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독방이 주는 교훈

아이루다 2014. 10. 27. 09:11

 
감방을 가 본 적은 없지만, 감방을 주제로 한 영화나 드라마는 제법 본 경험은 있다. 아무튼 그 내용에 상관없이, 감옥에 수감된 누군가가 말썽을 피우면 그가 받는 교소도 자체 최고의 형벌은 바로 독방에 오랜 시간을 가두는 것인듯 하다. 그리고 보통 죄수들은 한 달만 독방 행 처벌을 받아도 그것을 무척 공포스러워 한다.
 
그리고 그 공포심은 아마도 이미 경험이 있는 자들이 더욱 심하게 느낄 것 같다.
 
그런데 독방, 그러니까 혼자 있다는 것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고통을 주는 것일까? 독방에 있다고 해서 밥을 안주는 것도 아니고, 잠을 안 재우는 것도 아닐 것이다. 분명히 생존을 위한 먹고, 자고, 싸는 행위는 모두 허락되며, 여럿이 있을 때보다도 차라리 자는 시간이 더욱 많아서 좋을 수도 있다. 또한 참겨하는 이들도 없고 방해하거나 괴롭히는 이도 없을 듯 해서 더 좋아할 것 같은데 왜 그럴까?

 

감옥이 아닌 곳에서는 같이 방을 쓰는 것보다 독방을 쓰는 것을 보통 더 선호하는데 이해가 안가기도 한다.
 
감옥에서 독방을 가는 이들은 왜 그것을 그리도 두려워할까?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요소를 동시에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원천적인 것이기도 하고, 심리적인 것이기도 하며, 육체적인 것이기도 할 것이다.
 
일단 가장 먼저 힘들 것으로 예상되는 것은 바로 외로움이다. 이것은 다른 말로 심심함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 즉 하루에 약 최소 12시간 정도를 대화할 사람 하나 없이 혼자서 지내야 한다. 심심함은 누구나 경험해봐서 알겠지만, 심심하면 시간이 정말 안 간다. 그러니 하루 12시간은 늘 보내던 12시간이 아닌 것이다.
 
이때 독서나 글쓰기 등 혼자서 할 수 있는 어떤 것이 미리 준비되어 있는 사람은 그나마 괜찮지만, 그런 시간 보내기 취미가 없는 이들에게는 더욱 힘든 시간이 될 것이다. 독방이 아닌, 외부에서 혼자 사는 사람의 경우엔 TV, 게임 등의 다른 시간을 보내기 도구들이 있기에 독방에서의 12시간과는 다른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지내는 이들 대부분은 외로움과 심심함에 늘 노출되어 있다.
 
두 번째로 예상되는 것은 바로 끝없는 생각의 시간일 것이다. 우리의 머리는 단 한차례도 쉬는 시간 없이 끝없이 무엇인가를 생각을 하고 있다. 특히나 감옥과 같은 곳에 갇힌 이들에게 생각할 시간이란 것은 그리 좋은 시간이 아닐 것이다. 과거의 자기 잘못을 생각하거나, 밖에 있는 가족에 대한 걱정이나, 출옥 후 살아갈 자신의 삶에 대한 걱정 등등.. 생각은 끝없는 걱정을 불러 일으킨다.
 
이것은 단순한 예상보다 훨씬 견디기 힘든 일이다. 그래서 감옥이 아닌 밖에 있는 우리는 심심해서 TV를 보기도 하지만, 생각하지 않고 살기 위해서 TV를 보기도 한다. 이것은 상황에 따라 어지럽게 뒤섞인다.
 
세 번째는 좁은 공간에 지내야 하는 답답함일 것이다. 독방을 직접 가본 적은 없지만, 영화 속 그 공간들은 누울 침대 하나, 변기 하나 정도의 공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는 좁은 공간에 갇히게 되면 답답함을 느낄 수 밖에 없으며, 해를 볼 시간이 적어져서 호르몬 분비 문제도 생겨서 실제적으로 기분도 더욱 우울해질 것이다.
 
그런데 이 이유들을 잘 생각해보면 두려움이나 공포와는 큰 관련이 없어 보인다. 우리는 외롭다고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생각할 시간이 많다고 해서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또한 답답하다고, 해를 많이 보지 못한다고 해서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결론적으로 우리는 독방을 두려워한다. 왜 그럴까?
 
