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우연이 겹치면 무엇이 될까?

아이루다 2014. 12. 1. 08:41

 
기억이 가물가물 한데, 예전에 CSI를 보다가 거기에 나오는 대화 한 토막이 떠오른다. 아마도 형제가 당한 교통사고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형과 동생 모두가 2년 차이를 두고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이 운전하던 차에 치여 죽었다는 이야기였다. (범죄이야기가 아니라 우연성에 대한 언급이었다)
 
어떤 면에서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소름을 느끼게 할만큼 기막힌 우연이다. 여기에서 운전한 사람이 노리고 한 계획적 범죄가 아니라 정말로 우연하게 일어난 사건이라면 도대체 이럴 확률은 얼마나 될까?
 
우리의 삶에는 참 많은 우연이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우연을 잘 느끼지 못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우리의 행동은 계획대로 되기 때문이다.
 
원래 우연이란 것은 예상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가 우연으로 느끼는 것이다. 즉, 우연은 계획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계획대로 되면 그것을 우연히 이뤄졌다고 생각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우연과 계획된 것은 서로 반대가 되는 개념일까? 이것은 그냥 단순히 생각하면 그렇다. 우리는 우연이 반대로 필연, 즉 어떤 의도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사고적 패턴으로 인해서 우리는 확률이 낮은 우연이 연달아 일어나게 되면 그 우연의 목적이나 정체 그리고 가진 의미를 좀 다르게 해석하려고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거기에서 신의 뜻을 발견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미지의 존재가 보내는 신호로 해석하기도 한다. 물론 그냥 온전히 재수가 없거나 좋거나 하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많지만 말이다.
 
양자 역학에서 하는 말에 따르면, 우리가 벽을 통과하지 못하는 것은 단지 확률의 문제라고 한다. 즉, 우리는 당연히 벽을 통과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벽을 통과할 확률이 지극히 낮아서 불가능 하다고 한다. 그래서 만약 벽을 통과하려는 시도를 1000조 번 만큼 시도할 수 있다면 통과 할지도 모른다고 한다.
 
물론 그 누구도 자신의 삶 동안 1000조 번의 시도를 할 수 없다. 횟수상 불가능하다. 그리고 또한 그런 일을 하면서 자신의 삶을 낭비할 사람도 없으니, 이것은 그저 이론적 이야기일 뿐이다. 로봇을 만들어서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시도해 볼 수는 있을지 몰라도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낮은 확률은 아니지만, 방사능 입자에는 모두 반감기라는 것이 있다. 짧게는 몇 분도 있고 길게는 몇 억년까지 있을 수 있는 이 반감기는 모든 종류의 방사능 입자가 불안정한 상태를 벗어나 에너지를 방출하고는 안정화 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는 각 방사능 입자가 정확히 언제 안정화 될 때를 예측하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는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반감기를 갖는 입자가 에너지를 방출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각 입자의 반감기에 대해 꽤나 정확히 알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확률이며 거기에 더해서 엄청나게 많은 입자에게서 일어나는 우연성의 합이기 때문이다.
 
동전은 한 번 던지면 무조건 앞면이나 뒷면만 나온다. 그래서 단 한 번 던지고는 절대로 이 동전의 앞면 뒷면 나올 확률을 계산 할 수 없다. 만약 그렇게 하면 무조건 한 쪽이 100% 확률을 갖게 된다. 그래서 이것을 제대로 하려면 횟수를 늘려야 한다. 그래서 10번, 100번, 1000번으로 늘려갈수록 앞면과 뒷면이 나올 확률은 50%로 가까이 다가간다.
 
또 하나의 다른 방법은 시도하는 동전의 숫자를 매우 많이 던지는 것이다. 즉, 한번 던질 때 동전을 수천 만개를 동시에 던지고 나서 세면 그땐 단 한 번의 시도로 동전의 앞뒤 면이 나올 확률을 거의 정확히 구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오랜 시간의 반감기를 갖는 방사능 입자의 확률을 알 수 있는 방법이다. 그래서 어떤 방사능 입자의 반감기가 3억년이라고 하면 3억년을 기다려봐야 정말로 그것이 3억년 후에 반감기인지를 알 수 있지만, 실제로는 3000억개의 입자를 관찰하면 되는 것이다.
 
