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정보의 역설

아이루다 2014. 11. 26. 10:06

 
인간은 자연에 존재하는 수 많은 포식자들보다 결코 강한 존재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최상위 포식자로 자리를 잡았다. 이것은 무리의 힘이기도 하지만 지능의 능력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무리를 지어 사는 것은 늑대도 원숭이도 사자도 그렇다. 하지만 그 중에서 인간만이 유일한 승리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며 지능은 왜 강한 능력으로 환산될까? 그것은 다름아닌 정보의 습득과 활용 능력 덕분이다.
 
단순히 맨손으로 싸움을 해도 급소나 약점을 알고 그곳만 공격하는 것과 아무런 정보 없이 무턱대고 주먹을 휘두르는 것은 큰 차이가 난다.  그런데 창이나 활과 같은 도구를 쓰는 경우라면 정보는 더욱 더 강한 능력을 발휘한다. 아무리 칼을 잘 쓰는 사람이라도 멀리서 쏘는 활에는 당할 수 없다. 아무리 활을 잘 쓰는 사람이라도 근접에서 도끼를 휘두르는 사람을 당할 수 없다.
 
과거에 육체적 능력만으로 커다란 이득을 얻을 수 있었던 시대를 지나, 이젠 정말로 머리 하나로 모든 것을 다 해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해낼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정보의 힘이다. 현대에 들어서 정보는 더욱 더 가치 있는 능력이 되었다.
 
우리는 매일 정보를 습득하고 이미 가진 정보를 활용하며 그것을 통해 경쟁을 하고 있다. 그래서 얼마나 빠르고 정확한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느냐가 최고의 경쟁력으로 자리잡았다.
 
현대의 통신 기술 발달은 정보의 빠른 전파가 가능하게 해줬으며 사람들은 매일 인터넷이란 통신 기술이 구현해 낸 공간 안에서 쓸모 있든 없든 끝없이 정보와 접하게 된다. 이것은 의식적으로도 무의식적으로도 이루어진다.
 
실제로 정보의 중요성은 말로 설명하기도 힘들 지경이다. 어떤 면에서 우리의 생존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정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오늘도 회사에서 워드로 한글로 엑셀로 파워 포인트로 보고 자료를 만들고 있는 수 많은 직장인들은 매일 일을 하고 월급을 받지만,  정작 왜 자신이 월급을 받는지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왜 컴퓨터로 문서나 만들고 있는데 회사가 돈을 벌고 또한 그 담당자한테 돈을 줄까? 영업을 하는 사람은 물건을 파니까 돈을 벌고 생산을 하는 공장은 물건을 만드니 돈을 번다고 하지만 도대체 사무실에 앉아서 문서만 만들고 있는 사람들은 왜 돈을 벌고 있을까?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회사에 유용한 정보를 생성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직장인들은 오늘도 문서 작업을 통해 과거 데이터를 분석하고 미래의 예상 가능한 매출을 산출한다. 또한 많은 기회에 대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잘못된 과거를 반성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많은 직장인들은 신입 때부터 그렇게 일을 하는 것이라고 배웠기 때문에 그렇게 일을 하고 또한 매달 월급이 나오니 그것이 당연한 과정으로 인식한다. 즉, 자신이 정확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인식도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직장인들의 일을 통해서 나오는 결과물은 회사의 미래 방향을 결정하는데 매우 큰 역할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보고서는 과거의 데이터를 가지고 현재를 비판할 근거로 쓰이고 더해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는 미래의 매출 예측을 하는데 쓰인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실제로 정보를 생산하는 주체들은 그 정보의 중요성과 정확성 그리고 가치성에 대한 생각은 거의 하지 못하고 어떻게 하면 윗사람들이 원하고 보고 싶어하는 보고서를 제 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과정이 반복되니까 결국 자신이 정보를 만드는 사람이 아닌, 문서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자신이 왜 월급을 받을 수 있는지를 알지 못하게 된다. 그냥 주니까 받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직접 정보를 생산하는 주제 조차도 정보의 능력과 가용성에 대해 인식을 잘 못하는데, 하물며 정보에 대해서 그다지 별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정보에 대한 인식을 얼마나 하고 있을까?
 