우리는 손발이 모두 묶인 상태라면 실제로 누군가 칼을 들고 와서 위협하지 않더라도 무엇인가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을 느낀다. 꼭 손발이 아니라도 몸이 어딘가에서 고정되어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우린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그것은 만약 위에서 어떤 무거운 물체가 떨어지거나,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호랑이가 와서 자신을 위협하거나, 갑자기 비가 쏟아지거나 할 때 피하거나 도망갈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예상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럴 확률은 거의 영에 가깝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생존 본능은 그것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은 원래, 우리가 예상하고 추측하고 있는 두려움 이상 훨씬 강력하고 근본적인 감정이다. 냉정히 말해서 우리가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때는 생각을 하지 않을 때뿐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있어서 생각을 안하는 시간은 무엇인가에 집중하거나, 할 일이 있어서 하고 있거나, 행복함을 느끼고 있는 순간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시간을 행복하다고 판단한다. 즉, 행복은 실체가 없는 것이며, 두려움의 부재 상태를 의미한다. 그것은 마치 어둠과 같다. 해가 없는 상태를 어둠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어둠은 실체가 없다. 단지 빛의 부재만을 의미한다. 행복 역시도 우리가 그것의 명백한 실체를 믿지만, 우리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상태를 행복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물론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시간 모두가 행복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앞에서 말했듯 우리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에는 집중하고 있는 그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행복한 것은 아닐 수 있다. 그렇지만 집중은 하고 있는 상태이다.
 
우리는 집중하지 않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온갖 잡다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때 걱정을 떠올리고, 두려움을 떠올린다. 그런데 만약 최근에 매우 기분 좋은 행운이 하나 생겼다면, 그 생각이 먼저 계속 떠올라서 당분간은 두려움은 덜 떠올리는 행복감도 맛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행운도 다시 걱정거리로 변하게 된다. 복권에 당첨되어 많은 돈을 벌었을 때, 그 순간은 매우 행복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그 돈을 어떻게 지켜야 할지 고민하고, 결국 그것을 제대로 지킬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이것에 대한 이해를 하고 나면 이젠 왜 우리가 독방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지에 대해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독방은 우리에게 그 어떤 것에도 집중을 할 수 없게 만든다. 거기에서는 일도 안하고, 대화도 할 수 없고, 딱히 볼 수 있는 TV나 기타 등등의 시간 때우는 방법이 없다. 혹시라도 혼자 잘 지내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책과 같이 그 사람이 즐기는 것을 없애서 결국 온종일 혼자 지내게 만들면,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과 같이 정신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가 바로 우리가 숨겨 두었던 거대한 두려움이 드러난 것이다. 결국 장시간 두려움에 노출된 우리의 정신은 결국 서서히 파괴되고 만다. 즉, 미쳐간다는 뜻이다.
 
또한 분노도 역시 우리 정신 세계를 파괴한다. 하지만 분노는 두려움의 다른 면일 뿐이다. 우리는 두려움을 통해서 분노를 느끼는 것이지 그냥 분노하지는 않는다.
 
두려움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가 바로 분노이며, 우리는 분노를 할 때 두려움을 잠시 잊는다. 그리고 그런 능력이 바로 우리가 커다란 이빨을 들어낸 맹수 앞에서 창을 들이댈 수 있게 해줬던 것이다. 우리는 그때 처음엔 두려움을 느끼다가 같이 사냥을 하는 동료의 부상이나 죽음을 목격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두려움을 까맣게 잊은 채 거대한 분노에 사로잡혀서 미친 듯이 공격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튼 두려움은 그 모든 것의 근원이고, 우리 인간의 본질이다. 그것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우리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유한한 생명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그 다른 모든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무엇인가를 느끼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실망하고, 희망을 갖고, 절망하고, 도망가고, 맞서 싸우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행복해하는 우리 인간의 모든 행위는 모두 살아있기에 가능하다.
 
죽는 순간 우리는 그 모든 것에 무관심해진다. 그것도 완벽히.

