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현재가 과거를 정의한다.

아이루다 2014. 11. 7. 08:13

 
흔히 인간을 추억을 먹고 사는 존재라고 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추억은 기억의 일부이며, 무수히 많은 기억 중에서 소중히 남기고 싶은 기억에 대한 것만을 모은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추억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다. 과거 즐거웠던 한 때, 행복했던 시절, 좋은 사람들과의 따뜻한 만남, 새롭고 신기한 볼거리, 마음 한 구석을 적셔주던 멋진 풍경 등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힘들 때나 혹은 가끔 거울을 보다가 불현듯 떠오를 때, 우리에게 따스한 미소를 머금게 해준다.
 
정말로 좋은 추억들은 평생을 우리와 함께 하기도 한다.
 
아무튼 추억을 포함한 기억 자체는 우리를 정의한다. 그 중에서 추억에 관련된 부분은 우리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추가적으로 정의한다. 기억이 자신만의 형태를 결정하는 것이라면, 추억은 자신만의 고유의 색을 입히는 것이다.
 
우리는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과거에 우리가 했던 행동, 말, 해낸 일 등을 통해서 타인으로부터 정의되고 스스로도 정의한다. 오늘 나 자신에 대한 내 자신의 정의는 어제를 포함한 기억 가능한 모든 것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물론 최근에 일일수록 더 강하게 영향을 미친다.
 
또한 나 자신에 대한 타인의 판단 역시도 마찬가지다. 그들 역시도 과거의 나 자신과의 연관된 기억을 통해서 오늘의 나를 정의한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꾸준히 쌓은 이미지를 통틀어 거의 고정된 하나의 이미지로 만든다. 그리고 그것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오래된 사이가 될수록 더 그렇다.
 
그렇지만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억은 놀랍게도 현재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과거를 통해 현재가 정의되기 때문에 현재가 과거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은 매우 파격적인 생각일 수 있다. 결과가 원인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재는 반드시 과거를 통해 정의되어야 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현재를 기반으로 과거를 평가하는 것에 매우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현재에 따라서 동일한 과거는 다르게 판단되고 그 결과로 현재의 자신도 다르게 정의되어 버린다.
 
과거에 찌질하게 백수 생활을 하던 사람도 중요한 국가 고시에 합격하여 성공하게 되면, 그 찌질했던 과거는 재미난 추억이 되기도 하고, 도약하기 위해 움츠렸던 힘든 시절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합격하지 못하면 지난 과거는 찌질했었던 불행한 과거가 되고, 불필요하게 인생을 낭비한 기억으로 정의된다.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추억은 이것의 가장 좋은 예 중에서 하나이다. 특히 고생이 많았던 일은 그 당시 정말로 힘들고 고통 속에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것은 점점 포장되어서 좋은 추억으로 자리 잡는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평생 동안 추억이라고 여기고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 추억이 아직도 진행 중이라면 어떨까? 군대를 추억으로 말하는 남자들을 다시 그 시기로 보낸다면 말이다. 아마도 그들은 죽는 것이 낫다고 할지도 모른다.
 
이렇듯 우리는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기반으로 하여 과거를 평가하기에 수 많은 오류를 만들어 낸다. 즉 결론을 통해서 원인의 의미를 해석하기에 결론이 달라질 때 마다 원인에 대한 해석이 달라진다. 그래서 이것은 어떤 경우에도 제대로 정의될 수 없지만, 어느 한 순간에 우리는 자신의 삶을 무척 확고하게 판단한다.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과거의 힘든 시절을 잘 포장한다. 왜냐하면 결국 성공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런 비슷한 힘들고, 찌질하고, 고생하고, 불행했던 시절을 가지고 있지만, 성공한 소수 사람만이 그것을 힘든 시련의 시기였다고 말한다. 실패한 다수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암흑의 시기일 뿐이다.
 
하지만 이것은 현재 당장 힘들고, 고생하고, 불행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 현재의 고생이 번듯한 미래의 자신을 만들어 줄 수 있다는 희망이 되기 때문이다. 비록 그 미래가 이루기 쉬울수록 그 효과는 적지만 말이다.
 