보통 사람들에게 있어서 정보란 용어에 속하는 것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세일하고 있는지, 어디를 갈 때는 어떤 카드를 써야 싸게 들어갈 수 있는지, 동네 주변에 어디 주유소가 가장 싼지, 족발은 어디가 제일 맛 있는지에 대한 것들이다. 하지만 실제로 정보는 우리가 매일 접하는 어느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도 페북이나 트윗 카톡과 같은 채팅 툴에서도 늘 발생하고 있다.
 
우리 인간은 늘 정보를 생산하고 정보를 습득하며 정보를 해석하고 정보를 활용한다. 여기에서 사람마다 차이는 어떤 정보를 생산하고 어떤 정보를 선별해서 습득하며 어떻게 해석하며 언제 어떤 식으로 활용하는가에 대한 방법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능력의 차이를 결정한다.
 
예를 들어서 대한민국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국어에 능하다. 우리는 대부분 글을 쓰며 말을 한다. 우리는 한글을 사용할 줄 안다. 즉, 우리는 자음과 모음 및 그것으로 구성된 한글 단어에 대한 정보가 있다. 또한 더해서 그것을 나열해 문장을 만드는 능력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동일한 정보를 가지고 만들어 낸 말과 글은 사람의 능력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정말로 재미난 사람이 되고 누군가는 입만 열면 썰렁하기 그지 없는 말을 한다. 또한 누군가는 멋진 소설을 쓰고, 누군가는 도저히 읽기도 힘든 잡문을 쓴다.
 
이것이 바로 정보가 어떻게 사람마다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흔한 예가 될 것이다.
 
정보가 이렇게 중요하다 보니, 세상은 끝없이 정보를 어떻게 전달하고 그것을 얼마나 쉽게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해왔다.
 
실제로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컴퓨터는 정보를 다룰 수 있는 도구 중 최고의 성능을 가진 기계이다. 우리는 이 컴퓨터를 통해 많은 자료를 저장할 수 있고 생산도 가능하다. 거기에 더해서 네트워크 기능이 더해지면서 이제 컴퓨터는 전 세계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받아 볼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요즘 소위 잘나가는 회사들은 모두 이런 기계를 생산하거나 아니면 그 안에서 효율적으로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심지어 온라인 책을 파는 회사라고 할지라도 책 자체는 종이로 만들어졌지만, 그 안의 내용은 분명히 정보인 것이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우리는 이젠 손안의 이동 가능한 컴퓨터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스마트 폰이다. 그리고 테블릿과 같은 조금 더 큰 화면을 가진 컴퓨터도 나왔다. 구글에서는 안경 형태의 기계도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구글 글래스이다.
 
아마도 미래엔 좀 더 편하고 좀 더 빠르고 좀 더 쓰기 쉬운 기계가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얼마나 뛰어나게 창조해내는 지와 구현해 내는지에 따라서 모든 회사의 운명은 바뀔 것이다. 현재의 1등이 10년 후의 1등이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할 것이라고 본다.
 
많은 회사들이 이렇듯 정보를 다루는 기계를 만들고 있고 또한 사용자들도 이것에 매우 만족하는 선 순환이 되면서 우리는 과거와는 달리 정말로 편하고 쉽게 정보를 검색하고 이용하며 또한 분석까지 가능하게 되었다. 이것은 앞에서 말했듯 우리의 삶의 이득을 극대화 할 수 있는 방향에서도 좋고, 딱히 꼭 이득이 아니라고 해도 자신의 삶을 좀 더 풍요롭고 행복하게 해줄 수 있게도 해주고 있다.
 
하지만 모든 일엔 단점은 존재한다.
 
그리고 이렇게 극도로 정보 중심의 사회로 개편이 되면서 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이 별로 원하지 않는 정보에 노출되거나 혹은 그리 필요 없는 정보에 집착하는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 어떤 정보가 자신에게 필요한지, 그 정보를 다룰 능력이 되는지, 그 정보에 숨겨진 이면을 볼 수 있는지, 그 정보를 유용하게 쓸 곳이 있는지에 대한 판단 보다는 그 정보가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관심을 받는지에 더 집중하는 것이다.
 
