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시간의 페이지

아이루다 2014. 11. 14. 07:57

 
인간의 평균 수명을 80살 정도로 잡고, 하루에 대략 8시간 정도 잠을 잔다고 치면, 우리가 평생 의식적으로 시간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는 총 438,000 시간이 된다. 이것은 어린 시절 5년은 빼고 하루 16시간씩 총 75년의 시간의 총량이다.
 
여기에서 의식적인 시간이란 의미는, 우리가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는 시간을 뜻하는데, 자는 동안은 그것이 불가능하기에 빼고 계산했다. 아무래도 잠을 자고 있는 상태는, 우리 인간의 무의식적 상태인 것이 거의 확실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보통 사람이라면, 일년마다 약 6천 시간에 가까운 의식적인 시간을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시간을 먹고, 싸고, 일하고, 놀고, 보고, 기다리고, 이동하고, 멍하게 있고, 싸우고, 이야기 하고, 돌아다니면서 보낸다.
 
하지만 이렇게 잠을 자지 않고 있는 의식적인 시간을 보내는 중에도 우리는 제법 무의식적인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꽤나 많다. 그 중에서 가장 흔하게 일어나는 것이 바로 집중이다. 우리는 그것이 무엇이든지 모든 의식이 그것을 향해 집중되어 있을 때, 시간의 흐름을 거의 의식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 때 우리는 일반적으로 행복을 느낀다. 우리는 흥미롭거나 재미있거나 할 경우에 그것에 빠져든다. 물론 일이나 공부를 하는 시간에 일어난 집중은 예외가 될 수 있으나, 일이나 공부 역시도 시간을 잊은 채 열심히 하고 나면, 집에 돌아가는 길에 뭔가 만족감이 생긴다. 이것도 역시 행복의 일종이다.
 
반대로 시간의 흐름이 정말로 잘 인식될 때가 있다. 그것은 바로 심심하거나 뭔가 딱히 할 것이 없어서 빈둥거릴 때이다. 혹은 상대가 약속에 늦어서 기다리고 있을 때이다. 이것은 보통 머리 속에 갖가지 생각이 난무하고 있는, 일종의 사념에 둘려쌓인 상태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때는 반대로 불행함을 느낀다. 우리는 흥미롭게도 지루하거나 재미 없는 상황에 놓일 때 시간을 인식한다. 물론 이것 역시도 예외가 있을 수 있다. 잠을 깬 직 후, 출근을 위해 일어나야 할 시간이 10분 남은 경우, 우리는 선잠을 자면서 시간을 인식하기도 한다. 이 때는 딱히 할 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은 무척 빠르게 간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상황을 보면,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잊을 때 행복하고, 시간의 흐름을 인식할 때 불행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재미난 사실 하나를 말해주고 있다.
 
이것은 예전부터 전해오는 이야기 중 하나인데, 산에 나무를 하러 간 나무꾼이 우연히 신선들이 바둑을 두는 모습을 보다가 집에 내려 오니, 시간이 10년 흘러 있었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 나무꾼은 분명히 바둑을 두는 모습을 바라보는 동안은 초 집중을 했을 것이다. 단지 그 시간이 10년이나 된 것이 문제이지만, 아무튼 그래서 이 사람은 집중을 하고 난 후, 10년을 흘려 보낸 것에 어떻게 생각할까?

 

* 원래 이야기는 이것과는 조금 다르다. 원래는 최소 50년 이상인 것 같고, 나무꾼은 나이를 먹지 않았다. 즉 그는 냉동인간처럼 시간이 정지된 것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야기에서는 나무꾼이 그냥 10년 나이를 먹었다고 가정한다. 마치 식물인간으로 10년을 보낸 경우처럼 말이다.
 
아마도 많은 이들은 자신의 잃어버린 10년에 대해서 안타까움을 느낄 것이다. 10년간의 시간으로 인해 단절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성은 제쳐두고라도 그냥 자신의 전체 삶에서 10년이란 큰 시간이 훌쩍 사라져버린 것에 대해서 많이 아쉬워할 것이다.
 
