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절약가 혹은 구두쇠

아이루다 2014. 10. 6. 10:34

 
돈을 쉽게 쓰지 않는 사람을 일컫는 말 중에서 자린고비가 있고, 구두쇠도 있고, 짠돌이도 있다. 그런데 이 단어들 모두가 그리 긍정적인 표현들은 아니다. 보통 우리는 어떤 사람에게 이런 단어를 적용할 땐 비난의 의미를 포함시키곤 한다. 왜냐하면 이들에게 어떤 것을 베풀어봐야 10원 한 장 얻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표현들 말고 정말로 순수한 의미에서 절약이 생활화 된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사람들을 칭하는 단어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제목은 '절약가' 란 용어를 사용했지만, 이 단어는 왠지 모르게 어색한 느낌을 준다. 아마 사전에도 없을 듯 싶다.
 
아무튼 이 두 가지 경우가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던 간에 공통적으로 돈을 아낀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보통 절약에 대한 필요성은 우리 모두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사회로부터 자연스럽게 교육을 받는다. 물론 부모의 성향에 따라 집안에서도 강하게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도 꽤나 많다. 그것은 못사는 삶으로 인해서 자연스럽게 익혀지기도 하고, 어느 정도 경제력이 되는 가정이라고 해도 부모의 절약에 대한 의지에 따라 반복적으로 교육되기도 한다.
 
그리고 나중에 그 모든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된 후, 사람들은 참으로 다양한 형태의 돈 쓰기 패턴을 보이게 된다. 그리고 그 중에 오늘 글의 주인공인 절약가 혹은 구두쇠가 있다.
 
절약가와 구두쇠의 구분은 어려운 것 같으면서도 쉽다. 돈을 아낀다는 것은 같지만, 그 돈을 아끼는 부분이 어디까지 인지에 따라 차이가 난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돈을 아끼는 목적 그 자체의 차이로 인해 생겨난다.
 
그냥 생각하면 이 둘 모두 돈을 절약하려는 목적인데 무슨 차이가 나는가 싶기도 하겠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해보자. 과연 사람들이 돈을 아끼는 목적이 정말로 그 돈 자체일까?
 
이것을 알아보기 위해 우리가 돈을 낭비하지 않았을 때,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성향 별로 왜 돈을 아끼는지를 알아보기로 하자.
 
일단, 그냥 돈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돈은 욕망의 실현하는 도구이지만, 그 도구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다. 돈이 있으면 기분이 좋고, 돈을 벌면 더 기분이 좋다. 돈이 많으면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볼 때 웃음을 띠고, 돈이 적으면 무시한다는 것을 알기에 더 돈이 좋다. 돈은 언제라도 맛있는 것을 사먹을 수 있으며, 남들은 돈이 없어서 바라만 볼 때, 턱 하니 그것을 살 수 있어서 좋다.
 
이들에게 있어서 돈은 일종의 종교화가 되어 있다. 그래서 세상 모든 가치를 돈으로 환산해서 보려고 한다. 즉, 다른 이들의 행동이나 살아가는 모습을 모두 돈이 되느냐, 마느냐로 단순화 시켜서 바라본다. 그리고 이들의 이런 태도는 전염성이 강해서 딱히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돈으로부터 독립되었다고 확신할 수 없는 사람들이나, 어려운 경제 환경에 놓이면 많은 이들이 이 종교를 받아 들인다.
 
이들과는 다르게 절약 하는 삶을 그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어릴 때부터 우리가 받은 교육에 의한 것인데, 자신이 절약을 함으로써 무엇인가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이들은 상대적으로 돈을 막 쓰는 사람들에 대해서 어떤 적개심을 가지고 살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절약에 대한 가치부여를 했기 때문이다.
 
