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나쁜 기억으로부터의 자유

아이루다 2014. 10. 12. 21:08

 
어린 시절에 겪은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후, 평생을 그 기억으로부터 도망치지 못하고 괴로워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은 원래 망각이라는 아주 좋은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에게 잊지못할 기억들은 매일 매일 바로 어제처럼 일어난 것인 냥 선명하게 떠오르기도 한다.
 
그것은 어린 시절에 겪은 끔찍한 고통의 기억일수도 있고, 처음 본 포르노의 충격적인 한 장면일수도 있다. 또한 성폭행을 당한 어린 여자 아이의 기억이나 혹은 심각한 왕따를 당하고 아이들로부터 끔찍한 장난을 당했던 절망스러운 기억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런 기억을 가질 필요가 없는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후, 성인이 되어 별다른 어려움 없이 살아갈 수도 있지만, 또 다른 어떤 이들은 상상하기도 힘든 끔찍한 기억의 경험을 떨치지 못한 채, 평생을 그 안에서 갇혀서 살아갈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나마 그런 기억들은 어른이 된 후엔 어린 시절에 가졌던 공포와 두려움만큼 그 자신을 괴롭히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이젠 스스로를 지킬 수도 있으며, 그런 짓을 당한 것이 자신의 잘못이 아닌, 상대의 실수나 혹은 잔인함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공포는 남아있고, 공포심을 없앴더라도 분노마저 지우기는 정말로 힘들지도 모른다.
 
이것은 나 역시 경험해보지 못한 기억이기에 함부로 평가할 수도 없으며, 또한 내 마음대로 그것을 판단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 가지 조언을 해줄 수 있다.
 
우리가 어떤 나쁜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게 될 때, 그 기억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는 증거가 바로 공포심과 분노 그 자체라고 말이다. 즉, 이 말은 우리가 그 기억에 어떤 것을 느끼는 한, 그것에게 종속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실제로 어떤 기억에서 벗어나려면 그 기억에 대해서 어줍잖은 용서나 이해를 하려고 하지말고 단지 무시하고 또 그래서 결국 무심히 바라볼 수 있을 때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가끔 영화에서 보면, 어린 시절 잔인한 대접을 받았던 아이가 커서 복수를 하게 될 때, 아주 치밀하게 혹은 대담하게 대상에게 다가가 총이나 칼로 완전히 제압을 한 후, 한 동안 과거를 기억시키려고 노력하는 장면이 나온다.

 

복수의 대상자는 처음엔 주인공이 누군지도 모르고 있다가, 한 참 설명을 듣고 난 후 기억을 하면서 놀라는 장면이 많이 연출되는데, 만약 이 때 그 사람이 끝까지 주인공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면 주인공의 기분이 어떨까? 자신은 평생 그 기억 속에서 살아왔는데, 상대는 자신의 존재를 전혀 인식하지 못할 때 말이다.
 
보통은 관객을 이해시켜야 하기에, 감독들은 그런 장면을 넣지는 않는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괴롭힌 사람이든 쉽게 그 기억을 잊고, 괴롭힘을 당한 사람은 그 기억 속에서 평생을 괴로워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이 얼마나 모순적 상황이며 또한 불공정한 상황이란 말인가?
 
손해를 입힌 가해자는 쉽게 잊고 평생을 편하게 살고, 손해를 본 피해자는 잊지 못하고 평생을 괴로워해야 한다니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저지른 나쁜 일은 쉽게 잊는다. 그리고 자신이 당한 부당하거나 억울한 일은 평생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범용적 특성이기에 가해자가 그랬다고 해도 그것을 비난 할 수는 없다.
 
어린 시절 자신을 성폭행 한 사람이거나, 집단 괴롭힘을 주도한 녀석이 있다면 어른이 된 후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하나는 복수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사법적으로 하는 복수일 수도 있고,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복수도 있을 것이다. 전자는 어렵지만 후환을 남기지 않는 방법이고, 후자는 쉽지만 잘못하면 그 일로 인해서 자신의 삶까지 망가질 수 있다.
 
복수 말고 하나 더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무관심해지는 것이다. 과거는 그냥 과거일 뿐이다. 과거에 어떤 불합리하고 억울하고 공포스러운 일을 당했던 간에, 현재의 상황으로 봐서 실제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다면 그냥 잊는 것이다. 그것은 용서도 아니고, 받아드리고 이해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단순히 완전히 망각하고 무관심해지는 것이다.
 
사랑하는 이에게 배신을 당하고 큰 상처를 받았다면, 그것에 대한 진정한 극복은 바로 무관심해지는 것이다. 만약 그 사람을 계속 기억하고 남기고 미워하고 저주하고 있다면, 그것은 스스로 자신을 망치는 길이며 상대에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일이다.

