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나를 사랑해야 사랑을 할 수 있다

아이루다 2014. 9. 21. 07:46

 
인간이 평생 살아가면서 느낄 수 있는 감정 중에서 가장 강렬한 것은 무엇일까? 그 후보로는 몇 가지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첫 번째는 바로 남녀간의 사랑일 것이고, 두 번째는 아이를 낳은 엄마와 아빠의 마음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후보로는 부모님의 죽음이나 혹은 가장 소중한 이의 죽음을 경험할 때 정도로 그 대상을 좁힐 수 있다.
 
그 중에서 슬픈 감정으로 분류되는 죽음에 대한 것은 빼고 기쁨의 감정으로만 후보를 삼는다면, 아마도 나는 아이에 대한 감정보다 남녀간의 사랑에 대한 감정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뭐 이럴 수 있는 근거는 순간적으로 집중되는 사랑의 강도를 가늠해서 그렇다.
 
아이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우리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감정 중 대단한 것이긴 하지만, 그 기간이 아주 길다는 면에서 집중도가 떨어진다. 반면에 남녀간의 사랑은 그 유효기간이 짧은 대신 그 만큼이나 강렬하다.
 
그래서 실제로 많은 이들은 사랑을 꿈꾼다. 자신이 사랑하는 그리고 나를 사랑해주는 어떤 이를 만나서 그 사랑의 감정을 경험해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꿈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사랑을 원하지만 그리 쉽게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일단 상대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 가장 난제일 것이다. 두 번째로 자신이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상대를 만났다고 해도 그 상대가 자신만큼의 감정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잘못하면 서로 사랑하는 연인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짝사랑인 경우도 생각보다 흔하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서 우리는 사랑을 경험하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그런 강렬한 사랑을 경험할 행운이 있는 사람은 내 판단에 전체의 10%도 안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강렬한 사랑보다는 여러 가지 이유나 필요성에 의해서 사람을 택하고 적당히 만족하는 수준에서 사랑을 경험하는 부부로서 살아가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강렬한 사랑을 경험하는 이 역시도 수 개월 내로 결국 같은 모습으로 수렴해가기 때문이다. 즉, 사랑의 유효기간은 그 만큼이나 짧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런 수준의 사랑까지 포함하게 되면 아마도 사랑 자체를 경험한 이는 전체의 절반 정도 될 것이다.
 
아무튼 그 사랑의 형태가 은은한 숯불과 같든지 아니면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 같든지 상관없이 사랑을 경험하는 것은 개인들에게 있어서 대단한 행운이다. 그리고 우리가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에는 앞에서 말한 이유들 말고 훨씬 더 중요한 한 가지 진실이 숨겨져 있다.
 
그것은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른다는 사실이다.
 
우리 인간은 태어나고 자라면서 '자아' 라는 개념이 만들어진다. 이것을 '에고' 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아무튼 이것은 보통 우리 자신을 뜻하는 말이다. 그리고 이 자아는 평생에 걸쳐 자신의 이득을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되는데, 그 목적은 바로 자신이 소속된 육체의 보전이다. 즉, 죽음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자아의 타고난 역할은 우리 자신을 착각 속으로 빠뜨린다. 그것은 바로 우리 인간은 누구든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믿게 해주는 것이다.
 
이것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찰의 역할을 보면 된다. 그들은 시민들을 사랑해서 그들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냥 그들이 월급을 받고 있기에 하고 있는 의무이다. 물론 경찰들 중에서는 특별히 사람들에게 애정을 품고 정성을 다하는 이도 있겠지만 그것은 그저 어떤 특별한 경우일 뿐이다. 본질은 의무감이다.
 
자아가 우리 자신을 생존 시키는 것 역시도 의무감이다. 우리는 유전적으로 그렇게 프로그램 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우리는 눈 앞으로 날라오는 공을 보는 순간 눈을 감게 되어 있다. 이것은 설령 의식적으로 노력한다고 해도 눈을 감지 않기란 무척 힘들다.
 
이런 자아의 끊임 없는 성실한 역할로 인해 우리는 생존 자체를 자신을 사랑하는 행위라고 믿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생존에 대한 의무감과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비교될 수도 없고, 대신할 수도 없는 개념이다.
 
