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배우자 고르기

아이루다 2014. 11. 11. 14:26

 
결혼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결정 중 하나이다. 그래서 비록 단 두 사람간의 결합에 불과하지만, 인간이 혼인이라는 제도를 도입한 이래, 결혼은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마을의 큰 행사 중 하나였으며 축제 중 하나였다.
 
결혼은 - 요즘엔 좀 바뀌었지만 - 보통 성이 다른 두 사람의 결합이다. 그래서 둘은 가정을 꾸리고 경제권을 하나로 합치며 아이를 낳고 키운다. 이렇게 두 사람은 세상의 어떤 것보다 더 가깝고 소중한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결혼으로 맺어진 관계는 세상의 그 어떤 관계보다 우선한다. 인간에게 이보다 더 공유된 운명으로 맺어진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배우자를 고르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하겠는가? 특히나 결혼의 반대인 이혼이 진행된 부부가 그리도 많아지고 있는 것을 보면, 이것은 더욱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또한 비록 이혼을 안 했더라도 거의 이혼이나 다름 없는 별거를 하고 있는 부부도 꽤나 있고, 같이 살아도 동거인 수준에서 머무르는 부부도 꽤나 많은 편이니까, 실제로 결혼을 통해서 원래 살고 싶었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그래서 대충 결혼을 해서 잘 사는 사람을 전체의 50% 정도로 보고, 나머지 50%는 결혼을 하지 않는 편이 나은 사람들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결국 그래서 이것을 성공하고 싶은 젊은 남녀들은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배우자를 고른다. 하지만 좋은 배우자는 한정되어 있고, 그것을 고르는 운은 늘 좋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그래서 반은 성공하고 반은 실패한다.
 
어떤 일을 성공하고 싶다면, 어떤 일이 실패한 경우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결혼에 실패한 사람들의 사유를 보면 대부분 어떤 이유로 인해서 결혼에 실패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 이혼 사유의 주된 이유는 단 세 가지이다. 하나는 성격 차이, 두 번째는 외도나 부정, 세 번째는 경제적인 문제이다.
 
여기에서 외도나 부정은 대체로 그 일이 일어날지 가늠하기가 힘들다. 사람의 외모나 보통 보여지는 성격으로만 봐서는 그 사람이 외도를 할 사람인지 아닌지를 구분하기가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너무도 명백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성에게 지나친 관심이나 상대적으로 느슨한 도덕 관념 등이 그것이다.

 

그래서 결혼 전 이미 이것을 인지하면서도 결혼 하면 달라질 것이라고 믿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선택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이런 사람들은 결혼 전에 후보에서 탈락된다.
 
그리고 경제 문제 또한 예측이 쉽지 않다. 삶은 어떻게 튈지 모르는 럭비공과 같은 것이라서 멀쩡한 사람이 어느 날 다니던 직장에서 잘리거나, 잘 나가던 기업의 사장이라고 해도 언제 망할지 모를 일이다. 물론 여기도 공무원이나 공기업 등을 다니면서 나름대로 안정적인 삶을 유지할 것 같은 사람은 있다.

 
마지막으로 성격 차이는 앞의 두 가지 이유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고정적이다. 앞의 두개의 사유는 솔직히 운이 너무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라서 삶에 대한 복불복을 해야 할 것이라면, 이 사유는 결혼 전 충분히 관찰하고 분석함으로써 어느 정도는 변별력을 가질 수 있다.
 
거기에 더해서 이 성격 문제는 다른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본적 역할을 한다. 아무리 힘든 경제적 위기를 맞았더라고 해도 부부가 일심동체로 그 험한 세상을 뚫고 나가고자 한다면 못할 것이 없다. 또한 이런 부부의 경우엔 보통 배우자를 배신하는 외도나 부정행위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결혼을 앞둔 많은 예비 부부들은 자신의 배우자를 선택함에 있어서 적어도 성격 문제 하나만큼은 정말로 확실히 따져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도대체 이 성격 중에서 어떤 면을 가장 우선시 해야 할지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사람의 성격에 녹아 있는 요소들은 참으로 다양하고 각자가 장점과 단점을 모두 가지고 있는 편이라서 이것을 단순한 잣대로 무엇이 좋은 성향이다 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예를 들어서, 재미 있고 장난을 잘 치는 성격은 밝고 행복한 삶에서는 매우 큰 장점이 되지만, 만약 인생이 좀 꼬여서 힘들고 고난을 이겨내야 할 땐 그것을 회피하려는 성격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즉, 힘든 고생을 별로 안 해보거나, 진지한 것을 싫어하는 경향 때문에 그런 성격이 된 사람들이 보통 그렇다.
 
반대로 진지한 성격의 사람은 어려울 때는 듬직하게 무엇인가를 같이 해나가는 데 힘이 될 수 있지만, 평소엔 너무 말이 없거나 너무 무거워서 도대체 뭔가를 가볍게 즐기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삶을 너무 무거운 짐으로만 인식해서 늘 언제라도 위기가 닥칠 것처럼 살아간다.
 