그렇다면 10년 동안 계속 재미 있는 것을 한 사람은 어떨까? 딱히 일을 할 필요가 없을 만큼 돈이 많은 사람이, 눈을 뜨고 있는 동안에는 영화 보기, 만화 보기, 드라마 보기, 스마트 폰 보기, 게임 하기, 여행 하기, 친구 만나기 등등을 하면서 10년의 시간을 보낸 사람과 이야기에 나온 나무꾼은 다른 상황일까? 이 사람이 10년 동안 그런 일을 하면서 초 집중 하여 시간의 흐름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면 말이다.
 
이것은 판단 내리기가 조금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상상을 하나 해보자. 우리는 총 438,000 장에 달하는 아주 두꺼운 책 한 권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것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겠지만, 그냥 이 정도의 두께라고 치자. 보통 책이 300페이지 정도이니 상대적으로 엄청나게 두꺼운 책을 것이다. 아무튼 우리는 매일 매 시간마다 이 책의 한 페이지를 넘기고 있다. 그리고 하루엔 16페이지만을 넘길 수 있다는 규칙이 있다.
 
그런데 이 책은 재미있는 부분도 있고 재미없는 부분도 있다. 그래서 우리가 정신없이 재미있게 넘긴 16 페이지는 행복으로 기록되고, 반대로 읽는 부분이 너무 재미가 없어서 16 페이지를 넘기기가 너무 힘든 날도 있을 것이다. 물론 하루에 2페이지는 재미가 있고 나머지 14페이지는 재미가 없는 날도 있을 수 있다.

 
우리는 그래서 재미난 페이지가 빨리 나오게 하기 위해서 잘 넘어가지 않는 페이지가 빨리 넘기려고 한다. 하지만 이상하게 재미없는 페이지는 그럴수록 더 잘 안넘어가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답답함을 느끼고 그 재미없는 페이지를 읽었던 기억을 최대한 기억 속에서 삭제시켜 버린다. 즉, 이 페이지들은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인 냥 삶의 기록 자체에서 사라져 버리고 만다.
 
우리는 결국 시간을 인식하지 않을 만큼 즐거운 시간을 보내어 시간을 기억하고 싶어도 못하거나, 반대로 즐겁지 못해서 인식된 시간은 기억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서 결국엔 우리의 어떤 시간의 페이지도 기억에 남질 못한다. 우리는 그냥 그때 느꼈던 감정적 느낌만을 마음에 담아 둔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것이 감정적 혹은 감성적 느낌으로 남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보낸 시간이 무엇인가를 만들어 낸 시간일 경우, 어떤 것을 했느냐에 상관없이 그것이 시간의 다른 가치로 환산되기 때문에 남게 된다고 표현할 수 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머리 속에 들어간 지식이 늘었거나, 회사에서 일을 열심히 해서 좀 더 능력을 인정 받았거나, 아니면 무엇인가를 만들었거나 배웠거나 하는 시간들이 그런 것이다.
 
또한 자신의 마음 속에 의미 있는 감정이나 감성을 남긴 행위 역시도 이와 마찬가지다. 게임을 열심히 해서 자신이 키우는 캐릭터가 좀 더 강해진 것이나 친구와 자주 만나서 좀 더 친해졌거나 하는 것들도 그런 것 중 하나이다.
 
문제는 남는 것들이 거의 없는, 즉 시간이 오직 소모만 되고 마는 것들이다. 영화로 치자면, 킬링 타임이라고 부르는 영화일 것이며, 친구들과의 만남이라면 늘 상 반복되는 패턴일 것이다. 게임으로 치자면 언제라도 그만 두고 다른 게임으로 가는 경우이며, 여행으로 치자면 무엇을 느꼈는지 보다는 어떤 곳에 다녀왔다는 것이 중요해지는 경우가 될 것이다.
 
그 자신이 무엇을 하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단지 시간의 흐름만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행복한 모든 경우가 이것에 해당될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잠을 자는 것과 비슷한데, 다른 점은 잠은 우리의 육체의 피로를 회복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이 다르다. 즉, 잠이 남기는 것은 명확하다.

 
하지만 남기지 못하는 것과 남기는 것을 나누기는 참으로 힘들며, 개인마다 모두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기에 이것을 일방적으로 분류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영화 보는데 까지 생각을 하고 무엇인가를 느껴야 하냐 라고 반문할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영화라고 해도 그런 것을 느끼지 못하면 뭐 하러 그것을 보냐 라고 따질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모두 개인적 영역에서 판단 할 분류이다.
 
