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회

기자 정신

아이루다 2014. 11. 24. 08:05

 
최근에 보기 시작한 미드가 하나 있다. 이름은 꽤나 예전부터 들어봤었는데, 실제로 보기 시작한 것은 겨우 한 달 전쯤부터인 듯 하다. 그것도 이제 겨우 시즌1의 네 편 정도 봤다.
 
이 미드의 제목은 '뉴스룸' 이다. 종편 채널인 JTBC에서 손석희씨가 이 이름을 따서 뉴스를 진행 중인 듯, 가끔 포털 제목으로 손석희의 뉴스룸 이란 이름이 보이곤 한다. 아무튼 이름처럼 뻔하게 이 미드는 뉴스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뭐 이 미드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하려는 언급한 것은 아니니, 시간이 되시면 한번쯤 볼만한 미드라는 정도로만 언급하고 지나가겠다.
 
오늘 이 미드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그것은 바로 좋은 말로 해서 자본주의, 현실적으로 말하면 돈의 가치가 최고로 극대화 된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도덕성과 정의를 논할 수 있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주연 배우의 대사 때문이다.
 
뉴스룸에서 앵커 역할을 맡은 분은 뉴스 중 이런 말을 한다. TV라는 매체가 나오고 이것을 처음 접할 무렵, 당시에 이 새로운 매체의 공공성 역할에 대해서 고민한 사람들은 방송 여부를 결정하기 전에 모든 방송사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반드시 세상 소식을 전하는 뉴스를 한 시간 동안 방송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고 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여기에서 빼먹은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 뉴스 시간 앞뒤로는 광고를 상영해서는 안된다는 조항이었다고 말한다. 물론 그 당시 사람들은 TV를 통한 방송이 미래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게 될지에 대해서 상상도 못했기 때문일 것이며, 시스템 적으로 제어 받지 않고 개인의 양심과 가치관으로 지켜져야 하는 가치들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나는 개인적으로 이 대사를 들으면서 두 가지를 느꼈다. 일단 첫 번째는 처음에 사람들의 알 권리를 위해서 - 사람들은 자신들이 알 권리가 있다는 것 조차도 모르지만 - 모든 방송사가 뉴스를 방송해야 한다는 조항을 달아야 한다고 정의한 사람들의 공공성에 대한 미래 인식과 더불어 그 어떤 좋은 의도를 가진 것도 자본, 즉 돈이 끼어들게 되면 얼마나 타락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TV에서 매일 방송되는 뉴스는, 그 방송을 보는 사람들에게 세상에 있는 진실을 들을 기회를 얻게 해준다. 하지만 뉴스 앞뒤로 붙은 광고는 뉴스를 시청률에 종속되게 만들었고 결국 이젠 진실을 전하는 목적보다는 얼마나 많이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하는지에 더 촛점을 맞추게 되었다.

 
칼은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도구이다. 하지만 칼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도구이다. 칼은 어떤 사람이 어떤 용도로 쓰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닌다.
 
방송 역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전파를 전달하는 장치를 통해 모두가 같은 시간이 같은 내용의 정보를 전달 받을 수 있다. 이것은 정말로 기가 막힐 정도로 훌륭한 시스템이다. 하지만 누군가 거짓된 정보를 전달하려고 마음 먹는 순간 방송은 최악의 도구가 되어 버린다.
 
기자 정신이란 말이 있다.
 
이것은 마치 의사들에게 있어서 히포크라테스의 선서와 같다. 그것은 진실을 전달하는 사명을 가진 존재로써 사회의 부조리와 불합리에 대한 기자라는 직업인으로써의 양심을 말한다. 이것은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가 환자를 돈벌이의 대상이 아닌, 소중한 생명을 가진 존재로써 바라봐야 한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다른 말로 이것을 직업 윤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많은 직업 군들에는 이런 직업 윤리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음식을 만드는 식당은 적어도 몸에 해로운 재료를 쓰면 안 된다. 보험 영업을 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그 보험이 그 사람에게 어느 정도 필요가 있어야 한다.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적어도 촌지를 받고 그것으로 아이들을 차별하거나 편애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각 직업마다 왜 이런 생각들이 전해내려 오는 것일까? 이것은 우리가 직업으로 삼는 거의 모든 것들은 모두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돈을 벌고 싶다는 것과 윤리적인 것은 결코 양립하기가 쉽지 않다.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된 사회에서는 특히나 더 그렇다. 그런데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분명히 그 방향을 향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기자들은 신문이나 방송이라는 제한된 시간과 공간에 진실을 전달해야 하는 것과 흥미로워 하는 것을 알려주는 것 사이에서 고민을 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계점을 긋는 것이다. 아무리 돈을 벌기 위한 것이라고 해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하며,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말하면 이것이 기자 정신이다. 그런데 그것을 하기가 그렇게 힘들다.
 