 

그래서 죽음은 가장 근본적인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우린 죽음을 더욱 더 잊고 싶어한다. 우리는 그래서 죽음을 상징하는 그 모든 것을 두려워하고 피하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믿어지는 '죽을 사(死)'자가 바로 그런 예가 된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생각은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불과 같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화상을 입고, 너무 멀리 있으면 그 따뜻함을 느낄 수 없다. 우리는 죽음과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해야 우리 자신도 같이 유지를 할 수 있다.
 
독방에 갇히는 것은 불과 가까운 위치로 이동하는 행위이다. 그곳에 가면 죽음에 가까워지고 그래서 두렵고 공포스러우며 결국 장시간 노출되면 정신 세계가 파괴된다.
 
반대로 밖의 세상은 불과 너무 먼 곳에 위치한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많이 잊어 버렸다. 우린 불에 조금 더 가까이 가야 그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데, 불이 두려운 탓에 불의 존재와 너무도 멀어져 버렸다.
 
물론 그것은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다. 우리가 불에서 멀어질수록, 결국 죽음으로부터 멀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복의 본질이 두려움이란 것으로 인해 결국 문제가 생겨난다. 우리는 죽음으로부터 멀어졌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삶은 권태로움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안전한 곳에 키워지는 토끼는 털에 윤기도 없고 힘도 없다. 거기에 여우 한 마리만 풀어놔도 토끼의 털은 윤기가 흐르고 매우 활동적이고 건강하게 변한다.
 
우리는 죽음을 최대한 멀리 하기 위해서 집중의 시간을 최대한 늘리려고 하고, 그것이 안되더라도 생각하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그것은 바로 우리에게 여우의 존재를 없애는 행위와 같다. 그로 인해서 우린 죽을 염려는 줄었으나, 결국 우리의 삶은 그 고유한 아름다운 빛을 잃고 만다.
 
그래서 이젠 우리는 어떻게 하면 행복할지에 대해 끝없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로 행복 절대론이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행복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우리의 진정한 행복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순간인데, 두려움이 무엇인지 모르게 되면 행복도 못 느끼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점점 더 권태로워지고 지겨워진 것이다. 우리는 독방으로부터, 불로부터 너무 멀어져 버렸다.
 
현대인들의 많은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한다. 우린 먹기만 해도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젠 무엇인가 맛있는 것을 먹어야 같은 행복을 느낄 처지가 되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우리의 욕망은 끝없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많은 인간들이 욕망을 높이는 것과 다르게 우리가 소모할 수 있는 자원은 한정적이다. 그래서 그것을 얻기 위해 지불해야 할 비용은 계속 높아지고 결국 우리 중 소수만이 그것을 제대로 즐기면서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남은 이들은 선택된 이들이 즐기며 사는 모습을 보면서 부러워하고 질투를 느끼게 되었다.
 
결국 남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과거엔 그리 어렵지 않게 얻었던 행복을 이젠 좀처럼 얻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독방에 가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가끔 불에 좀 더 다가가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가끔 혼자 있어야 할 필요가 있으며, 조금 더 화상의 위험을 무릅쓰고 따뜻함을 느끼기 위해 불에 다가가야 한다.
 
물론 너무 오래 독방에 갇혀도 문제가 되고, 불에 너무 다가가도 문제가 된다. 그것들이 바로 죽음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마냥 멀리만 하는 것은 결코 자신이 삶에 있어서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렇지만 세상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그것들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생각하지 말고 살아야 하고,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더 많은 것을 가지는 것이라고 하고,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 끝없이 희망과 욕망을 품어야 한다고 말해준다.
 
그리고 행복은 삶의 최고의 가치라고 한다. 하지만 행복이란 것이 바로 욕망임은 말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있어서 최고의 욕망은 바로 행복에 대한 욕망이고, 그것이 결국 우리 자신을 끝없이 불행하게 만드는 문제점이란 것을 잘 설명해주지 않는다.
 
분명히 죽음은 우리가 멀리해야 할 것이지만, 죽음은 우리가 마냥 무시해야 할 것만은 아니다. 우린 아주 가끔은 죽음 앞에 서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 독방에 들어가야 하고, 불에 더 가까이 다가갈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좀 더 진지한 모습을 가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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