살다 보면 각종 매체를 통해서 사회적으로 나름 성공했다고 평가되는 사람들이 젊은 시절을 회고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젊은 시절에 가졌던 편협하고 어리석은 자신의 눈높이를 후회하기도 하고, 과거에 더 소중히 여기지 못했던 가치들에 대해서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래서 돈보다는 친구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질 것이라든가,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더 도전해볼 걸 이라든가, 외모보다는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었어야 한다든가 하는 식의 표현을 한다.
 
그리고 이것은 과거의 자신이 겪은 고난을 현재가 있을 수 있었던 자양분으로 표현하는 것들과 비슷한 맥락을 갖는다. 즉, 현재의 상태로 인해서 과거를 후회하는 것이다.
 
이것의 차이라면, 하나는 현재의 성공을 기반으로 과거의 사실을 다르게 해석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현재의 성공을 기반으로 과거에 하지 못한 좋은 것들에 대해 후회를 하는 것이다.
 
이 둘은 다르면서도 같다.
 
결국 그래서 가지고 있는 문제는 동일하다. 즉, 이들은 현재의 상태를 기반으로 해서 과거를 재해석하는 것이다. 그럼으로 인해 성공한 노인이 전 재산을 다 털어서라도 고생했던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모습은, 어떤 면에서 매우 우습게 느껴진다. 우리는 그런 말을 들으면서 젊음의 가치가 그리 높은가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노인이 젊은 시절에 정말로 비참하고 살았고 현재도 비참하다면 그와 같은 말을 했을까?.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자신의 숨겨진 심리에 대해서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현재의 상태가 어느 정도 고정이 되고 별 변화가 없을 것 같은 상태가 되면 본격적으로 과거 치장하기에 나서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지하철에 한꺼번에 올라탄 사람들과 같다. 다들 자리를 찾기 위해서 순간적으로 빈자리를 찾아 바쁘게 움직이지만, 일단 자리를 앉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느긋하게 다른 이들의 모습을 바라본다. 그리고는 평화로운 표정으로 삶의 여유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현실 속에서도 멘토의 역할이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많은 이들의 모습도 실제로 이와 그리 다를 바가 없다. 모두들 현재의 자신이 그럴 만 하니까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듣는 이들 역시도 과거가 포장되는 순간을 같이 공감한다. 그래서 천원이 없어서 컵라면도 못 먹었던 어떤 유명 CEO의 과거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의 현재 처지에 대해서 좀 덜 비관적으로 생각하게 될 수 있다. 또한 미래엔 자신도 그런 모습이 될 수 있으리란 희망을 가질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이루어질 수 있는 희망이다. 하지만 그 청중들 중에서 1%도 그런 행운을 얻긴 힘들다. 그리고 그 1%는 다시 자신의 젊은 시절에 고생했던 기억을 다음 세대의 젊은이 앞에 서서 같이 반복할 것이다. 컵라면 먹던 시절의 어려움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나머지 99%는 강단에 설 수 없어서 자신의 실패를 말할 기회조차도 얻지 못한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자신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낫게 치장하는 하는 것에 대해서 스스로 잘 인식도 못하고, 누구나 그렇게 하므로 그것을 이상하게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과거에 있었던 일을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려는 본능과 그 일을 겪은 자신의 삶이 조금이라도 더 의미 있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된 사고방식이다. 우리는 누구나 고정된 과거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판단하려고 하고 더해서 자신이 꼭 필요하고 의미 있는 존재 이길 원한다.
 
그래서 사람간의 갈등이 생겼을 땐, 반드시 양쪽 이야기를 모두 들어봐야 한다. 한쪽 이야기만 듣고 판단했다간 아주 낭패를 볼 수 있다. 단 한 명도 과거의 사건을 100% 객관적으로 말하지 못한다. 실제로 그 자신을 객관적으로 믿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불가능하다.
 