특히나 요즘같이 다방면으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사회에서는 예전과 같이 기자의 기사를 통해서만 정보를 받는 시대가 아니라서 교체 검증이 가능하다. 또한 종이 신문과 같은 매체를 넘어서 인터넷 시대에 들어서는 사람들이 매우 선별적으로 기사를 보기 때문에 어떤 종류의 기사를 내보내느냐에 따라 신문사의 수입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래서 신문 하나를 사면 그것이 좋든 싫든 그 신문에 실린 기사 전체를 사는 것이 된 과거와는 환경이 크게 달라졌다. 이젠 개별 기사가 각개 전투를 하게 되는 양상이 된 것이다.
 
이 환경 변화와 함께 우리나라에 나타나기 시작한 자본의 독점, 즉 거대 재벌들 중에서 더욱 거대해진 재벌들은 막강한 시장 지배력을 기반으로 하여, 신문과 방송의 거대 광고주로써 큰 입김을 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과거 신문은 단 돈 100원이라도 내고 샀다면, 인터넷 시대의 신문은 1원도 낼 필요가 없다. 신문사는 오직 광고로만 먹고 살아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물론 요즘도 종이 신문을 찍고 있긴 하다. 하지만 아마도 날이 갈수록 그 수요는 줄고 있을 것이다.
 
스마트 폰 하나만 있으면 각종 포탈을 통해 재미있고 흥미로운 기사만을 찾아서 볼 수 있는데, 뭐하고 돈 아깝게 신문을 보겠는가? 요즘 지하철 풍경만 봐도 수 년 전만 해도 그나마 보이던 종이 신문을 보고 있는 사람은 이젠 거의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
 
결국 기자들은 이젠 기자 정신을 더 이상 이어갈 수 없게 되었다. 의사들이 돈을 벌기 위해 환자를 치료하는 것과 같이 기자들 역시도 마찬가지가 된 것이다. 물론 모든 기자가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기자가 점점 늘고 있거나 혹은 더 눈에 잘 띄는 것은 사실이다.
 
우린 이렇게 변한 기자를 쓰레기와 합성어로 '기레기' 라고 부른다. 아마도 기자를 직업으로 하시는 분들이 들으면 매우 불쾌한 지칭 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기레기처럼 보이는 기자들이 점점 더 늘고 있다. 아니, 그들이 쓴 기사들이 점점 더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듯 하다.
 
이것은 일종의 막장 드라마와 같다. 사람들은 잘 만든 드라마보다는 자극적인 소재를 다룬 드라마를 선호한다. 기사 역시도 마찬가지다. 진실을 알기 보다는 얼마나 숨겨진 은밀한 사생활인지가 더욱 중요해졌다. 우리는 더 이상 진실을 알길 원하지 않는다.
 
각 국가를 지탱해 나가는 것에는 몇 가지 굵직한 것들이 있다. 정치 제도, 시민 의식, 사법 제도, 교육, 경제 구조 그리고 언론이다.
 
이 중에서도 사법 제도와 언론만 제대로 동작한다면 그 나라의 미래는 밝다. 거의 모든 국가는 부패로 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부패의 뿌리에는 그 국가의 권력층 혹은 지배 계급인 기득권이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의 끝없는 탐욕을 제지하지 못하는 순간 그 국가는 망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탐욕적이다. 탐욕의 기준을 자신을 중간으로 두기에 마치 자신은 덜 탐욕스럽다 라고 판단할 뿐, 우리는 누구나 틈이 생기면 탐욕을 부리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존재이다.
 
그래서 이들을 처벌 할 사법 제도가 제대로 있어야 한다. 특히나 권력을 가진 이들에 대한 엄격한 처벌은 사회의 잠재적 문제를 방지하는데 있어서 아주 큰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들의 문제점을 사회에 알리는 책임을 가진 이들이 바로 언론인들이다. 즉, 기자들이 해야 할 역할이다.
 
