다. 그래서 맛 집에 가서 서비스가 엉망이라고 해도 기분일 잡치지 않기 위해 아무런 불만도 표시하지 않고 조용히 빠져 나온다. 그리고는 기억에서 지워 버린다.
 
실제로 만족감을 느꼈든지 아니면 결국 불만족을 느꼈든지 상관없이 진정한 행복감과는 거리가 먼 경우는 정말로 많이 있다. 이런 식으로 해외 여행 말고도 자신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믿고 싶은 많은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자신들만의 행복함의 증거가 될 수 있는 항목들에 대한 정리가 되어 있다.

 

또한 증거는 원래 명백해야 효과가 있어야 인정 받는다. 그래서 뭔가 행복한 일을 할 땐 반드시 티나는 것을 해야 하게 된다. 해외 여행을 가더라도 남들이 많이 아는 곳을 가야 하고, 단풍을 보러 간다고 해도 도심지의 공원이 아닌 유명한 산에 가야 한다.

 

이런 식으로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곳을 가야만 그 목적으로 달성하는 경우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증거가 확실한 것들은 잘 정리되어 행복하기 위해 한 일로 다른 이들이 보기 쉽게 기록된다. 오늘날 각종 SNS가 그리 광범위하게 퍼지는 이유가 되고 있다.

 

하지만 행복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과 실제로 해서 행복한 것은 완전히 다르다. 이것이 만나는 지점은 오직 그것을 했기 때문에 느껴지는 만족감에 의한 행복감뿐이다. 그리고 이 감정이 우리를 몹시 혼란하게 만든다.
 
글을 시작할 때,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표현을 했다. 이 말은 우리는 모든 삶의 패턴을 행복에 맞춘다는 뜻이다. 따라서 우리는 뭔가를 정말로 하고 싶다면 그것을 어떻게든 한다. 설령 그것이 매우 위험하고 죽음에 가까이 가는 것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심지어는 어떤 행동을 했을 때 다른 이들에게 걸렸다간 사회적으로 완전히 매장이 될 수 있는 위험을 가진 것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어떤 면에서 완전한 행복의 노예이다.
 
그런데 마음 속으로, 하면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 항목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처음부터 말이 안 된다. 왜냐하면 해서 행복할 것이라면 이미 했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어떤 악조건과 그 어떤 문제가 있어도 해결하고는 하고야 만다.
 
만약 이런 저런 사정에 의해서 그것을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단지 그것을 그만큼 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일 뿐이다.
 
아이들은 값비싼 장난감을 줘도 다른 장난감과 똑같이 싫증을 낸다. 그것이 비싸다고 해서 그것을 더 가치 있게 느끼지 못한다. 왜냐하면 돈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순수하게 행복을 느낀다. 정보가 없을수록 그래서 만족감이나 혹은 행복의 증거의 목록이 없을 경우 행복하지도 않는 것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있어서는 하고 싶다면 그냥 땡깡을 피우는 것이 최고이다.
 
어른들 역시도 아이의 그것도 다를 바가 없어야 한다. 어른도 하지 못하면 땡깡을 피워야 한다. 단지, 어른은 그것을 받아줄 사람이 없으니 스스로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해외 여행이 너무도 가고 싶은 사람이라면, 매년 돈을 모아서 어떻게든 해외 여행을 가려고 할 것이다. 마치 여행에 미친 사람처럼 그것을 하지 못해서 안달이 나야 한다. 이것이 정말로 해외 여행을 하면 행복한 사람의 태도이다. 만약 그것이 아니라면 해외 여행을 자신의 행복 증거 항목에 넣어 두고 그것을 해냈을 때 스스로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럼에도 증거에 의해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플라시보 효과로 인해 실제로도 행복해진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는 정말로 행복한 순간을 경험해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훨씬 더 행복할 수 있는 상태가 있는 것에 대해서 알지 못하니 그 정도 수준의 행복이 최고의 것이라고 믿고 평생을 산다.
 
그렇지만 운동에 미친 사람은 혼자서 미친 듯이 운동을 하면서 행복해 한다. 그들은 자전거를 타고 전국일주를 하고 매년 마라톤에 참가한다. 또한 주말마다 조기 축구 회에 나가 운동을 하기도 한다.
 