거의 모든 입자는 고유 무게를 가지고 있으니까 그 무게를 재면 과연 몇 개의 입자가 어떤 덩어리 안에 존재하는 알 수 있고 그 덩어리 주변으로 입자 검출기를 놓고 측정을 하면 일정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수의 입자가 에너지를 방출하는지 계산해 낼 수 있는 것이다. 이 숫자를 전체 입자 수로 나누면 바로 반감기가 계산된다.
 
3억년만에 한번 반감되는 입자는 정말로 대단한 수준의 우연성을 가졌지만, 그런 입자가 3000억개가 모이면 놀랍게도 매년 1000개의 입자가 반감되는 것이다. 이것을 일 단위로 바꾸면, 매일 3개의 입자가 에너지를 방출하고 안정화 된다.
 
우연성의 힘은 여기에서 나온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우리 지구상에는 70억명의 사람이 살고 있다. 이 숫자의 힘은 생각보다 대단하다. 우린 단 한 명이 어떤 우연한 사건을 겪었다고 하면 확률적으로 1/70억 이란 뜻이 된다. 얼마나 희귀한 사건인 것인가? 하지만 그런 희귀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매일 그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사고가 날 버스를 허겁지겁 탔을 것이고, 누군가는 전화 통화 때문에 그 버스를 타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이것이 비행기면 더 극적이다. 우연히 빈자리가 생겨서 탄 비행기가 추락해서 재수없게 죽은 사람은 아무런 생각을 하지 못하지만, 반드시 타야 할 비행기가 공항에 오는 도중 길에서 산 사고로 인해 타고 온 택시가 늦어져서 결국 비행기를 놓쳤으나 그 비행기가 이륙 후 폭발사고로 전원이 사망했다면, 이 사람은 자신의 운명에 대해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차이는 우연히 죽은 사람은 더 이상 생각을 할 수 없고 더해서 가족들 역시도 그런 사건을 신의 뜻이라고 해석하지 않는 반면, 우연히 산 사람은 생각을 할 수 있고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말을 하면서 자신이 살 수 있었던 이유를 신의 뜻으로 말할 수 있다는 점이다.
 
누가 장례식장에서 그 죽음을 신의 뜻이라고 할 수 있는 용기가 있을까? 재수좋게 산 사람에게는 그렇게 말할 수 있지만 말이다. 이것이 낮은 확률의 우연이 겹쳤을 때 우리가 나타내는 아주 일반적인 반응이다.
 
실제로 우리는 평범한 우연은 그냥 재수가 있거나 없거나 재미있거나 피하고 싶었거나 하는 수준으로 넘긴다. 하지만 그 빈도가 매우 낮은 사건이 연속으로 일어나게 되면 그 우연을 그리 단순하게 해석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사건이 자신에게 일어난 것을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왜 나에게 이 일이 일어났을까를 곰곰히 생각해 보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그런 일들이 모두 의미가 있어서 일어나는 일일까?
 
길을 걸어 다니다 보면 길거리에 어떤 복권 판매점에 1등 몇 명 , 2등 몇 명이 나왔다고 광고가 붙어 있는 작은 복권 판매점들이 있다. 실제로 그 가게에서 복권 1등이 나온 것과 이후 그 복권 가게에서 복권을 산 사람들이 복권에 당첨될 확률은 전혀 관련이 없음에도 그런 광고를 하면 사람들이 몰리게 된다.
 
이 효과는 이 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복권을 판 그 가게에 또 다른 당첨자가 나올 확률을 높여주게 되어서 결국 그 가게는 계속 더 많은 당첨자를 내게 된다.
 