잘 생각해보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만큼이나 나 자신을 사랑한다는 뜻이 된다. 왜냐하면 그 사랑이란 것 자체가 바로 나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사랑을 상대를 위한 것이라고 믿기도 하지만, 사랑의 본질은 온전히 자신을 위한 철저한 이기적 행동이다.
 
그리고 이것은 딱히 비난 받을 필요가 없는 이기적인 행동이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의 모든 행동은 이기적이기 때문이며 또한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에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린 이기적 만족감이 극대화될수록 더욱 강렬한 감정을 경험 할 수 있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는 과정을 생각해보자. 일단 남자든 여자든 호감을 느꼈다면, 첫 번째 우리의 심리엔 바로 상대에 대한 가치를 부여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외모나 태도 말투 등등에서 자신이 가치 있는 매력이라고 느끼는 것을 그 상대에게 발견했기에 호감이 생겨난다.
 
여기에서 중요하게 봐야 할 단어는 바로 '가치' 이다. 이 가치는 상대가 만든 것이 아니다. 우리 개개인 자신이 믿는 순수한 개인적 영역에서 일어난 판단이다. 즉, 이 말은 상대에게 호감을 느끼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온전히 개인적 영역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그런 가치를 느낀 매력적인 상대가 보통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공통적으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아서 착각하기 쉬우나, 실제로 그 가치는 본인의 것으로 한정된다. 물론 자신이 그 가치를 착각하는 경우도 흔하기에 반드시 본인의 것만이 아닌 경우도 많다. 이것이 사랑을 실패하는 큰 이유로도 작용한다.
 
스스로 만들어 낸 가치가 아닌, 타인들로부터 복사한 가치는 이런 식으로 사람을 착각하게 하여 전혀 자신이 매력을 느끼는 상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매력을 판단한다.
 
아무튼 호감을 느낀 상대와는 운이 좀 따르게 되면 사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그리고 여기에서 정말로 사랑에 빠지는 경우가 일어난다. 하지만 이 때 우리가 느끼는 가장 강렬한 감정은 바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가 생겼다는 것과 그 자신 역시도 누군가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판단에 그렇게나 좋은 사람이 바로 자신의 배우자가 될 수 있다는 놀라운 행운에 대한 만족감이 함께 한다.
 
물론 남녀간의 사랑엔 이것 이외에 한 가지 숨겨진 것이 더 있다. 그것은 바로 아이를 낳게 하기 위해서 몸에서 분비하는 엄청난 양의 호르몬인데, 이것은 우리의 몸을 거대한 행복감 속으로 빠져 들게 한다. 그래서 이런 육체적인 변화와 정신적인 변화가 동시에 우리를 강타함으로써 결국 인생에 있어서 최고로 강렬한 감정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이런 기회가 눈 앞에 왔어도 이것을 제대로 다루지 못해서 결국 그 사랑을 이어나가지 못하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그런 모습의 배경엔 바로 자신의 삶에 대한 서투름이 존재한다.
 
우리 인간은 어린 시절부터 수 많은 열등감을 느끼며 자라나게 된다. 이것은 그 누구도 피해나갈 수 없는 것이다. 우린 나이를 먹으면서 좀 더 현명해지거나 혹은 포기하거나 아니면 이것을 완전히 상쇄시킬 수 있는 어떤 위대한 업적을 남김으로써 벗어난 것처럼 보이겐 할 수 있다. 하지만 결코 우리는 평생에 걸쳐 이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성인이 되기 전까지 이것을 제대로 다루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사랑에 빠질 나이가 되었어도 열등감을 기본으로 한 심각한 자기 비하에 빠져 있을 수 있다.
 