이것을 좀 더 복잡한 말로 표현하면, 절약에 대한 감성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런 이들은 절약을 하면서 사는 다른 이들의 모습을 볼 때, 매우 강한 공감을 느끼면서 감동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절약한 돈을 주변의 누군가가 아플 때 내놓는 모습을 보면서 멋지게 산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감성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바로 어떤 사람들은 같은 상황을 매우 구질구질하게 보기 때문이다. 길가에 떨어지는 낙엽은 누군가에겐 눈물이 나는 가을의 감성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치워야 할 쓰레기일 뿐이다. 감성이란 것은 원래 사람마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것에서 매우 큰 차이가 나타난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절약하면서 사는 사람들을 보고는 좀 심한 불쾌감을 들어내기도 한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그런 사람들의 비난 섞인 비웃음을 경험한 절약가는 그런 사람들이 돈을 막 쓰는 것에 대해서 적개심을 느끼고, 반대로 자신의 절약하는 삶을 가치 있다고 포장하려고 애쓴다.
 
쉽게 이 상황을 설명하자면, 그냥 돈을 좋아하는 사람은 누가 뭐 라든 간에 돈을 좋아한다. 이것은 타고난 것처럼 명확하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어떻게 생각하던 간에 그 당사자는 행복하다. 그래서 보통 이런 사람은 구두쇠가 된다. 자신이 돈을 모으는 것이 행복해서 돈을 안 쓰는데 주변인들의 평가가 왜 중요하겠는가?
 
반면에 절약 자체를 가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 반응에 대해서 어느 정도 민감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가치여야 하기 때문이다. 원래 가치는 스스로 믿는다고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그것이 가치 있다고 말해줘야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가치화 된 절약은 의미가 부여되고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사람들마다의 평가에 따라서 구질구질한 삶이거나 지혜로운 삶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가치를 믿는 사람은 보통 절약가가 된다. 그리고 절약가들의 가장 큰 불만은 자신들이 구두쇠처럼 취급된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돈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닌, 아끼고 사는 것에 대한 가치를 가진 이들이기 때문이다. 단지 이 둘이 살아가는 모습이 그리 차이 나지 않기에 다른 사람들의 오해를 사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오해는 그리 틀린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둘 모두 돈을 안 쓰기 때문이다. 단지 이 둘의 차이가 나타나는 현장은 바로 그들 가족들이나 친한 친구들에게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구두쇠는 외면하는 반면에 절약가는 돈으로 도움을 준다.
 
그래서 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그들을 절약가로 부르고, 반대로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은 구두쇠로 부른다. 그러니 어떤 면에서 이 둘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여기에서 차이는 도대체 큰 일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와 아는 사람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것일 뿐이다.
 
정말로 그 범위를 자신만으로 좁히면 구두쇠가 되는 것이고, 애경사가 있을 때와 그 가족까지 범위가 넓혀지면 절약가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이 인간 전체로 넓어지면 성인의 반열에도 오를 수 있다.
 
그런데 이쯤에서 이렇게 아끼는 삶이 과연 정말로 좋기만 한 것인가도 생각해봐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돈을 안 쓰는 것을 우리는 '디플레이션' 이란 경제 용어로 표현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용어는 돈을 쓰고 싶어도 돈 자체가 없어서 안 쓰거나 혹은 미래에 대한 불안함으로 인해 안 쓰는 것이라서 절약과는 그 이유가 다르긴 하다.
 
하지만 이 둘 모두 같은 현상을 일으킨다. 그것은 바로 소비가 침체되는 것이다.
 
소비 침체는 산업 활동의 위축을 일으킨다. 즉, 우리가 돈을 버는 직장이 돈을 제대로 벌지 못해서 월급이 줄어들고 일자리가 줄어들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과연 좋게만 볼 일인가?
 
그래서 실제로는 돈을 흥청망청 쓰는 사람도 문제지만, 돈을 너무 쓰지 않는 사람도 문제가 된다. 단지 돈을 흥청망청 쓰면 분명히 망하겠지만, 돈을 절약하면서 쓰면 살림이 쪼그라들긴 해도 망하지는 않는다는 차이는 있다.
 