또한 그리 반드시 정확히 알아야 할 필요가 없는 정보들 조차도 정확도에 집착한다. 산 속에서 본 나무의 종이 무엇인지, 길가에 핀 꽃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 방법도 없지만 아무튼 그 나무가 얼마나 튼튼하고 뿌리가 깊은지 보다 그 꽃이 얼마나 예쁘고 색감이 고은지 보다 그 나무와 꽃에 대한 이름 정보를 알려고 하는 것이다.
 
그냥 세상에는 모르고 보는 것이 좋은 것도 있다. 물론 정확히 알 방법이 있다면 아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런데 그냥 대충 알고 살아도 되는 것들도 많다.
 
독일의 한 탄광이 무너졌었다. 그 붕괴된 탄광은 꼬박 일주일 만에 복귀되어서 생존자들을 구출했는데, 단 한 명이 사망을 했다. 그리고 그만이 유일하게 시계를 차고 있었다. 그가 시간이 흐름을 알고 있어서 죽었는지, 선천적으로 약했는지는 정확히 알 방법이 없다. 하지만 시간을 알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만 죽었다. 어쩌면 그런 절박한 상황에서 시간의 흐름에 대한 정보는 몸에 작용한 독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탄광은 아니지만 보통 사람들은 매일 날씨에 대해 궁금해 한다. 날씨를 보고는 입을 옷의 종류를 결정하고 우산을 들지 말지를 결정한다. 그리고 혹시 날씨가 맞지 않으면 기상청에 대고 욕을 한다. 물론 기상청이 날씨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 업무를 제대로 해내지 못했으니 욕을 먹을 만 하다.
 
하지만 정말로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일일까? 어쩌면 날씨가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농민이다. 하지만 이들은 오늘의 날씨를 보고 하루를 계획하지 않는다. 아침에 비가 오면 그냥 쉰다. 아침에 해가 짱짱하면 밭을 멘다.
 
비 맞는 것이 그리도 싫으면 우산을 늘 들고 다니면 된다. 날씨가 선선할지 추울지 잘 모르겠으면 약간 덥게 입고 나갔다가 실제로 더우면 웃옷을 벗으면 된다. 왜 그렇게 딱 맞추려고만 할까? 모든 것이 퍼즐처럼 완벽히 맞아 떨어지길 바란다.
 
그래서 우리는 바람이 서늘하면 입는 옷, 바람이 싸늘하면 입는 옷, 바람이 심하면 입는 옷, 바람이 불다 안 불다 하면 입는 옷, 바람이 오전에 불었다나 오후에 그치면 입는 옷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냥 옷 하나로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그런 종류의 옷을 모두 사면 바람이 얼마나 불지 늘 체크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늘 날씨 정보를 주의 깊게 봐야 한다. 차라리 날씨 정보를 모르는 시대엔 더 마음 편하지 않았을까?
 
정말로 미래를 정확히 알고 싶은가? 그렇다면 죽는 날을 알려주는 것은 어떨까? 인생의 어느 시점이 되면 매일 자신의 죽는 날이 하루씩 줄어가기 시작하는 세상을 살아야 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것도 정보이니까 알아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정보를 무조건 배척하지는 말이 아니다. 먹고 살려면 정보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외의 삶에서 그렇게 까지나 정보에 목 멜 필요가 없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살면 된다. 영화를 볼 때 배우 이름과 감독에 대해서 왜 그렇게 자세히 알아야 할까. 노래를 들을 때 왜 그렇게 가수에 대해 알아야 할까. 어떤 것들은 그냥 마음으로만 알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것은 말하고 싶은 것은 정말로 우린 정보가 궁금한 것일까? 아니면 그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알려줘서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심심해서 정보를 보는 시간을 즐기는 것일까?
 
정보는 원래 두뇌를 움직이는 행위이며 이로 인해서 우리의 에너지를 소모하게 된다. 그래서 정보를 습득하는 과정은 대부분 지루하거나 힘들다. 그런데도 우리는 매우 즐거운 마음으로 정보를 습득한다. 과연 그 안에 숨겨진 심리는 무엇일까? 단지 관심이 있다는 이유로 그런 것일까? 아니 원래부터 관심이란 것 자체가 왜 생겨났을까?
 