누군가는 기득권 층의 잘못을 밝혀내고, 누군가는 그것을 제대로 처벌한다면 그 사회가 어떻게 망가질 수 있겠는가?
 
이것은 해내기가 어렵지만, 잘 마련해놓으면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기자는 기자 정신을 가지고 일을 하고, 사법부에 속한 검사와 판사는 사회 정의에 대한 의무를 가지고 일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은 각 직업 당사자들에게 큰 만족감을 주게 된다. 즉, 반드시 돈이 아니라고 해도 자기 직업에 대하 자부심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현재 대한민국의 사회를 바라보면 우리의 현실적 견적이 나온다. 이것은 GDP 성장률이나 매년 늘어나는 수출액등으로 감춰진 우리들의 맨얼굴이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문제가 있긴 하지만, 실제로 그리 큰 문제는 아니라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권력층을 비호하는 사법부와 기장 정신을 잃고 권력층을 위하거나 광고주를 위해 글을 쓰는 기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것은 진행형이며 그래서 미래엔 더욱 더 심해질 것이다.
 
현대 사회에 들어서 물론 노예나 종놈의 존재는 사라졌지만, 실제로 이것은 다시 출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성적순으로 아이들의 밥을 먹는 순서를 정하는 학교들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을 들으면 펄쩍 뛰면서 놀라겠지만, 그 아이들은 자신들이 받는 차별에 매우 익숙하다.

 

이것은 언론과 사법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기둥인 교육의 미래가 얼마나 어두운지를 말해준다.


그리고 이 학교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현실과 거의 같다. 우리는 오랫동안 기자들이 써 준 기사를 계속 반복적으로 읽으면서 이 나라의 기득권에 대한 저항력을 잃었다. 우리는 마치 정말로 그들이 나라를 위해 일한다고 믿거나 재벌들이 망하면 우리가 망할 것처럼 걱정한다.
 
그리고 밑으로는 청소년 시절부터 능력에 대한 차별을 경험하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세대가 커오고 있다. 부모들 역시도 이렇게 성적으로 서열화 된 학교를 용인한다. 그리고 다시 이들이 세상에 나왔을 땐, 돈과 권력으로 서열화 된 사회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이다.
 
정말로 우린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사회를 경험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최근에 삼성 SDS가 상장을 해서 삼성 가의 차기 회장이 엄청난 차익을 얻었다고 한다. 300배 정도의 이득이라고 하니, 1억을 투자해서 300억을 번 셈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천문학적 이득에 숨겨진 삼성 가의 어마어마하게 치밀하고 불법적인 전략이 있었음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겠는가? 물론 그 덕분에 회장이 최소한의 판결을 받고는 감옥까지 가긴 했지만 말이다.
 
이젠 아무도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도 않고 기억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것을 말 할 사람은 바로 기자들이다. 그런데 모든 신문사의 최대 광고주는 바로 삼성이다. 삼성이 광고를 주지 않는 신문사는 남자의 성기를 크게 해준다는 비뇨기과 광고나 혹은 여자의 얼굴 성형을 잘 한다는 광고나 내보내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오늘도 사람들은 AS가 잘된다는 삼성 제품을 사고 잘 만든 제품이니까 사고 우리나라 제품이니까 사야 한다고 말하고 믿는다.
 
어떤 의미에서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다. 우리는 잘 못 느끼지만 이 나라는 이젠 완전히 돈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사회가 되었다. 즉, 돈 결정 주의 사회가 된 것이다. 스스로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모두 자신도 모르게 젖어 있다.

 

우리는 돈의 가치를 최고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크게 소리쳐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이미 그들과 비슷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렇게 사는 것을 남의 일에 참견하면 안된다고 스스로를 합리화 한다. 하지만 착한 자들이 침묵하는 곳이 지옥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오랜 시간 언론에 의해 잘 길들여진 다수의 추종자들이 존재한다. 이것은 현재 기득권과 그 기득권들의 후손들에게 매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줄 것이다. 그리고 그 추종자들은 모두 자신이 나라를 위해 혹은 우리 사회를 위해 그렇게 생각한다고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노예들이 노예 생활을 오래하면 나중엔 서로 발목에 묶인 쇠고리가 얼마나 더 무겁고 윤이 나는지 비교하고 자랑한다고 한다. 이것은 무서운 말이지만, 그 노예들에게는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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