사람들에게 잘하고 살갑게 구는 성격은 누구와 잘 친하게 지내서 부부가 다른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만, 그로 인해서 불필요한 사람들을 더 만나야 하거나, 심하면 외도나 부정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잦은 지인들과의 만남으로 인해서 가정에 집중하는 시간이 적어서 부부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반대로 사람과 잘 친하지 못하고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은 집안일에 집중하고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좋은 배우자로써의 면모를 가졌지만, 너무도 가정에만 집중해서 상대 배우자를 숨도 못 쉬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조합이 잘못되었을 경우, 상대 배우자는 심각한 수준의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상황에 따라 장점은 단점으로, 다시 단점은 장점으로 끝없이 다르게 적용된다. 이러니 도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할지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을 내기가 참 어렵다.
 
그래서 기준점을 하나 정하고자 한다. 물론 이것은 정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단지 큰 성격적 문제 없이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하는 목적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조언이다.
 
배우자에게 있어서 성격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선택해야 할 성향은 바로 '부지런함' 과 '상대에 대한 이해심' 이다. 이것은 반드시 같이 쌍을 이루어야 하는데, 둘 중 하나가 없을 경우 절름발이 마냥 위태롭게 된다.
 
보통 우리는 사람이 부지런하다는 것을 그냥 어떤 사람의 성향 중 하나로만 인식한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은 자신을 그리 부지런하지도, 그리 게으르지도 않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냉정히 말하면,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은 게으르다.
 
자신을 부지런하지도 게으르지도 않다고 평가하는 모든 사람의 현실은 게으르다. 그 사람들이 부지런 할 때는 오직 자신이 하고픈 일을 하고 싶을 때이다.
 
그래서 이런 순간 때문에 자신이 부지런한 면도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것은 커다란 착각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게으른 사람도 자신이 하고픈 일이 있다면 그땐 부지런해지기 때문이다. 단지 차이는 하고픈 일이 얼마나 많으냐에 차이일 뿐이다.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은 무척 바쁘게 산다. 하지만 그는 결코 자신이 하고 싶지 않는 일에 부지런하지 못한다. 그래서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아이와 놀아주기, 집 청소하기 와 같은 재미 없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잘 하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하고픈 일은 정말로 부지런하게 한다. 게임 하기, 친구 만나기, 여행 다니기, 맛있는 음식점 찾아가기, 동네 축구 모임에 나가기, 낚시 가기, 운동 하기, 영화 보기 등등이 그런 것들이다.
 
우리는 가만히 있는 것보다, 집안 일을 하는 것보다 더 즐거운 것이 있으면 그것을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것을 할 때는 결코 게을러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가 사람을 착각하는 가장 큰 원인이 된다.
 
그래서 데이트 할 때는 정말로 부지런 했던 사람이 결혼 후 집안에서 한없이 게을러지는 경우가 생긴다. 이럴 경우 상대 배우자는 어이가 없고 분통이 터지지만, 이미 한 결혼을 물리기란 쉽지 않다. 또한 어느 정도는 시키는 일을 해주더라도, 결코 먼저 나서서 해주지 않을 경우, 이것은 살아가면서 마음 한 켠에 점점 더 쌓인다. 즉, 상대에 대한 미움이 쌓이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부지런하다는 것은, 그냥 말 그대로 모든 일에 부지런해야 한다. 그것이 좋아하는 일이든, 싫어하는 일이든 상관없이 해야 할 일이면 꼼지락거리지 않고 바로 바로 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사람은 참 드물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게으르다. 그리고 아주 소수만이 부지런하다.

 

물론 누구나 별로 하고 싶어하지 않는 집안일을 좋아해서 부지런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은 정말로 드물다. 

 
이런 특별한 성향의 사람이 아니라면, 그냥 일반적으로 좀 더 부지런한 배우자를 골라야 한다. 특히나 자신보다 상대적으로 더 게으른 사람을 고르는 것은 거의 스스로 무덤에 들어가는 꼴이다. 적어도 비슷하게 게으르거나 혹은 자신보다는 상대적으로 부지런한 사람을 골라야 한다.
 
그런데 모든 성향에 단점이 있듯이 부지런함에도 단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부지런함만큼 상대에게도 부지런함을 바란다는 점이다. 이것은 그다지 부지런하지 못한 상대를 숨막히게 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데도 불구하고 상대는 더 많이 부지런함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결혼이 아닌 동성의 친구들과 방을 같이 써 본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큰 어려움 없이 이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남자들끼리의 동거든 여자들끼리의 동거든 상관없이, 조금만 공용 공간을 같이 사용해보면 정말로 사람의 게으름이 얼마나 문제를 일으키는지 알 수 있다. 또한 반대로 부지런한 사람의 끝없는 잔소리가 얼마나 스트레스를 주는지도 알게 된다.
 