또한 반대로 이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 낸 우월감은 그 자신에 대한 평가를 어처구니 없게 하게 만들어서 결국 자신의 본질적 모습은 간데 없고 거품만이 가득한 내면을 갖게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둘 모두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이들이 사랑에 빠질 기회가 오면 그것을 제대로 잡지도 못하고 또한 그것을 제대로 다룰 줄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이들이 앞에서 말한 자신이 만들어 내어야 할 가치를 자신이 없어서 남의 것을 흉내 내거나 혹은 누구나 부러워하는 것을 무조건 따라 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여 결국 주어진 기회를 망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사랑은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고 또한 상대의 모습을 그대로 인정한 상태에서 그 사람을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로 인식해줄 때 가장 아름답다. 즉, 우리는 그때까지 평생에 걸쳐 자아가 얻은 수 많은 상처를 사랑을 통해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는 반드시 그것을 극복하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그래야 그 병을 낫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 비하나 자기 우월감에 빠진 이들은 이것을 치료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특히나 비하는 상대의 많은 노력으로 인해 극복이 될 수 있지만, 우월감은 도대체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비하는 동정심을 유발하여 상대의 인내력을 높여주지만, 근거 없는 우월감은 도대체 그냥 바라보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이 스스로 깨어나지 못한 채,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정말로 좋은 상대를 만나야 한다. 그 수 많은 자신의 단점을 이해해지고 기다려주면서 차분한 조언을 해 줄 그 누군가를 말이다. 하지만 이런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이는 정말로 드물다.
 
결국 그래서 사랑을 경험하고 싶다면 일단 자신을 제대로 볼 줄 알아야 한다. 원래 자신의 몸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몸에 늘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려고 한다. 그래서 건강 검진도 받고 운동도 열심히 한다. 우리는 누구나 그렇듯 중요하지 않는 것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우리는 누구나 시험을 보거나 건강 검진을 받아야 자신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알 수 있다. 이 말은 자신이 상태를 제대로 보게 된다는 뜻이다. 보통, 자신을 제정신으로 바라보는 것은 정말로 힘든 일이다. 그것은 숨겨 놓은 모든 열등감을 끄집어 내어야 한다는 뜻이며, 누구도 그것을 즐거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자신의 현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 앞에서 말한 열등감이나 우월감 둘 중 하나에 심각하게 빠진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이들은 이것을 인식하지 않기 위해서 생각을 할 시간을 최소화 시키는 전략을 쓰고 있다.
 
그것이 열등감이든 우월감이든 중요한 것은 그것 자체를 깊은 기억 속으로만 밀어 넣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인해 그리 힘들지 않을 수 있기에 쓰는 방법이다. 그리고 현대 사회엔 그것을 위한 많은 유요한 도구가 널려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이것은 꽤나 잘 동작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상당히 멀쩡한 모습을 살아간다. 하지만 이들 거의 대부분은 어떤 경우에 자신의 단점이 들어날 경우만 생겨나면 금새 얼굴이 붉어지고 화를 낸다. 즉, 자신의 못남이 들어나는 순간이 오면 그 깊게 숨겨진 열등감은 언제 숨었었냐 싶게 활개를 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화를 내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물론 사람들은 부당한 대접을 받았다고 해서 화를 낸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정말로 화를 낼만한 경우는 그 전체 화 중에서 백분의 일 정도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해서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은 그것을 극복한 사람이냐? 그것도 아니다. 그들 역시도 숨겨졌을 뿐, 내면의 화는 여전하다. 그것은 성격에 따라 표출되느냐 마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그래서 사랑을 하는 남녀는 호르몬이 보장하는 기간이 지남에 따라 싸워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을 권태기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 권태기는 실제로는 자신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한 두 사람의 숨겨진 모습이 서로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이뤄지지 못하고 결국엔 헤어진다.
 
우리는 이렇게 사랑을 반복하다가 재수가 좋아서 나이가 대충 들어 맞아서 결혼까지 가게 되면 이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통해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결혼이란 사회적 약속과 아이라는 공동의 책임 대상을 통해서 이미 없어진 사랑을 대신하게 되는 것이다.
 
사랑을 하고 싶다면,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패를 있는 그대로 볼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과정이고 결코 행복하지 않다. 하지만 그 과정을 건널 수 있을 때,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게 되며 또한 운명의 상대를 만났을 때 온전히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우리는 아주 특별한 사람이 아닌 바에야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는 상태에서 상대를 만날 수는 없다. 단지 우리는 그것을 하려는 의지를 가진 상태에서 만날 수는 있다. 그래도 그 의지가 바로 우리가 사랑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는 힘이 되어 준다.
 
상처 입고 힘든 두 사람은 그렇게 만나 서로를 치료해주고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내게 해준다. 이것이 사랑의 가장 위대한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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