낚시에 미친 사람이나 각종 취미 생활에 미친 사람들 모두 그렇다. 자신이 행복하니까 주체를 못하고 오직 그것만을 하는 것이다. 단지 이런 것들은 어떤 대상에 미치느냐에 차이만 존재한다. 그것이 배우나 가수를 추종하는 경우나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목적을 가졌거나 북한 추종자를 몰아내는 일에 빠져있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우리는 단 한 번의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에, 남들이 얼만큼의 행복을 느끼는지 가늠할 수 없다. 상상도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추측을 하고 믿음을 가진다. 자신이 느끼는 행복이 아마도 최고의 수준일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삶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왜냐하면 자신이 행복의 증거라고 믿고 하는 많은 일들이 실제로는 자신과 그리 잘 안 맞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현재 행복 증거 항목 중에서 어떤 조건들로 인해 하지 못하는 일이 생긴 것들은 일단 먼저 꺼내어 다시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일인지, 자신을 행복하게 해준 것인지, 또 왜 이것을 거기에 넣었는지를 되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씩 꺼내서 잘 살펴본 후 버리거나 다시 넣어 재정리 한 후,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그것이 바로 자신이 진정으로 행복한 일이 된다.
 
우리는 행복하고 싶기에 행복하다고 믿는다. 우리는 행복하다고 믿기에 행복한 사람들이 보통 하는 일들에 대한 기준점을 찾는다. 우리는 기준점을 찾기 위해서 주변을 돌아보고 TV나 드라마 속 사람들이 어떻게 행복해 하는지를 주의 깊게 바라본다. 우리는 그건 것들을 모아서 자신의 행복함의 증거 리스트에 넣어 둔다.
 
그리고 가끔 서점에 가면 행복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지침서들도 보인다. 이런 것들 역시도 좋아 보이면 자신의 리스트에 넣어 둔다. 그것이 정말로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지, 실제로 하고 나서 느낀 행복감이 만족감인지 아니면 행복 그 자체인지를 판단하지 않는다.
 
텃밭을 만들어서 가꾸는 사람은 그것을 위해 힘든 노동을 하는 중에도 행복해 한다. 하지만 만족감을 얻는 사람은 그 텃밭에서 수확물이 나와 그것을 먹거나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 줄 때 행복해 한다. 만약 전자라면 텃밭 그 자체가 행복한 사람인 것이고 후자라면 만족감에 행복해 하는 것이다.
 
이것은 나누기도 어렵고 실제로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를 가늠하기도 쉽지 않다. 이 둘 모두 행복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과정도 행복하고 결과도 행복한 것이 더 나아 보이지 않는가?
 
그리고 실제적인 문제는 이 과정에서 오는 차이로 인해 발생한다. 전자의 경우는 늘 텃밭에서 일하면서 행복하기 때문에 다른 여분의 행복이 필요가 없다. 하지만 후자는 수확물이 나오기 전까지는 뭔가 다른 추가적인 행복이 필요하게 된다.
 
그리고 또한 그 수확물을 나누어 먹을 사람이 없거나 받은 사람들이 그것을 받는 것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거나 아예 수확물 자체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갑자기 불행해진다. 그리고 이것을 느낄 때, 우리는 잊고 있었던 공허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과정을 행복하게 한 사람은 다른 이들의 반응에 거의 무신경하게 된다. 달라면 주고 안 달라고 하면 안주면 된다. 실제로는 안 달라고 하는 것이 더 좋다. 그래야 자신이 더 먹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이미 행복을 얻었기에 만족감으로 얻는 행복에 대해서 좀 덜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정말 먹는 것이 행복한 사람은 음식 사진을 찍지 않는다. 먹는 것이 행복해서 음식이 나오자마자 손이 먼저 가기 때문이다. 정말로 여행을 즐기는 사람은 사진 한 장 안 찍고 올 수 있다. 정말로 영화를 보고 싶은 사람은 혼자서 영화를 보러 간다. 그 과정을 제대로 즐기는 사람은 다른 이들과 그것에 대해 교감을 준비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이미 충분히 자신이 행복하다고 믿고 또한 자신의 행복 리스트에 들어 있는 것들을 꾸준히 하면서 사는데도 불구하고 가끔 뭔가 빠진 느낌이 날 때가 있다. 특히 이런 느낌은 어느 날 혼자 있게 되었을 때 더욱 강렬해지는데, 그래서 많은 이들이 혼자 있게 되는 상황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심지어는 두려워하기도 한다.
 
어느 날 새벽 일찍 눈이 떠졌을 때, 마음 한 구석에 자신도 모르는 공허함이 밀려 온다면 바로 그것이 현재 자신의 삶이 자신이 믿는 만큼 행복하지 못하다는 뜻이 되고 더해서 현재 자신의 행복 리스트에 있는 것들이 대부분 제대로 된 것들이 아니란 뜻이 된다. 그것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정의해 놓은 행복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들에 불과한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행복에 대한 무한한 동경이 불러온 일종의 참사이기도 하다. 우리는 행복하고 싶기에 행복 하려고 노력하고 결론적으로 행복하길 바란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새 행복한 삶을 정의하고 그것에 맞춰서 산다.
 