그래서 잘못하면 친한 친구가 원수가 되어서 헤어지기도 하는 것이 같이 살았던 동거 생활의 비극적 결말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부지런함과 반드시 같이 있어야 하는 상대에 대한 이해심이 필요하다. 이 이해심은 부지런한 사람이 상대적으로 덜 부지런한 사람을 이해해 줄 수 있는 힘이 되어 준다.
 
그리고 여기엔 누구나 부지런할 수 없다는 점과 상대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이해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은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좀 더 삶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부분이며, 경험 역시도 필요하다. 즉, 관록이 필요한 일이다.
 
부부가 성격적 갈등을 겪는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상대를 자신에게 맞게끔 맞추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 자신은 상대가 원하는 대로 변하지 못하면서 상대는 자신에게 맞게 변하게 만들려는 시도가 성공할 리가 없다. 이것은 단지 서로에게 상처만을 입힐 뿐이다.
 
그래서 우린 상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아니,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인간은 분명히 변할 수 있는 존재이지만, 그 변화는 아주 천천히 일어난다. 어떤 사람이 게으르고 부지런한 것은 물론 시간의 변화에 따라 변할 수 있는 문제이긴 하다. 젊은 시절 한 없이 게을렀던 사람이 나이를 먹고 책임져야 할 것이 늘어남에 따라 부지런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느린 변화이다. 그러니 결혼하고 몇 년 만에 게으르던 사람이 부지런해질 수는 없다. 그러니 오랜 시간을 인간의 기본적 이해를 통해서 상대를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이 천천히 변해가는 것을 지켜봐 줘야 한다.
 
그리고 부지런함은 단지 음식물 쓰레기를 잘 버려 주거나 아이와 잘 놀아주는 것만을 위해 좋은 것은 아니다. 실제로 부지런함은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왜냐하면 보통 일반적으로 부지런한 사람이 행복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불만을 갖거나 혹은 뭔가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은 모두 게을러서 그렇다. 물론 이 부지런함은 절대적 기준을 가진 것이 아니다. 우리가 부지런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만큼 부지런해야 하며 더해서 우리가 세상을 사는데 있어서 해야 할 많은 귀찮은 일을 기꺼이 할 만큼 부지런해야 한다.
 
운동을 안하고 게으르면 늘 마음 속에는 건강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산다. 이를 열심히 닦지 않으면 언젠가 이가 썩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한다. 오늘 해야 할 회사 일을 해놓지 않으면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하다. 이번 달 말까지 자동차 검사를 받아야 한다면 그것을 하지 않고 계속 미루고 있을 때 문득 걱정스럽다. 살아가면서 이런 일들은 정말로 많다.
 
또한 다른 종류의 것도 있다. 언젠가 친구가 잘되는 것을 보면 부러움을 느끼는데, 실제로 자신이 뭔가 덜 했다는 생각으로 인해서 기분이 나빠지는 것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친구의 행운을 부러워하기 보다는 자신이 뭔가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생각으로 인해 생긴 불만이다. 최근에 몇 년간 열심히 운동을 해서 보기 좋은 몸을 가진 친구를 보는 것도 비슷하다. 그 친구가 부럽고 질투 나는 것은 바로 자신이 그것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도 아니고, 하고 싶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을 질투하거나 부러워하지 않는다. 고철 모으기를 좋아해서 집안 가득 고철을 모아 둔 사람을 보고는 왜 저렇게 살까 라고 생각하지 그것을 부러워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돈이나 건강 같은 것은 다르다. 그것은 해야 할 일이고 하고 싶은 일이라서 그것을 얻은 사람을 보면 부러운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하진 못했어도 이미 부지런하게 충분히 노력하고 살아온 사람이라면 그것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 자신도 언젠가는 그것을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시간의 문제일 뿐인 것이다. 오히려 자신처럼 부지런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을 보면 동지를 만난 듯 기분이 좋아질 수도 있다. 산에 오를 때 다른 등산객의 모습이 반가운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물론 무조건 부지런한 것은 의미가 없다. 그것은 일종의 강박관념이다. 우리는 선택적으로 부지런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 행복의 가장 중요한 열쇠는 부지런함이다. 물론 이것은 자신이 하고픈 일과 해야 할 일에 대한 상대적인 비율이다. 그래서 자신이 해야 할 일과 하고픈 일을 충분히 할 만큼 부지런하면 남들이 게으르게 산다고 평가를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에 비해서 덜 부지런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단지 이 기준은 혼자 살 때이다. 부부가 같이 살려면 부부 중 더 높은 요구에 맞출 만큼 부지런해야 한다. 그리고 배우자를 고를 때 이런 사람을 골라야 한다.
 
부지런함은 매우 좋은 성격적 장점이다. 우리는 단지 그것의 큰 단점인 부지런함에 대한 강박관념과 상대를 자신만큼 부지런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면만 조심하면 된다. 그리고 그 부지런함이 잘못 사용되지 않도록 자신의 삶의 방향을 잘 조정하는 현명함도 필요하다. 우리는 잘못하면 말 그대로 삽질을 하는데 부지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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