또한 누군가가 자신의 어려웠던 과거를 말할 땐, 그것의 대부분은 바로 현재의 성공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는 생각도 해야 한다. 누구나 충분히 성공하면 치질에 걸린 이야기나 남의 돈을 훔쳤던 범죄행위까지도 이야기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런 불우한 과거가 더욱 심각할수록 사람들은 더욱 더 공감해주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더욱 더 바닥에 있던 사람이 성공한 이야기에 감동을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그것을 듣는 우리 자신도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해주기 때문이다. 또한 그렇게 고생을 했으니 너는 이제 좀 행복해도 된다고 이해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이 다른 이들의 질투를 받지 않으려면 과거에 고생한 내용을 많이 이야기 하면 된다. 실제로 TV 프로그램에서 이런 내용을 다루는 프로그램이 참 많다. 많은 토크 쑈가 바로 사람들의 과거 이야기를 치장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을 본 시청자들은 그 당시 나온 연예인의 과거를 듣고는 마음 아파하는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 현재를 기반으로 과거를 판단하는 일은 물리학적인 관점으로 봐도 매우 이상한 일이다. 과거는 이미 일어난 사건인데 그것을 현재의 상태에 맞춰서 '해석' 만 달리 하고 있는 꼴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매우 확실한 사실인 냥 자신감 있게 표현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성공한 사람들은 정말로 그것이 성공할 것인지, 또 얼마나 성공할 것인지에 대해서 정확히 예측하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그렇게 예측되어 시작한 많은 것들은 예측을 벗어나 결국 큰 실패를 경험하게 되는 일이 생각보다 매우 흔하다.
 
나중에 결과론적으로 보아서 '신의 한 수' 가 되는 일이라고 판단되는 것도 있는데, 말 그대로 결과론적인 것이다. 물론 사전 조사가 매우 잘 된 어떤 것들은 예측대로 성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 많은 성공은 예측을 넘어선다. 
 
예전에 빠른 배달로 유명했던 짜장면 집 사장님이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번개 배달이란 호칭을 얻게 된 계기는 바로 어느 날 주문이 잘못되어서 배달 간 짜장면을 다시 가지고 돌아가야 하는 문제가 생겼는데, 마침 그 옆집에서 지금 배달 가방에 들어있는 종류와 같은 음식을 시킨 행운이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바로 초인종을 누르고 배달을 왔다고 하니, 주문을 시킨 사람 입장에서는 전화기로 주문하자마자 배달이 온 격이 된 것이다. 이런 신기한 이야기는 보통 사람들의 입 소문을 타게 되고, 결국 이 중국집은 빠른 배달로 유명한 집이 된 것이다. 그리고 주인은 빠른 배달이 가진 상업적 능력을 알게 되고 결국 더 빠르게 배달하려고 노력하게 되어서 결국엔 정말로 빠른 배달을 할 수 있는 집이 된 것이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보통 거두는 성공이 얼마나 우연히 일어나는 일인지를 설명해주는 좋은 예가 된다.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장님이 강단에 서서 과거 우연한 사건 빼고 성공한 이야기만 하면, 그것은 마치 시장의 요구를 제대로 파악한 훌륭한 마케팅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포장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일어난 과거에 자꾸 엉뚱한 색을 입힌다. 우리는 이미 일어난 과거의 모습을 자꾸 변형 시킨다. 우리는 심지어 과거에 일어나지도 않은 사건을 있었다고 착각도 한다. 우리는 과거에 있었던 생각하기 싫은 사건을 머리 속에서 지우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과거를 점점 더 확신한다. 우리는 과거를 끝없이 자신의 입맛에 맞게끔 변형시킨 후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에게 과거는 시간이 지날수록 다르게 변형되고 있다.
 
우리는 기억을 통해 자신을 정의하고, 또한 타인에 의해 정의된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들 머리 속에서 계속 변형되면 결국 다른 이들이 생각하는 자산과 내가 생각하는 자신은 점점 격차가 벌어진다. 이것이 심할수록 더욱 더 심한 격차가 벌어져서 결국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다르게 적힌 과거를 끄집어 내고 그것의 정당성을 두고 다툼을 벌인다. 하지만 이미 다르게 변형된 기억은 각자에게 옳을 뿐이다. 결국 이것은 끝없는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이런 변형을 우리가 인지하는 것이 정말로 어렵다는 점이다. 심지어 변형이 일어나는 것 자체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늘 이것에 대한 인식적인 한계점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에 대해서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우리는 과거를, 현재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커다란 어리석음을 불어오며, 자신을 과도하게 판단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을 늘 마음 속에 새겨둬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오늘 내가 옳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는 그 어떤 것이, 과거엔 옳지 않을 수 있으며, 미래의 어느 날도 옳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즉,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진리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좀 더 유연한 태도를 가질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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