단지 말하고 싶은 것은 다음과 같다. 어떤 식으로 판단을 하든지, 시간의 페이지가 넘어간 후, 그것이 아무런 것을 남기지 못하고 단지 소모만 되고 만다면, 그 시간은 말 그대로 사라진 것이 된다. 그것은 마치 나무꾼에게 흘러간 10년의 시간과 같다. 그 나무꾼이 10년 동안 충분히 행복했다면, 그 10년이 아쉬울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그 시간이 왠지 아쉬울 것이다.
 
이것은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우리는 시간을 잊고서 행복하기에 그것이 유지되는 시간이 길어지길 원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시간이 10년, 100년까지 되길 바라지는 않는다. 왜 그럴까?
 
그것은 그 사람에게 주어질 수 있었던 10년이란 시간 동안 무엇인가를 해 낼 수 있었던 기회를 날려 먹은 것이 아쉽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시간을 소비하여 자신만의 어떤 가치로 환산해내지 못하면 그 시간을 아쉽게 느끼는 것이다. 그것은 시험 공부를 해야 할 학생이 하루 종일 놀고 난 후, 잠들기 직전에 느끼는 기분과 같은 것이다.
 
낮에 노는 시간은 즐겁고 행복했지만, 그 시간을 그렇게 소모해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은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이것을 벗어나는 방법은 딱 두 가지이다. 하나는 잠을 포기하고 밤 새워 공부를 하든가, 아니면 그 시험 자체가 가진 의미를 부정하는 것이다. 즉, 인생에 있어서 공부가 전부는 아니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객관적으로 보면, 이런 사고 방식은 조금 웃겨 보인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우리는 실제로 자신의 삶에서 많은 것들에 대해서 이런 식으로 판단을 하고 살아간다. 그래서 우리에게 있어서 인생의 전부가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의미 있거나 가치 있는 것들도 거의 없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더 재미있게 놀고 싶어한다. 그러니까 더 시간을 인식하지 않고 싶어한다. 이때 시간은 소모되거나 무엇인가로 변환되는데, 이 중에서 변환되는 과정은 좀 더 힘들기 때문에 보통은 쉽게 소모되는 것을 선호한다. 그런데 가끔은 소모되는 것들이 작은 것을 남겨주는 경우가 있다.
 
킬링 타임용 영화 중에 나온 감동적인 장면이나, TV 쇼를 보는데 출연자들의 진솔하다고 여겨지는 발언들에 대해서 공감할 때이다. 그래서 단지 그 시간을 보낸 후에도 무엇인가를 남겼다고 느끼면서 마음 한 구석이 뿌듯해지곤 한다. 그래서 그런 것들이 소중해지기도 한다.
 
이것은 집중에 의한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며, 쉽게 얻었으며, 무엇인가를 남기기도 했으며, 그래서 가치도 만들어진 것이다.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세상이 어디 있을까?
 
그런데 이것은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왜냐하면 너무 쉽게 너무 좋은 것을 다 얻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번이라도 이런식으로 보상을 받은 우리는 이젠 더 이상 어렵게 시간을 보낼 생각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쉽게 시간을 보낼 궁리를 하게 된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것에 대해 알고 싶다면, 그냥 주변을 돌아보면 된다. 아니, 자기 자신부터 돌아보면 된다. 과연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말이다. 그리고 요즘 무엇을 가치 있다고 느끼고 살고 있는지 말이다. 아니, 자신에게 있어서 정말로 가치 있는 것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는지 말이다.
 
실제로 이런 행복은 마약을 하는 것과 큰 차이가 나 보이지 않는다. 물론 마약은 중독으로 인해서 심신을 아주 망치는 짓이긴 하다. 하지만 이런 행복 역시도 중독의 일종이다. 즉, 우리는 쉽게 얻은 행복에 서서히 중독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점점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시간의 페이지를 넘기는 과정을 인식하려고 하질 않는다.
 
그래서 살아가는 동안 인식된 시간은 점점 더 불행하고 치부되고, 더는 존재하지 않아야 할 페이지가 된다. 

 

이것이 심화되자, 우리에게 있어서 산다는 것은 사는 과정을 잊는 것는 것으로 정의되기 시작했다. 정말로 놀랍게도 스스로 사는지에 대해서 인식하지 못하는 삶을, 인식하면서 사는 삶보다 더 행복하다고 믿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배고픈 소크라테스와 배부른 돼지의 싸움에서 돼지의 승리를 의미한다.
 
