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굴종과 순리 사이

아이루다 2014. 9. 20. 08:12

 
어린 시절 들었던, 어른들이 하는 말 중에서 '순리를 따르라' 라는 것이 있었다. 이 땅에서 살다 보면 누구나 한번 쯤 들어보게 되는 이 흔한 말은 실제로는 특정한 어떤 사람이 하는 말은 아니었다. 그냥 살다 보니, 언제 누구한테 들었는지도 모르게 들었던 말 중 하나이다. 또한 들었던 당시는 그 의미를 모르다가, 나이를 먹게 되면 갑자기 이해하게 되는 격언과도 같은 말이다.
 
나 자신도 나이를 어느 정도 먹다 보니, 이 말에 꽤나 중요한 삶의 지혜가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살아 오면서 무엇인가를 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는데 실패했거나, 별로 의도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연히 얻어진 행운을 보거나 직접 경험하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굳어지는 듯 하다.
 
실제로 나 자신의 삶이나 주변 인들의 삶만 보아도 생각보다 노력은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아니었다. 물론 영화관에 가거나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은 노력은 쉽게 그 목적이 달성되지만, 그것보다 훨씬 무겁게 다뤄지는 목표들, 즉 결혼, 직장, 성공, 돈, 행복과 같은 것들은 원한다고 해서 얻어지지도 않고, 딱히 노력하지 않았다고 해서 얻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다.
 
내 주변엔 생각 없이 낸 입사 원서였지만, 당해 그 회사가 새롭게 시작한 신입 사원 선별 방식과 잘 맞아 떨어져서 누구나 들어가고 싶은 굴지의 대기업을 들어간 친구도 있고, 취직은 물론 사업을 하겠다고 정말로 열심히 살았는데 모두 실패하고 결국 연락까지 끊긴 지인도 있다. 물론 이것은 오직 사회적 성공, 즉 돈에 대한 예이지만 사실상, 요즘 사람들에겐 이것이 전부이기도 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난 후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못해서 안달이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어차피 될 일은 되어가고, 안될 일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을 이제야 경험을 통해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 이 순간 세계적으로 성공했다고 알려진 젊은 사업가들 역시도 결과론적인 성공인 것이다. 그들은 그런 일을 하고자 했던 다른 많은 사람들의 불운을 통해 성공한 것이다. 100명의 도전자가 있을 때, 그 중 한 명만 성공하여 대중에게 알려지고 나머지는 잊혀지고 마는 것이 이 세상의 숨겨진 진실이다.
 
그리고 그 성공의 열쇠는 큰 흐름에 어떻게 대처했느냐가 정말로 중요한 결정 요소가 된다. 과일이 익는 동안은 몇 달이 걸리지만, 정말로 맛있는 순간은 단 며칠에 불과하며, 이 후 과일을 금새 시들어간다. 누구나 과일을 따지만, 누가 정말로 맛있는 시기의 과일을 딸 수 있느냐는 정말로 운에 달렸다.
 
 
흐르는 물을 대처하는 방법에 있어서, 따라 흘러 가는 것이 물을 거슬러 오르는 것보다 수십 배 편하다. 그리고 이것을 '순리'라고 한다.
 
물론 무엇인가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한다면, 그것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은 맞다. 노력을 해야 그나마 가능성이 많이 높아진다. 그런데 이 노력이 흐름의 순방향이냐 역방향이냐에 따라서 노력의 정도는 어마어마한 차이를 보인다. 그래서 나이를 먹고 경험이 쌓여갈수록 순방향을 따르는 것이 설령 실패를 했더라도 자신이 감당해야 할 위험을 훨씬 줄여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노력도 중요하지만 순리를 따르는 것이 어쩌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여기엔 문제가 하나 있다. 도대체 무엇이 순리라고 보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다.
 
예를 하나 들어 보자. 우연히 자신의 오빠의 아내, 즉 올케가 바람을 피우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치자. 오빠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으니 알려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 오빠라면 별로 혼란이 덜하겠지만, 그 사람이 오빠가 아닌 친구나 이웃 사람일 경우라면 좀 더 복잡하다. 과연 무엇이 현명한 판단일까? 바람을 피우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모른척 사는 것이 나을까?
 