이것은 개인마다 차이가 커서 딱히 뭐라고 말하기가 힘들다. 같은 정보라고 해도 어떤 이는 그 정보를 얻는 것을 즐거워하고 다른 이는 지겨워하니까 말이다. 여기에서 단 하나 공통적인 것은 누구나 자신이 관심 있는 정보를 보는 것은 좋아한다는 점이다. 즉, 우리는 관심 있는 것을 아는 것을 좋아한다. 반대로 그러니까 관심이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단순한고 순수한 지식 욕구 일 수 있고, 많이 아는 것을 자랑하는 마음일 수 있다. 사람마다 이것은 각자 편차가 커서 단순하게 한쪽만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즐거움과 집착의 차이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어떤 일을 하는 것 자체를 즐겁게 여기는 것은 단순한 즐거움이지만, 그것을 통해 다른 이들과 연계된 즐거움을 얻으려고 하면 집착을 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대상이 하는 것이 즐거울 땐 그냥 즐겁다가 지겨우면 안 하게 되는 것이 정상적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섞어 넣으면 자신이 즐거운 것보다 다른 사람의 관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이젠 억지로라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집착이 된다. 행복하지 않은데도 하는 것이 집착이기 때문이다.
 
정보에 대한 사람들의 입장도 이것과 비슷하다. 정보는 단지 우리가 좀 더 잘 먹고 잘 사는 용도로 쓰여야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 정보를 최대한 많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실제로 그것을 통해 자신이 더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느냐 여부에 상관없이 그 양에 집착하는 것이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회사에서 보고서를 만드는 직장인들의 모습과 유사하다. 대부분의 회사는 어떤 보고서의 필요성 및 중요도와 상관없이 절대적 보고서의 양에 매우 심하게 집착한다. 그래서 매우 많은 보고서의 내용이 거의 중복되거나 조금씩만 내용이 다름에도 그것을 모두 별도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정보의 질보다 양에 집착하게 될 때, 우리는 얼마나 빠르게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즉, 자신이 얻은 정보가 얼마나 제대로 된 것인지 보다는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어떤 기계를 사용하면 최대한 빨리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집착한다.
 
결국 이런 태도는 소위 말하는 모바일, 즉 이동 가능한 정보 검색 도구의 활용을 극대화 시켰으며, 무선 기술의 발달과 함께 현대 문명 기술의 핵심이 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이것에 집착하고 또한 많은 시간을 쏟아 붓고 있다. 그리고는 자신이 그 시간에 할 수 있었던 다른 일들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한다.
 
과거에 우린 어떤 궁금한 점이 생기면 책을 사거나 도서관에 가서 읽어 보았다. 혹은 자신보다 좀 더 많이 아는 이들에게 가서 물어서 그것을 해결하려고 했다. 물론 이 과정은 매우 느리다. 하지만 덕분에 그 과정 중에서 우리는 예상치 못한 정보를 습득하곤 했다.
 
빛의 원리를 알기 위해서 책을 찾다가 상대성 이론에 대해 알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젠 빛의 원리만 검색하고 그것에 대해 완전한 설명을 읽을 수 있다. 그것도 도서관에 가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장소도 딱히 영향 받지 않는다.
 
하지만 도서관에 가는 길에 보게 되는 풍경이나 서점에 가서 책을 찾다가 발견하게 되는 다른 책에 대한 기회성 상실에 대해서도 인지하지 못한다.
 
빠르고 정확하다는 것은 물론 무척 좋은 일이다. 하지만 빠르고 정확하다는 것이 모든 것을 해주진 못한다. 느리고 부정확한 것이 때론 좋은 일일 수도 있다. 탄광에 갇힌 사람들처럼 말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장점과 단점이 있기에 늘 중심점에 서 있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미래에는 어떤 세상이 될지 모르지만 우리가 더 많은 정보를 알 수 있다고 해서 더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란 점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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