이 단순한 원리가 존재함을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복권을 사는 사람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기에 그 가게에서 복권을 사려고 줄을 선다. 이것이 인간이 가진 심리인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 정도의 우연성에 대한 믿음은 애교 수준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생각보다 정말로 많은 것에 대한 우연성을 어떤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주 흔한 예가 되는 사랑하는 두 남녀의 경우, 서로를 만난 것을 절대적 운명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왜냐하면 그래야 자신들이 하는 사람이 가치 있고 유일하며 또한 다른 사람들과 다른 의미가 있기에 그 사랑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 자신들이 그렇게 행복한데 그것이 단순히 우연하게 이뤄진 만남이라고 하면 그 얼마나 가치가 떨어지겠는가. 그러니까 그들은 자신들의 만남과 자신들의 관계와 자신들의 사랑이 남들과는 다른 그 무엇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라. 대한민국에 태어난 사람의 99% 이상은 대한민국 사람과 결혼한다. 그리고 우리는 대부분 대한민국에 살면서 한국어를 하는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연히 이 나라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태어남이 우연하게 이뤄졌는데, 그 땅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것은 갑자기 필연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처음부터 무의미하다.
 
물론 여기에 더해서 자신의 탄생 자체가 필연이라고 믿을 수도 있다. 40억마리가 되는 정자 중 단 하나만이 제 시간에 난자에 도착해서 임신이 되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보통 성인 남자가 평생에 걸쳐 방출하게 되는 정자의 수는 조 단위가 넘을 것이지만 결국 그 남자다 단 한 명의 자식만을 낳게 되면 결국 1/1조의 확률이 된 셈이 된다.
 
이것을 우연인지 필연인지를 가늠하는 것은 모두 개인의 영역이니까 더 이상 언급은 하지 않겠다.
 
아무튼 우리는 그 모든 것이 필연이고 운명이고 예정된 것이라고 믿게 된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 모든 것은 신의 뜻이 될 수 있고 모든 것은 온전히 우연에 불과할 수 있다.
 
단지 뻔히 보이는 상황을 필연으로 주장하거나 너무도 설명하기 힘든 우연을 단지 우연이라고 치부할 때 우린 큰 입장 차이를 가질 수 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우린 많은 다른 의견을 가진 채 서로가 옳다고 논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의미로 우리는 매일 기적과 같은 삶을 산다. 우리가 아침에 눈을 뜨는 것부터 기적이다. 우리는 자다가 죽을 확률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우리 개개인은 오늘 하루도 죽지 않고 눈을 떴다. 사람이 가장 많이 죽는 곳이 침대인데 간밤에 아무런 탈 없이 새로운 아침을 맞은 것이다.
 
아침에 해가 뜨는 것도 기적이다. 지구가 별 탈없이 한 바퀴를 돌아서 태양을 다시 마주보고 있는 것이다. 지구는 40억년 동안 이렇게 매일 태양을 보고 한 바퀴를 돌고 있다. 이것은 정말로 대단한 기적이다.
 
아침에 일어나 씻으려고 물을 틀었을 때, 물이 잘 나오는 것도 기적이다. 거기에 더해서 겨울이라면 온수가 잘 나오는 것도 감사할 일이다. 추운 날 아침에 보일러가 고장 나서 온수를 못 쓴 상황에 놓인 사람의 이야기를 우린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다.
 
이렇듯 우리의 일상은 단지 확률이 높을 뿐, 모든 것이 기적과 같다.
 
반대로 우리의 일생은 너무도 당연하다. 우리 지구는 40억년 동안 똑같이 자전과 공전을 해왔다. 우리는 아침에 늘 일상대로 일어나고 물을 틀면 나오고 또한 따뜻한 물도 늘 나오고 있다. 우린 오늘 하루도 변함없이 출근을 하게 된다.
 
이렇듯 우리의 일상은 늘 그냥 같다. 너무도 평범하기 그지없다.
 