여기에서는 순리가 무엇인지 혼란스럽다. 단지 정직하고 솔직함만이 최선을 결과를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판단해야 할 문제들은 결코 그리 단순한 것만이 아니다. 그래서 순리를 따르고 싶어도 순리가 무엇인지 판단하기 힘들어서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그리고 더해서 한 가지 문제가 더 있다. 그것은 바로 순리라고 믿는 것이 과연 정말로 순리인지, 아니면 용기를 내지 못해서 잘못된 일에 그냥 눈 감는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인간이 사는 세상은 끝없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가 각자 그것에 대한 감시자 역할을 맡고 있다. 우리가 공중도덕을 지키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원리가 작동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에서는 곧잘 공공질서를 지키지 않는다.
 
그런데 만약 어떤 불법적인 일을 목격했을 때, 이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만약 회사 내 비리를 알게 된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 순리인가? 그냥 모른 채 지나치는 것이 순리 같지만, 실제로 이것은 자신에게 돌아 올 어떤 불편함이나 혹은 손해가 발생할 것을 두려워해서 그냥 관습적인 것에 굴복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런 것을 비겁한 것으로 해석하기 보다는, 그것이 관습적, 즉 순리라고 생각한다. 즉, 우리는 자신에게 손해 보는 짓을 하는 것을 역리, 반대를 순리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순리는 물의 이득을 위해서는 아니다. 그저 물은 중력의 작용으로 인해 그런 흐름을 보이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자연의 순리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순리는 계산식이다. 그래서 마치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이 더 이득이라고 생각해서 흐르는 것과 비슷하다. 이것은 말이 안 된다.
 
세상엔 시끄럽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 불의를 보면 그냥 못 본 척 넘어가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큰소리 내어 소란스럽게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조용한 사람들은 결국 이 큰소리를 치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공정함의 덕을 보면서도 시끄러운 사람들에게 조용히 살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것이 순리인 것 마냥.
 
또한 다른 목적으로 시끄러운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자신의 이득을 조금이라도 더 얻으려고 노력하면서 큰 소리를 낸다. 그리고는 그것이 당연한 자신의 권리라고 믿는다. 즉 그들에겐 그것이 순리인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도 순리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는 절대로 순리가 아니다.
 
이것은 결국 흐르는 물을 거슬러 오르는 행위이다. 그래서 그 당시는 작은 이득을 얻게 되겠지만, 삶을 전체로 보면 끝없는 손해를 입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 손해를 인식할 수 없다. 단지 물질적인 것만이 삶에서 이득이라고 믿기에 그로 인해서 얻어지는 손해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이 말이 순리이다.
 
세상은 분명히 순리대로 사는 것이 좋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거의 모든 문제는 개인의 욕심으로 인해 순리를 거스르기 때문에 생겨난다. 폭우나 폭설 내리는 날은 그냥 집에 있어야 한다. 그런 날 무리하게 차를 몰고 나가면 사고가 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들의 비겁함을 순리라는 명목으로 합리화 하고 있다. 순리와 비겁함은 절대 같은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같은 선상에 두는 어처구니 없는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노예로 태어난 노예가 평생을 노예로 살아가는 것은, 언뜻 보기엔 순리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이것은 순리가 아니다. 더 중요한 순리는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누군가 누구의 소유가 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란 것이 순리인 것이다. 아니 인간뿐만이 아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가 그렇다.
 
혈기 왕성하고 야심 찬 젊은이에게 노인이 던지는 조용한 조언은 쉽게 무시가 된다. 하지만 그 젊은이가 또 그 노인이 되면 그 노인의 조언을 되새기게 된다. 우리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나이를 먹고 경험을 통해야만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나이를 먹는다고 모두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는 매우 일부만 그런 깨달음을 경험할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죽는 순간까지 자신이 가진 것을 최대한 움켜쥐고 있다가 죽는다. 죽을 때까지 십 원짜리 하나 손해 보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못하고 죽는 사람들도 매우 많다.
 
자신의 나이에 얼만큼이나 부끄럽지 않는 사람이 되느냐는 오직 그 자신에게 달렸다.
 
과연 100년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만약 그것을 알 수 있다면 그것을 위해 사는 것이 우리의 삶의 순리가 될 것이다. 나는 적어도 그것이 돈은 아니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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