매일 산에 오르고 운동을 하여 만족스럽고 건강하고 사는 사람보다 실제로 감당하지 못할 돈을 명품 백에 쓰는 사람이 더 행복할 수 있다. 물론 반대도 가능하다. 이것은 행복하기 위해서 무엇을 하느냐에 대한 대상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어떤 것을 할 때 얼마나 행복할 수 있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흔하게 행복 리스트에 들어 있는 것 중 하나인, 아이를 키우는 행복 역시도 모든 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것을 행복하게 느끼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 부모들은 아이를 방치하거나 아니면 심하게 규제하여 자신이 믿는 삶을 살아가게 강요하게 된다.
 
그렇지만 아이를 키우는 것이 행복한 것이라고 믿는 부모는 자신이 얼마나 아이로 인해서 스트레스를 받는지 인식하지 못한 채, 아이를 통해 자신이 행복하다고만 믿게 된다. 그래서 아이는 부모의 숨겨진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자신도 모르게 주눅이 들거나 신경질적인 삶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결혼 생활도 마찬가지다. 어떤 이들은 결혼한 삶이 매우 행복하겠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행복하다고 믿는 것이 될 뿐이다. 그래서 어떤 공허함이 늘 존재하게 된다. 운동을 하는 것도, 도박을 하는 것도, 각종 취미 생활을 하는 것도, 여행을 하는 것도, 가족과 화목하게 지내는 것도 이런 식으로 모두 각자에게 다르다.
 
이런 문제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행복에 대한 둔감함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자신이 왜, 어떻게, 정말로 행복한지 잘 알지 못한다. 이 둔감성과 행복해야 한다는 간절함이 합쳐져서 결국 우리가 행복 증거 항목에 들어 있는 것들을 할 때, 행복하다는 믿음 속에서 살아가게 한다.
 
원래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과연 그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하는데, 처음부터 그것이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해결할 생각도 시작을 못하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찾지 못한다. 이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벌어지는 일이다.
 
정말로 단순하게도 우리 인간은 먹고 자고 싸고 성생활을 할 때 대부분 정말로 행복하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 이것만 제대로 행복을 느낀다면 다른 행복할 것을 찾을 필요가 없다. 맛있는 것을 먹고, 잠을 잘 자고, 변비 없이 똥 잘 싸고, 만족할 만큼의 성생활을 한다면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여기에 하나 더 더한다면 자녀를 키우는 행복 정도일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삶은 모두 이것을 하기 위해서 도움을 주는 행위들이 된다. 맛있는 요리를 하거나 사 먹고, 돈을 벌고, 집을 구하고, 여자나 남자 배우자를 만나고 자녀를 낳아서 기르면 된다.
 
그런데 만약 이것들 만으로는 충분히 만족을 못하는 사람이라면, 뭔가 다른 행복 항목을 찾게 될 것인데,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단지 이 때 매우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모두 자연 발생적인 것들이 아닌, 자신만의 숨겨진 본질적 특징을 표현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본능에는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어하는 본능, 남을 돕는 것을 좋아하는 본능, 남에게 자랑하는 것을 좋아하는 본능, 몸이 건강하게 되는 것이 좋은 것 등등이 있다.
 
그리고 이것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자신이 가진 감성이다.
 
어떤 사람은 권력, 어떤 사람은 명예, 어떤 사람은 의무, 어떤 사람은 인류애, 어떤 사람은 가족 사랑, 어떤 사람은 존재감, 어떤 사람은 업적, 어떤 사람은 다른 이의 인정, 어떤 사람은 무한한 자유, 어떤 사람은 폭력, 어떤 사람은 변태적 성생활에서 그것을 찾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시골 집에서, 어떤 사람은 따뜻하게 타고 있는 모닥불에서, 어떤 사람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커피 한잔에서, 어떤 사람은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어떤 사람은 가족 모임에서, 어떤 사람은 어딘가로 떠난 낯선 곳에서 그것을 찾을 것이다.
 
그렇게 주의 깊게 살펴서 자신의 것으로 담은 것이 정말로 진정한 자신이 행복한 항목이 되어야 한다. 남들이 지정해 준 행복 증거는 이젠 좀 버리고 버려서 불필요한 것들은 없애는 것이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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