이것은 어떤 사건의 본질이 아니다. 이것은 어떤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들 자신의 태도의 문제이다. 즉, 동전은 50%의 확률로 앞면과 뒷면이 나온다. 이것을 앞면으로 볼지, 뒷면으로 볼지는 우리들 자신의 문제이다.
 
실제로 우리의 인식 자체가 그런 원리로 이루어진다. 사건은 발생하지만 그 사건을 해석하는 것은 온전히 우리의 머리 속이다. 물론 우리는 소리를 내거나 글을 써서 다른 이들과 자신이 받아들이고 해석한 사건을 교류한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그것은 인간의 범주 내에서 머무른다.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도 고양이나 개의 입장에서 참치와 뼈다귀를 바라볼 수 없다. 우린 누구도 개나 고양이가 되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알고 느끼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 모든 것은 오직 인간의 고유 영역인 셈이다. 만약 우리보다 훨씬 뛰어난 지능을 가진 외계의 존재가 있다면, 과연 인간이 가진 이 모든 인식 범위의 절대성은 과연 어떻게 바라보게 될까?
 
우린 보통 자신에게 일어난 이로운 우연성은 행운이라고 기억하고 이야기 하길 좋아한다. 반대로 우리는 자신에게 일어난 불운은 다른 이들에게 이야기 하길 꺼려하고 기억에서도 지우려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보통 다른 이들에게 듣는 우연한 사건들은 모두 좋은 것 같이 느껴진다. 그리고 또한 그 이야기를 하는 본인도 그런 우연이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음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잊고 있는 것은 자신에게 일어났던 불운들이다. 그것을 느끼고 기억에서 지웠든, 아니면 아예 인식하지 못했든지 말이다.
 
실제로 우리는 매일 한 순간에 한 장소에 밖에 있질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시간과 장소에 종속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엄청난 수의 다른 가능성을 놓친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 제주도에 있지 않아서 미국에 있질 않아서 달에 가 있지 않아서 토성 근처에 있질 않아서 안드로메다 은하에 가 있지 않아서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도 많다.
 
우린 지금 이 순간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것 이외에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것이 셀 수 없을 만큼 많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다. 우리가 경험한 것은 모두 그 수 많은 경험 가능한 것들 중에서 가장 확률이 높았고 더해서 그 확률대로 이루어진 상황에 불과하다.
 
즉, 만약에 오늘 아침에 출근을 제대로 했다면, 그 사람에게는 출근을 하는 사건이 가장 확률적으로 높았던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오늘 출근길에 미끄러져 넘어져서 병원에 가있을 수 있다. 그 사람에게는 그 미끄러지는 사건이 가장 확률이 높았을 것이다.
 
자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무한대의 사건 중 단 하나의 사건만을 매 순간 경험하고는 그것을 필연성이나 의미 있거나 어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인간의 특징인 셈이다.
 
하지만 이 말은 다시 이렇게 해석이 가능하다. 그 무한대의 가짓수를 가진 사건들 중 나에게 일어난 단 하나의 사건이 얼마나 큰 기적이고 의미가 있는지를 말이다.
 
마치 1조 마리의 정자들 중 단 하나만 임신에 성공해서 아이가 태어나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을 기적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면 과연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단지 이 글을 통해서 말하고 싶은 것은 그것을 우연으로 보든 말든 상관없이 그 생각 자체는 모두 우리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란 점이다. 그것을 설령 옆 사람에게 이야기 해서 그것이 운명이고 필연이고 의미가 있다고 인정을 받는다고 해도 결국 기껏해야 인간 종의 범위가 될 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우연성에 대해서 어떤 의미가 있음을 믿고 싶어 하는 본질에는 바로 우리들 자신 하나 하나가 모두 우연히 태어난 존재가 아닌 어떤 계획된 존재이고 싶어하는 것과 그렇게 태어나 살아가는 우리들 삶 자체가 단순히 우연히 벌어진 사건이 아닌, 어떤 의미와 가치가 있는 존재이길 바라는 마음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한 번쯤 생각해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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