이런 면으로 생각하면 결국 돈을 절약했음에도 쪼그라들지 않게 사는 사람은, 흥청망청 자신의 돈을 막 쓰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도움을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즉, 그들이 돈을 그렇게 쓰기 때문에 돈이 돌고, 이 돈이 공장을 돌리고 직장을 유지시켜주면서 월급을 올려주게 되는 것이다.
 
단순히 이런 관점에서 보면, 돈을 막 쓰는 사람이 사회적으로는 좀 더 유익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이들이 많아진다고 해서 마냥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이들은 거품 생산자들이기에 많아지면 결국 거품이 터지기 마련이어서, 나중에 크게 망하게 된다. 이것을 인플레이션 폭발이라고 한다.
 
그리고 어떤 관점에서 돈을 보느냐에 상관없이, 이들 모두가 돈의 노예라는 점에서는 같다. 돈을 막 쓰든, 아끼든 결국 돈이 가진 가치에 매몰되기에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정말로 돈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고 싶다면 절약가도 과대소비자도 되지 않아야 한다. 물론 사람이라서 미래를 위한 적당한 저축을 필요하겠지만 그리고 불필요하게 돈을 쓰는 행동도 자제해야겠지만, 그것에 대해서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가치화 되고 그것은 바로 절약 감성을 가진 사람들로 변해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돈은 없을 때 절약하는 것이다. 또한 돈은 많을 때 쓰는 것이다. 그 뿐이다.
 
정확히 말하면, 모든 이들이 돈을 쓸 땐 자신의 또 다른 이득을 위해서이다. 그것이 행복일수도 있고, 미래의 이득을 위해 관계 유지하기 위한 투자일 수도 있다. 이런 본질적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이는 없다. 인류를 위해 전 재산을 내놓든 아니면 자신이 암에 걸려도 돈이 아까워서 못쓰건 간에 상관없이 우리는 돈을 통해 행복과 만족감을 얻는다는 점은 같다.
 
단지 우리가 돈을 쓰는데 있어서 좀 더 나은 소비를 하고 싶다면, 그것은 절약가냐 구두쇠냐 과대소비자냐의 문제가 아닌, 우리는 과연 얼마나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 있는 소비자냐에 대한 문제일 것이다.
 
이것은 쓰레기 같은 기업들의 도태 시킬 수 있고, 소비자를 호구로 보는 기업을 응징할 수도 있다. 또한 불공정한 일을 일삼는 기업들에 대해서 철퇴를 가할 수도 있고, 사회적으로 선한 활동을 많이 하는 기업에 대해서 힘을 불어 넣을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현재 우리나라처럼 거대 기업이 정부와 사회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이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힘이 오직 소비자의 손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어차피 자신의 행복과 만족을 위해 쓰는 돈이라면, 우리의 미래를 위해 당장의 불편함을 참고 미래 세대에게 조금이라도 나은 사회를 물려주는 것으로 가치를 삼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다. 뭐, 물론 가치화 시키는 것 자체는 문제가 있지만, 돈을 안 쓴다는 자부심보다는 나아 보인다.
 
그리고 하나 더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의 자원은 한정적이며 또한 원래 우리 것이라고 정해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가 늘 쓰는 전기, 기름, 각종 자재, 옷감 등등은 모두 지구에서 빌려다 쓰고 있는 것이다. 만약 절약을 해야 한다면 바로 이런 것을 아끼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최대한 재활용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맞다.
 
그래서 절약가는 다시 정의 되어야 한다. 절약가는 자원의 소중함을 알아야 하며, 현명한 소비가 무엇인지를 인식해야 한다. 무턱대고 돈을 아끼고 자신과 이득 관계에 놓인 사람들만 도우면서 사는 사람들은 단지 확장된 구두쇠일 뿐이다.
 
오늘도 자칭 절약가들은 돈을 아끼고, 흥청망청 사는 이들을 비난하고, 자신은 소중한 가족, 친구를 위해서는 돈을 아낌없이 쓰는 너그러운 사람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 자신이 소비하는 그 모든 것이 도대체 어떻게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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