결국 이 상황은 나무꾼이 보낸 10년과 같은 것이 된다. 그리고 더 문제는 10년이 아닌 평생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시간을 인식하는 상황은 단지 생계를 위해 일을 할 때만 남게 된다. 상대적으로 일을 하는 것은 더욱 더 안 좋은 시간 보내기가 된다. 그렇지만 다들 돈이 없기에 더 많이 노동을 위해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이것은 악순환이 된다. 힘들기에 더 편하려고 하니, 노동 이외의 시간은 대부분 최대한 시간의 페이지를 빨리 넘기려고 하고, 그래서 일주일마다 찾아오는 주말은 정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 버리고 만다. 그리고 또한 그렇게 보내기 위해서 우리는 주말 동안엔 시간의 페이지를 최대한 빨리 넘기는 일만 골라서 한다. 즉, 우리는 쉬는 시간은 모두 빨리 소모되어 우리 자신이 행복해지기만을 원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린 쉽게 시간을 보내주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보낸 시간은 다시 주중에 일을 할 때, 시간이 상대적으로 너무 많이 인식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즉,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도 지루한 것이다.
 
예전에 직장인의 월요병을 줄이고 싶다면 주중에 나와서 일을 하면 된다는 내용의 기사가 나온 적이 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그 기사를 보고 욕을 했지만, 실제로 이것은 어느 정도 개연성이 있는 기사이다. 그리고 그 이유에는 바로 상대적인 행복감 차이가 자리 잡고 있다.
 
이것은 단지 직장에서만 벌어지는 상황이 아니다. 우리는 버스가 조금이라도 늦거나 지하철에 간발의 차이로 타지 못하면, 그것이 많이 신경 쓴다. 언제나 시간을 투자했는데 무엇인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그것을 할 필요가 없어지게 된다.
 
그래서 결국 우리에게 시간을 멍하게 보내는 일 따위는 절대로 없어져야 할 악이 되었다.
 
이젠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엄청나게 두꺼운 시간의 책을 최대한 빨리 넘겨서 최대한 빨리 죽으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삶을 행복하게 사는 길이라고 믿는다.
 
이것은 답을 낼 수 없는 상황이다. 행복하다면 모든 것이 이해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행복은 행동의 결과로 따라와야 하는데, 우리는 행복을 행동의 목표로 살고 있다. 이것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말장난 같기도 하다. 하지만 잘 생각해봐야 한다. 모든 이들이 행복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과연 행복이란 것이 목표가 될 수 있는 개념일까?
 
행복을 목표로 하게 되면, 결론적으로 행복하지 못하면 모든 과정이 무의미하게 된다. 마치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같다. 아무리 고생을 해서 노력했어도 결국 돈을 벌지 못하거나, 혹은 충분히 만족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 해도 돈을 벌지 못했다면 그 과정이 모두 무의미해지는 상황과 같다.
 
행복은 그저 과정에서 얻어지고, 그래서 결론에 자연스럽게 함께 있으면 된다. 우리가 어떤 일을 했을 때 꼭 행복하고 싶은 욕망은 그 행복함을 남들에게 자신의 삶의 행운에 대한 이야기 하고 싶어 하거나, 자랑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딜 가든, 무엇을 하든 만족할만한 성과를 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또한 남들에게 이미 검증된 과정을 답습한다. 남들이 좋다고 한 여행지를 가고, 남들이 맛있다고 이야기 한 식당에 간다. 물론 이것은 대부분 행복한 만족감을 준다.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자랑할 만도 한다.
 
오늘 하루도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도 16페이지가 주어졌다. 이것을 어떻게 쓰느냐는 오직 우리들 자신들에게 달렸다. 그리고 그렇게 넘어간 페이지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것은 쉽게 넘어가서 허공에 사라질 수도 있고, 무엇인가로 변형되어 있을 수도 있다. 또한 너무 페이지가 안 넘어가서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이 페이지는 자동으로 매일 다시 16페이지가 주어진다는 점이다. 잠이 적은 이는 18이나 20페이지도 될 수 있다. 물론 그 끝은 있지만 말이다. 그래도 과거는 마음 먹기에 따라 언제라도 단절이 가능하다. 우리는 남은 페이지만 보고 살아도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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