 

배우자가 바람을 피운 후, 배신감에 충격을 받아 이혼을 하여 살아갈 때, 과거를 되새기는 것은 과거를 현재로 고정시키는 행위이다. 이혼을 했다면 그냥 미래를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러다보면 더 나은 사람을 만날 기회도 있을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아마도 과거에 바람을 피워서 이혼하게 해준 그 과거의 배우자가 고맙다는 생각도 들 것이다.
 
하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다면 개인적인 복수나, 사법적인 복수를 하는 것이 낫다. 그럴 경우 자신의 삶 역시도 크게 흔들릴 수 있음을 각오한다면 못할 것도 없다. 하지만 그럴 용기가 없다면, 그냥 무관심해져야 한다. 그래서 좀 냉정히 말해보도록 하겠다.
 
어린 시절 아는 사람이나 친인척, 심하면 친부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지금도 그 기억으로 인해 괴로움을 느끼고 있다면, 그 기억은 그냥 기억일 뿐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미 그 당시의 몸과 현재의 몸은 물리적으로 완전히 분리된다. 우리의 모든 체세포는 7년만에 완전히 새로운 세포로 구성된다.

 

그래서 과거에 닿았던 모든 신체적인 부위는 사라지고 없다. 우리 인간에게 연속성은 오직 기억뿐이다.
 
말 그대로 어린 시절에 그런 일을 당했으면 어떤가? 그냥 잊고 무관심해지면 된다. 그것을 상처라고 생각하고 기억을 끝없이 재생시킬 때, 그것은 단지 잊을 수 있는 일이 아닌 셈이 된다.
 
판단력이 부족하고 용기도 없으며 힘없던 어린 시절의 그 자신은 현재 어른이 된 후 그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이다. 심지어 우리는 어제의 우리 자신과도 정확히 일치 하지 않는다. 그런데 10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면, 과연 그때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은 얼마나 관련이 있을까?

 

소설에서 영화에서 연극에서 기사에서 혹은 각종 상담자들이 그런 기억을 괴로워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는 것은 틀렸다. 그것은 단지 우리의 기억에만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그 기억을 놓는 순간 우린 그 기억을 무관심하게 대할 수 있다.
 
그 기억을 버리지 못하고 자신을 비하하며, 현재 자신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없는 것에 대한 핑계로 사용하는 순간 그 기억은 고정되고 연속성을 갖게 된다. 즉, 과거의 자신의 현재의 자신이 일치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충분히 누구나 이해 가능한 핑계이다. 그런 과거를 가진 사람이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털어 놓으면, 누구나 그 사람이 어떤 짓을 저질러도 이해를 하게 된다. 하지만 남들이 자신을 이해해준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 수 있겠는가?
 
혹시나 현실이 그지 같다고 해서 그것을 핑계 삼아서 현재의 자신으로부터 도망칠 생각이라면, 그 시도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를 말해주고 싶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삶을 자신의 끔찍한 기억 속으로 종속시키는 행위이며 그 가해자는 기억도 못할 그 시절을 스스로 끝없이 되새김질 해내서 혼자만 망가지는 행위인 것이다.
 
여기서 하는 말은 아주 단순하다. 분노를 참지 못하겠으면 복수를 해라. 단, 자신의 삶을 망칠 수 있으니 신중하게 판단해라. 혹시 할 자신이 없다면 그냥 잊고 무관심해져라. 그리고 혹시라도 그 과거를 현재의 자신의 삶에 대한 핑계거리로 쓸 생각이라면 빨리 포기해라. 이것이다.
 
일반적으로 삶을 실패했다고 평가되는 사람들은 보통 분노를 들어낸다. 그리고 그 분노의 대상은 자신의 주변 사람들이 주로 대상이 된다. 그것은 부모, 아내, 아이 등이며 그런 이들이 없는 사람들은 아예 사회를 대상으로 분노를 들어낸다.
 
물론 자신의 삶을 망친 장본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 때문에 자신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커다란 착각이다.
 
누구를 만나든, 어떤 환경에서 자랐든 간에 상관없이 그것은 본질적으로 우리들 삶의 한 요소이며 그래서 감당해야 할 것들이다. 이것을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 받은 상처나 고통을 이용해 자신의 삶에 대해 끝없는 핑계거리를 생성해내는 것이 바로 실패한 이들의 분노인 것이다.
 
그래서 실패한 인생일수록 폭력적으로 변하고 끝없는 불만을 늘어 놓는 사람이 된다. 물론 모든 것을 순종하고 살라는 뜻은 아니다. 분노할 일이 있으면 분노하고 절대적으로 행동해라.
 
누군가가 죽이고 싶을 정도로 밉다면 그냥 죽여야 한다. 왜 죽이지도 못하면서도 잊지도 못하는가?
 
그리고 좀 더 현실적으로 말하면 죽인다고 무엇이 달라지는가? 죽여봐야 자신의 삶만 피폐해지거나 혹은 평생을 체포될까 봐 두려움을 느끼고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영화처럼 멋지게 복수할 능력이 없다면 그냥 무관심해져라. 그것이 능력이 부족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이며, 또한 가장 현명한 태도이다.
 
어떤 점에서 복수보다도 더 멋진 행동이 바로 무관심이다. 자신을 버리고 떠난 사람에 대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는 한참 시간이 흐른 후 그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왔을 때, 누군지 기억을 못하는 것이다.
 
억울하고, 용서가 안되고, 자다가 악몽을 꾸면서 식은땀을 흘리고 깨어날 순 있지만, 정말로 그것을 벗어나고 싶다면 그냥 무관심해져라. 성폭행을 당했건, 왕따를 당했건, 배신을 당했건, 심한 폭력에 노출되었건, 사기를 당했건 아무 상관없다.
 
그냥 해결할 능력이 안되면 무관심해져라. 따지고 보면 그 모든 것은 그냥 우리의 상처 입은 자아가 매일 반복하고 있는 후회일 뿐이다.
 
지금 이순간 과거를 단절시키고 현재를 보도록 하자.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너는 그 일을 당해보지 않았으니 그렇게 말할 것이라고 비난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살길 바라는가?
 
이 날 이후로도 그냥 계속 해서 분노를 잊지 않고 되새기면서 자신을 말려 죽일 셈인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채.
 
실제적으로 성폭행 당했던 몸은 이미 과거의 몸이고, 얼마나 맞았건 간에 상처는 흉터를 남겼을지 모르지만 고통은 사라졌다. 사기를 당했다면 돈은 이미 사라지고 없으며, 사랑하는 이에게 배신을 당했다면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그 모든 것은 물리적으로 완벽히 사라졌다. 그리고 남은 것은 우리 자신의 기억뿐이다. 만약 교통사고로 과거를 잊은 사람이 되면 아무것도 아닐 그 기억 말이다.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자포자기 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냥 가장 현명한 복수를 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잊고 무관심해지며 미래를 보라는 것이다.
 
왜 그렇게 자신을 학대하고 괴롭히고 심지어 자신의 나태함까지도 합리화 시키는데 사용하고 있단 말인가?
 
좋은 기억은 우리를 살아가게 만드는 힘이 되게 해준다고 한다. 그렇다면 반대로 나쁜 기억은 우리를 죽게 만드는 기억이 되는 것이다. 왜 스스로를 죽이려고 하는가?
 
눈 딱 감고 잊어보아라. 힘들게 용서하라는 것도 아니고, 이해하라는 것도 아니다. 그냥 눈 딱 감고 뒤돌아 보라는 것이다. 거기엔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아이가 있다. 혹은 자신이 사랑하는 아름다운 추억이 있고, 행복한 현실이 있다.

 

만약 현재에도 그런 따뜻함이 주변에 없다면, 당신은 삶을 잘못 산 것이다. 고정된 과거를 버리지 못해서 현재까지도 그 과거를 끌고 있는 셈인 것이다. 그러니 현재의 모든 잘못됨은 온전히 당신 책임이다. 하지만 너무 걱정 안해도 된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도 바로 과거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모습이 모두 자신의 잘못의 결과라는 것만 인정할 수 있다면, 당신은 말 그대로 새로 태어날 수 있다.

 

인정하게 된 후엔 미래를 살면 된다. 과거는 잊고 미래를 향해 가면 된다. 바로 이 순간부터 바뀌면 과거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사람은 절대 안바뀌려고 하지만, 그것은 자아의 처절한 연속성에 대한 욕구이다. 실제로는 아무 의미없는 행동이다. 어제 한 말을 오늘 뒤집는 것이 무엇이 그리 큰 문제란 말인가?

 

그냥 과거는 묻어두고 현재와 미래를 생각해라. 그리고 오늘부터 따뜻함을 만들어 가라. 당신이 살 수 있는 이유와 살만한 이유를 말이다.
 
너무도 화가 난 날도 잠시만 마음 먹으면 화가 물방울처럼 사라져버린다. 우리는 자신의 감정의 변화를 모두 외부에서 찾는 것에 익숙하지만, 실제로 우리의 모든 감정은 내부에서 발생한다. 파란 가을 하늘이 아름다운 것은 파란 가을 하늘이 아니고, 우리들 마음 속이다. 파란 가을 하늘은 단지 햇빛이 먼지에 난반사 된 효과일 뿐이다.
 
우리가 제대로 된 실체를 느낄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기억을 포함한 우리의 모든 것은 단지 우리 자신의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환상일 뿐인 것이다. 그것은 적당히 만 믿어야 한다. 살기 좋을 만큼만 말이다.
 
그 환상이 우리 자신을 잡아 먹을 땐, 부정하고 무관심해지는 것이 현명하다. 그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나름대로의 괜찮은 방법 중 하나이다.
 
우린 좀 더 열심히 살고, 좀 더 자신을 사랑하고, 좀 더 현명해지고, 좀 더 행복해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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